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바티칸에서의 아침을』
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1. 서론
한만수 시인은 20년 넘게 평지가 아닌 야트막한 산을 향해 달리고 있다. 4개의 산을 뛰어오르고 내려오면 2시간 남짓 13마일 거리가 된다고 한다. 헤진 수첩의 깨알과 같은 V표 흔적을 살펴보면 하프마라톤 500회는 훌쩍 넘는 횟수가 되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살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듯이, 1회적인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에의 자각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신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벗어남에서 비롯할 것이다. 여기서 벗어남이란 바로 존재에의 인식과 함께 끌어안는 자각이요. 철학화일 것이다. 이렇듯 한만수의 시는 과거의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아니하고 현실의 인식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조하고 있다. 어릴 때 친구와의 이야기, 어머니에 대한 기억, 군 생활에서의 옛 기억을 간직하려는 듯 미 해군 태평양 사령부 7함대에서 근무했던 바다 이야기가 다시 등장하고, 바티칸을 방문한 일상을 5편으로 서사적 장시로 엮어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스케치북에 펜으로 그림 그리기는 일상이 된 듯 제1시집 『영혼의 표정』에 이어, 3년 만에 발간하는 5부로 편성된, 제2시집『바티칸에서의 아침을』은 시 68편과 스케치 35편 한데 모아 발간한다.
2. 들어가기
빡빡이가 완주를 못한 건
뜨겁게 달구어진
머리통 때문이 아니었다
무릎 휘감는 맞바람은
거센 물결의 저항만큼이나 힘들어도
발꿈치 꾹꾹 눌러 밟고 잘도 달려왔다
조금 전 지나친 왼쪽 소나무 숲 모퉁이의
교회 묘지 입구에 흔들리는 팻말이
왠지 마음을 자꾸 흔들어 놓고 있는 거다
텅 빈 머릿속을 나들목처럼
들랑거리던 까만 글씨들이
건각의 근육을 삭혀버렸다나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너희는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저녁에 사라지는
풀과 같으니라'
오늘의 복음말씀 한 줄
아 덮친 데 겹친 격이라더니
또 다른 말씀은 웬 말이냐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건각의 힘살이 헛되고 헛되도다
-85빡빡이 마라톤(1), 전문
그의 말처럼 새벽 여명이 펼쳐지는 지형의 이음새와 능선이 완만하게 펼쳐져 있는 곳을 달려나간다. //조금 전 지나친 왼쪽 소나무 숲 모퉁이의/교회 묘지 입구에 흔들리는 팻말이/왠지 마음을 자꾸 흔들어 놓고 있는 거다// 달리면서 주변의 무덤가를 보며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복음을 되새기며 달린다. <여명의 울림>에서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달릴 때는 모세오경 중 천지창조의 날과 인간탄생의 성경 구절을 되새기며 “감사합니다.”라는 신앙고백도 한다. 간혹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마라톤 대회에서의 시 <빡빡이의 마라톤(2)>에서는 //번호표,/안경,/모자/손바닥 펴 꾸욱 눌러쓰고/출발선에 들어서면/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설레임//중략//아, 뛰는 게 별건가/닦고,/조이고,/기름 치는 일,/늘 우리가 해오던 그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왜 달릴까? 화자는 산을 향해 달리고 오름은 하루치를 다져 넣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이렇게 뛰는 일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이 넘치는 원천의 행위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고독의 축복을 즐김은 얼마나 한가로운 평안함이라 스스로 독백처럼 외친다.
어두운 마루 밑에 등 구부린
어머니의 뒷모습,
"왜 거기까지 들어가·셔·서…"
누나의 염려스런 낮은 목소리 잇기도 전에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 하니?"
구석에 쌓인 먼지 쓸어 내오시며
귀에 걸어 주시던 저미는 한마디,
날 저문 발길이 저릴 때
눈감아 짚어 보던 귀걸이,
그 마디마디의 굴곡은 오늘의 버팀목 있었네
그건, 손안에 호두알 같은 익숙한 세월의 지침서
움켜쥐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는
-98 어머니의 귀걸이 전문
친구
야 임마
이 자식 저 자식
밀고 당기고
곤두박질
개부럴
넌, 소부럴
툭 하면 코피냐?
네놈은 사람 잡는 돌주먹 백정놈!
