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옥 수필 세계 연구 ‘디아스포라 수필의 삶과 신앙 미학’
-이민 1세 여성수필의 삶과 신앙
강정실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머리말:
수필은 일상적 체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관조한 산물이다. 정순옥 수필가의 내용은 평범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속을 파헤쳐 보면 자기 나름의 철학과 이성의 프리즘에서 반영되는 결과를 글로 소화시킨다.
정순옥 수필가는 가난했지만 그리움이 담겨 있는 전북 정읍 어느 시골 마을에서 성장해, 간호대학을 졸업 후, 조선대학부속 병원에서 수간호사 때 지금의 남편 이병호 시인과 동료의 소개로 결혼했다. 이후 아들 해광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1978년 9월 남편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민 왔다. 그리고는 8년째인 16번 만에 간호사자격증을 취득해 평생을 간호사로 일하다가 2023년 3월 은퇴했다. 미서부 몬터레이 중부해안의 한 병원에서 일하다가, 어언 50여 년이 지난 지금 70대 중반인 나이에 5번째 수필집《안개비》를 발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생 환자를 간호하면서 새파란 얼굴에서 주름진 얼굴과 두 손으로 변해있는, 정 수필가는 ‘이제 수필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들어가기:
느티나무는 말한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오백 여년 동안이나 기다렸다고.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구: 성남 성동 성서마을) 성삼다리와 성복천에 있는 느티나무가 인연이 되어 믿음직하고 넓은 마음을 만난 기쁨에 들떠 있다. 포근히 감싸주듯이 반겨주는 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는 역사적인 느티나무는, 구순에 가까운 세월을 품고 계시는 원로교육자이시며 저술가이기도 한 형부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귀한 존재이기에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중략)
교육계의 한 그루 고목 느티나무이신 형부는 이 시간도 후세에게 평온하고 시원한 그늘을 주기 위해 넓은 어깨를 뻗치고 있지만, 버겁다. 주위 사람들의 사랑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속도가 한없이 느리고 불편한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바꾸게 된 날은 황홀한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날 지경이라 말씀하신다. 요즘은 새로운 영어회화 참고서를 집필하고 계신다. 구순을 바라보고 계시기에 노년이 된 친구들의 별세 소식도 듣고, 또한 요양원에 있는 친구들의 소식이 많다 하신다. 이런 와중에서도 묵묵히 후세들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버팀목 노릇을 해 주고 있으니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사랑받는 원로 교육자가 되시지 않을까 싶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이루며 넓은 포용력으로 모든 사람을 품어주는 오백 여년이 된 느티나무. 오랜 세월 동안 모든 풍파를 몸으로 견디며 이겨낸 흔적들이 두꺼운 껍질이 되어 울퉁불퉁한 몸통과 찢겨 늘어진 가지들이 무언으로 인내를 보여주고 있는 노거수(老巨樹). 성북마을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내 눈에, 책가방을 뒤에 메고 핸드폰을 보면서 걷는 학생이 눈에 띈다. 교육열이나 학문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는데 인성교육이 잘되지 않아 교육현장이 엉망이라고 염려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지금 세대는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학부모는 학생을 옹호하고, 교육기관은 무능력하여 이상한 세대로 변해가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나무 이파리들도 수런대는 듯하다. 오늘의 교육이 미래의 한국인데 이 세태를 느티나무는 나이테에 어떤 색깔과 무늬로 새겨 놓을까.
-느티나무, 일부
이 작품은 용인의 성복천가에 서 있는 오백 년 느티나무를 매개로 하여, 한 원로 교육자의 삶과 오늘날 교육 현실을 성찰하는 상징적 수필이다. 자연물과 인간 존재를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시간·헌신·교육의 의미를 사유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느티나무는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성복천 인근에 자리한 노거수이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오백 여년을 기다렸다.’라는 의인화된 첫 문장은 이 작품의 상징적 성격을 분명히 한다. 느티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세월을 견딘 존재, 민족의 정기가 서린 역사 포용과 인내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특히 ‘오백 년’이라는 시간의 깊이는 개인의 생애를 넘어 역사적 차원으로 독자를 이끈다. 화자는 느티나무를 형부, 곧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교육자에 비유한다. 넓은 어깨를 펼쳐 그늘을 만드는 나무, 후세를 위해 책을 집필하는 교육자. 두 존재는 ‘그늘을 제공하는 삶’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컴퓨터가 느려 불편을 겪다가 새 컴퓨터를 받고 감격해 하는 장면은, 노년의 순수함과 학문적 열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나이와 무관하게 후세를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껍질이 두꺼워진 노거수의 인내와 겹쳐진다. 이 병치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세월 속에서도 사명을 놓지 않는 인간상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느티나무의 두꺼운 껍질과 나이테는 세월의 흔적을 품는다. 화자는 이를 통해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깊이를 형상화한다. 나이테는 단순한 성장의 흔적이 아니라, 풍파와 인내, 헌신과 기억을 새긴 기록이다. 이 상징은 개인의 삶과 동시에 한국 교육의 역사까지 포괄하는 은유로 확장된다.
후반부에서 작품은 현재의 교육 현실로 시선을 옮긴다. 책가방을 메고 휴대폰을 보며 걷는 학생의 모습은 세대 변화를 상징한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학부모가 이를 옹호한다는 서술은 교육 질서의 붕괴에 대한 염려를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느티나무는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역사적 증인이 된다. ‘오늘의 교육이 미래의 한국인데…’라는 문장은 작품의 문제의식을 집약한다.
화자는 묻는다. 이 시대의 혼란을 느티나무는 어떤 나이테로 새길 것인가. 이는 곧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질문이다. 여기에서 화자의 문학적 특징은 의인화 기법에 있다. 느티나무가 말하고, 나뭇잎이 수군대는 장면은 상징성을 강화한다.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동시대 교육 현실에 대한 우려의 비판적 현실도 드러난다. 또한, 자연물과 인간(원로 교육자)을 나란히 놓아 의미를 확장한다. 또한, 시간의 미학이다. 오백 년과 구순의 세월을 연결해 역사성과 개인사를 통합한다.
