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로 이야기하는 나의 삶과 문학
박양근
수필가. 문학평론
1. 아직 진행 중
왜 문학을 하는가. 그리고 왜 수필을 하는가. 나는 수필을 쓴다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 <수필로 이야기하는 나의 삶과 문학>을 시작하고 싶다. 나에게 수필은 생명 그 자체이다. ‘산다’는 이상으로 영적 생활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게 수필은 존재를 확인하는 몸부림과 마음 부림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수필은 나를 살아있게 하고,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주는 그 무엇이다. 지금도 수필가가 되고 있고 수필평론가의 역할을 잡아가고 있지만, 과연 내가 죽을 때까지 수필가가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왜 수필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늘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마치 첫사랑에 빠져 왜 그녀를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처럼 이렇게 설명해 보아도 아닌 것 같고 저렇게 이유를 찾아도 아닌 것 같다. 수필가로 등단한 후 근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5권의 수필을 내고 3권의 수필평론집을 냈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문학의 시제에서는 현재완료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만일 문학에 현재완료형이 존재한다면 더 이상 글을 쓸 여력과 필요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 어머니의 해몽과 조부 산소의 풍수
모든 출발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이 내 수필의 시원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출생과 조부의 묘소에 대하여 종종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북 청도군 유천면 유호1리이다. 이 마을은 청도는 옛날에 이서왕국이라는 부족국가가 건국된 곳으로 생가가 있었던 마을 앞으로는 안동하회마을처럼 유천강이 넓은 들판을 반달처럼 굽이 끼고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인 유호1리를 임금 마을이라고 불렀는데 뒷산에는 지금도 녹슨 오래된 칼이 발견된다고 한다. 지금은 묵정밭으로 변해버렸지만 산줄기의 혈맥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생가에서 나는 일곱 살까지 살았다. 대운암 자락의 사하촌 마을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문학의 모태로 여기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찡해지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내가 성장하여 단둘이 있을 때면 종종 나의 출생에 관하여 말하셨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음력 정월 어느 날 겨울 해가 질 무렵 마을 골목을 굽이 틀어 가는데 낯선 사냥꾼들이 노루를 잡아오고 있었다. 마침 해산이 임박한 터여서 그런 것을 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난망하였다. 며칠 후 산기를 느끼고 출산을 하였는데 갓난아기는 노루처럼 한동안 비실거렸다고 한다. 용꿈의 자식도 태양 꿈의 자식도 아니지만 산 노루는 사슴만큼 영특하고 신성한 동물이다. 임금 동네 뒷산에 살던 노루라면 남다른 정기를 가졌을 것이니 사람에게 잡혀 죽으면서 인간으로 화신하였을 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어쩌면 이서 왕국의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마을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사춘기 시절 나는 그 이야기를 내 출생의 설화로 만들어갔다. 푸른 유천들을 흐르는 강바람과 집 앞 대밭을 가르는 풀 소리를 들으면서 내 신원에 묻힌 이야기를 기억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문학적 상상력은 키워졌다.
당시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가난하였지만 꿈은 풍부하였다. 유천골 아이들에게 마을 뒤로 놓인 경부선 철길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동경의 도화선이었다. 선로를 오가는 기적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기찻길 골목으로 달려나갔다. 잽싸게 달아나는 기차 꽁무니를 죽어라 쫓아가며 낯설고 이국적인 세계가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사라지는 기차를 지켜보면서 모든 것은 죽는다는 가당찮은 생각도 하였다. 기차 맞은편 산 위에 자리한 대운암과 선로 반대편에 자리한 사하촌은 상상과 현실의 이중주처럼 지금까지 가슴속에서 울려 펴지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입학하기 1년 전 대구로 이사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단숨에 조숙해져 버렸다. 그것은 일기 쓰기와 난해한 독서 탓이었다. 일기는 가난한 현실에서 환상적인 세계로 옮겨가는 또 다른 기차로서 일기쓰 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치명적인 일탈은 조숙한 독서였다. 당시 삼촌이 대학교에 다녔는데 나는 삼촌의 책을 남몰래 읽어 나갔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다락에 올라가 삼촌이 사 온 연애소설과 문학 고전을 거르지 않고 읽었고 『사상계』도 읽어댔다. 시와 소설에서 미성년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성인 세계를 만나면서 그들이 벌이는 갖가지 사건을 놀라운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조용하지만 조숙한 문제아였다. 어쨌든 글쓰기와 독서는 위험스러운 옆길이었지만 그때의 정신적 탈선이 내 문학의 기초라고 믿는다.
