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명 평론가(1)

조회 수 1068 추천 수 1 2025.07.31 19:43:11

 

이효석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 > 연구

 

민족시련기 - 고단한 장돌뱅이 추억 찾기 파노라마 (1)

 

- 이효석(李孝石) 작품세계와 대표 걸작품 <메밀꽃 필 무렵> 시스템분석과 계승발전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채수명(한국문학정책연구소 소장, 문학컨설턴트)*

 

1. 들어가는 말

지구촌 중심축 아메리카 드림의 꿈을 펼치는 한인(韓人) 250만 여명 대부분 기쁘거나 슬플 때 어머님 품 같은 모국의 그리움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더구나, 어릴적 고향의 아련한 추억과 향수 및 친밀감을 줄 문학(文學)은 언어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아닌 민족역사와 함께 한 사상이자 시대정신(時代精神)이 담긴 정서순환 및 학문의 근원이자 생활·산업역량의 핵심으로서 문화의 원동력이다.

그중, 풍성한 가을의 고국산천을 민족시련기에 민초(民草)들의 고단한 삶을 순수서정으로 시대상을 고발한 참여문학소설가 중 짧은 생애에(38) 14,5년 작가생 중 176(단편73, 장편5, 수필75편 등)을 남긴 모더니스트를 들라면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 : 1907.2.23-1942.5.25)과 그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을 꼽는다.

그 작품은 메밀꽃이 핀 고향(강원도 평창 봉평)을 무대로 주체와 객체를 하나로 승화시킨 이슈거리이자 교훈을 주는 <메밀꽃 필 무렵>(조광,1936.10)은 어언 80년의 세월에도 독자들의 가슴속에(‘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쁘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두고두고 진한 메세제를 준다.

이는, 짧으나 긴 인연을 매체로 자연과 인간본능의 순수성을 시적(詩的) 경지로(자연과 인간과의 미학적(美學的) 서정성) 끌어올린 산문적(散文的) 서정성과 서경성이 융합된 수작(秀作)이자 걸작(傑作)으로 한국근대단편문학의 백미(白米)로 꼽는다.

이에, 오곡백과(五穀百果) 익어가는 천고마비(天高馬肥) 가을의 글로벌 문화시대에 풍요(경제) 속에 고독(정신)은 정신문화(精神文化)와 고국향수를 위한 연구배경에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중심지 <메밀꽃 필 무렵> 작품무대와 내용분석평가 및 계승발전방안 위한 문화마케팅차원에서 문화콘텐츠화에 대해 논함은 시기적절한 테마이다.

이로서, 평단의 한계점(전통적인 작품해설)에서 탈피해 사회과학적 논문형 분석평가 컨설팅을 통한 과학효율적인 접근사고접근과 문학평론의 뉴 패러다임으로 문학발전의 기여는 물론 발표공간제약 상 미흡한 점은 향후 연구과제로 삼는다.

 

2.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 연표와 활동상

 

연도,연령

내 용

1907

1

223, 강원 평창(平昌)군 봉평면 창동리 273(창동4리 남안동 681: 호적 본적지는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142번는 1920년 경)1)에서 부친 이시후(李始厚 : 전주이씨 안원대군 후손, 한성사범 졸)와 강홍경(康弘卿) 사이에 13녀 중 장남 / 아호는 가산, 필명으로 아세아(亞細亞), 효석(曉晳) 등 사용

봉평면 본 마을 창동리 서남쪽 성황당 지나 봉평마을 건너 쭉 빠진 협곡마을 중 중간쯤 우경산 밑 뒷산은 둥그레 치달아 산세 주변경관 맑음, 산 좌편으로 폭 약80m, 길이 약 900m 흐른 경사진 밭 완만, 생가 앞으로 작은 들에 비옥한 전답 펼치고 뒷편 언덕(밤나무 몇 그루, 돌배나무 한그루 등), 앞마당(물푸레·단풍나무 각 한그루), 생가중심으로 우편사립문에 마을 가는 길, 앞마당 지나 좌편 돌면 우물

1910

4

부친이 서울에서 교편을 잡자 모친과 함께 서울로 이주

1911

5

생모사망, 계모(강홍경(康弘卿 : 1889(강원도 홍천(충주?) 출신)-1967) 들어 옴, 문학에 뜻을 둔 부친이 <프랭크린> 전기발간(보급서관,6.20)

1912

6

부친(봉평면장) 따라 낙향(중류생활), 서당에서 한문공부(신동(神童)호칭)

1914

8

계모와 맞지 않아 평창공립보통학교 입학(4, 하숙)

1920

14

평창공립보통학교 1등 졸업(3.23),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무시험입학(4.10)

경성제일고보에서 유진오(兪鎭午) 만남(깊은 우정과 문학재질(효석은 산문, 진오는 시() 창작, 서로 평가, 수학과정을 거치며 서구문학 섭렵 투고), 기숙사생활 맞지 않아 하숙(수송동 89번지)

1923

17

다시 기숙사생활(고보 4,5학년), 문학수업(체홉에 열중, 토마스 만과 맨스필드 및 아일랜드 심미적 작품, 사샤기트리 희곡집 등), 석차 늘 10위 내로 1년 선배 유진오와 수재라는 평판

1925

19

고보 졸업 전 첫 시(매일신보,1.18), 꽁트여인(旅人)(매일신보, 2.1), 3월 경성제일보고 우등 졸업(‘동아일보에 우등졸업자로 사진도 함께 소개(3.25),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 입학(4), 재학 시 교내잡지에 작품(, 단편, 꽁트 등)발표,‘매일신보에 꽁뜨 <황야(荒野) <누구()><나는 말 못했다>