이 작품,〈느티나무〉라는 한 그루 노거수를 통해 원로 교육자의 헌신과 세월의 존엄 그리고 현대 교육의 위기를 동시에 조망하는 상징적 수필이다. 느티나무는 단순히 오래 산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그늘을 만드는 존재, 곧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후세를 품어주는 삶의 형상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나이테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세월을 견딘 느티나무처럼 말이다. 이는 묵묵히 후세를 위한 그늘이 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임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어쩌다 스타부부가 됐다. 2023년 11월 어느 날, 방송된 ‘어쩌다 사장’ 프로그램에 우리 부부가 주인공처럼 화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늦게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40여 명이 만든 tvN리얼리티이다. 한꺼번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러 명의 무비스타들을 실물로 볼 기회가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중략)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아직도 한식을 주로 먹는 우리 부부는 집에서 가까운 아세아마켓에 자주 간다.…식당에서 조인성 씨가 요리하고 한효주 씨는 서빙을 해주어 커다란 게 다리가 섞인 대게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가게 문을 나오는데, 어떤 분이 지금 이것은 TV프로그램이어서 우리 얼굴이 나오게 될 것이라 했다. 나는 그냥 스치어 가는 정도로 알았는데, 직접 화면을 보니 많은 분량이 나와 우리 부부는 정말 놀랐다. 생각지도 않은 어쩌다 스타부부가 된 것이다. (중략)
이름을 들을 때마다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예쁘고 깜찍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사극 ‘동이’의 주인공 한효주. ‘봄날’이라는 연속극에서 매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조인성.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차태현. 드라마 ‘이브’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박병은. 예쁜 미모보다도 더 고운 마음씨를 가진 김서현 방송작가 등 싱싱하고 활력이 넘치는 관계직원들을 한꺼번에 보면서 기쁨을 누린 그날은 우리 부부를 스타로 탄생시킨 날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어쩌다 사장’ 프로그램방송 제작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어느 날 아침, 동부에 사는 큰딸에게서 “아빠 엄마 스타가 됐네.”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머뭇거리자 딸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스타라는 말에 둔감한 나에게 "TV에 아빠 엄마 얼굴 나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느냐?” 재차 질문했다. 나는 오래전 미국 기자가 신문에 낸 사진을 보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넷시대라 그런지 곧바로 카톡이 왔다. 친구가 보내준 카톡이라 했다. 미남으로 잘생긴 조인성 탤런트 얼굴이 크게 나오고, 한편으로 작고 놀란 표정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어~머! 우리 부부가 정말 스타가 됐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리기가 일쑤인 나는 오래된 일도 아닌데 그동안 깜빡한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카톡을 보면서 어쩌다 스타부부가 된 그날을 생각해 본다. (중략)
스타(Star)는 빛나고 아름답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은 정말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이리하여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인기가 있는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을 ‘스타’라 부르나 보다. 스타는 한 시대의 생활상과 감성을 대변하는 사람들 같다. 나는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는 스타들을 존귀하게 생각한다. 수많은 스타는 대중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다. 연예계의 방송프로그램은 대중들에게 시대공감을 공유할 수 있게 이끌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타들은 대중들의 인기도에 민감해서인지 끊임없이 노출되는 자기의 이름 아래 달린 악성댓글에 시달리어 유명을 달리하는 스타들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알 수 없는 것은 악성댓글을 게시하는 사람들인데, 그 마음 자체가 이미 피폐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타들도 사람이니 대중들이 너그럽게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마음으로 격려해주면 활력소가 생겨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스타는 대중이 만들고 대중은 스타들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최선을 다하는 스타나 제작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청하면 그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더 흥미로울 것이다. (중략)
어쩌다 스타부부가 된 우리 부부는 tvN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이야기만 나오면 행복해진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재밋거리를 선물해준 제작진에게 감사하며, 더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은 웬일일까. 어쩌다 스타부부가 되었으니 아리랑 스타부부가 될 가능성도 있겠다 싶다. 살다 보면 누가 알리야.
- 어쩌다 스타 부부, 일부
〈어쩌다 스타 부부〉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우연히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경험을 소재로 삼아 현대 대중문화, 스타의 의미, 그리고 이민자로서의 삶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 이민 부부가 우연히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사건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 경험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어쩌다 사장’이며, 그 안에서 만난 배우들은 대중문화의 상징적 존재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을 ‘연예인’으로 소비하기보다, 드라마 속 인물의 기억과 연결해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매체 속 스타와 일상 속의 남편과 함께 만나는 지점이다.
<어쩌다 스타부부>라는 표현에는 자조와 유머가 담겨 있다. 이는 자신을 낮추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태도이며, 수필 특유의 온화한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작품 중반부에서 작가는 ‘스타’의 의미를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한다.
“스타(Star)는 빛나고 아름답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은 정말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이 문장은 단순한 어원적 설명을 넘어 상징적 전환을 보여준다. 스타는 연예인을 뜻하는 대중적 의미에서 출발하지만, 곧 빛, 영향력, 시대의 감성을 대표하는 존재로 확장된다. 화자는 스타를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면서도, 악성댓글 때문에 상처받는 현실을 언급한다. 이는 단순한 팬심을 넘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윤리적 성찰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일상적 체험담을 넘어 대중문화에 대한 비평적 수필로 성격이 확장된다.
이 작품의 더 깊은 층위는 ‘이민자의 삶’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한식을 즐기고, 한국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 감동하는 모습은 문화적 뿌리를 놓지 않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즉, 이 방송 출연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고국과의 연결고리를 재확인하는 사건이다. 그랬다. 동부에 사는 딸의 전화, 카카오톡으로 전해지는 화면 캡처는 디아스포라 가족의 소통 방식을 보여주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작품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개인의 일상, 가족 공동체, 디아스포라 정체성, 대중문화 비평까지 한 흐름 안에 다 엮어낸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에 대한 감사, 스타들에 대한 존중, 시청자로서의 태도 등에서 기독교적 신앙과 삶의 태도가 은은히 배어 있다. 이는 작가의 전 생애적 가치관과 연결된다.
이 수필은 담담한 서술과 소박한 어조로 화자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놀람과 기쁨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스타부부’라는 표현에는 자기희화화가 담겨 있어 글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있다. 화자는 간호사로서 평생 타인을 돌보았듯, 글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돌본다. 우연히 스타가 된 경험은 곧, 삶의 어느 순간 누구나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독자에게 화려한 사건보다도 ‘빛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소녀의 눈물’을 본다. 원로 화백 박남의 명화 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이다. 이 소녀의 눈물엔 나의 꿈이 서려 있다. 소녀 시절에 품었던 나의 꿈과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노인이 되어 품고 있는 나의 꿈이 고인 눈물에 서려 있다. 소녀의 눈물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초연한 모습으로 살아온 나의 무언 속 항변을, 움직이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눈망울 속에 머금고 있는 듯하다. 그림이 너무도 좋은데 이런 그림을 소유할 수 없는 지금 형편의 내 마음도 명화 소녀의 눈물에 담기는 기분이다. (중략)
……나는 문득 한국미술이 보고 싶어 손을 움직인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훌륭한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한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한 예술적인 그림이 세계에서 으뜸일 것으로 생각해본다. 그중에서도 ‘소녀의 눈물’은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나의 눈물을 무언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짜릿하다. 내 마음을 앗아간 듯한 작가는 그동안 참아왔던 나의 말들을 토해내게 할 모양이다. 뾰로통하게 오므린 입술을 열어 기어이 맺힌 눈물방울을 떨어지게 할 것만 같다.