멱살 잡고 걷어차이며 똥개 동무
강남 가자
그래, 청산도 가자
번호표 쥐고 긴 줄 서서 지루해할 때
내 그림자 안에 너의 얼굴이 다가 온다
-112 똥개친구. 전문
날이 저물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따라 쉽게 잠들지 아니한다. 머릿속에는 고향 개울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 물소리는 화자가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이 맘껏 질러대는, 온갖 음성들이 기하학적으로 무늬가 되어 화자의 두 귀를 육박해 온다.// 개부럴/넌, 소부럴/툭 하면 코피냐?/네놈은 사람 잡는 돌주먹 백정놈!/멱살 잡고 걷어차이며 똥개 동무//가 다가오는 듯 들려온다. 그러다 다시 날이 저물어 가는 날, 불현듯 //어두운 마루 밑에 등 구부린/어머니의 뒷모습,/ "왜 거기까지 들어가·셔·서…"/누나의 염려스런 낮은 목소리 잇기도 전에/"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 하니?" 곧이어 누나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짧은 푸념 섞인 넋두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손안에 호두알 같은 익숙한 세월의 지침서 같고 움켜쥐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소한 일상에도 늙은 수소의 질긴 가죽과 같은 고향의 멍에와 함께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의 얼굴을 목에 걸고 다닌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소리는 고향에 대한 하나의 벽이요, 소외감에 빠지게 하는 요인들이다. 이런 소리는 화자로 하여금 점차 스스로 만든 하나의 벽 안에 갇혀 이질적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생활이다.
미국 US Highway 50번 도로는 네바다 구간을 직통으로 가로지르는
약 400마일(700km)의 거리에 달하는 직선 구간이다
마을도 사람도 휴게시설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고
가스 스테이션도 없는 그야말로 끝 간곳없이 실금처럼 뻗어 나간
가장 외로운 도로이다
황량한 사막 한줄기 선상 위에 점으로 바동이며 무저갱(無底坑)으로
빨려드는 느낌에 이 길은 유령의 길이라 해야겠다
빌딩숲에 파묻혀 있으면 미국은 서 있다고 말하고
이렇게 펼쳐진 길 위에 있으면 미국은 누워 있다는 말이 맞다
길, 인연의 시작이든 단절의 끝이든 만나고 헤어지는 길
비좁은 갓길, 자갈길, 샛길, 실핏줄처럼 이어지고 끊어진 그 많은
길들, 어느 곳 하나 못 갈 길은 없다
우리는 황천길도 몰려 가지 않는가
-145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도로, 전문
새소리 하늘 높이 올라오면
구름은 낮게 낮게 내려와
좀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가보다
서성이듯 머뭇머뭇
한 무리 새털구름
새 소리 바람 소리
퍼져 나가는 저 산등성이
등고선 끝 자락쯤에
구름은 한참 낮아져서
소리 흥겨워 구름 날개 펼치고
그 소리 에워싸듯 새털구름
소
확
행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네
단, 내 마음은 바꿀 수 있다네
비,
우산을 펴도 마음은 젖는다
앉아 쉬라는 안개비
여인네 눈빛 고운 여우비
이심전심 이어주는 이슬비
가는 발걸음 재촉하는 가랑비
보이지 않는 그리움 적시는 보슬비
소리치며 천둥 안고 달려오는 그대 소낙비
느그적 느그적 날도 있어 좋은 는개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우리 소확행을 즐기세
- 89새털구름, 전문
미국고속도로 50번의 네바다 구간의 직통 700km 거리다. 도로 주변에는 도시의 흔적은 아예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실금처럼 뻗어 있는 가장 외로운 도로에서 //황량한 사막 한줄기 선상 위에 점으로 바동이며 무저갱(無底坑)으로/ 빨려드는 느낌에 이 길은 유령의 길이라 해야겠다/빌딩숲에 파묻혀 있으면 미국은 서 있다고 말하고 /이렇게 펼쳐진 길 위에 있으면 미국은 누워 있다는 말이 맞다//고 한다. 이 직통 700km의 유령 같은 도로 옆으로 <새털구름>에서는 //새소리 하늘 높이 올라오면/구름은 낮게 낮게 내려와/좀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가보다/서성이듯 머뭇머뭇/한 무리 새털구름//새 소리 바람 소리 /퍼져 나가는 저 산등성이 /등고선 끝 자락쯤에/구름은 한참 낮아져서// 비를 맞으며 그 또한 소소한 행복이라고 화자는 노래한다. 이처럼 화자의 시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아니하다.