1926

20

꽁트달의 파란 웃음(매일신보), 겨울시장,야시(夜市), <맥진(驀進)>, <노인의 죽음>, <홍소> 등 콩트

1927

21

6월의 아침,님이여 어디로, 3월 단편주리면-어떤 생활의 단편(청년), 대학예과 수료 후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현 영문과) 진학, 번역소설밀항자(密航者)

1928

22

7월 단편처녀작도시(都市)와 유령(幽靈)(조강지광,7)으로 주목받기 시작, 동반작가(同伴作家)

1929

23

6월 단편기우(奇遇)(조선지광),행진곡(行進曲)(조선문예) , 시나리오화륜(火輪)(중앙일보), 이경원을 소개받고 연애시작

1930

24

3월 경성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 졸(논문The plays of J. M. Syng e) , 동반작가로 평판받는 소설 <노령근해>,깨뜨려지는 홍등(紅燈)·추억·상륙·마작철학(麻雀哲學,약령기(弱齡記)」「북국사신, 11월 산문 <서점에 비친 도시의 일면상(一面相)>(조선일보)

1931

25

최초창작집노령근해(露領近海)(동지사(同志社)) 출판, 6월 카프 제1차 검거사건(경향작가 탄압시작), 문학변화, 동거하다 7월 처가에서 이경원(李敬媛)과 결혼(부친 참석), 경제곤란하자 일본인 은사 쿠사부까 조오지의 소개로 조선총독부 경무국(도서과 검열계 검열관) 취직, 지탄의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기절) 사직, 시나리오출범시대,프레류드, 함북 경성(처가)으로 감

1932

26

환멸과 질곡의 은둔생활, 함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 취직, 3월 단편오리온과 능금(삼천리)북국점경(北國點景), 순수문학으로 전환, 장녀 나미(奈美) 출생

1933

27

구인회(九人會 : 김기림(金起林), 이종명(李鍾鳴), 김유영(金幽影), 유치진(柳致眞), 조용만(趙容萬), 이태준(李泰俊), 정지용(鄭芝溶), 이무영(李無影)과 서울문인중심의 순수문학 단체) 창립회원) / 단편(), 4월 장편주리야(住利耶)(신여성에 연재하다 중단(미완성)), <돼지>(조선문학), 1112삼천리에 각각 <수탉><가을의 서정>. 산문단상 (斷想)의 가을·"-"

1934

28

시골(평양 창전리 이사)에 있다 구인회(九人會) 탙퇴, 1마음의 의장(意匠)(매일신보), 단편(),일기(日記)(삼천리,11), 산문낭만리얼 중간의 길, <수난>(중앙,12)

1935

29

생활안정(경제적 정신적), 차녀 유미(溜美) 출생 / 단편계절(季節), 중편성화(聖畵), <뎃상>, 산문 卽實主義의 길로-民族文學이냐 階級文學이냐<지협(地峽)의 가을>(조선일보), 현유진오(兪鎭午)와 최정희(崔貞熙)와 인간적 문학적 교분

1936

30

숭실전문학교 교수 취임(평양 창전리 48번지 이주) / 인간본능과 자연, ()이미지 대표작 <분녀>, <>, 인간산문, <석류>, <고사리>,메밀꽃 필 무렵,분녀, <산양><청포도의 사상> 등 산문

1937

31

1<낙엽기>(백광), <성찬>, <마음에 남는 풍경>, 단편삽화,개살구,거리의 목가, 장편 우현(禹鉉) 출생

1938

32

일제에 의해 숭실전문학교 폐교로 교수사임, 향토적 주제와 서구분위기 작품 발표, 단편장미 병들다(좌익이념의 잔재), <겨울 이야기>,부록, <해바라기>, <가을과 산양>, <> ,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

1939

33

1월 장편 <화분>(조광?인문사?, 연재시작), 2월 단편집 <해바라기>(학예사(學藝社)),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 취임 / 이국정서의 <여수> <산정>, <황제>, 단편산정,향수, <일표(一票)>의 공능(功能)> , 희곡역사(歷史), 산문문운융성 (文運融盛)의 변(), 작품집성화(삼문사)

1940

34

1월 차남 영주 출생, 장편 <벽공무한>(매일일보에 연재시작), 장편 창공(蒼空)연재, 단편은은한 빛,하르빈(哈 爾濱), <괴로운 길>, <하르빈>, 일어 <은은한 빛>, <봄 의상> , 정신적 위안을 주던 아내 이경원 사망(1.27), 유아(乳兒) 차남 영주도 사망, 극심한 실의에 빠져 만주 등지를 돌다 돌아온 후 건강 해쳐 작품활동 활발치 못함

1941

35

결핵성뇌막염(자리 눕고 대수술)에도 작품발표 / <산협>, 단편라오코윈의 후예(後裔),엉겅퀴의 , 단편집이효석 단편선(박문서관), 장편벽공무한(박문서관) 출간)

1942

36

1<풀잎>,<일요일> , 5월 평양도립병원 입원(5.6(3))에 치유불가로 퇴원귀가(5.10), 병석 누운 지 20여일 후(혼수상태 무의식) 부친·유진오·왕수복이 지켜보며 사망(5.25.하오), 화장해 아버지와 유진오(兪鎭午) 등에 의해 고향(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논골) 산가에 안장