추억 속의 그 시절은 나도 머리가 기다란 소녀였다. 기다란 하얀 목선을 타고 내려오면 보이는 자두색깔 셔츠는 내가 소녀 시절에 즐겨 입던 옷과 비슷해 마음을 흔든다. 뾰로통하게 생긴 입술은 수많은 말들을 품어낼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있는 나의 소녀 시절의 모습이다. 그래도 가려진 생명줄인 작은 가슴에선 희망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소녀 시절을 보내면서 생긴 한의 정서가 담뿍 담겨 있는 듯한 그림을 보면서 나는 기어이 눈물을 훔친다. (중략)
나는 미주 한인으로 살면서 은근과 끈기로 가난의 한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정서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높은 자존심을 지닌 듯한 박남 화백의 ‘소녀의 눈물’은 나의 소녀 시절의 정서를 표현한 그림 같아 자꾸만 마음이 쏠린다. 언젠가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원로 화백의 화폭에서 생명선을 타고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뜀은 웬일일까. 어느 날 ‘노인의 미소’를 그린 명화가 생면부지의 화가의 화폭에서 살아나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녀의 눈물이 아닌 가난의 한을 초월한 행복한 노인의 미소가 담긴 명화 앞에서.
-소녀의 눈물, 일부
이 작품은 한 폭의 그림을 매개로 하여 자전적 기억, 민족 정서, 이민자의 자의식, 그리고 노년의 소망까지 확장해 가는 내면 성찰의 수필이다. 대상은 원로 화백 박남의 명화 「소녀의 눈물」이지만, 실상 이 글의 중심에는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존재가 놓여 있다.
화자는 ‘소녀의 눈물엔 나의 꿈이 서려 있다.’라고 고백한다. 이 한 문장은 작품 전체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림은 더 이상 외부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 자기 생애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소녀의 눈망울에 고인 눈물은 가난 속에서 품었던 꿈, 이루지 못한 소망, 노년에 다시 떠오르는 새로운 꿈을 동시에 품는다. 이때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상징이 아니라 억눌린 시간과 침묵의 응축체이다. ‘움직이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눈망울’이라는 표현은 긴 세월 참고 견뎌온 삶의 태도를 함축한다.
이 작품에는 한국적 정서의 핵심인 ‘한’이 깊이 스며 있다. ‘가난한 소녀 시절을 보내면서 생긴 한의 정서’라는 대목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민족적 감수성과 연결된다. 화자는 한국미술을 감상하며 ‘한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한 예술적인 그림’을 떠올린다. 이는 이민자로서 타국에 살면서 더욱 또렷해진 문화적 정체성의 표현이다. 또한 ‘소녀의 눈물’은 개인의 초상이면서 동시에 가난을 견딘 세대의 초상, 여성으로서 침묵해야 했던 존재의 초상, 이민자로 살아온 삶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자두색 셔츠, 기다란 목선, 오므린 입술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자두색은 성숙과 그리움의 색채, 오므린 입술은 말하지 못한 수많은 사연, 눈물 맺힌 눈망울은 절제된 감정의 극점. 특히 ‘가려진 생명줄인 작은 가슴에선 희망이 솟아난다.’라는 표현은, 절망 속에서도 생명의 힘을 발견하는 화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작품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 희망의 서사로 전환된다.
‘나는 미주 한인으로 살면서 은근과 끈기로 가난의 한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정서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문장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가난의 기억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극복의 동력이 된다. 그림 속 소녀의 높은 자존심은 곧 작가 자신의 자존과 겹친다. 그림을 소유할 수 없는 현실을 아쉬워하면서도, 작가는 물질적 소유보다 정서적 공명을 더 소중히 여긴다. 이는 이민자로서 겪어온 삶의 단단함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결말부이다. 화자는 ‘노인의 미소’를 그린 명화를 꿈꾼다. 이는 ‘소녀의 눈물’과 대비되는 상징이다. 소녀의 눈물은 가난과 한, 억눌린 꿈. 노인의 미소는 초월, 화해, 성취된 내면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작품은 과거의 한을 되짚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한을 넘어선 미래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는 단순한 감상문을 넘어 시간을 가로지르는 존재론적 서사를 완성한다.
따라서「소녀의 눈물」은 한 폭의 그림 감상을 통해 자전적 기억, 한국적 한의 정서, 이민자의 자존, 노년의 희망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성찰적 수필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확보한다는 데 있다. 눈물은 흐르지 않고 맺혀 있으며, 바로 그 ‘맺힘’ 속에서 삶의 밀도가 응축된다.
결국, 이 글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가난과 한을 품었던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마지막 소망 속에 있다. 언젠가 화폭 속에 ‘노인의 미소’가 피어날 때, 소녀의 눈물은 비로소 삶의 완성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래서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눈물을 통과하여 미소에 이르는 화자의 내면 성장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서서 길가 수은등에 작은 알맹이로 떨어지고 있는 새벽 안개비를 바라본다. 누군가가 부르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재킷을 걸치고 방문을 연다. 아무도 없는 방문 앞을 지나 습관처럼 새벽 일찍 하이랜드 산책길을 걷는다. 나의 발걸음은 건강 상태를 잘 알려주고 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정상적인 발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느리게, 때로는 등 뒤로 두 손을 깍지 끼고 빠른 속도로 걷기도 한다.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아 천천히 걸으니 웬일인지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내 인생길에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지금 이 시간이 있지 않나 하는 감사의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주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진 안개비 같은 미세한 은혜비를 맞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 (중략)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면서 산 날도 있고,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난 악인에서 의인으로 옮겨지는 믿음이 흔들린다. 나는 왜 구원하심과 복음을 외치면서도 굳건한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인 슬픈 이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했을 때는, 내 신앙은 뿌리까지 흔들렸었다. 제일 밑바닥에서 한없이 허위적 꺼렸을 때, 무게를 느끼지 않는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끔은 한없이 부족한 인간의 속성이 내면에서 꿈틀거릴 땐, 나는 속절없는 죄인이 되어 살아갈 때도 있다. 그래도 영 죽을 나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잊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감사할 뿐이다.
-안개비, 일부
「안개비」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신앙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여기서 ‘안개비’는 물리적 현상이라기보다, 작고 미세하지만, 생을 지탱해 온 하나님의 은혜를 형상화한 은유다.
안개비는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와 다르다. 소리 없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늘게 내린다. 그러나 분명히 젖게 하고, 공기를 적시며,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화자는 이 안개비를 ‘아주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진 미세한 은혜비’로 표현한다. 이는 화자 정순옥의 인생을 관통해 온 하나님의 돌보심이 거창한 기적이나 극적인 구원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틈새마다 스며든 보이지 않는 보호와 인도였음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이민자로서의 삶, 16번의 도전 끝에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인내, 병원 현장에서의 고단한 노동과 수많은 생사의 순간들. 그 모든 세월은 폭풍우가 아니라, 어쩌면 잔잔한 안개비처럼 지속된 은혜의 시간이었다는 자각이 이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화자는 새벽 산책길에서 자신의 발걸음으로 건강 상태를 가늠한다. 발걸음의 속도와 자세는 곧 내면의 상태를 드러내는 지표다.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지 않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신체적 감각은 곧 영적 상태와 맞닿는다. 신앙은 언제나 확신의 직선 위에 놓이지 않는다. 화자는 ‘악인에서 의인으로 옮겨지는 믿음이 흔들린다.’라고 고백한다. 구원과 복음을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의 믿음은 반석처럼 굳건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이는 신앙인의 보편적 내면 갈등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이별, 곧 죽음의 체험 앞에서 그의 신앙은 “뿌리까지 흔들렸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역설을 본다. 하나님을 경험한 날도 있었고, 기적적 치유를 체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고통의 심연 앞에서는 그 확신이 흔들린다. 체험이 곧 영원한 확신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일 밑바닥에서 한없이 허위적 꺼렸을 때’조차, 무게를 느끼지 않는 안개비 같은 은혜가 있었기에 살아남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신앙의 본질을 ‘강한 확신’이 아니라 ‘붙들림’에 두는 태도다.