나는 작가란 조금씩 형성되어 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분출된다고 여긴다. 내 문학 인생이 구체화 되기 시작한 한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다. 교과서에 실린 모든 시를 외었고 국어 선생님과 작품 해석을 두고 논쟁을 할 정도로 국어 과목은 남달랐다. 돌탑이라는 문학 써클에서 활동한 나를 지켜본 담임선생님은 내가 국문과에 진학하도록 권유하셨다. 가정 형편상 영문과를 선택하였지만, 국문학에 대한 목마름은 잊지 못하였다. 사람은 꿈을 품으면 먼 길을 우회할지라도 결국엔 그 자리에 다다르는가 보다.
문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숙명으로 믿도록 해준 것은 조부의 무덤이다. 어머니가 시집온 후 2년 만에 돌아가셨으니 내가 태어나지 근 10년 전으로 나는 조부를 본 적이 없다. 조부는 과거시험의 꿈을 가졌지만, 술을 좋아하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산에 묘를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명한 지관을 모시어 고향 뒷산에서 명당을 찾아낸 선친은 임시로 장례를 치룬 후 달이 없는 한밤중에 조부의 시신을 현재의 산소로 손수 옮겼다. 스님이었던 지관은 이 자리는 후손 중에 학자와 문인이 배출될 곳이라고 점을 찍었다고 하였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나 우리 집에는 교육자가 많고 나는 공교롭게도 교수에 글쟁이가 되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학문과 문학을 겸하게 된 풍수의 행운을 나는 조부가 못 다한 염원 덕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묘할 때마다 부디 문력을 빌려주시라고 빌곤 한다.
대학교 강단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면서 나는 점점 허기졌다. 이유는 나의 문학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강의할 때마다 매번 절망하였고 문학청년의 꿈을 되찾고 싶어 혼자서 시를 쓰고 에세이를 써나갔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어느 해, 우리 학교 교수들의 수필 동인인 <수평선>를 이끄시던 강 모 교수님이 학보사에 실린 내 글을 읽고 수필을 쓰라고 권유하였다. 그분에 조언에 따라 나는 수필을 열심히 썼고 1993년에 <월간에세이>를 통하여 등단하였다. 그분은 다시 내가 대학교수이니 수필평론 분야를 개척해보라고 권유하였다. 당시 수필은 이류 문학이었고 수필평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수필평론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수필은 대표 산문으로 인정받고 수필평론도 활성화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수필과 평론을 쓸 때마다 내게 던진 그분의 격려를 송곳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3. 수필의 마력과 매력
왜 우리는 수필을 쓰는가. 그리고 써야 하는가. 만일 여러분들이 ‘수필이나’ 쓸까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시를 쓰도록 부탁드린다. 동시에 산문가와 문장가라는 호칭과 결별한다는 점을 기억할 것이다.
우선 수필은 무엇인가. 수필은 모든 문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작가 지망생들은 수필로 습작을 시작하고 생을 마감하는 작가들은 적어도 한 권의 명상록을 갖고 싶어 한다. 이 자전적 과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장르에서 보아도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에 자리한다. 압축된 언어로 이루어진 산문이라는 점에서 시에 가깝고 삶을 서사로 엮어낸다는 점에서 소설과 비슷하다. 200자 원고지 15매 분량에서도 단편소설과 시를 연마하는 좋은 공간이다. 두 번째로 수필은 작가의 담백한 초상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누가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가. 자신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쓰는 것만큼 문학 입문의 지름길은 없다. 반대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다른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수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써야한다. 자신과 주변인과의 관계, 자연에 대한 해석, 그리고 관념적인 세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사물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키워간다. 이것이 수필의 정도이다.