1943

1

작품집황제(박문서관) 발간

1959

27

17주기(서울대 문리대 문학회 주최, 이효석문학의 밤, 서울대 : 5.9)

1960

28

효석전집(춘조사(春潮社), 5) 간행(6.20)

1973

31

문화의 날 금관문화훈장 추서(10.20), 영동고속도로 개설로 용평면 장평리로 이장(4)

1980

38

가산 이효석 문학비’(강원도민들의 후원, 평창군 봉평면 지조리 태기산록, 영동고속도로변) 세움(11.22)

1982

40

장녀 이나미의 노력으로 한국최초의 <효석문학관> 건립발기(4.15)

1983

41

이효석전집(8) 발간(창미사)

1998

58

영동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이장(경기도 파주시 동화 경모묘지 : 9.9)

2002

60

이효석문학관개관

1) 이효석(李孝石) 연표(1)

 

c. chae soo myung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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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2번지가 본적지로 되어 있으나 실제 출생한 곳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이다.

 

2) 이효석(李孝石)의 의식과 이미지

대부분 결과론적이나 호와 이름은 곧 정신적 뿌리이자 인생의 운명으로 흐른다.

 

 

구분

내 용

가산((옳다. 좋다. 괜찮음. 인정하다. 수긍) + ())과 성명 이효석((오얏나무. 오얏나무의 열매. 다스리는 벼슬아치. 심부름꾼) + (효도, 친상에 복을 입다.) + (. 돌로 만든 악기. 비석. 돌침을 놓다. . 운석(隕石). 돌팔매. 화살촉. 단단하다. 숫돌. 녹봉(祿俸)의 단위. 열 사람의 힘이라야 당겨지는 활))

필명

아세아(亞細亞)’,‘효석(曉晳 : (: 새벽. 동틀 무렵. 밝다. 환함. 깨닫다. 타이르다. 사뢰다. 아룀. 나오다.)+(: 밝을 석)’

의식

부친 이시후(李始厚)2)는 일제시대 교사를 역임하고 문학사랑 및 봉평·진부면장을 지낸 친일파(親日派)이나 이효석은 전통적 유교사상이 강하나 신지식인들의 유행병이던 일본유학을 가지 않았으나 경성제일고보(친일?)와 경성제국대학(친일?)출신으로 엘리트의식

이미지(

멋쟁이)

키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깔끔한 외

의지가 굳고 개성이 강하나 섬세하고 이지적이며 온화한 성품, 서구적 취향으로 서구복장 선호, 주변(자식, 제자)에게 정직 강조(위선과 거리가 먼 교수 상)

취미특기 : 문학적 재능, 영화와 여행 즐김, 음악적 재능탁월, 스포츠 선호

<2> 이효석의 의식세계와 이미지

 

c. chae soo myung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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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사(1882-1945), 한성사범학교 졸업한 개화기 지식인으로 교편을 잡았고프랭크린전기를 번역출간 후 봉평·진부면장 10년을 지낸 지역유지이다. 모친은 강홍경(강원도 홍천군 기린면 진동리 출신, 생사(1889-1967)로 보나 계모로 추정))13(누이 이정원, 이정순, 이계순, 양자 동생 이학순) 중 장남으로 출생, 봉평면 창리에 집을 장만했다.

 

그러나, 5살 때(1911) 모친사망으로 새로 들어온 계모와의 갈등으로 먼 평창에서 하숙하며 국민학교를 1등 졸업 후 상경(추천서류전형 경성제일고보 입학 : 1920, 14) 후 사망까지(1942, 36) 23년간 단 한 번도 고향에 가질 않았고 문우들이 고향이야기 하면나는 고향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평생 응어리를 풀지 못했다.

결혼(1931.7, 25: 18세의 이경원(李敬媛)3))으로 생활(서울 종로 수송동(문화관광체육부와 조계사 중간)에 신혼살림)이 곤란하자 일본인 경성제일고보 은사 쿠사부까 조오지(草深常治 :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장)의 소개(추천)로 경무국(도서과 검열계 검열관)4) 서기로 취직(친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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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함북 경성(鏡城) 어느 토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 슬하에서 성장, 나남공립여자고등여학교 졸업 후 일본 유학을 꿈꾸다 이효석(李孝石 : 경성제국대학 3학년)이 경성제일고보시절 어느 선배의 소개로 만나 열렬한 연애편지를 주고받다 이효석의 천재성에 매료돼 서울에서 동거하다 결혼(1931.7), 신혼살림시절 남편(이효석 : 총독부 검열단 취업했다가 욕을 먹고 사직 후 우울침체상황을 갈등 겪다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해(1932) 심기일전(心機一轉)기회를 얻어 생활안정)을 내조 잘 했으나 차남 영주를 낳은 얼마 후 33세로 복막염(복강(배안)내 여러 장기들을 싸 보호하는 막으로 복강 내 장기에 세균감염으로 복막에 염증이 퍼진 질환)으로 사망했다.(1940.1.27)

4) 가난하고 직업도 없는 이효석(李孝石)이 결혼 후 생계 위한다지만 일본스승의 추천으로 문인들의공공의 적인 총독부 경무국(警務局) 검열계(문인들의 작품들을 사전 검열하던 곳으로 동료 문인들에게 엄청난 욕먹는 자리)에 취직했기에 비난을 받았다.