화자의 믿음은 흔들리지만,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혜는 화자의 감정 상태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개비는 느끼지 못해도 내리고 있으며,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존재한다. 믿음이 약해진 순간에도, 은혜는 중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화자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한없이 부족한 인간의 속성’이 꿈틀거릴 때 자신을 ‘속절없는 죄인’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인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 죽을 나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잊지 않게 해 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죄의 자각과 은혜의 인식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이 화자 신앙의 자리다.
이것은 완성된 성자의 고백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순례자의 고백이다. 흔들림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며, 안개비는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 「안개비」는 자연 이미지와 신앙 고백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다. 새벽, 안개비, 수은등, 산책길이라는 외적 풍경은 곧 내면의 풍경과 겹쳐진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신학적 사유의 매개가 된다. 특히 ‘안개비’라는 제목선택은 참으로 절묘하다 싶다. 그것은 격정적 회심이 아니라, 긴 세월에 걸쳐 스며든 신앙을 상징한다. 그의 믿음은 바위처럼 단단하지 않을지라도, 안개비처럼 지속적으로 내리는 은혜 위에 서 있다.
결국, 이 글에서 드러나는 신앙은 ‘흔들림 없는 확신’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버텨온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한 힘이 바로 안개비 같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따라서 「안개비」는 이민자의 고단한 삶 속에서 신앙의 은혜를 안개비에 비유해 섬세하게 형상화했다. 흔들리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면을 솔직히 드러내며, 고통 속에서도 감사로 귀결되는 영적 성찰이 돋보인다.
행복하다. 꽃들의 향연에 초대받으면. 화사한 꽃들이 어우러진 꽃밭에 들어서면 풍성한 잔치에 기쁨이 넘친다. 내가 평생토록 살고 싶은 곳, 지상 천국이다. 시시때때로 함께 즐기는 수많은 꽃은 언제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절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신비스런 꽃들의 향연에 나는 취해 산다. 살구꽃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 라일락 장미꽃 코스모스 동백꽃…눈에 안 보이는 꽃들까지도 이름을 부르며, 모양새를 감상하며, 향내를 맡으며, 색깔을 만끽하며, 감촉을 느끼며, 안녕을 빌며.
뻐꾹! 뻐억꾹! 뻐꾹새가 앞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새봄이 왔음을 알려주면, 마을 어귀 우물가에 있는 살구나무는 반가워서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워 환한 미소로 재빨리 봄을 맞이한다. 이 세상에 있는 봄꽃들은 새 생명을 찬양하는 교향곡을 연주하며 꽃들의 향연을 펼친다. 오늘도 나는 싱그러운 꽃들의 향연에 초대되어 즐겁다. 수많은 꽃 중에서도 봄의 설렘을 갖게 하며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살구꽃을 보면서 내 감성을 추스른다.
살구꽃
동구 밭 우물가에 새봄을 알리려고 미소부터 짓던 꽃잎
열아홉 살 처녀가 머리 위에 이고 가는 물동이 속으로
봄바람 타고 사뿐히 흩날리며 내려앉던 연분홍색 꽃잎
지금은 멀리 타향 나의 가슴에 추억되어 흩날리고 있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며 여름을 알리면, 봉숭아 채송화 장미꽃…꽃들은 신이나 춤을 춘다. 꽃밭에서 야산에서 길가에서 사랑스러운 꽃들의 향연은 펼쳐진다. 청춘남녀들이 해수욕장을 찾아 뜨거운 열정을 식혀가며 모래사장에 사랑의 이름을 새겨 갈 때는, 해님도 사랑에 흥이나 눈부시게 햇살을 품어낸다. 사랑의 언어에 속삭이듯 장미꽃이 더욱더 달콤한 향기를 품어내면 첫사랑 추억에 빠져버리는 나.
장미꽃
사랑의 언어로 한 아름 선물 받던 날, 나는 가슴이 뛰었지
사랑의 심장을 터트려 빨강 색깔이 되어버린 너
사랑의 달콤한 향내로 온 세상에 사랑편지를 쓰는 너
사랑의 화신 되어 오늘도 나를 감싸고 있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 구설초 국화 …. 가을꽃들의 향연은 들녘에서 더욱더 풍성해진다. 파아란 하늘 및 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청군 백군 나누어 운동회를 하며 웃어 대는 꿈이 많은 학생들의 웃음꽃 속에서 새 나라의 아름다운 꽃들이 향연을 펼치는 가을. 신작로 옆으로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피어나는 학교 길에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던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나서, 나는 멀리 타향에서도 해마다 코스모스를 나의 꽃밭에 심는다. 나는 가을날에 핀 코스모스를 생각하자 어느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정다운 언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코스모스
너를 보면 행복해
나를 보면 너도 행복해?
우리는 너의 이름처럼
어울리는 꽃들인 거야
순백의 함박눈이 하늘에서 나르고 수정 같은 고드름이 초가집 처마에 달리는 겨울이 되면, 꽃들도 순결한 사랑에 수줍은 얼굴을 붉힌다. 동백꽃 군자란 시클라멘…나뭇가지들 위에 피어나는 눈꽃들의 향연에 감탄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넓은 들 얼음 위에서 눈썰매를 타던 동심이 살아나, 추억 속에서 행복해하는 나는 이미 머리카락이 흰 눈처럼 나풀거린다. 그래도 가슴은 언제나 뜨거운 열정으로 동백꽃 사랑에 취해 시인의 마음이 된다.
동백꽃
빨갛게 흐르는 동백피가 맺혀져 한 송이 꽃이 되었다네
순결한 흰 눈 사이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정절 품은 빨강 꽃
그리운 님을 그리는 영혼은 여수의 동백섬을 찾아 길을 떠나려는데,
동박새는 그럴 필요 없노라며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꽃가루를 버무린다.
인생살이는 언제나 시절 따라 피어나는 꽃처럼 새로운 인연을 만나 아름다운 삶의 웃음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다. 시절 따라 피어나는 꽃들이 다른 특성이 있고 예쁘듯이, 새롭게 만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꽃도 나름대로 예쁘다. 나는 지구촌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웃음꽃이 되어,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의 향기를 풍기는 웃음꽃들의 향연에 어우러지면 참 좋겠다. 색깔도 아름답고 냄새도 향기로운 나의 웃음꽃을 피워, 알록달록 피어나는 이 세상 다른 꽃들 속에 섞여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에서 행복해하고 싶다.