은파를 타고 하늘로 이어지는 한 줄기 바람 터널 위에서
꽃구름 하늘 파도와 속삭일 땐
시편을 노래하고
서녘이 붉어지면 잠언서를
꺼내 읽을 일이다
저 멀리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외줄기 잔상이여
갈매기들은 물속에 잠기는 다리를
끌어 올리려고 분주한 날갯짓이다
그곳에 가면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후손들이
찾아드는 사람들을 살갑게도 맞이한다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상속받은 고양이들의 안식처 되어
해평선 저쪽 열쇠고리 모양을 한
Key west 작은 섬에는
-115 세븐마일 브리지, 전문
세븐마일 브리지는 미국 플로리다주 먼로 카운티의 플로리다 키스에 있는 다리다. 이 위치에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현대식 다리는 차량 교통에 개방되어 있고, 오래된 다리는 보행자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다. 사방이 툭 터인 누마루에 앉아 있는 듯,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리를 건너면 이렇게 훌륭한 여백제가 눈앞에 나타난다. 신·구형이 함께 어울리는 두 다리 사이로 갈매기는 날고 바다와 하늘의 풍경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을 보며 뒤죽박죽된 마음의 진창을 비추기도 하는 다리를 혼자서 여행한다. 어느덧 바닷물결을 닮아 가는 시인은 스케치북을 꺼낸다. //그곳에 가면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후손들이/찾아드는 사람들을 살갑게도 맞이한다/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상속받은 고양이들의 안식처 되어…//세븐마일 브리지에 나오는 시어이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마음속으로 방황한다.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어느 구간에서든 화자는 긴 두 다리 중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며 느끼는 자연의 새가 되어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 한 곳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소확행> <오색 물소리> <달색은 색의 영혼> 등의 시를 계속 써내려 간다. 화자는 바로 풍경 사진잡지를 펼쳐 보여주듯 감각적인 묘사와 문체의 미학을 성취하고 있다.
숨바꼭질 같은 숨소리가 후덥지근한 토요일 오후다.
점심시간 후 식당을 나와 숙소로 향하던 우리 둘은 갑작스런 천둥·번개 장대비 소나기에 오기가 났을까 천연스레 슬슬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좀 더 느리게, "옷 벗어젖히고 한번 튀어 나갔으면 정말 시원하겠다" 둘은 씽긋 웃으며 짧게 두 눈이 마주쳤다. “내 말이 그 말!!”
누가 뒤질세라 옷 탈출 동작 시작이다 사타구니 불개미라도 털어내려는 듯, 번개처럼 훌훌 번쩍번쩍 군모, 족쇄 같은 군화, 옷가지 나부랭이 죄다 벗어 내팽개쳐대고…. 드디어 알몸으로 빠져나갔다 (이게 다 불쾌지수 때문이다….) 우리는 중얼거리며 트랙이 탁 트인 장교숙소 쪽으로 뛰기 시작해서 언덕 위로 뛰는 순간 굵다란 빗줄기는 머리, 얼굴, 가슴팍 할 것 없이 거칠게도 후려쳐 댔다
짚차 3대가 지나가는 동안 그 물벼락 빗줄기는 희미한 헤드라잇도 두꺼운 차단막이 되어 서로 전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굵은 빗줄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정수리 내리치는 물폭탄에 머리를 똑바로 들 수 없을 지경이었고 두들겨 맞는 어깨 통증이 얼얼해 감각은커녕 쇄골이라도 바스러지는 건 아닐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월요일, 1일 게시판 노란 종이 위에 'Looking for naked runner'(발가벗고 뛴 놈들 찾음) 문구가 펄럭이고 있었다 중략 우리는 완전 범죄를 확신이라도 하는 듯 서둘러 쾌재에 즐거운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중략 지난 일 년간 재미있던 얘깃거리를 모은 글이 뽑히면
넓은 본부석 텐트 안에서 시상식을 하기도 하였다 마치 4개월 전 빗속을 뛴 얘기를 그럴듯하게 각색하여 나중엔 근사한(?) 상까지 받을 줄이야.