 

평소 잘 알고 지낸 최정희(崔貞熙)5)에게 마음 놓고 편지로 아픔을 털어놓았고 아내 이경원의 사별(1939.1.27) 후 곧 자식(차남 영주)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만주(滿洲) 등지를 방황하다 돌아와 만난 왕수복(王壽福)6)의 지극정성 뇌막염 병수발과 편지보내 유진오(兪鎭午)7)와 부친이 운명(1942.5.25 하오)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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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 담인(淡人)는 함북 성진출생(1906.12.3), 15세 때 함남 단천으로 이사,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1928), 서울 중앙보육학교 졸(1929), 유치원 보모 후 도일해(1930) 유치진 등이 주도한 학생극예술좌 참여(신문예운동 관심), 귀국 후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이 운영하던삼천리기자로 입사해 <정당한 스파이>(삼천리,1931.10) 발표(전통과 충돌과 모성 및 여성이란 이중성 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여성의 내면), 김동환과 결혼, 2차 카프(KAPF) 검거 시(1934) 맹원도 아니나 투옥(9개월) 이듬해 석방, 초기 작(<명일의 식대>·<성좌> 등 자기고백적, <지맥>(문장,1939)·<인맥>(문장,1940)·<천맥>(문장,1941)은 여성의 불행한 운명 공통점 지닌 3부작(여주인공의 불행원인이 개인에게 있고 도덕적 성실과 인내로 극복 제시),‘조선일보출판부 입사(1935) 후 본격 작품활동 시작, <지맥(地脈)>(1937) <인맥(人脈)>(1938) , 1942년부터 <장미의 집> <야국초(野菊抄)> 등 친일단편소설과 수필단문, <교과서와 친일문학>(1988.1.19.교육출판 : 모윤숙, 노천명과 대표여류문인으로 친일에 앞장(임전대책협의회의 채권 가두 유격대로 모윤숙과 나갔고(1941.9)‘조선보국단주최결전부인대회에 연사(1941.12), 총후여성진영 총망라 발족한(1942.1)‘조선림전보국단부인대에 노천명과 모윤숙과 간사직, <야국초> , 시국소설 <215일의 밤>(애국반장 활동을 반대하던 남편이 그날 싱가폴공략의 첩보에 감격해 아내의 시국활동을 승낙)), 해방 후 사회혼란과 농촌의 궁핍함을 사실화(<점례>(문화,1947.4)·<풍류잡히는 마을>(백민,1947.9)·<청량리역 근경>(백민,1947.11) ,‘주부생활주간(1956), 6·25공군종군작가단참가(부군 김동환 납북), <인간사(人間史)>(1960 : 일제말기, 광복, 남북분단, 625전쟁, 419혁명까지 사회적역사적 변천사), 수필집 <사랑의 이력>(1953) <젊은 날의 증언>(1962), 소설집 <녹색의 문>(1954)·<바람 속에서>(1955)·<찬란한 대낮>(1976) , 작품세계(객관성, 사회의식 내포, 625 후 서정적 휴머니즘, 체험적 인생주의에서 객관적 리얼리즘, 민족적 역사의식화)), 활동(서울시 문화위원, 국세청 자문위원, 여류문학인협회 회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1970)), 수상(서울시문화상(1958), 여류문학상(1964), 예술원상(1971), 3·1문화상(1983)? ), 늘 웃음, 사망(1990.12.21서울, 장지(경기도 파주군 조리면(條里面) 노조리(弩造里) 천주교 삼각지교회 묘지), <인맥>은 사후(死後) 딸 김지원(金知原)이 앞뒤에 글을 덧대 장편 <소금의 시간>으로 출간(1996) - 출처 : 인터넷 다음, 네이버 등 종합정리 수정보완

6) 평남 강동군 출신(1917.3.5)으로 편모슬하에서 성장,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해 다양한 기예(技藝)를 배운 기생으로 노래에 재능을 보여 10대 중반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울지 말아요><한탄>을 취입해(1933) 최초의 기생 출신 대중가요가수로 이듬해 데뷔한 선우일선과 기생출신 신민요가수로 쌍벽형성(‘삼천리가 실시한(1935) 인기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 전옥에 앞서 1)'유행가의 여왕'으로 인기정상시절 도일해(1936) 개인교습으로 서양음악을 공부 후 메조소프라노가수로 변신해 주로 조선민요를 서양성악창법으로 불렀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최승희씨가 조선무용을 살린 것처럼 나는 조선의 민요를 많이 노래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힘, 조선 8도 휘저은 왕수복(1917-2003) 공연 끝나자 이효석이 무대에 올라 꽃을 전해 주고 큰절 올린 후 눈물 떨 구며나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사람.”등 사랑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뜨겁고 여지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정도의 연인으로 <풀잎>이란 소설에 그녀와의 사랑이야기는 세상을 뜬 뒤에도 인구에 희자돼 전해 온다. 이효석 사망 시(1942) 병간호 임종지킴, 이후 시인 노천명(盧天命)의 연인 김광진(보성전문 경제학 교수)과 월북해 결혼, 평양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가수(1953), 국립교향악단 성악가수(195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훈배우 칭호 수여(1959), 김광진과 판문점 관광모습 포착돼(1965) 우리언론에 보도, 말년까지 최고대우에 활동하다 사망하자(2003.6) 애국렬사릉.- 출처 : 인터넷 다음 백과사전

7) 생사(1906.5.13 서울~1987.8.30 서울), 소설가·법학자·정치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192