항상 꽃들의 향연에 참석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 빨간빛 노란빛 분홍빛…또다시 만날 각종 싱그러운 꽃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각종 꽃의 향연에 행복해하는 나. 이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이 꽃들의 향연에 행복해하는 꿈을 꾸어 보기만 해도, 나는 즐거워진다.
-꽃들의 향연, 전문
이 작품은 사계절의 꽃을 매개로 하여 자연 예찬, 추억의 회상, 사랑의 서정, 인생철학을 한데 어우른 서정적 산문이다.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꽃을 통해 자신의 생애와 감성을 투영하는 점에서 자전적 서정 수필의 성격을 지닌다.
화자는 ‘꽃들의 향연에 초대받으면 행복하다’는 선언으로 글을 연다. 여기서 ‘꽃들의 향연’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삶의 이상향, 곧 ‘지상 천국’의 상징이다. 꽃은 계절 따라 피고 지지만, 화자의 감성 속에서는 늘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이름을 부르고, 모양을 감상하고, 향기를 맡고, 감촉을 느끼고, 안녕을 빈다. 이 오감의 동원은 꽃을 외부 대상이 아닌 교감의 존재로 만든다. 이는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태도가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생명 공동체적 시선이다.
이 작품은 사계절 구조와 인생을 은유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 구조를 따른다. 이는 곧 인생의 시간성과 대응한다.
1) 봄은 소녀의 설렘과 기억을 끄집어낸다. 살구꽃은 소녀 시절의 자화상이다. 우물가, 물동이, 연분홍 꽃잎은 향토적 이미지와 함께 순수했던 청춘을 환기한다. ‘지금은 멀리 타향 나의 가슴에 추억되어 흩날리고 있네.’ 이 한 구절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은은히 드러낸다. 꽃은 고향의 시간과 현재의 삶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2) 여름은 사랑과 열정이다. 여름의 장미는 사랑의 상징으로 형상화된다. ‘사랑의 심장을 터트려 빨강 색깔이 되어버린 너.’ 빨강은 생명과 열정, 감정의 절정을 의미한다. 여름은 청춘의 계절이며, 사랑의 체온이 가장 뜨거운 시기다.
3) 가을은 우정과 성숙이다. 코스모스는 학창 시절의 기억을 불러온다. 청군 백군 운동회, 친구들과의 웃음은 공동체적 추억이다. 코스모스를 매년 심는 행위는 단순한 원예가 아니라,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는 의식이다. ‘너를 보면 행복해/나를 보면 너도 행복해?’라는 대화체 표현은 존재 간의 상호성을 강조한다.
4) 겨울은 초월과 영혼의 깊이다. 겨울의 동백꽃은 작품의 정점이다. 동백의 붉음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정절, 희생, 깊은 사랑을 상징한다. 여수 동백섬을 떠올리는 대목은 그리움의 공간적 확장을 보여준다. 이때 겨울은 쇠락이 아니라 영혼의 깊이가 드러나는 계절로 재해석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산문 속에 삽입된 자유시 형식의 연작이다. 각 계절마다 짧은 시를 배치하여 정서를 응축한다. 이 방식은 수필로서의 서사적· 회상적 기능과 시로 감정의 응결과 상징화 기능을 담당하게 하여 구조적 리듬을 만든다.
수필 후반부에서 화자는 자연의 꽃에서 인간의 ‘웃음꽃’으로 시선을 옮긴다. ‘지구촌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웃음꽃이 되어…’ 이는 개인적 행복을 넘어 보편적 사랑과 연대의 소망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꽃은 더 이상 식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은유가 된다. 색깔이 다른 꽃들이 어우러지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향기를 나누는 세계. 이것이 화자가 꿈꾸는 ‘꽃들의 향연’이다.
이 작품의 미학적 의의로 감각적 언어의 풍부함은 색채와 향기, 촉감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순환 구조의 안정감은 사계절이라는 질서 속에서 인생을 조망한다. 긍정의 정조로 한과 그리움이 배어 있으나, 결국 행복과 희망으로 귀결된다. 이민자의 서정으로 타향에서도 고향의 꽃을 심으며 기억을 이어가는 정체성의 서사이다.
이 수필은 자연을 예찬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자기 생애의 축약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계절을 관통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신념이다.
이 작품은 슬픔이나 결핍을 강조하기보다, 계절처럼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순환을 노래한다. 결국, 화자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한 송이 꽃이다. 각자의 빛깔과 향기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세상은 ‘꽃들의 향연’이 된다. 조화와 사랑의 세계를 향한 서정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당신 사랑은 윤슬이 되어 몬터레이(Monterey) 바닷물 위에서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찬란한 태양과 빛나는 달빛 아래 몬터레이 바다 잔물결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윤슬은 당신의 사랑이지요. 수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사랑의 연서를 보내지 못했는데, 바닷가에 앉아 윤슬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연서를 씁니다. 당신은 넓고 넓은 초록빛 바다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다. 말없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넓은 바다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동반자로 삼고서 평생을 말없이 살아오시는 당신입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당신과 결혼한 날은, 온 산과 들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밝은 햇살이 빛나던 따스한 봄날이었지요. 1976년 4월 25일, 우리 결혼도 탐스러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었죠.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 지도 벌써 반세기가 되어 가는군요.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후 2개월도 못되어 결혼식을 올렸으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참 빠르게 결혼이 진행된 것 같아요. 까만 머리칼이 파뿌리와 같이 하얘질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시던 주례사의 축복의 말씀처럼 지금 우리들의 머리칼은 파뿌리같이 하얘졌네요.
신혼여행은 제주도 결항으로 서울 워커힐 패키지로 보냈는데, 아마도 우리들의 외국생활을 암시한 시간이 아닐까 해요. 1978년 9월 23일, 서울 김포공항은 이별의 눈물로 눈이 빨개지고 눈이 퉁퉁 부어오른 날이죠. 돌 지난 아들을 시부모님께 부탁하고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내 마음은 정말 천근만근 무거웠지요. 또한, 막내딸로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눈물이 지금도 내 가슴속엔 한으로 남아 있답니다. 슬퍼 응어리진 마음은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네요. 눈물 콧물 닦으면서 비행기 안에 오르고 비행기가 창공에 떴을 때, 수많은 뭉게구름이 눈 아래로 보이는 신기함이 이별의 아픔도 잠시 잊게 해 주었지요. 그때는 지금과 달리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로 왔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벤 차에서 내려 가방을 가지고 승무원과 함께 뛰었던 생각이 납니다. 낯선 미국 공항에서 나를 맞이해 주고 계셨던 홍자 언니와 이 목사님이 얼마나 반갑고 감개무량하던지 지금도 가슴이 뛰는 기분입니다. 그 시절은 대부분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생활가이드를 주었기에 우리는 복 있는 사람들과 합류되었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공부 직장생활 취미생활 세계여행…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풍습이 다른 미주 한인 1세로 열심히 살아왔죠. 인생살이도 사계절처럼 생활이 변하면서 쓴맛 단맛 매운맛 신맛 다 맛보았네요. 그래도 우리는 변치 않는 부부로 살며 자라온 환경과 형성된 성격을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자식들 낳아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시켜서 손자들까지 보았으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만이 살 길임을 알기에 우리는 날마다 찬송하고 성경을 읽으며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기도생활을 하고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행복한 것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구원받은 성도의 행복을 누리는 일이지요. 교회도 공동체라 여러 가지 의견차이로 갈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힘들지만 한 교회를 지키며 축복받은 장로·권사로 부족하지만, 복음사역에 참여하고 있으니 행복한 부부라고 말할 수 있겠죠. 또한, 부부작가라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면 행복해요. 당신은 한·영 시를 써 시집을 내고 저는 한·영 수필집을 내어 우리가 사는 지역 도서관에 보관되어 한인의 정서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좋지요.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은퇴 후의 삶을 누리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오. 남은 인생은 좋은 작품 쓰고 사랑 나누며 평안하게 살다가 본향으로 가는 삶이겠죠. 일상생활에서 당신의 규칙적인 삶의 패턴과 나의 불규칙적인 삶의 패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살아온 세월이 반세기를 맞이하게 되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살이에서 이 정도의 세월을 살았으니, 우린 행복한 부부라 말할 수 있겠죠.
