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화 시인

조회 수 121 추천 수 2 2026.10.01 17:02:14

 

<평론>

 

비극적 풍경에 다채롭게 띄운 사랑의 달  

이규대 시세계 -

 

                                                        이택화 시인

 

                                                                                                    

 

1. 사랑으로 비극적 풍경을 그리다

 

  시인은 사람과 사물의 행태에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반응하여 섬세한 붓끝으로 시를 창작해낸다. 시는 시인과 사물들이 미세한 울림과 떨림을 주고받으며 교감해서 백지 위에 그려낸 풍경화이다. 이규대 시인의 「냉이국」, 「두만강에 서면 – 도문시를 끼고 흐르는 강」, 「간 고등어 한 손」, 「가마꾼」, 「오래 된 동행」은 사랑으로 채색한 비극적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이규대 시인의 촉수는 사랑에 민감하다. 그는 대상에서 사랑의 놀라움을 발견하고 사랑의 강력한 영향력이 드러난 시들을 만들어낸다. 그의 시선은 불행에 옷자락을 적시고 있는 세상의 비극에 가닿아 있어 소재나 발상은 비극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어서 시의 내용은 사랑의 가치를 느끼에 충분하다.

 

멀리 있던 봄이 내 뒤뜰까지

걸어왔다

언 땅이 푸석해지고 봄 냄새에

냉이 돋는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에인다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려고

텃밭에서 캐온 냉이를

뚝배기로 보글보글 끓여주던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 가서

냉이를 사다가 국을 끓이면

향긋한 냄새가 오래전에 떠난

아내의 냄새 같다

 

아내 치맛자락 같은 아지랑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봄이 왔는데 둘러봐도

나의 봄은 없다

 

- 「냉이국」 전문

 

「냉이국」은 봄이 오면 텃밭에서 냉이를 캐어 향긋한 냉이국을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주던 아내를 잃은 아픔을 노래하는 시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할 수 없는 남편은 ‘봄이 왔는데 둘러봐도 / 나의 봄은 없’을 만큼 슬픔에 젖어 있다. 이규대 시인은 뒤뜰에서 감지되는 완연한 봄날과 냉잇국 향내에서 아내와의 이별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시적 화자를 대비시켜 상실의 고통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냉이국」은 봄날 냉잇국 앞에서 아내를 잃고 슬픔에 젖어 있는 남편이 그려진 한 장의 풍경화이다. 이 시가 비극성만을 띄지 않고 훈훈한 것은 남편의 사랑 때문이다. 남편은 ‘오래전에 떠난 /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다. 시인은 이별과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세태 속에서 오래 사랑을 유지하는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있다. ‘아내 치맛자락 같은 아지랑이가 / 눈앞에서 어른거린다’는 시행 속에서는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져 독자도 ‘가슴이 에인다’. 독자는 남편의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냉잇국과 같은 일상 속에서 아내를 상기하는 남편의 깊은 사랑으로 마음이 따스해진다.

  사랑의 힘은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비극적인 상황 아래서도 사랑이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서로를 강하게 치유한다. 세상에서 겪은 혹독한 시련이 빚은 불신과 증오를 선한 의지로 바꿔놓는 것이 사랑이다. 잔인한 말의 칼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시인은 사랑이 담긴 시어로 사람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고 향기로 채워놓는다. 봄조차 없는 이별의 경지에 사랑이 넘실거리는 「냉이국」을 통해 독자들은 흉흉한 가슴을 씻으며 맑아지고 향기로워진다. 남편처럼 사랑하고 싶고, 아내처럼 사랑받고 싶어진다.

「두만강에 서면 – 도문시를 끼고 흐르는 강」은 ‘좁고 야트막하게 흐’르는 강을 두만강이 국경선이라서 건널 수 없는 안타까움을 그린 시이다. 우리는 두만강 앞에 서서 ‘물길 한가운데가 / 움직이는 국경선’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화자를 그려볼 수 있다. 이 시는 ‘강 건너 얼어붙은 산하’, ‘마음대로 목 한번 축이지 못하는 / 가난한 강’가의 ‘밭 갈던 소’, ‘울먹이며 / 국경을 서성’이는 ‘가을볕’이 나타나는 비극적 풍경화이다.