4)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1929년 졸) 재학시절 문우회(文友會) 조직하고 동인지문우와 시집 <십자가>발간,‘경제연구회서클조직(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가입한 사람으로 학교에서 해산명령), 이효석(李孝石)과 선후배 사이로 창작에 몰두(조선지광·현대평론 등에 발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법학과 교수, 학교명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변경(1944.4) 교수 겸 척식과장, 해방 후 학교명 보성전문학교로 환원되자 교수 겸 법과과장, 종합대학승격(1946) 학교명 고려대학교로 바뀌자 법정대학 학장(1949) 거쳐 총장(1952~65). 대한민국헌법 기초위원(1948)과 법제처장으로 대한민국헌법을 기초(일본헌법모방설), 한일회담 한국대표(1951), 국제법학회장(1953-68),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대표(1959), 한일회담 대한민국 수석대표(1960) 및 대한교육연합회 회장, 국가재건국민운동 본부장(1961), 국제연합(UN) 한국협회장(1961-63) , 정치계 입문(1965) 뒤 민중당 입당(1966), 신민당 총재(1967-70), 국회의원(1967-71), 신민당 고문(1970-72), 5공 전두환 정권 때 국정자문위원(1980-87), 옥계유진산선생기념회장(1982-87) , 연세대 명예법학박사(1955)와 경희대 명예문학박사학위(1966),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1954)이 되었다. - 출처 : 인터넷 다음백과사전

 

 

3) 이효석(李孝石) 작품세계

부친의 문학적 피를 이어 받고 천재성에 경성제일고보 졸업(1925) 전 시(매일신보, 1.18), 단편여인(旅人)(매일신보, 2.1)을 한국문단에 선보였다.

단편 <도시와 유령>(조선지광(朝鮮之光), 1928) 이후 <행진곡(行進曲)><기우(奇遇)>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同伴作家)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해 <()><수탉> 등을 발표했다.

경성농업학교에서 3년간(1931-1934초까지) 재직하면서도 중앙무대(신문, 문예지, 월간잡지 등)를 통해 왕성한 작품발표(일생 1/3의 분량)하자 현민(유진오)이 함북 경성을 찾아가(1932) 작품활동에 대한 찬사와 생활근황을 살피는 등 우정을 증명했다.

평양 숭실전문(崇實專門) 교수로(1936, 30) 창작열정(수필, 서간논평, 번역 등 여러 방면으로 <>(머슴살이를 하다가 쫓겨나 산()에 살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산과 자연이 주는 푸근함)<> 등 자연과의 교감(交感)을 수필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발표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서구적 분위기 <장미 병들다>(심미주의적 세계관, 인간의 성 본능을 탐구하는 새로운 작품경향), 장편 <화분(花粉)>(1939) 등을 발표해 성()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 작품경향으로 <창공(蒼空)>8)(매일신보, 1940.1-7) 등 애환을 그려 서민적이고 소박하며 진솔한 시대상을 고발했기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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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원래 <벽공무한(碧空無限)>이나 박문서관이 출간시(1941) 제목 변경(푸른 하늘이란 의미는 동일), 만주국치하에 천일마(千一馬)와 러시아댄서 나아지와의 사랑과 결혼을 중심으로 하얼빈과 경성의 풍속도(교향악단, 영화, 금광, 복권, 마약 등)를 그린 애정소설

 

 

구분

내 용

작품활동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시절 학교공부와 문학수업 열중(당대 유행에 때라 체홉, 톨스토이 등 러시아작가들 탐독, 경성제국대학 예과시절문우회’(조선인학생들 모임) 발행한문우에 습작발표,‘청량’(예과학생회 기관지)에 일어로 발표

등단

대학 본과 2년 시절 단편 <도시와 유령>(조선지광,1928.7 : 당대 지식인들 간에 지배적 정치이념이던 계급투쟁사상에 근거한 작품 중 최초로 주목) 발표로 본격적 문단에 데뷔

작품수

짧은 생애(36) 중 작가생활(14,5) 동안 총 176(단편 73, 장편 5, 수필 75편 등)

특징

어린시절 고향의 자연에 애착하지 않고 나라와 고향에 기대할 것 없어 세계주의의에 서구(西歐)로 눈을 돌렸으나 지역 간 평등을 근거로 상호주의가 아닌 일방적 자기 쪽 멸시와 유럽 쪽 지향, 구라파주의(歐羅巴主意)는 창작에 부정적 제약요인, 창작과 실생활까지 서구심미주의에 몰입해 한 데카당스사조에 심취

1930년대 순수문학(純粹文學)을 빛낸 작가로 초기소설은 경향문학(傾向文學)의 동반작가(同伴作家)로 인정받았고 카프와 조직생활 없었으나 동일한 작품경향이나 <>을 전후로 변모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동반자 작가, <메밀꽃 필 무렵> 등 서정적 양상, <><화분> 등 원시적 생명(生命)추구의 에로티시즘

찬반평가

긍정적 : 정한모(鄭漢模)<현대작가연구>에서 이효석(李孝石)과 김동인(金東仁)의 문체 중이효석의 문체를 순수성을 느끼게 한다. 그 인상에 있어 생의 고요한 관조의 밑바닥을 흐르는 서정적 뉘앙스가 효석문학의 전체적 분위기가 되고 있다.”고 하여 문체의 순수문학적 가치

