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상상력으로 성스러운 이야기를 펼치다
이택화
(문학평론가. 시인. 수필가)
1. 신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창문에 선 시인
김준호 시인의 제5시집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그女의 향기』는 99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100이라는 완벽의 숫자로 대변되는 신에 닿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시인의 호인 나신(裸神)은 벗을나(裸)와 신신(神)으로 ‘벌거벗은 신’을 의미한다. ‘벌거벗다’는 아주 알몸이 되도록 입은 옷을 모두 벗다라는 뜻이므로 감춘 바가 없는 순수와 본질의 존재인 신을 지향하는 시인의 의식을 그의 호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이 담긴 그의 시들은 인간의 도덕으로 옷을 입힌 욕망에서 벗어나 신의 창문으로 살핀 존재의 상상과 자유를 보여준다.
시집의 제목에 쓰인 ‘창문(window)’은 고대 스칸디나비아어인 ‘빈다우기(vindauge)’에서 유래한 말로 ‘빈드(vind)’ 바람과 ‘아우기(auge)’ 눈을 의미한다. 창문은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하나의 바람으로 연결하는 통로이면서 안팎을 볼 수 있는 사람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건축가이자 도쿄(東京)공업대 교수인 쓰카모토 요시하루는 학생들과 28개 국가를 답사하면서 창문에 대해 경험하고 『창을 순례하다(푸른숲, 2015. 6. 12.)』에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 책에서 창문이 장소가 요구하는 조건인 기후나 풍토, 사회적이거나 종교적인 규범, 건물의 용도 등에 실천적으로 응답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섭리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을 부여한다고 썼다. 김준호 시인은 나신(裸神)으로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창문에 서서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시를 쓰고 있으니, 그의 시에는 신화성이 묻어난다.
왜 주저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름진 텃밭에
그루터기만 여기저기
나의 쟁기를 기다리는
미래의 울창한 숲
나의 손길을 구하는
작은 언덕 언덕 언덕
나의 목마름을 찾는
세 개의 옹달샘
텃밭의 기적은 오로지
神만이 이룰 수 있어
내가 神이 되어야
그래서 나는 神이다
- 「나는 神이다」 전문
시적 화자인 ‘나’는 ‘신(神)’을 자처한다. 그가 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 기름진 텃밭’을 일구고 싶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현실에 맞추어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여 줄기나 열매를 갖지 못하는 ‘그루터기’에서 벗어나 ‘미래의 울창한 숲’을 건설하고, 세 개의 ‘언덕’을 손길로 가꾸고, ‘세 개의 옹달샘’에서 ‘목마름’을 해소하려면 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피력한다. 이러한 신에 대한 관념은 시인의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추상이나 공상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생명체에게 관심을 가지고 간파한 시인의 예지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김준호 시인이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모든 생명체의 구조적, 기능적 기본 단위인 세포(細胞) 하나도 우주의 축소판이며, 신의 또 다른 실체임을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각 세포는 우주의 원리이며 신의 원리를 품고 물질대사를 하고,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며, 영양소를 받아 에너지로 전환하고, 필요할 때 번식하는 등 다양한 생명 활동을 하는 작은 신이다. 이러한 세포를 약 60조 개 가지고 육체 운동과 정신 활동을 하는 시인이 신이라고 경탄하며 믿어질 수 있다. 또한 그는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가 특정하게 결합한 자신을 창문으로 삼아 미세한 세포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볼 줄 아는 안목을 길러 신을 자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SF의 거장이며 미국 보스턴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 교수였던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 1. 2. ∼ 1992. 4. 6.)는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을 우주로 보았다. 이러한 우주를 품고 신의 세계를 알고 싶은 김준호 시인은 ‘작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그女의 향기’ 같은 신화적 속성을 시에 풀어 독특한 시 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하여 신화적 속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는 「도깨비불」, 「작은 나무」, 「門을 박차고」, 「스캔들에서 신화로」, 「새 그리고 새장」, 「하느님도 모르는 女子의 마음」, 「바람」, 「기다림의 변주곡」, 「나를 경배하라」, 「부정한 女子」, 「몽상」,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태양과 가로등」, 「Toy」, 「Hardcore」, 「Birds」 등이 있다.