「간 고등어 한 손」에서는 바다에서 사랑을 만나지 못하고 ‘뭍에 올라와서야 / 제 짝을 찾은’ 고등어를 소재로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배를 가르고 만난 사랑 / 살 속에 꼭 품고 있’는 ‘간 고등어 한 손’의 비극적 사랑을 참신하게 그려내었다.

「가마꾼」에서는 ‘천 미터 넘나드는 중국 원가계 산마루 / 산이 허락한 길이라곤 / 바위 모서리를 휘도는 비탈진 길’에서 생계를 위해 가마를 메는 사람의 고달픈 정경을 그려내었다.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균형을 잡느라 어깨가’ 휘는 ‘가마꾼’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오래 된 동행」에서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면서 ‘나를 많이 닮은 사람’인 반쪽과의 동행을 서술하고 있다. ‘어느 날 함께 바라본 달 하나가 /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달밤을 기억하’며 ‘그 길이 어디서 / 갈라질지 모르기에’ 불안한 시적화자의 모습이 나타나는 시이다.

이들 모두의 시속에서는 현실의 불행과 불안이 드러나지만 사랑이 바탕으로 깔려 있어서 행복의 수위가 높아지고 안정적이다. 그래서 이규대 시인의 현실 반영의식이 투영된 작품들은 비극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바른 도리를 강하게 지키게 하고,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끌어 가는 사랑의 미덕을 5편의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

2. 다채롭게 사랑을 묘사하다

 

  사랑은 사람의 본질로 운명을 결정하므로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랑의 실현은 너무나 다양해서 단순하게 사랑의 정의나 개념을 정립하기가 어렵다. 요한네스 로쯔(Johannes B.Lotz)는 사랑을 세 단계인 에로스(eros), 필리아(philia), 아가페(agape)로 파악하여 설명하였다.(『사랑의 세 단계 :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요한네스 로쯔 저, 서광사, 1991.) 에로스는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 필리아는 친구 간의 우정 같은 인격적 사랑, 아가페는 신적 사랑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는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 속에 놓여 있다. 그래도 이들의 특성을 살려 이규대 시인의 시들이 함의하고 있는 사랑의 면모를 드러내기에는 좋은 틀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의 특질이 잘 녹아있다. 에로스로는 개인 간의 사랑, 필리아로는 집단 내의 사랑, 아가페로는 신과 연관된 사랑을 살펴보면 그의 사랑 의식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 에로스(eros)적 절제미

 

  플라톤(Platon)의 『향연』에 등장하는 파이드로스(Phaedrus)는 에로스(eros)가 가장 좋은 것의 근원이면서 가장 오래된 존귀하고 강력한 신이라고 하였다. 남녀가 육체적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나누는 일은 황홀한 경험이다. 에로스의 달콤함은 세상 어느 것과 견주기 어려울 만큼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역사는 에로스의 달콤함에 빠진 남녀가 만들어 냈다는 견해를 부인하기 어렵다. 남녀 간의 에로스는 원초적 본능이므로 가장 오래된 강력한 에너지이면서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에로스가 인류의 번성을 이루어 냈으니 신처럼 존귀한 존재로 추앙받아 마땅하다.

  이규대 시인은 이러한 에로스가 인간에게 주어진 순수한 본질임을 자각하고 이를 시로 승화시켰다. 에로스적 사랑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는 「간 고등어 한 손」이다.

 

뭍에 올라와서야

제 짝을 찾았다

 

배를 가르고 만난 사랑

살 속에 꼭 품고 있다

 

바다에서 못 다한 사랑

이렇게라도 이루겠다고

왕소금 뿌려도 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 손이다

 