분홍빛 꽃이 피는 봄날처럼 살았던 세월도 초록으로 뒤덮던 찬란한 여름도 갈잎으로 변하던 가을도 흰 눈 내리는 인생의 계절도 우리는 늘 함께 하니 은혜 받은 부부라 말할 수 있겠죠. 지금 우리는 감사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부부인지요. 건강한 몸과 마음과 아름다운 정서를 갖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삶이라 생각합니다. 결혼 50년이 되는 올해, 금혼식을 기다리는 이 시간은 한평생 부부로 살아온 추억에 젖어듭니다.
남은 생애도 서로 아끼며 신앙 안에서 살아갈 것을 묵언(默言)으로 다짐한 우리 부부이기에 행복합니다. 우리는 미주이민 1세로 열심히 살아온 아리랑 부부이기에, 후세들에게 부끄럼 없이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가슴속에 간직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서로 격려하며 정성을 다해 거룩히 살아야 합니다. 나의 곁에서 날마다 숨 쉬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당신의 사랑 윤슬이 되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몬터레이 바닷가에서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은빛과 별빛 윤슬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네요.
-당신의 사랑 윤슬이 되어, 전문
이 작품은 반세기 결혼 생활을 회고하며 남편에게 보내는 늦은 연서(戀書)이자, 이민 1세대 부부의 신앙 고백록이다. 자연 이미지인 윤슬과 신앙 언어, 디아스포라의 체험이 한데 어우러져 사랑·이별·헌신·감사의 정서를 깊이 있게 직조한다.
글의 중심 이미지는 몬터레이 바다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다. 태양과 달빛 아래 물결에 부서지는 빛은 곧 ‘당신의 사랑’으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윤슬은 말없이 비추는 사랑, 잔잔하지만 지속되는 헌신, 세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빛을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연서를 ‘단 한 번도 보내지 못했다.’라는 고백은 한국적 정서의 절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침묵은 곧 무관심이 아니라, 깊이 스며든 동행의 방식이었다. 윤슬은 말 대신 반짝여 온 세월의 은유다.
1976년 4월 25일의 결혼, 그리고 반세기를 향해 가는 시간의 흐름은 작품의 서사적 뼈대를 이룬다. 신혼여행의 에피소드, 1978년 김포공항에서의 이별, 돌 지난 아들을 두고 떠나야 했던 젊은 어머니의 눈물은 디아스포라 서사의 핵심 장면이다. 서울 김포공항에서의 출발과 로스앤젤레스 도착, 그리고 정착 이후의 삶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재구성 과정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마지막 눈물을 회상하는 대목은 ‘한’의 정서를 품는다. 이 작품은 기쁨의 연서이면서도, 이별과 희생 위에 세워진 사랑임을 잊지 않는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은 신앙이다. ‘복음만이 살 길임을 알기에…’라는 고백은 부부 사랑의 근간을 신앙 위에 둔다. 교회를 지키며 장로·권사로 봉사하는 삶은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의 수행이다. 이때 부부 사랑은 인간적 애정, 동지적 연대, 신앙적 동행으로 삼중 구조를 이룬다. ‘구원받은 성도의 행복’이라는 표현은 이 작품을 단순한 부부 회고록이 아니라, 영적 순례의 기록으로 확장시킨다.
남편은 시인, 아내는 수필가. 부부작가로 한·영 시집과 한·영 수필집을 지역 도서관에 남긴다는 서술은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문화적 실천이요, 이민의 흔적을 남긴다. 이는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인의 정서를 세계에 전하려는 노력이자 이민 1세의 문화적 증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리랑 부부’라는 표현에는 고국의 정체성과 타향의 삶이 동시에 담긴다.
작품 후반부에서 화자는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 봄은 분홍빛 신혼, 여름은 초록빛 열정, 가을은 갈잎 같은 성숙, 겨울은 흰 눈 내리는 노년으로 이 사계절을 ‘늘 함께’ 건너왔다는 사실이 곧 축복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격정적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하고 맞물려 돌아온 톱니바퀴 같은 동행을 말한다. 규칙적인 남편과 불규칙적인 아내가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온 세월은 결혼의 본질을 조용히 보여준다.
이 수필의 문체적 특징은 서정성과 고백성의 결합 – 편지 형식의 직접 화법이 친밀감을 높인다. 또한, 상징 이미지의 반복이다. 윤슬, 사계절, 톱니바퀴 등의 은유가 구조적 통일성을 만든다. 그러면서 원망이나 후회보다 감사가 중심을 이룬다.
〈당신의 사랑 윤슬이 되어〉는 반세기 결혼의 기록이자, 이민 1세의 삶의 증언이며 신앙 안에서 완성된 사랑의 고백이다. 윤슬은 순간의 빛이지만, 물결 위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이 부부의 사랑은 화려하지 않지만, 지속적이며, 조용하지만 깊다.
화자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사랑은 거창한 표현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숨 쉬는 사람에 대한 감사의 빛이라고. 몬터레이 바다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처럼,…이 글은 세월의 물결 위에 남겨진 한 부부의 아름다운 흔적이다.