2.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야기
신(神, God)은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창조성과 불멸성을 지닌다. 신화(神話, Myth)는 국가나 민족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신에 대한 이야기 혹은 신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창조와 불멸의 속성을 지닌 우주의 인자로 만들어진 인간 중에서도 시인은 신의 속성인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작품을 생산한다. 김준호 시인은 상상력의 문을 열고 신과의 내밀한 만남에서 얻은 영감을 이야기 구조로 풀어놓았다.
이야기는 인물, 사건, 배경의 3요소에 의해 단단한 서사구조를 가지게 된다. 시집에서 드러나는 핵심적인 시적 특징인 신화성을 인물, 사건, 배경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성스러운 인물과 인간의 동일시
신화 속에는 성스러운 인물이 등장한다. 신화에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종교에는 성스러운 인물이 주를 이룬다. 신화적 인물은 오랜 역사를 지니는 동안 종교적 신으로서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인물로는 예수님이 대표적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을 한 하나님으로 신격화되면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예수님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고력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집의 인물로 등장하는 예수님은 인간과 동일시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을 男친이라고 부르는 그女
내가 보고 싶다고 하자 발끈한다
내가 보고 싶은 男子는 예수님뿐이거든요!
정말 나를 보고 싶은 모양인가?
이 코로나 와중에도 굳이 보려고 하나
예수님 보려면 아직 멀었는데-구차한 반응
하긴 나도 예수님이 보고 싶긴 하지만
그女의 예수 타령은 어디서 온 것일까
예수님을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는지도
혼자 사는 女人이 예수를 男子로
男친으로 삼는 것이 당연할지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男子를
예수로 대체해서 마음껏 사랑하는지도
예수라고 주장한 수많은 人間같이
내가 정말 예수라 사랑하는지도
이런 詩는 왜 씁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 「혹시 내가 예수?」 전문
「혹시 내가 예수?」에서 예수님은 ‘그女’의 ‘男친’이 되기도 하고, 시적 화자인 ‘나’가 되기도 한다. 이 시에서는 예수님을 신성한 인물로 거리를 두지 않고 ‘혼자 사는 女人이 예수를 男子로 / 男친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사랑해서는 안 되는 男子를 / 예수로 대체해서 마음껏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신성한 인물과 거리를 일치시킨 화자는 ‘예수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人間같이 / 내가 정말 예수라’고 믿어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시의 내용은 김준호 시인의 인간이 신일 수 있다는 사유체계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 하디가
테스라는 女人을 창조하면서
그女가 女神이 될 줄 알았을까
그 저 교회의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테스는 강간에 의해
아비 없이 태어난 아들의 세례를
거부한 교회에 맞서 스스로
(예수도 이 세상에 아비 없이 왔는데도…)
아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이렇게 그女는
女神의 터전을 닦고
또한 죽은 아들의 장례를 거부한
(예수도 정식 장례를 치르지 못했으니…)
신부에게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하느님임을 고백하게 하고
아들의 장례를 스스로 베풀었으니
그女가 女神이 아니면 무엇일까
아! 그러나 그女는 예수를 닮아
사랑하는 男子를 위해
전직 목사 나쁜 男子를 죽이는 女神의
진노를 보여 희생당했으나
(예수도 하느님의 진노를 보여 십자가에서…)
예수가 부활했듯이
테스는 한 詩人의 손에서
女神이 되어 부활하고
- 「테스 – 희생 제물이 된 女神」 전문
「테스 – 희생 제물이 된 女神」에서 ‘한 詩人’은 ‘예수가 부활했듯이’ ‘테스’를 ‘女神’으로 부활시킨다. 테스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 6. 2. ∼ 1928. 1. 11.)의 장편소설 『테스』의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다. 이 시에서 ‘테스는 강간에 의해 / 아비 없이 태어난 아들의 세례를 / 거부한 교회에 맞서 스스로’ 준다. 그녀는 ‘아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 세례를 주’어 ‘女神의 터전을 닦’는다. ‘또한 죽은 아들의 장례를 스스로 베풀’어 여신이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男子를 위해 / 전직 목사 나쁜 男子를 죽이는 女神의 / 진노를 보여 희생당했’다. ‘詩人’은 테스를 예수님과 유사한 인물로 부연 설명하면서 부활로 이끈다. 이 시에서는 인간과 신의 동일시가 드러난다.