- 「간 고등어 한 손」 전문

​

「간 고등어 한 손」은 유용한 식품으로 애용되는 간 고등어 한 손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생선으로 대유하여 적나라하게 표출해놓고 있다. 두 마리의 고등어가 ‘제 짝을 찾’아 ‘배를 가르고’ ‘살 속에 꼭 품고 있’는 모습은 남녀가 서로 밀애를 즐기는 장면과 유사해서 남녀 간의 성애가 연상된다.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제우스(Zeus)신이 인간의 교만함을 막기 위해 인간을 반으로 나누었다는 신화를 빌어 인간들은 서로 반쪽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시 속에서 반쪽을 만나 에로스를 발산하는 모습은 외설스럽지 않다. 이는 이규대 시인이 소재를 제대로 찾아내어 에로스를 절제미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독자는 일상에서 식품으로 늘 접하는 간 고등어 한 손의 포개진 모습에서 남녀의 정열적인 애욕을 느끼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지는 않는다. ‘바다에서 못 다한 사랑 / 이렇게라도 이루겠다고 / 왕소금 뿌려도 놓지 않는다’는 표현을 읽을 때는 마음이 애처롭고 애틋해진다. 그들이 살아서 바다에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죽은 후에 뭍에서나마 제 짝을 만났으니 원 없는 사랑을 누리기를 기원하게 된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남녀 간의 에로스를 과도하게 노출하여 외설 시비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성에 대한 관심과 희열은 인간 본성의 발로여서 적당한 노출은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외설은 작품의 가치를 망가뜨린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마광수 교수가 1991년 출판한 『즐거운 사라』로 외설 논란에 휘말려 1992년 강의 도중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즐거운 사라』가 교훈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문학을 비판하고 풍자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지나친 성적 노출을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의 대표적 시집인 『가자, 장미여관으로』도 성에 대한 저속한 표현으로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작가의 상상력을 인정하고 무한에 가까운 창의적 표현을 보장해주면 작품의 영역을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나친 외설은 예술성을 훼손한다.

  이규대 시인은 실존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문학인으로서 존엄을 지키면서 에로스의 보편적 현상을 에로스적 절제미로 구현하였다. 그는 에로스를 죽음을 초월해서 사랑을 완성하는 모습으로 표출시킴으로써 에로스가 인간 삶에서 중요함을 부각시켰다.

  에로스(Eros, 에로스신)는 아프로디테(Aphrodite, Venus, 미와 사랑의 여신)의 탄신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포로스(Poros, 풍요의 신)와 페니아(Penia, 빈곤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미를 추구하면서 풍요와 빈곤 사이에서 지혜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사람의 에너지이다. 에로스가 미와 지혜를 얻어내어 풍요로운 미래로 전환하려면 절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냉이국」과 「오래 된 동행」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가 은은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에로스가 오래 유지되는 부부의 미와 지혜가 절제 있게 잘 드러난 작품이다.

 

 

(2) 필리아(philia)적 비장미

 

  필리아(philia)는 본능적 욕구에 치우치지 않도록 에로스를 정화하여 우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랑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보편적 에로스에 기인한 개인 간 사랑으로만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이 개인 간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에 집착하면 타락하거나 질투와 증오로 서로를 망가뜨릴 수 있으므로 사랑의 확대가 요구된다. 사랑의 대상이 가족, 친구, 동료, 민족, 국가, 세계로 확장되고 이를 사랑할 때 드러나는 사랑이 필리아이다. 필리아는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사회를 사랑으로 이끄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플라톤(Platon)의 『대화편』 중 「뤼시스(Lysis)」에서 필리아도 에로스처럼 사랑에 대한 욕구로 보았다. 에로스가 연애의 욕구라면 필리아는 친애의 욕구로 해석될 수 있다. 필리아도 에로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바탕색으로 주어진 또 다른 빛깔의 사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필리아를 행복의 실현에 필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그의 윤리학에 따르면 개인은 윤리적 덕을 지켜야 하고 사회는 정의를 유지해야 한다. 필리아는 이러한 개인과 사회를 순환하는 매개물로 개인의 행복과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사랑이다. 그는 덕에 의해 선과 미가 하나로 구현된 인격체를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라고 지칭했다. 필리아는 이러한 인격체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랑이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은 지성적 덕으로 삶을 관조하고 실천한다.