나는 걱정거리가 생겼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다친 다리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다닌다. 이 탓에 남편이 오래된 건물인 교회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땅바닥에서 화장실을 올라가려면 상당히 높아서 몸과 발의 균형잡기가 늘 어려워했다. 이런 상황이면 나는 항상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한 번은 정말 화장실 바닥으로 넘어져, 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설 수가 있었다. 남편을 볼 때마다 의료보조기로 발 받침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 도움이가 생겼다. 안수집사 임직식을 앞둔, 취미가 목공예인 집사였다. 뜻하지 않게, 발 받침대가 헌신의 손으로 만들어져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편리하게 도움을 주는 도구가 생기게 되었다. 그야말로 맞춤형 발 받침이 만들어졌다. 재료 값도 손사래를 치는 겸손한 집사님에게, 사용하는 사람들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전달될 것이다. (중략) 사람 몸의 제일 밑바닥인 발밑에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발 받침대를 보면서, 나는 참으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겸손한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자기보다 남을 높이는 겸손한 사람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발 받침대 같은 사람은 구태여 사랑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고운 사랑을 많이 품고 있는 사람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힘들게 받쳐주고 있는 발 받침대 같은 사람은 어쩜 가장 강한 자요, 승리자일지도 모른다. 발 받침대와 같이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특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기에 분명히 하늘의 상급이 클 것임을 믿음으로 알 수 있다. (중략) 누구나 인간의 본질은 남에게 인정받으며 사랑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남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남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남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남에게 준 상처는 언젠가는 반듯이 자기가 받게 되는 우주질서의 법칙을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 쌓인 앙금이 있으면 쉽게 풀어버릴 줄도 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결국 자기 자신이 존중받게 되는 씨앗이 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발 받침대 같은 겸손한 사람들과 남 앞에 자기를 들어내 보이려고 안달하는 오만한 사람들 틈새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이상한 분위기의 파장에 공해를 받기도 한다. 사람은 너나 나나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세월의 강물에 합류되어 흘러가고 있으니, 서로서로 청량한 물줄기가 되어 평화롭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발 받침대 같은 사람은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발 받침대 같은 사람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발 받침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발 받침대, 일부
이 작품은 일상의 작은 사건에서 출발하여 겸손과 희생, 신앙적 가치관을 성찰하는 교훈적 수필이다. 교회 화장실의 불편함이라는 현실적 문제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발 받침대’라는 사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윤리적 태도로 확장된다.
글의 출발점은 매우 구체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다친 다리, 무릎보호대, 오래된 교회 건물의 높은 화장실 구조. 남편이 넘어질 뻔한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노년의 연약함과 현실적 위험을 드러낸다. 이처럼 화자는 생활 속 체험을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만난 한 인물을 통해 의미를 확장시킨다.
목공을 취미로 가진 집사가 맞춤형 발 받침대를 만들어 주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전환점이다. 재료비조차 사양하는 겸손함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섬김의 실천이다. 이 장면에서 발 받침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사랑의 상징이 된다. 특히 ‘발밑에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발 받침대’라는 표현은 사물을 인격화하여 상징성을 강화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존재, 이는 곧 기독교적 겸손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여기에서 ‘발 받침대’의 상징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발 받침대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인다. 자신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지탱한다. 화자는 이를 통해 ‘자기보다 남을 높이는 사람’을 떠올린다. 겸손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세워주는 능동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가장 밑바닥에서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힘들게 받쳐주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강한 자요, 승리자일지도 모른다.’라고. 이 문장은 작품의 핵심 명제라 할 수 있다. 낮음이 곧 강함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제시한다.
후반부에서 화자는 한층 보편적 차원으로 사유를 확장한다. 남을 존중해야 존중받는다. 상처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겸손은 관계를 풀어내는 힘이다. 이는 종교적 신념과 더불어 도덕적 인과 법칙을 제시한다. 또한, ‘우주질서의 법칙’이라는 표현은 개인 윤리를 넘어 보편적 질서를 상정한다. 이 부분은 교훈성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작품의 사색적 깊이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마지막 질문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발 받침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이 물음은 모든 독자에게 되묻는다. 타인을 평가하거나 이상을 설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성찰로 귀결되는 점에서 이 수필은 윤리적 설득력을 얻는다.
<발 받침대>는 일상적 도구를 철학적 은유로 승화, 개인이 아닌 ‘우리’의 관계, 낮아짐, 희생, 하늘의 상급이라는 신앙적 언어, 자기반성적 결말로 모든 독자와 함께 질문 속에 머문다.〈발 받침대〉는 작은 목공 작품 하나를 통해 겸손의 미학과 섬김의 철학을 전하는 수필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장면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존재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메시지는 오늘날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결국, 화자는 묻는다. 우리는 드러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조용히 받쳐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 속에서〈발 받침대〉는 겸손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성찰의 글로 자리한다.
신비롭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요, 찬란한 영광이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는 나라. 지금은 선진국의 대열에서 한류의 불꽃을 세계를 향해 비추어 가고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애국가’에 소개되는 것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다. 한국이라고도 부르는 대한민국은 오랜 전통과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달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원 원년으로 하는 ‘서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인 신화적인 단군의 고조선 건국연대로 기준으로 하는 ‘단기’가 달력에 표시된 독특한 나라다. 연세가 높은 사람일수록 서기를 말하는 양력과 단기를 말하는 음력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연도는 서기 2025년인데, 단기로는 기원전 2,333년을 더해서 4358년이 되는 셈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려 있는 분단국가다. 지형적으로 삼면이 바다이면서 한 면은 육지에 연결되어 있어 귀여운 토끼모형으로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 38선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북한’ 남쪽으로는 ‘남한’이라 부르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루빨리 통일되어서 온전한 ‘대한민국’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강하고 아름다워 영광스러운 나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대한민국은 1945년 자유민주국가로 건국 이래 짧은 기간에 성공한 나라다. 새마을운동 정신으로 온 국민이 뭉쳐 만들어진 경제 성장이며 새 나라의 힘과 꿈이 되는 교육열 등 세계적으로 일등을 차지하는 것들이 많다.
작은 나라지만 1988 서울 올림픽 이후로 급격히 성장해 선진국 대열에서 여러 모양으로 세계를 앞서 가고 있다. 음악을 케이팝 K-POP이라 열광하고, KOREA를 뜻하는 K-영화 체육·의술·음식… 노벨문학상을 받은 국가가 되니 문학까지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신비로운 나라다. 한국건설업은 공사가 아니라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이다.
대관령 구경을 하고 양양을 거쳐 서울로 올 때 태백산맥을 뚫고 만든 몇십 개의 터널을 거쳐오면서, 삼성·현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그 뜨거운 열도에서 기적의 컨소시엄 터널을 완성해 세계를 놀라게 한 일화가 생각났다. 태백산맥은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있어 항상 운무가 서려 있다 한다. 그래서인지 신비스런 나무들의 향기를 품은 청정한 공기가 가슴을 파고 스며들어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지녔는지 숲 속에서 느낄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대한민국이 사용하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했으며, 쓰기 좋고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글로 세계에서 으뜸이다. 글을 쓰다 보면, 한 가지를 표현할 때 여러 모양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글에 대한 고마움과 애착을 느끼게 된다. 한국어를 현재 국제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로 번역할 때, 우리 고유의 한국어를 잘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 많다.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언젠가는 한글이 국제 통용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된 한국 전통 민요인 ‘아리랑’을 부르며 어디에서나 하나가 되는 민족. 손에 손잡고 마음과 마음을 묶을 수 있는 곡, 아~리~랑! 아리랑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서정적이고 사랑의 원천을 노래하는 곡이다.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곳엔 언제나 한국인의 온정이 함께 나타나고 있음에 놀랍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은 공간을 ‘아리랑 글방’이라고 명칭 할 정도로 나는 ‘아리랑’이 좋다.