부정적 : 정명환은 <위장된 순응주의(順應主義)>에서이효석은 서양(西洋)을 통해 제 나름으로 발견한 미()의 관념을 계기로 지성의 고행(苦行)을 송두리째 내던진 가면을 쓴 순응주의자(順應主義者).”란 비판적 평가 / 약점(관념적이고 추상적이란 점은 흠)

평가

한국문학사에 미의식(美意識)과 새 기법의 소설터치와 중대한 메카니즘을 수행 등 자연주의적 기교면과 순수문학소설로 금자탑(金字塔)을 쌓은 가치성과 독자성

문학세계를 토속적 향토적 세계를 자연주의적으로 그려낸 재질은 단편에서 두드러져 이태준(李泰俊박태원(朴泰遠) 등과 한국근현대 대표 단편작가

대부분 문인들이 그러하듯 병적으로 침식 딛고 창작활동에 전념 한 불굴의 의지와 정신은 찬사 받을 일

기타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많이 수록(윤동주, 이육사, 정지용, 채만식, 이효석, 이청준)

<3> 이효석(李孝石)의 작품세계

 

c. chae soo myung 2

 

암담한 시대상에 민초들의 생활상 반영 및 향토색(鄕土色) 짙어 주목을 끈 대표적 단편소설작가로 병에도 창작활동에 전념 한 불굴의 의지와 정신은 본받아야 한다.

한편, 유족들이 보관해오던 미공개 육필원고 4(제목을 알 수 없는 소설 1편과 희곡번역 작품과 평론 각1, 방송용 원고 1편 등)이 한꺼번에 공개됐다.(평창 가산문학선양회측에 기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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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망직전 작품으로 추정되는 제목미상의 소설(400자 원고지 78장 분량, 일본어로 휘갈겨 쓴 초고로 생전에 미발표, 겉장이 없어 제목을 알 수 없어 해독에 시간이 걸릴 것), 평양의 한 라디오방송국에서 방송용으로 쓴 <소설의 세계>원고는 8절지에 11장 분량으로 '소화(昭和) 13'이라 인쇄돼 1938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 한글과 한문혼용. 연대표기가 없어 1930년대 말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평론원고 <현대문학에 나타난 생명주의사상-ShowLawrence에 대해서>는 영국소설에 나타난 소설특징과 사상을 논리적으로 담음. 러시아소설가 체홉의 희곡 <벚꽃동산>을 번역한 또 다른 원고는 첫 장은 없으나 원고지하단에 대동공전으로 찍혀있어대동공전이 개교한 1938년 후에 쓴 것으로 추정, 이상옥(서울대 명예교수)"문학적 검증작업을 완벽하게 거치지 않은 미공개작이기 때문에 정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고 했다. - 출처 : 박현철(lawtopia@kado.net), 강원도민일보.

 

3) ()에 티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경무국 도서과 검열계 검열관으로 취직해 보름쯤 지난 어느 날 광화문(光化門) 사거리에서 평소 좀 알던 카프(KAPF)10)의 맹원 이갑기(李甲基)11) 평론가에게 인사를 했더니 혐오스러운 눈으로 보며네놈도 결국은 개가다 됐구나.”라는 말에 충격 받고 즉시 절도) 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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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스페란토어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 계급의식에 입각한 프로문학을 조직적으로 추구한 문학예술단체), 라프(RAPP) 및 나프(NAPF)와 유사계열명칭, 3·1운동 후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을 민족해방운동의 본 문인들이 문학도 프롤레타리아해방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문예운동단체, 소련 라프(RAPP), 중국 중국좌익작가연맹(左聯), 일본 나프(NAPF)와 뜻을 같이함 / 문학동인염군사’(1922)파스큘라’(1923)가 합동해 결성(1925.8.23 : 발기인 김기진(金基鎭)박영희(朴英熙)이호(李浩)김영팔(金永八)이익상(李益相)박용대(朴容大)이적효(李赤曉)이상화(李相和)김온(金鎾)김복진(金復鎭)안석주(安碩柱)송영(宋影) , 최승일(崔承一)조명희(趙明熙)박팔양(朴八陽)최서해(崔曙海)이기영(李箕永)이량(李亮)윤기정(尹基鼎)한설야(韓雪野)유완희(柳完熙)김창술(金昌述) 등 참가, 임시총회(1926.12.24) 개최해우리는 단결로서 여명기에 있는 무산계급문화의 수립을 기함강령채택, 김기진김복진박영희이량김경태(金京泰)최승일안석주 등 위원선출, 임시총회 개최해(1927.9.1) 강령규약 개정하고 문호개방과 지부설치에 의한 조직확대 결정, 도쿄에서 동인지제삼전선창간한 조중곤(趙重滾)김두용한식(韓植)홍효민이북만 등이 서울에서 하계강연을 개최 후 도쿄지부 결성해 합류, 개정강령은우리는 무산계급운동에 있어서 맑스주의의 역사적 필연을 정확히 인식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무산계급운동의 일부문인 무산계급예술운동으로써 1. 봉건적 급 자본주의적 관념의 철저히 배격 2. 전제적 세력과의 항쟁 3. 의식층 조성운동의 수행을 기함이며 선출된 임원은 경성의 김복진박영희조명희한설야최서해윤기정, 도쿄의 이북만(李北滿)홍양명(洪陽明)조중곤한식홍효민(洪曉民), 대구의 이상화, 원산의 박용대(朴容大), 도쿄에서 기관지예술운동발간(1927.12) 1931년을 전후해전위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당의 문학이라는 두 명제로 내세운 임화(林和)김남천(金南天)안막(安漠)권환(權煥) 등에 의해 카프 볼셰비키화가 추진되면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다무산자의 국내유포 및 영화지하촌사건 등으로 카프 제1차 검거사건(70여 명), 임화한재덕(韓載德)안막권환박영희윤기정송영김기진이기영 등은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되고 김남천만이 기소, 극단신건설의 비라를 가진 학생이 전북 금산에서 발각돼(1934) 카프제2차 검거사건(80여 명) 와중에 이기영나웅송영한설야박영희권환김유영백철정청산(鄭靑山)홍구(洪九)윤기정이갑기(李甲基)이동규(李東珪)박완식(朴完植) 24명 기소상태에서 카프 내 '해소파'(해체찬성)'비해소파'(해체반대) 간의 대립, 임화와 김남천이 카프해산계를 경기도경찰국에 제출해(1935.5.20) 해산, 프로문학은 일제탄압으로 1930년대 후반부터 활동하지 못했고 이론적 한계를 드러내 동요되었으나 계승·발전노력으로 해방직후 좌익문인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 신경향파 문학 : 1920년대 나온 사회주의경향의 문학, 러시아혁명(1917) 후 시작된 계급주의사상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문학운동전개된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조직 이전의 자연발생적 계급주의적 색채의 문학), '신경향파'라는 용어는 박영희의 <신경향파의 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개벽,1925.12)에서 처음 사용된 문학특징(소재 궁핍,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plot)으로 한 것, 결말이 살인·방화로 끝나는 것 등), 신경향파 소설가(김기진(<붉은 쥐> <젊은 이상주의자의 사> ), 박영희(<전투> <지옥순례> ), 최서해(자신체험 <탈출기><홈염>), 조명희(<낙동강> ), 이기영(<가난한 사람들> 등에서 지주의 수탈로 인해 황폐해진 농촌고발), 송영 등), 의의(10년간(1925-35) 지속된 카프는 여러 면에 한계점에도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예술의 민중성·계급성·당파성에 역점두고 노동자계급문예의 필연성을 선포 및 변혁운동의 의식적 복무를 선언하고 수행) - 출처 : 인테넷 다음백과사전 등