갑판장교는 정사각형 큼직한 선물상자를 건네며 악수를 굳이 청한다 /중략 /주춤이며 머뭇거리다 열어보니, 눈부시게 빛나는 스텐레스 요강이 번쩍이며 드러났다 /중략/ 모두가 킬킬거리고, 박수소리, 휘파람이 높이 솟아 올랐다/ 순간 '휘리릭' 짧은 호루라기 소리에 그 뒤를 돌아보니 뚱보 보안 장교가 그날의 진범으로 체포한다며 수갑을 높이 흔들어 보이는 게 아닌가
-84저 빗속으로. 부분
나무는 외롭다
아침 말간 햇살에 하얗게 부서져 내린 눈
겨울 새벽 눈으로 뒤덮이고 얼어붙은 나무는 더욱 혹독하고 외롭다
오늘 고드름처럼 얼어 서 있는 나무에도 봄의 전령은 반드시 찾아와
나뭇가지 속눈썹을 간지럼 태우고 눈도 뜨게 해줄 것이다
어쩌다 바람이 달려오면 나무는 일렁이는 흔들림으로
서로 다가가 안긴다, 우리의 흔들림은 어떤가
사랑과 미움, 시기와 질투 모두 이 흔들림의 결과물이다
바람은 나무의 손이 되어 허공을 긁어대는 가지 손가락이
*모리스 부호를 쳐댄다
ㅡ그대, 반려나무 한그루 키우시구려ㅡ
-127 나무의 타악 1악장, 전문
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훈련 양성하던 곳이니
오늘의 해군 훈련소라
바다의 방패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한번은 부디 방문 참배할 일이다
역사의 성지라 하는 이곳에는
충무공의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왜적의 간담이 서늘했을 서슬 퍼런
장검에 무거운 빛이 서려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최대의 단일 목조건물로
400여 년을 버티고 있다
통영 제일의 명당자리에 웅장한 이 모습
빛바랜 단청 무늬는 세월의 흔적 그대로
화석화되어가는 중이다
82. -다시 보는 세병관
제1시집에서 <바다에 살고지고>는 1부와 2부로 화자의 객관적 체험을 바탕으로 과거 군대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제2시집에서도 <저 빗속으로>가 1부와 2부의 형식으로 해군 시절에 있었던 낭만적이고 관능적인 사건을 길게 다루고 있다. 마치 헌사(獻詞)처럼 들린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어느 토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하는데, 갑작스러운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 같은 소나기를 통과하며 두 고참은 발가벗은 채 숙소로 뜀박질한다. 4개월 뒤 갑판장교로부터 받은 선물 상자에는 햇빛에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요강이 들어 있었고, '휘리릭' 짧은 호루라기 소리에 그 뒤를 쳐다보니 뚱보 보안장교가 그날의 진범으로 체포한다며 수갑을 높이 흔들어 보이는 퍼포먼스가 있었던, 50여 년 전의 요강단지의 기억이다.
<나무의 타악 1악장>에서는 가지의 흔들림과 우리 인생의 5감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느닷없이 바람은 나무의 손이 되어 허공을 긁어대는 가지 손가락이 “모리스 부호(Morse code)를 쳐댄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모리스 부호가 무엇인가?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서로 소통하는 장음과 단음을 조합한 신호가 모리스 부호이다. 화자의 머릿속에는 바다에서의 기억을 문학의 향한 가상세계의 성(城)으로 존재인식의 길 떠남에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낯익은 화소지만 그의 가슴에는 변용과 치환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보는 세병관>에서는 //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훈련 양성하던 곳이니 /오늘의 해군 훈련소라 ㅡ/바다의 방패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면/한번은 부디 방문 참배할 일이다.// 요즈음 부쩍 강도가 높은 지진과 폭우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다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늘 보던 파란 파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여름 바다의 눈부신 모래밭이 아니라 산처럼 무너지는 것은 파도였습니다. 강한 쓰나미였습니다.” (이어령, 중앙일보, 2011년 3월 15일). 화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온 날의 시계를 자신의 분신으로 가상하는, 등가관계를 그 메타포가 주는 감동의 진폭을 배가하게 한다. 이같이 그의 젊고 패기 있던 군대의 시절 기억은 다원적 시로 독자에게 사고와 상상을 가능케 한다. 이는 과거의 아름답던 기억을 소환해 내어 똑 닮아 있는 소멸을 원치 않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면 젊었을 때의 과거를 진솔하게 표현하게 된다.