억만년의 햇빛과 바람과 공기로 곰삭여 낸 된장 고추장이 밑반찬의 주재료가 되어 만들어낸 맛깔스러운 한식. 독특한 한식은 세계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영양가를 가진 음식이요, 잘 발효된 음식들은 건강에도 최고일 것이다. 요즈음은 ‘김치’가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김치 불고기 김밥 등이 한국어 그대로 쓰여 팔려나가고 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에는 잘 숙성된 김치보다는 김치샐러드라고 부르면서 겉절임을 좋아하던 동료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의 영혼이 살아나는 한국패션쇼, 아름다운 한복은 세계적인 명소,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도 소개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의 전통의상 한복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원더풀!을 연발한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각종 공연은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고전무용을 하는 무용수들의 춤사위며 상모를 돌리는 농악인들의 신이 나는 모습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흥겨움을 준다. 살아 숨을 쉬는 듯한 한국공연을 맞이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은 대단하다.
얼마 전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 2025 Kora’가 민족의 혼이 살아 있는 역사적인 도시 경주에서 있었다. 작은 도시에서 세계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냈음은 놀라운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몰려온 주요 인물들이 한결같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어떤 기자는 ‘공공 화장실이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극구 칭찬했다. 공공화장실은 그 나라 사람들의 얼굴과 같다. 어디를 가든지 쾌적한 분위기를 주는 공공화장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밝고 맑은 심성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는 오늘도 신비로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형성된 정서로 내일에 대한 꿈을 품고 지구촌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는 날 동안 착한 한국인의 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참으로 크다.
-신비로운 나라, 전문
이 작품은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전면적 찬가(讚歌)이자, 디아스포라적 자긍심이 응축된 애국적 수필이다. 역사·문화·언어·음식·예술·경제 발전을 아우르며, ‘신비로운 나라’라는 감탄 속에 민족적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아낸다.
“신비롭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첫 문장은 단정적 설명이 아니라 감탄형 선언이다. 이 작품은 분석이나 비판보다 자긍심의 정조가 중심을 이룬다. 대한민국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 분단의 아픔을 지닌 나라,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기적의 나라로 그려진다. 특히 분단 현실을 언급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대목은 감상적 찬양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 상처를 함께 끌어안는다.
화자는 서기와 단기를 함께 언급하며 한국인의 시간 의식을 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달력 체계의 설명이 아니라, 기독교적 세계관과 단군 신화적 민족 기원의 공존을 상징한다. 또한, 1945년 이후의 건국과 경제 성장, 새마을운동, 교육열 등을 언급하며 현대사의 압축 성장을 강조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 도약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한국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환기한다.
작품에는 한류 현상을 자랑스럽게 조명한다. K-POP, K-영화,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언급하며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한다. 또한, 전통 민요 아리랑을 민족 통합과 세계 연대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아리랑 글방’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이 노래는 개인적 정체성과도 깊이 연결된다. 이 대목에서 작품은 단순한 국가 찬양을 넘어 정서적 문화 민족주의의 색채를 띤다.
화자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태백산맥의 울창한 숲과 터널 건설 이야기는 자연과 산업 발전을 병치한다. 삼성·현대의 해외 건설 신화를 떠올리며 한국인의 기술력과 근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산림의 청정함과 자연 사랑을 자랑한다. 이 구조는 한국을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인간의 의지가 강한 나라로 이중적으로 형상화한다. 그 속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세계 최고 문자로 평가하며, 과학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언어는 곧 민족의 혼이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또한, 김치·된장·고추장 등 발효 음식의 우수성을 언급하며, 한식의 세계화를 자부심 있게 서술한다. 음식은 단순한 미각이 아니라 문화 정체성의 실천으로 제시된다.
또 있다. 최근 경주에서 열린 APEC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서술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준다. 특히 공공화장실에 대한 칭찬을 언급하며 시민의식과 공공문화 수준을 자랑한다. 이는 국가 이미지가 일상적 질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장치다.
화자의 작품에서의 문학적 특징은 열거법과 감탄형 어조, 그리고 디아스포라적 시선과 애국적 희망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화자는〈신비로운 나라>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전면적 찬가이자, 이민 1세대의 정체성 소상하게 고백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역사적 자부심, 문화적 자신감, 미래에 대한 낙관을 결합하여 한국을 ‘신비로운 나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비판적 성찰보다는 긍정의 정서가 강하지만, 그 감정의 근원에는 분단의 아픔과 이민자의 그리움이 깔렸다. 결국, 이 글은 말한다.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임이 자랑스럽다. 그 고백은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의 선언으로 읽힌다.
나가는 말: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화자 정순옥의 수필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힘에 있다. 화자의 작품 세계는 이민자의 정체성, 신앙적 가치관, 가족애, 자연 서정, 민족적 자긍심이라는 다섯 개의 큰 축 위에 서 있다. 평자가 선정한 여덟 편의 글은 각각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그 저변에는 일관된 삶의 태도와 정신적 지향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순옥 수필은 현대한국수필 전통의 맥락 속에서 보면, 전통적 교훈성과 이민 문학의 체험성, 기독교적 영성 수필의 요소가 결합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이지 않다. 대신 삶의 성실성과 도덕적 확신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오히려 귀한 가치다. 그러나 글 속에의 구조적 반복은 약점이기도 하다.
제5집 전체 33편 중『안개비』를 표제로 하고, 여덟 편 작품은 한 인생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했던 소녀, 헌신적인 간호사, 이민자의 아내이자 어머니, 신앙 공동체의 일원과 함께 자연을 사랑하는 서정가, 조국을 자랑스러워하는 디아스포라 문인, 이 모든 정체성이 하나로 어우러져 화자의 수필 세계를 형성한다. 정순옥의 문학은 화려한 기교보다 성실한 삶의 무게에서 힘을 얻는다. 눈물은 미소로, 한(恨)은 감사로, 불편은 겸손으로, 추억은 희망으로 전환된다. 결국, 정순옥 수필의 본질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기 삶을 성실하게 통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있는 문장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제5집은 한 작가의 기록이자, 한 인간의 증언이다. 낯선 땅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얼굴과 손에의 주름만큼이나 바닷물에 비치는 윤슬처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삶은 은혜이며, 우리는 그 은혜 속에서 꽃처럼 피어야 한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그래서 따뜻하고, 안정되며, 신앙적 빛을 머금은 감사의 문학이라 평가할 수 있다.

약력:
아호: 은지. 전북 정읍 출생. 미주중앙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이민기 우수상(1989). 광야 신인문학상 수필부문(2003). 한국수필 신인상(2009). 제26회 허난설헌문학상 수필부문 금상(2012). 제25회 서울문예 수필부문 창작상(2013).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상(2013). 에세이포레 2회 해외문학상(2017). 한국문협 본부 공로상(2018). 문학공감 수필부문 문학상(2021). 현재: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이사. 수필집: 기쁜 소식(2010). 오메, 복사꽃 피네(2013), 베틀(2018), 아름다운 간호사의 손길(2023), 안개비(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