
괜찮다 괜찮아-
정순옥
“괜찮다 괜찮아-.”
걱정 염려 속에서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안심시키는 말이다. 무언가 여운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당장은 마음이 놓이는 말. 그날 그때는 없어도 어려운 일을 당해 가슴 아플 때나 두려울 때는, 내 가슴속을 울리는 말이 어머니의 음성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괜찮다 괜찮아-“
인생살이를 하면서 가끔 ‘괜찮다 괜찮아-’ 혼잣말을 하면서 나 자신이 위로받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 어떠한 말보다도 가슴에 와 닿아 위로가 되는 말이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심연에서 용기를 주는 말이다. 삶 속에서 자신이 무너져감을 느낄 때,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언어다. 슬픔에 겨워서 숨쉬기도 어려운 순간에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언어들이 있지만, 나는 어쩐지 ‘괜찮다 괜찮아-‘가 쉽게 떠오른다. 깊은 곳에 사랑이 숨겨져 있는 말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 세상에 혼자 있는 외로운 느낌이 들 때도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나를 토닥여주지는 말, 괜찮다 괜찮아-.
세상살이할 때에 꽃길만 걸어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생살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가 잦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세월을 회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나의 인생이다. 기쁘고 즐거운 때도 잦았지만, 절망과 실의로 허덕일 때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 위로를 받았던 말은 ‘괜찮다 괜찮아-’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넘어져 왼쪽 팔꿈치뼈가 두 동강이 나서 덜렁거렸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어머니는 부러진 나의 왼팔을 붙잡고 논밭 사이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 원평시장에 있는 어느 의원한테 갔다. 어머니는 계속 ‘괜찮다 괜찮아-’하시면서 나의 팔을 붙들고 위로하셨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하늘에 떠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팔을 다쳐 무척 두렵고 아팠을 텐데, 그 기억은 없다. 따스한 아버지의 등에 포근하게 업혔던 느낌과 어머니의 “괜찮다 괜찮아-“ 하시던 소리가 지금도 가슴속에서 아련하게 들린다. 밤중에 찾아간 의원은, 팔꿈치 뼈마디가 빠져나와 맞췄으니 아침 일찍 전주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이라 팔꿈치 마디뼈가 빠져나왔지만 맞출 수가 있었나 보다. 신기하게도 덜렁거리던 팔이 팔목 지지대와 붕대에 싸여서 반듯이 고정되었다. 다음날 전주 예수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맞춘 뼈가 이미 굳어진 상태에서 다시 교정하기가 어려워 약간 구부러진 모양으로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일상생활 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그 상처의 흔적은 남아 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시절에 만난 간호사를 너무도 좋아해 우리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다친 팔이 괜찮아져서 간호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버지 어머니 사랑에 젖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많고 아름다운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서슴없이 우리 부모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인생살이의 스승이 누구냐 물어도, 내 글을 지도해 주는 분이 누구냐 물어도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고난 중에도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 것도 우리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이루어 진 것이리라. 한국전쟁 후,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다. 나는 한국의 토속신앙에 신종교인 기독교가 선교사를 통해 신앙인들의 정서를 넓혀갈 무렵에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사람은 코가 크다고 ‘코쟁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코쟁이들이 아는 게 많다더라.” 하시면서 무엇이든지 배워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예배당에 데려다 주신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유교사상에 젖어 생활하시는 아버지께서도 내가 예배당에 다니는 걸 반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할머니가 되었고 남을 위로해 주며 살아가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믿음이 어린애 같아 담대하지를 못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국가 세계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은 스트레스 탓에 운명하는 일도 허다하다. 내일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품은 말이 서로에게 필요함을 느낀다. 극심한 스트레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는 말, 괜찮다 괜찮아-.
현세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미국이 개입한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세계가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다. 불안과 공포는 자유와 평화를 차츰 앗아가고 있다. 세대는 급변하고 물질만능 시대인데도 사람들은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앞날을 걱정한다. 지금은 인공지능시대여서 사람이 편리해지고자 만든 AI(Artificial Intelligent)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봐 사람이 두려워하는 실정이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었다.
올해 한국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차지했던 승리의 기쁨을 멀리하고 하위권에 머물러, 붉은 악마’로 불리며 선수들을 응원하던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다. 뉴스를 들으며 허탈감에 빠진 나에게 우리 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괜찮다 괜찮아- 다시 뛰면 된다.” 이 말에는 희망이 서려 있고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도 내 형편을 아시는 분이 돌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안심된다. 나는 이 시간 미래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누군가에게, 아~니 어리석은 나 자신에게 가슴을 활짝 펴고 소리 내어 외쳐본다. “괜찮다 괜찮아-”
*네 명의 외손녀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