그러면 수필의 마력은 무엇인가. 독자, 대상, 우주와의 교감이다. 시와 소설이 독자를 긴장시키고 즐겁게 해준다면 수필은 독자를 일깨운다. 나는 수필의 본성은 문장력이나 언어적 기교에 있기보다는 사물을 읽어내는 심안에 있다고 믿는다. 화려한 문장을 보면 일시적으로는 도취하지만, 산사의 종소리 같은 여운이 없으면 독자는 작가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수필이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읽는 동안에는 아첨을 하지만 영혼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아니면 독자는 수필가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 즉, 독자는 기발하고 별난 경험담이 아니라 작가도 남모르는 고민과 갈등을 지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분신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수필의 마력이다.
사람마다 얼굴을 그린 초상이 다를지라도 내면 심리를 그린 초상은 동일하다. 인간이라면 행복하면 웃고 슬프면 운다. 인간은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지만, 자신의 반응을 묘사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는 신으로부터 창작의 재능을 부여받았고 그것은 남다른 축복이다. 신은 하나의 재능을 주었으므로 다른 어떤 행운을 줄 수가 없다. 그러니 작가는 고독, 고통, 고행 그리고 고뇌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빛과 어둠을 묵묵히 감내하려할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작가라는 이름은 저주스럽지만 떼버릴 수 없는 낙인이자 훈장이다.
왜 수필로 살아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노마드의 혼’에서 찾고 싶다. 수필은 손품과 눈품과 발품으로 쓰인다. 손품은 달이 비추는 철야의 원고지 위에서, 눈 품은 여섯 개의 눈을 이용하는 상상을 통해서, 그리고 발품은 바람의 길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애당초 노마드(nomad)라는 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났으므로 내면에 깔린 방랑성을 참지 못하여 심미적 세계를 부단하게 헤맨다. 박목월은 젊은 시절에 홀로 동해안 해안을 한 달 이상을 도보 여행을 하였다. 이처럼 노마드의 혼에 실려 낯선 길을 떠난다 함은 처음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 해석하는 낯선 공간으로 탈주하는 행위이다. 즉, 새롭게 이해하여 태어나는 순례인 셈이다.
비가 내리는 저녁을 생각해보자. 공교롭게도 우산도 없이 들판 길을 걷다가 비를 맞이하면 마음 언저리가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한기를 느끼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가운데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적적한 들판의 쓸쓸함에서 고독을 이기지 못하여 마냥 걷고 싶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촉촉하게 젖은 들판을 바라보며 생명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이때 그들은 보글보글 끓여지는 된장국을 떠올리고, 떠나간 애인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생각하고, 혹은 촉이 돋아나는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모두가 비를 바라보면서 다른 물상을 떠올린다. 바람이 불면 풀잎이 흔들리듯이 물상을 만나면 연상의 물살이 이는 것이다.
비가 내린 저녁처럼 눈 내리는 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잠을 자지 않고 깨어나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본다면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그것은 과거에 쌓인 경험의 차이이면서, 현재 처한 상황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남다른 반응을 보여준다. 이것이 수필적 떠남이다.
수필적 여정은 감수성과 감성의 봇짐만 지니고 떠나는 방식이다. 그 나그네는 일상적인 생애 외에 하나의 삶을 더 살아간다. 평범한 사람과 쉽게 살고 싶은 사람은 그러한 길을 비켜가지만 수필가라면 낙엽에서 고독을 깨닫고 허공의 눈발을 지켜보면서 나의 허무와 그들의 고통을 느낀다. 수필적 길이란 주변 환경과 자신과의 교감이므로 수필가는 언어를 탐조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떠나는 고행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
4. 여성은 창조적 존재, 남성은 소비적 동물
당신은 지금도 우는가. 그렇다면 누구나 수필을 쓸 자격을 가진다. 예술과 문학만큼 남녀가 평등한 곳은 없으며 수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굳이 있다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수성과 대상을 안을 수 있는 인간애에 의하여 작품의 차이가 생길 따름이다.