등장한 인물이 신화성을 갖거나 신과 동일한 인간형으로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사람의 탈」, 「백미러의 女人」, 「성경 읽기가 유일한 독서」, 「動物의 王國」, 「해바라기」, 「밀회」, 「해변의 女人」, 「다 보여 드릴까요?」, 「뱃살 公主」, 「야한 女子」, 「마리아와 마르타」, 「파리지옥」, 「宮女」, 「집채만 한 귀걸이를 한 女子 랍비」, 「싸가지」, 「되돌아보기」 등이 있다.
(2) 성스러운 사건으로 실체가 드러나는 사랑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못 다한 이야기’, 제2부 ‘그리움이 날개가 되어’, 제3부 ‘스캔들’, 제4부 ‘겨울 나그네’ 등의 제목에서는 사랑의 서정성이 짙게 배어난다. 시집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남녀 간의 사랑과 관심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나 고등 종교의 근간은 사랑의 실현이다. 종족 유지의 힘이 사랑이므로 신화성이 강할수록 원초적 본능이나 이성으로 다듬은 사랑의 실체가 드러난다. 김준호 시인이 시의 제재나 주제로 삼고 있는 글감의 중심은 남녀의 사랑이지만 평범한 사랑의 열정이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신화적 속성을 지닌 남녀의 사랑이 펼쳐지고 있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단풍 일면 그대 오고 낙엽 지면 그대 가네
섹시한 알토의 목소리로
엄마 같은 푸근한 음성으로
그女가 부른 가을 사랑 노래가
사랑의 고백임을 이제야 알았으니
사랑에 빠질까 봐 두려웠는지
영적 친구는 안 되겠지요?
불치의 병과 싸우며
사랑을 키워 온 그女
사랑하는 사람에게
낙엽 같은 자신을 보이기 싫어
축축한 가을바람과 함께
사랑의 고백을 이별의 노래로
그女의 무덤을 방문한다
이름도 모르는 한 女人이
향기를 가득히 품고 누워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누구세요? 아! 그 목소리
전 아직 살아있답니다
그럼 이 무덤은 누구의?
제 무덤이지요 물론
지금쯤 그女는
이름 없는 별에 다시 태어나
나를 보고 있겠지 아니면
아직도 이 지구에 있으면서
가을 사랑을 노래하며
병마와 깊어가는 사랑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이렇게 또 하나의 우주가 형성되고
이 우주는 태초부터 존재해 왔으니
그女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우주는
그女가 이미 만들었을지도
- 「가을 사랑」 전문
「가을 사랑」의 시적 화자는 ‘섹시한 알토의 목소리로 / 엄마 같은 푸근한 음성으로 / 그女가 부른 가을 사랑 노래가 / 사랑의 고백임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는 ‘불치의 병과 싸우며 / 사랑을 키워 온 그女 / 사랑하는 사람에게 / 낙엽 같은 자신을 보이기 싫어 / 축축한 가을바람과 함께 / 사랑의 고백을 이별의 노래로’ 불렀음을 알게 되자 ‘그女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女’는 ‘향기를 가득히 품고 누워’서 ‘아직 살아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쯤 그女’가 ‘이름 없는 별에 다시 태어나 / 나를 보고 있’거나 ‘아직도 이 지구에 있으면서 / 가을 사랑을 노래하며 / 병마와 깊어가는 사랑과 /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녀를 상기한다.
그와 ‘그女’의 사랑은 인간적 논리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죽은 사람이 무덤 안에서 살아 있을 수 없고, 노래를 부르며 병마와 깊은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女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우주는’ ‘태초부터 존재해 왔’고, ‘그女가 이미 만들었’다는 추론이 없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女’가 신이어야 그와 그녀의 사랑이 풀리게 된다. 이렇게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도 신화성이 개입한다.
시 속에서 신화성을 갖거나 사랑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스캔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한 줌의 사랑」, 「처음 본 男子」,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똥파리」, 「Do I Know You?」 등이 있다.