11) 생사(1908~?), 필명 이형림(李荊林현인(玄人), 1920년대 말 카프(KAPF)에 가담, <예술의 성립과 그 해체> 발표(1930.11), 프로문학 옹호했으나 문학을 조직활동의 하나로 이해해 논쟁을 잘 이끌어가지 못함은 채만식(蔡萬植)'동반자문학논쟁'에서 나타남,“작가가 아무리 프로문학작품을 써도 조직적인 작품행동이 아니면 프롤레타리아작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해 카프에 동조적 태도를 보인 채만식에게 반감과 도전을 받았다.‘형상을 펴낸(1934) <예술동맹의 해소를 제의함>(신동아, 1934.7)을 발표해 박영희·백철 등과 프로문학에서 전향선언. KAPF 해산(1935) 뒤 활동 없다 만주에서 염상섭·안수길·박팔양 등과 친일만선일보기자활동(이기갑도 결국 친일),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 활동하다 월북, 북한에서 소설과 시 창작 및 평론활동. 단편 <요원>(문학예술,1949.8), <보도자>(1949), <봉녀>(문학예술,1954.11), <기적>(1959), <>(1970) 등과 시 <두 세계>(문학예술,1950.3), 평론 <천리마의 집단적 주인공>(1960), <계절과 인품>(1966), 단행본 <고전 조선사화집>(1956. 7) 등을 발표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또한, 신혼시절 아내 이경원(李敬媛)을 여류문사로 출세시키려 부인이름으로 작품발표하려다 검열로 좌절되거나 수필과 소설이 발표되자 이번에도 문학평론가 이갑기(李甲基)이경원의 이름으로 발표된 글들이 차작.”이라는 공박과 지탄받자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처가 함경도 경원(鏡城)으로 가서 교사가 되었다.

당시,“남성작가가 여성작가의 작품을 대필해준다.”는 식의 소문으로 그 형태를 달리해 확대, 이효석의 작품을 차작(借作 : 물건을 남의 손을 빌려서 만듦)했는지 여부에 대해 의의제기로 곤욕 치름) 함께 비난을 받음은 명백한 내·외적(내적 대필, 외적 친일)인 역사적 오점(과오)이다.

한편, 사후까지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거부했고 일제식민주의와 파시즘(Fascism :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당을 중심으로 조직한 정치이념) 옹호발언은 없으나 <풀잎>12)과 사소설 일제체제를 부인치 않아도 정치주의담론(政治主義談論 : 일제(日帝) 군국주의정책, 전쟁동원, 국민문학론(國民文學論) )의 횡행에 대해 나름대로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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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줄거리(소설가 준보와 음악학도 실 간에 사랑에 빠진다. 일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닮은 준보와 감정이 잘 맞고 취미도 같았다. 준보 이전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났던 사실을 고백하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벽도가 찾아와 준보와 소문이 자자하다며 부정한 과거를 들어 둘 사이를 책망한다. 벽도는 실에게도 찾아갔지만 둘은 세상의 소문에 괴로워하면서 변치 않는 사랑을 다짐한다. 이후 사회가 이들에게 끊임없이 이별을 강요할수록 둘의 사랑은 깊어 가고 동경유학 중 잠시 귀국했던 실은 동경의 짐들을 챙겨 준보의 곁에 정착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준보는 실의 걱정하는 말들을 새겨 본다.), 갈래(단편 소설), 성격(낭만적, 자전적), 배경(시간-일제 강점기(1940년대), 공간-경성), 시점(전지적 작가), 주제(남녀평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랑 방식의 제시), 인물추정(준보(이효석), (왕수복)), 기타(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에 수록된 시들을 작품에 수용해 인류평화와 남녀평등의 사상을 담아 등장하는 두 남녀 주인공들은 모두 서구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지식인들은 온갖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려 노력(사랑은 조건 없는 맹목적인 낭만적 사랑, 관습적인 제약을 벗어난 혁신적인 사랑으로 묘사), 시대적 한계와 사회적 제약에 힘들어 하면서 서로 사랑을 지켜 나가는 두 남녀의 미묘한 감정기복을 섬세히 포착했으나 시대상황(일제강점기)의 외면과 애정문제에 제한한 소설을 구성했다는 한계성, - 출처 : 인터넷 다음, 네이버