여러분들은 수필을 통하여 문학세계로 들어온 분들이다. 그 길로 들어서기에 앞서 각자에게는 살아온 길이 있다. 남성은 남편과 직장인으로서, 여성은 아내와 가정주부로서 꽤 오랜 세월을 거쳐 왔다. 비교적 안전한 삶을 걸쳐왔음에도 여러분은 글방이라는 고난의 공간을 선택하려한다. 이득을 얻기 위해서 사회적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글을 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나 아닌 나를 찾고 싶은 것이다. 간혹 여러분이 걸어온 뒷길을 돌아보지만 지나온 흔적은 과거라는 뻘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인 데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정신적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문의 족보는 있으나 내 영혼의 족보는 찾지 못하고 있다. 영혼의 족보야말로 내가 누구이며, 남과 다른 무엇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자식이 있고, 아파트가 있고 묵은 세월이 있지만 내가 없다. 즉 나는 “보이지 않는 나”인 것이다. 이것을 절감할 때 각자의 영혼의 노트는 초상화로 복원되고 그 초상화를 통하여 세상을 새로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수필을 쓸 때,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호기심과 궁금증을 잃어간다는 점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가졌던 ‘왜’라는 질문도 귀찮게 여긴다. ‘왜’라는 질문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존재를 입증하는 담론이자 문학의 출발이기도 하다. 아마 수필을 써야한다면 실존적 신원을 탐색하려는 “왜”라는 질문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수필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하여 밤 두 시에 깨어나 펜을 쥐고 7월의 햇살을 받으며 무너진 성터를 헤매는 것이다.
왜 남성은 수필을 쓰는가
남자는 근원적으로 일하고, 일을 해야 하는 동물이다. 일을 통하여 신분을 확인하고 돈으로 능력을 과시하고 섹스를 통해 생식력을 유지하려 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남자를 생존케 하지만 존재케 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남자가 감당하여야 할 역할이 오히려 남자의 신분을 위태롭게 해준다. 직장을 잃는 순간, 돈을 벌지 못하는 순간, 조루를 예감하는 순간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그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성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수필이다. 마침내 수필가라는 살아있는 신분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을 위한 거울과 요술램프와 정원이 되살아나게 된다.
무엇보다 남자는 수필을 통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다. 돈 냄새만을 풍기고 권력에 침을 흘리는 자를 우리는 진정으로 존경하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필요한 존재로 간주할 수 없다. 수필은 그런 결핍의 동굴에서 벗어나 자신의 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학을 아는 남성만이 인문학적 지혜로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여성도 글을 써야하는가.
여성은 창조적 존재이다. 남자와 여자를 쉽게 구분한다면 남성이 먹고 마시고 때려 부수는 동물적 충동을 갖고 있다면, 여성은 낳고 만드는 생산적 욕망에 충실하다. 여성은 때가 되면 끼니를 마련하고 자식을 키우고 집안을 정돈한다. 여성은 많은 창조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가정과 가문과 나라의 존속을 위하여 개인을 희생하여 왔다고 불 수 있다. 여성이 그들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허탈감에 빠지는 이유는 비로소 여성성이 모성에 의하여 묻힌 것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이 곁을 떠나고 폐경기에 다다를 때 정신적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때 여성은 퇴직당한 남성처럼 나를 위한 무엇을 창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글을 쓰려는 여성의 동기이다. 한국 여성은 서양 여성과 달리 인내하고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남성 중심 논리에 갇혀있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내적 성숙을 이루어 왔다.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로 보인다.”는 말은 자기희생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하였기 때문이다. 수필이란 무엇인가? 대상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품고 그들이 지닌 아픈 미덕을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그 점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수필창작의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작가의 자세는 하심(下心)과 하신(下身)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만큼 몸과 마음을 낮추는 모습을 어디서든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성들이여, 기죽지 말라. 신은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창조의 재능과 창작에 대한 열정과 본능을 더 많이 부여하였다.
5. 좋은 수필의 4품
수필은 4 품계로 구분된다.
4품은 신변이나 신체에 대하여 친구나 이웃에게 진지한 고백을 이룬 경우를 말한다. 사실의 왜곡이나 누락은 진솔하지 못하며 헤픈 넋두리는 잡문이 되기 쉽다. 문학적인 인간은 일상의 다양성, 수용의 다양성, 지식의 다양성, 그리고 표현의 다양성을 통해 자기의 문학세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내가 하니까’ 개성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으니까’ 개성이다. 인생을 자기의 색깔로 서술할 때 자조와 자성과 자각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수필을 인생학이라 말하고 고백의 진지성을 수필의 첫 번째 요건으로 손꼽는다.