(3) 성스러운 배경에서 드러나는 안식 염원
인간은 쉴 새 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불행의 파도에 발을 담그고 구원의 손길을 고대하며 신을 부른다. 인간이 부르는 신은 쉽게 달려와서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생명체의 온기가 사라지기까지 고통은 견딜 수 없는 통증이어서, 인간이 신을 버리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신의 실체를 삼라만상에서 찾아내어 구원의 안식처로 삼는다. 시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에는 시인의 안식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호수를 내려다보는 산장에
꽃 세 송이가 피어있다
각기 다른 色 다른 모양을 뽐내고
각기 다른 향기를 뿜어내며
아니 한 송이 더 있으면 좋겠다
그 꽃잎들을 살며시 만지며…
꽃향기는 나를 떠나지 않는데
나는 삶의 찬바람에 깨어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눈길
보이는 것은 뻥 뚫린 숲
변하지 않는 겨울 풍경
왜 봄은 꿈속에서만 오는지…
나만이 겨울을 견디고 있을까
꽃들은 겨울잠을 자고 있을지도
겨울의 칼날을 피하고
봄을 꿈에 초대하기 위해 내내 잠을
봄뿐이 아니고 여름도 이미
호숫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꿈길밖에 길이 없는지…아니겠지
- 「꿈속에 초대받은 봄」 전문
「꿈속에 초대받은 봄」의 시적 화자는 ‘호수를 내려다보는 산장’에서 ‘각기 다른 色 다른 모양을 뽐내고 / 각기 다른 향기를 뿜어내’는 ‘꽃 세 송이’를 ‘살며시 만지’다가 ‘삶의 잔바람에 깨어난다’. ‘꽃들’은 생기가 가득 찬 ‘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면에 화자는 생기가 죽은 ‘겨울을 견디고 있’다.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 ‘봄’은 이상 세계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눈길 / 보이는 것은 뻥 뚫린 숲 / 변하지 않는 풍경’이 펼쳐진 ‘겨울’은 현실 세계이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어려움이 널려 있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염원을 표출하고 있다.
신화적 속성이 드러나거나 안식의 염원이 시간성으로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마지막 잎새」, 「世上에 이런 일이」, 「쫓비山 들꽃」, 「그女의 꿈속에」, 「까만 질투」, 「침묵」, 「흰머리」, 「개 짖는 소리」, 「When will Our First Night Swing By?」, 「Once Upon a Time in a Forest...」 등이 있다.
공동묘지를 거닐고 싶었던 詩人
혼자 가기 무서웠던 겁많은 詩人
장례 행렬을 따라와 소원을 이룬다
까맣게 입은 그女도 따라와
무덤 앞에 앉아 꽃을 다듬는다
벌써 10年 세월이 빠르네
감정 없는 그女의 목소리에
궁금해하는 눈썰미 없는 詩人
그女가 혼자였던 것을 몰랐다니
그女의 간절한 초대를 유혹으로
승화시킨 축축한 詩가 있지만
아직도 초대를 멈추지 않는 그女
화장해서 뿌려지기를 원했던 詩人
공동묘지에서 땅에 묻힌 自信을 본다
죽어서도 자리 하나는 있는 것이
내가 죽어도 나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女人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은
있어야 꽃을 꽂을 곳은 있어야
그러나 이름과 태어난 날 죽은 날
詩人이라는 다 늦게 얻은 타이틀이
땅 밑에서 썩어가는 내 몸이
내 삶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리니
그저 女人들의 기억 속에서 살다가
그들과 함께 소멸함이 어떠리
- 「공동묘지의 망상」 전문
묘지(墓地, cemetery)는 사람의 사체나 유골을 매장한 무덤이 있는 땅을 의미한다. 무덤은 죽음, 침묵, 정적, 불변, 과거에의 고정, 완성, 결말 등을 상징하며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공동묘지의 망상」의 시적 화자는 ‘詩人’으로 ‘장례 행렬을 따라와’ ‘공동묘지에서 땅에 묻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화자는 ‘내가 죽어도 나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 女人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은 / 있어야 꽃을 꽂을 곳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이름과 태어난 날 죽은 날 / 詩人이라는 다 늦게 얻은 타이틀이’ 적힌 비석과 ‘땅 밑에서 썩어가는 내 몸이 // 내 삶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女人들의 기억’이라는 공간에서 사는 것이다. ‘女人들의 기억’이라는 공간은 ‘詩人’의 죽음이 부활한 곳으로 안식처이다.
신화적 속성이 드러나거나 안식의 염원이 공간성으로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닫힌 門」, 「뒤뜰 2」, 「박힌 돌」, 「이상한 유혹」, 「이곳이 天國?」, 「낮은 울타리」, 「장미 정원의 神話」, 「까마귀 드론」, 「희망의 무덤」, 「이정표」, 「공동묘지」, 「A Nightmare and That Is Not Mine...」 등이 있다.