불볕 아래 숙성되어가는 긴긴 순례의 행렬이여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긴 줄에 서서 둘러보니 성당의 원형 지붕은 하늘위로 높고 광장은 드넓다 그리스도가 공인된 이후인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어지는 곳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성당 지하실 공간에서 출토된 유골 감정결과 서기 1세기경에 사망한 60대 중반의 남성으로 발견 당시 유골이 금실로 수놓은 자주색 천에 쌓여 있고 주위 벽면에는 베드로라는 글자가 많이 새겨진 점등을 고려하면 베드로의 유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됐다고 한다
지금도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 밑에는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하며 그 뒤편에는 베드로의 의자가 있어서 교황이 정통한 베드로의 계승자임을 강조한다
120년의 성당 짓기에 교황 21명이 거쳐 갔고 천문학적인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몇몇 교구에서는 재물을 기증받고 흔히 ‘면죄부’ 소위 ‘천당티켓’을 남발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불씨가 되기도 했다 오늘 바라보는 큰 성당의 모습들은 그 옛날 황금의 나라라 하던 엘도라도 페루 같은 나라를 침략하여 착취로 긁어모은 황금은 유럽으로 가져가 어마어마한 성전 안팎을 도색하며 힘찬 부강을 과시한 흔적이 어둡고, 무겁고, 눈부시다, 여기에서 궤변도 아닌 말이 하나 떠오른다 성경을 읽기 위하여 촛불을 훔치는 건 과연 착한 사람(?) 아닌가 하는 얘기 말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미켈란젤로도 70세에 공사에 참여 하기도 해서 17년 동안을 이끌어 왔다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한 푼의 보수도 받지 않고 천재적인 감각을 발휘하게 된다
그의 나이 아흔에 다다를 때는 르네상스 건축의 종지부를 찍는 걸작을 남긴다
이렇듯 여행 가이드 책자를 읽고 있노라면 제대로 이 종교의 역사 얘기를 알게는
되지만 두툼한 장문의 설명이 쉼표를 찍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이 깨알 속에 알고자 하는 얘깃거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터이니
내칠 수만은 없는 거다
고통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게 없으니 No pain no gain, 그러나 요즘은 웬만하면
No pain All gain을 선호하고 싶어진다
우리 몇몇 일행은 지금 바티칸 정원에 펼쳐진 별도의 건물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긴긴 줄에 엮여 있는 셈이다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최고의 교회는 아니다 으뜸 교회라면 로마 교국 대성전의 명예를 간직한 ‘산 조반리 인 라테라노’ 성당이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종교성과 역사성 무엇보다 예술성이 뛰어났기에 순례지로 유명세를 탄 것이종교순례의 일환이 아니더래도 유명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어느 궁전보다 화려하고
독특한 문화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이 도시국가의 매혹적인 것들로 가득 찬 이곳에 몰려든 거다 그래서 우리도 긴 줄에 서서 더위에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첫 관문이 장사진의 한 톨이 되어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박물관을 입성할 수 있는데 어쩌랴
-147바티칸에서의 아침을(1). 전문
화자는 2022년 2주간 바티칸을 방문하고는 <바티칸에서의 아침을>의 일상을 기행문 스타일의 연작시로 5편을 만들어 낸다. 평자가 40여 년 전, 바티칸에 도착하고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베드로 교회에 입장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던 곳이라 더 눈에 간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하는 흑백영화 <로마에서의 하루>, 일정에 꽉 짜인 답답한 왕실의 삶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공주가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지 아니하자 몰래 거리로 나와 우연히 만나게 된 신문기자와 전혀 새롭게 전개되는 영화, 종국에는 그들에게 다가올 시련과 고통, 신분파괴라는 인간적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야 말 불행한 사태를 감지한다. 그러면서도 서로는 어쩔 수 없이 점점 사랑이라는 깊숙한 수렁으로 자신을 내몰고야 마는 어리석음, 꼭 헤어져야 할 운명인 이별을 슬프지만 각자 당당히 돌아서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화자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기에 <티파니에서 하루를>를 새롭게 기억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상점과 뉴욕의 상류사회에 진입하기를 열망하는 홀리를 통해 하류층의 삶과 애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홀리는 달빛 은은한 밤의 인간적 서정을 느끼면서도 부와 상류층의 상징인 보석상 '티파니'를 동경하기에 꿈과 현실의 괴리감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가난한 작가 폴과 색다르고 부드러운 사랑을 나누면서도 부자를 찾아 헤매게 된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인 동시에 빈부 격차 등 대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는 영화 두 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속에는 남다른 삶을 체험한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잠 못 자는 시애틀의 이름을 채용한 듯 <잠 잘 자는 시애틀의 밤>도 등장한다. 화자는 이곳을 짧은 시로 표현하기는 창작적 제한이 있어 긴 글로 만들어 나갔을까? F. Mauriac의 말과 같이 “소설적 표현, 모든 인간 속에서 가장 신을 닮은 사람”이라고 했음을 상기할 때, 아마도 화자는 평생토록 체험 속에서 걸러진 삶에 천착한 진실된 사상을 길게 묘파해 내고자 했을 것이다. 특히 그의 해학적이고 끊일 줄 모르는 입심이 그로 하여금 창작에 집념을 불을 댕겼으리라 생각된다.