3품은 지적 생산성을 넣는 단계를 말한다. 고리타분한 지식이나 피상적 상식으로 짜깁기한 글은 논리성이 부족하기 쉽다. 제대로 된 수필은 지식, 상식, 그리고 읽을거리로 이루어진다. 수필은 아는 것만큼 쓴다고 하듯이 읽을거리가 담겨야 생각거리를 주게 된다. 지식이 흩어진 낟가리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2품은 연륜의 향기를 풍기는 경지를 말한다. 연륜이라 함은 인공적인 지식이나 싸구려 감정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는 포용과 관용을 말한다. 과거의 체험을 반추하여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줄 때 수필은 중용과 화해라는 위상을 지켜내는 글로 발전한다.
1품은 적절한 미적 구조와 미학성을 구축하려는 예술가적 소명감이 반영된 글이다. 시적 요소인 미래, 이상, 감각, 사색, 감성, 직관이 수반되면서 수필의 완성 단계인 예술수필로 나아간다. 지정의(知情意)와 서권기(書卷氣)를 얻고 문자향(文字香)을 발하고 우주를 읽어내는 투시력을 모두 지닐 수 있다.
잡(雜)문수필가가 문인이라는 명예에 골몰하고 거리수필가는 양적 발표에 집착한다면 작가 1수필가는 글의 향기를 추구하며 예술수필가는 영성(靈性)을 추구해나간다.
6. 공모전에 대비하여
공모전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문학 정신은 순수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좋은 작품을 써서 단 한 명의 독자에게 기쁨을 준다면 ‘나는 행복하다’는 정신이 필요하다. 문학이란 어떤 것이든 간에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자신을 위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에 작가는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눈비를 맞으며 들판을 헤맨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문점에서 떠날 수 없다. 과연 제대로 사물을 보고 있는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라는 불안이다. 그 불안감을 줄여주는 방법이 등단과 문예 공모전과 신춘이다. 비유하면 캄캄한 바다를 달리는 배에게는 나침반과 등대와 별자리가 필요하다. 제대로 항로를 잡고 있어도 선원들에게 방향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홀로 걸어가는 문학의 길은 더욱 암담하므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합평이고 등단이고 공모전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공모전은 글쓰기의 목표가 아니라 글쓰기의 과정이고 결과여야 한다. 공모전에 입상하기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을 쓰다 보니 공모전에 입상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신문, 문예지 또는 문학단체에서 여러 공모전을 운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입선된 작품은 상대적으로 괜찮다. 심사자들이 정실에 얽매이지 않는 한 좋은 작품을 뽑게 된다. 유감스런 일이라면 공모전은 소수의 심사자에 의하여 선정되는 만큼, 개인적 취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현실이다. 하지만 최종심에 올랐다면 수상작에 못지않은 수작이라고 확신하여도 좋다.
그러면 심사과정과 심사자의 입장은 어떨까. 1차 심사와 2차 심사를 거칠 때는 주제와 소재해석과 문장력에서 장점을 갖춘 작품을 고르게 된다. 3차와 4차에 가면 모든 작품이 일정 수준을 지니므로 사소한 흠조차 찾게 된다. 심지어 제출 작품이 고른가. 제출한 원고의 디자인에 성의가 보이는가가 결정요소이 되기도 한다. 여러분이 시장에서 과일을 고를 때 어떤 순서로 고르는가? 과일 알이 굵은가 작은가를 먼저 구별할 것이고 다음에는 색깔을 살피고 향기를 맡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일에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고 포장이 잘 되어 있는가도 선별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공모전에서 작품이 골라지는 순서는 과일을 고를 때와 별 차이가 없다. 공모전에서 입상이 되고 싶으면 과일집의 입장에서 고객은 어떤 과일을 원할까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면 공모전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작가는 소재와 문체와 해석 능력을 깊고 넓게 보여주도록 한다. 나는 한 작품을 죽도록 다듬어가기 보다는 적어도 다섯 편 내외의 준비작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것을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합평을 통하여 가장 잘된 작품을 고르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이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공모전 운영단체마다 나름의 선정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등단자를 배제하는 공모전도 있고, 공모전의 취지를 고려하기도 하고, 서정 수필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작품을 제출하기보다 조사하고 다듬어 가는 인내가 필요하다.