3. 시인이 지향하는 신화의 힘
신화는 힘이 있다. 신화는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면서 정신을 이끌어가고, 신화에 물든 인간은 신화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신화와 인간은 상보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신화는 인간 속에 살아 숨 쉴 것이다. 김준호 시인은 이러한 신화적 속성에 이끌리어 그의 시의 중심에 신화성을 풀어 놓았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의 폭은 넓고 길어 좋은 시의 요건인 시적 자유를 편안하게 품는다.
그女도 詩人인 모양이다
내 휘파람 소리에
열린 앞가슴 보여주지 않고
가녀린 등만 보인 채
詩를 읊는다
봐도 봐도 똑같은 까만 詩
볼 때마다 다른 하얀 詩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詩를
써야만 하는 가련한 女人
그女가 다 벗고 있다는 건
내 판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연작詩는 끝난 겁니까?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24에서 끝나던데요
글쎄요 아마도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연작詩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 「世上에서 가장 긴 詩」 전문
진정한 시인은 시가 명예를 높이거나 재물을 가져오지 않아도 시를 사랑한다. 이런 시인은 죽는 날까지 시를 읽고 창작하면서 시의 풀밭에서 강아지처럼 시와 뛰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世上에서 가장 긴 詩」에서는 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김준호는 ‘詩人’인 ‘그女’처럼 ‘봐도 봐도 똑같은 까만 詩 / 볼 때마다 다른 하얀 詩 / 결코 끝나지 않는 / 이 세상에서 가장 긴 詩를 / 써야만 하는’ 시에 사로잡힌 영혼을 지닌 순수한 시인이다. 시인은 ‘아마도 / 결코 끝나지 않는 /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연작詩를’ 쓰기 위해 시적 상상력에 기름을 붓고 시의 불꽃을 높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가 현실 세계에만 눈길을 주고 시를 창작했다면, 이러한 소망은 줄기가 잘려 그루터기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광활한 세계를 향해 창문을 내고 연이어 시를 쓰려고 고군분투할 것이다. 신화는 이러한 시인의 창작열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 에너지이다.
신화의 힘이 내재되어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세 개의 태양」, 「망상」, 「폭풍이 지나간 후」, 「카톡」, 「외로움」, 「휴식」, 「江물에 새긴 이름」, 「홍수」, 「움직이는 초상화」, 「얼어붙은 눈물」,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빈 가지」, 「새장」, 「그 人間은 내가 아니야」, 「나를 씹은 女人」, 「하느님도 모르는 女子의 마음 2」, 「블루 크리스마스」, 「님이 오시는 소리」, 「새장 門을 열고」, 「10월의 신부」, 「노고단의 밤하늘」, 「고양이처럼」, 「王의 수절」, 「이제야」, 「그리움이 날개가 되어」, 「그女의 맨발」, 「싸구려 초콜릿」, 「고해성사」, 「Be pretty, women!」 등이 있다.
부처님은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자아를 버리고 세계를 대자아로 받아들일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상태가 되었다. 삼라만상을 대자아로 받아들이면, 너와 나의 경계도 없고 인간과 사물의 경계도 사라진다. 우주 만물이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경지는 지혜의 통달이어야 가능하지만 시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인의 노력은 시를 윤택하게 한다. 김준호 시인의 닫힌 세계에서 신화의 창문을 열고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은 다른 시인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많은 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창을 열어 나아간다면, 인간 본성의 아름다운 탐구, 문화의 바른 정체성 확립,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의 심오한 탐색, 높은 경지의 예술 세계 구축, 신성하고 초월적인 세계로 인한 인간 정화 등으로 현대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 약력 :
· 교육학석사(고려대), 정책학석사(고려대), 문학박사(충북대). 서울대 대학원 철학 석사과정 수료. 충북대, 충북도립대학교 출강 역임. 미예총 회장, 미래시학작가회장, 새한국문학회 운영위원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 회원, 도서출판 아름다운 만남 대표. 전국탄리문학상(시 부문), 한국문협 한미문단 해외문학상(평론 부문), 미래시학 문학대상(산문 부문), 탐미문학상, 새한국문학상 외 다수 수상. 저서 - 시집 7권, 소설집 2권, 수필집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