‘고독사’가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불식시킬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죽을 때면 평소 소원하게 지내던 친족이나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죽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독거에 이르게 된 경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여서 타인이 고독하다느니
어떠니 추측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고독사는 대부분이 고독과는 무관한 단시간의 죽음일 텐데 말이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도 알 수 없는데 억지로 나서 어느 집단에 타협하여
그 소속의 일원이 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고독을 다독이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고독사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성싶다
또한 어떤 신앙이나 종교를 가지고 그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하나의
통로로 여겼을 터이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도 그리 크지
않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미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지금 끝난다 해도
그리 큰 후회나 아쉬움 없이 초연해 질 수도 있지 않을까
-143 그리 고독하지 않은 고독사. 전문
세월은 정해진 규칙대로 흘러가듯 우리의 인생도 봄을 맞이하였는가 하면 어느덧 여름이 오고, 가을을 보내고는 이내 겨울로 접어든 자신을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자연의 이법(理法)에 순응하는 순례자의 역정과도 같은 이법으로 처리해 낸다. 그러다 보니 화자의 시 속에는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자신, 눈이 어두워진 이상과의 괴리감 또는 현실의 불합리한 모든 문제에 대한 시인의 고뇌가 다 들어 있다. 그리하여 궤도에서 일탈한 아귀(餓鬼) 같은 세상의 부조리함이나 빈자리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 과거에 대한 회상을 통한 자신의 무능함과 왜소함에 대해 과감한 메스를 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참 종교인들은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의 편린들도 인생의 길목과 어둠 속에서 마음들이 껍질을 벗듯 하나하나 형상화시키며, 부정과 긍정 이외 믿음이라는 통합화라는 과정을 거치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싶다.
결미:
누구나 다 복잡다난하며 다양화와 다원화된 대도시에서 생활해야 하는 삶은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가끔 삶의 회의에 빠지기도 할 때쯤 고향을 가슴으로 뒤지며 과거를 여행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시인 한만수는 현실과 과거를 대비하며 시를 쓴다. 소위 진실이 있는 허구(虛構)라는 무질서의 기억을 질서화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화자는 리얼리티를 지녀 기승전결의 틀에 넣는 것으로 마무리시키고 있다. C. Brooks와 R.P. Warren의 말과 같이 “경험의 충실성을 표현하도록 하는 일상적인 행동하는 세부 묘사”를 실천하기 위해 시와 펜 드로잉, 이를 위한 자전거 타기는 건강을 위한 수단이 함께 엉켜 있는 듯하다.
오늘도 먹거리를 챙겨주는 부인의 정성을 더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곤 주택가를 벗어난 곳에서 느끼는 정겨움은 얼굴과 마음을 말끔하게 세수한 것처럼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적 삶과 문학인으로서의 삶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의 인생 2막을 형상화 시키는 시 창작활동은 물론이고, 펜 드로잉, 자전거 타기, 마라톤 등으로 생활하고 있음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수록 건강을 머리에 이고 달리기할 것이다.
자유문학 시 부문 2회 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자유문학인협회. 청마문학회. 대한황실 문화원. 미주 가톨릭 문학인 협회. 국제PEN 미동부지역위원.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뉴욕 시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