13) 방민호,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 예옥, 2011.

 

이효석(李孝石)국민전반에게 즐겁게 읽혀질 수 있는 문학이야말로 진정 그 이름에 값할 만한 국민문학(國民文學)14)이다. 아무리 시국에 적절한 표어를 나열하거나 부르짖어대거나 할지라도 관조(觀照)가 깊지 못하고 연소(燃燒)가 희박한 것은 국민문학이라는 명칭을 값하지 못할 뿐.”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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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920년대 중반 카프문학운동과 논쟁과정에서(대항) 생긴 문학, 참여자(최남선·이병기·염상섭·조운·주요한·이광수·김영진·이은상·양주동),“문학작품은 민족의식·국민의식을 북돋을 수 있어야 한다. 시조를 부흥시키고 역사소설을 써야 한다.”고 주장, 한글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 한글날 제정도 이 운동의 영향, 일제탄압으로(1934.5.21) 카프가 해산되자 국민문학 쪽도 경쟁대상을 잃었다. - 출처 : 인터넷 다음, 네이버

 

이에, 친일문학연구자 임종국은요컨대 40년대의 이효석(李孝石)은 지극히 비국민적(非國民的) 회의적 자유주의적인 국민문학론(國民文學論)을 가지고 국민문학을 했다는 얘기가 되며 이 점이 곧 특이하다. 이효석의 국민문학은 본질적으로 심화될 수가 없는 문학이었다.”고 단정했다.

대부분 작품은 언문(조선어말살정책으로 한글을 천시)으로 쓰였고 그 내용도 친일요소를 찾아낼 수 없으나 그가 한 잡지의 인터뷰에 응해(1942 : 태평양전쟁 발발 해) 소신을 피력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큰 오점이다.

 

국어(國語)15)가 세계어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국어로 쓰는 문학이 세계적 인식을 얻게 될 날을 생각한 것도 단순한 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대동아의 주()국어가 되고, 나아가 서방(西邦)에까지 그 권위가 뻗칠 때, 국어로 쓴 문학도 어느새 세계적인 것으로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문학의 내용이 될 조선적(朝鮮的)인 소재는 단순히 일본문학으로만 끝나지 않고 세계문학에 특이한 보탬을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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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국어는 일본어로 대부분 지식인이대동아공영(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 ‘대동아란 동아시아에 동남아시아를 합친 지역으로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신질서건설을 내세우면서(1940.7) 첫 사용, 2차 세계대전 개입 직후 이를 대동아전쟁으로 결정(1941.12.10) 같은 달 12전쟁목적이 `대동아신질서건설에 있다.”고 주장,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일본외상은 담화에서(1940.8.1) 대동아공영권을 주창(“아시아 민족이 서양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해 아시아에서 서양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허무맹랑함)을 내면화한 상태에(중일전쟁(1935)이 발발 후 중국수도 난징함락(1937, 30만명(군인은 5,6만명) 대학살)) 시대흐름을(문학으로 일제에 복무) 외면할 수 없는 듯 국민문학(國民文學)을 역설하고 일어(日語)로 작품을 쓰면서 담아내려는 아름다움의 특질이 변화하고 있는 점은 이전 작품이 탐미적이고 이국적 경향을 가졌다면 이 시기는 전통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띄며 귀향은 젊을 이국적 취향에 대한 부정(계모에 대한 앙금)이며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어릴적 고아(孤兒) 의식을 들추어냈다.

 

일제(日帝)시대 작가로 친일(親日)성향을 띤 작품과 반일적(反日的) 민족주의 색채(色彩)가 강한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시대를 외면하고 성적(性的) 쾌락만을 위해 자연주의에 침몰할 때 작가는 민중을 우매화하여 결과적으로 일제강점기 식민지정책에 협조하였다는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다.”16)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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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경득(건국대 대학원 졸, 경상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우리 이야기 문학의 아름다움·이효석-출생의 비밀, 그루갈이 삶을 위한 씨뿌리기, 살림터 / 시집 <소백산맥 아래서> <낮은 데를 채우고야 흐르는 물은>과 평론집 <한민족사상론>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 <사람 살리고 가난 구하는 역성혁명> 등이 있다.

 

그러함에도, 정부는 문화의 날(1973.10.20)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송 교수.jpg

약력:

1957년 충남 서산출생,  

경력(교수: 광주여대 전임강사, 정인대, 전주대연구소: 한국산업관계연구원 수석전문위원, 한국산업혁신개발원 수석연구위원, 한국표준협회 지도위원, 행정신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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