어느 한 공모전에서 실패하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심사자가 계속 달라지니까, 적어도 세 번까지 응모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만일 여러분이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운수가 나빠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작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인하여야 한다. 어머니에게는 못난 자식일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잘난 자식으로 보이지만 작품에 대한 모성애는 반대이다. 자신의 작품이 아무리 좋을 지라도 세상에 더 좋은 작품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7. 신춘 작품 창작 20계명
1. 가문 3대의 서사를 기본 구조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2. 수필의 주제는 갈등-화해-희생을 모티프로 한다.
3. 한국적 정서에 초점을 맞춘다(상실, 그리움, 향수 등)
4. 대사와 지문은 작중인물의 성격을 생생하게 반영하도록 한다.
5. 자연묘사가 사건진행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깔리도록 한다.
6. 산뜻하고 함축적인 제목이 필요하다.(홑자, 낯선 사물 명)
7. 독자의 무릎을 치게 하는 인식의 혈을 2-3군데 안배한다.
8, 첫 단락 첫 문장은 울림이 있는 짧은 글이 좋다.(10자 미만이 바람직하다)
9.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의 연결 부분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
10. 17-18매의 매수가 서사를 제대로 엮어낼 수 있다.
11. 어느 한 단락에서는 사물에 대한 묘사력을 능력껏 발휘한다.
12. 신선한 향토어, 토속어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13. 단락 구분이 적절하고 단락의 크기가 다양하여야 한다.
14. 응모작이 3편이라면 적어도 두 편의 작품은 균질하여야 한다.
15. 비과학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부분이 없어야 한다.
16. 기행, 여행, 취미 수필은 절대 피한다.
17. 대사는 압축되고 3-4개에 한정되어야 한다.
18. 결미에서는 가능한 현재시제로 미래지향적 비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19. 표지를 깔끔하게 재단한다.
20. 맞춤법이 틀리면 절대적인 감점이다.
8. 미완성작을 품고
스피노자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머물러 있지 말고 먼 영혼에서 현재를 보라.”고 말했다. 작가는 현재가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제3의 공간 속에서 외계인처럼 살아가는 존재임을 일러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기록자인가, 창조자인가. 예수 제자들이 예수가 가르친 말을 기록한 복음(福音)은 신약성서가 되었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난타(阿難陀)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말로 시작되는 불경을 기록하였다. 공자의 제자들도 ‘공자 가라사대’라는 서두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였다. 문학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신의 창조에서,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의 행동을 모방으로 재창조한다. 작가는 신의 성실한 모방자이자 계승자라는 의미에서 네 다리로 걷다가 두 다리로 걷다가 세 다리로 걷는 게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인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경우, 인간에 대한 질문은 자신에게 주어지므로 해답을 찾지 못하면 스스로를 죽임을 당한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답은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영성으로 구해진다.
그러므로 작가로서 나의 마지막 소망은 내 작품마다 영성이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느끼지 말아야 할 것을 느끼고,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글로 말하는 운명의 족속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밤낮 “생각하는 형벌”을 자청하겠는가.
인생은 짧으나 예술은 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생각이란 병을 앓는다. 글이라는 질환을 앓는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이, 지금 느끼는 것이, 지금 쓰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쓰인 것인지도 모르고 작가 생활을 끝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쓸 것이고, 풀어내고, 수필로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한 편의 수필을 쓸 때마다, 한 편의 평론을 마무리할 때마다, “죽어도 좋아”라는 버림의 마음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내 좌절의 아픔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 속죄의 눈물과 시간을 정죄하기를 바란다. 지금도 수필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신기루이고 손에 쥘수록 떨어지는 모래시계이지만 고통과 환희를 가져다주는 절대적 자유의 공간이므로 내 영육을 두 손으로 바치는 것이다.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어찌 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
박양근 약력:
1952년 1월 10일 경북 청도 출생. 부경대학교 영문과 교수. 1993년 '월간에세이'에서 에세이스트 천료. 2005년 '문학예술' 문학평론가로 등단. 영남수필학회장, 부경수필문학회 지도교수. 부산문인협회 부회장. '월간문학'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 회원. 저서로는 '서 있는 자', '문자도', '작은 사랑이 아름답다', '풀꽃처럼 불꽃처럼', '좋은 수필 창작론', '미국수필 200년', '영미신문', '현대영문학개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