  이러한 필리아가 잘 드러나는 시는 「두만강에 서면 – 도문시를 끼고 흐르는 강」이다. 이 시는 개인 간의 사랑에서 벗어난 확장된 사랑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가을 두만강은

좁고 야트막하게 흐른다

 

냇물인 줄 알고

그냥 건너려고 했더니

강이란다

 

그래도 건너보려 했더니

국경선이란다

 

물길 한가운데가

움직이는 국경선

 

강 건너 얼어붙은 산하는

문을 닫은 지 오래

 

밭 갈던 소가

마음대로 목 한번 축이지 못하는

가난한 강

 

가을볕도 울먹이며

국경을 서성인다

 

- 「두만강에 서면 – 도문시를 끼고 흐르는 강」 전문

 

  이규대 시인은 「두만강에 서면 – 도문시를 끼고 흐르는 강」에서 국경선을 이루는 두만강을 바라보며 북한과 단절된 민족 간의 슬픔을 드러낸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도문시는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한 두만강 중류의 국경 도시로 두만강 무역과 교통의 요지이다. 이 도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과 마주보고 있다. 이 지역은 봉오동전투 등 1920년 초반의 항일 독립운동의 유적들도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도문시에서 시적화자는 ‘좁고 야트막하게 흐’르는 ‘가을 두만강’을 ‘냇물인 줄 알고 / 그냥 건너려고’ 한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물길 한가운데가 / 움직이는 국경선’인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고 ‘울먹인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국가 간의 법칙에 의해 생성된 필리아의 모습을 관조하고 예리하게 표현한다. 비장미는 현실의 상황에 부딪혀 소망을 이루지 못할 때 감정과 함께 일어나는 미의식이다. 그는 필리아가 형성하는 비장미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사랑의 다층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체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사람들이 서로 의존하고 교류하는 보편적 법칙을 필리아라고 보았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리아가 보편적 법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국가들은 전쟁을 피하고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약을 통해 국경선을 정한다. 이렇게 정해진 국경선이 민족 간의 소통을 막아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정의를 깨트리고 있으니 아이러니(irony)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규대 시인은 집단적 사랑인 필리아에 의해 형성된 국경선을 바라보며 민족의 비극성을 인식하고 관조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슬픈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문을 닫은 지 오래’인 ‘강 건너 얼어붙은 산하’와 ‘발 갈던 소가 / 마음대로 목 한번 축이지 못하는 / 가난한 강’으로 묘사해 간접적으로 슬픈 감정을 토로한다. ‘국경을 서성’이며 ‘울먹이는’ 가을볕‘으로 시인이나 시적화자의 아픈 마음을 대변한다. 이는 시인의 인격적 사랑인 필리아의 발현으로 문학적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3) 아가페(agape)적 자연미

 

  아가페(agape)는 어원의 근원이 확실하지 않아 여러 가지 의미를 뜻하다가 신약에서 고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이 함축된 성서용어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으로 태어나 자신을 희생하고 세상을 구원한 사랑이 아가페의 전형적 모습이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실천한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등 많은 성현들에게서 아가페의 실현을 찾을 수 있다. 엔더슨 니그렌(Anderson Nygren)은 하나님의 아가페가 인간에게 흘러넘쳐 인간도 목적, 동기,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아가페가 흘러넘친다고 하였다.

  아가페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거룩한 사랑이다. 에로스가 개별적 사랑, 필리아가 보편적 사랑이라면 아가페는 초월적 사랑이다. 인간은 동물과 신의 중간자로서 동물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진다. 에로스는 동물성에 가깝게 경험되고, 필리아는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며, 아가페는 신성의 실현으로 드러난다.

  이규대 시인은 「가마꾼」에서 자연의 ‘가마꾼’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고차원적인 사랑인 아가페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이 ‘가마꾼’에게 베푸는 사랑은 목적이 없고, 동기도 없으며, 의지도 없다. 이러한 사랑은 자연발생적이고 가치창조의 원리일 뿐이다.

 

 

안개비 오락가락하는

천 미터 넘나드는 중국 원가계 산마루

산이 허락한 길이라곤

바위 모서리를 휘도는 비탈진 길뿐이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좁은 길에

가마꾼이 지나간다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

 

덩그렇게 가마에 앉은 사람은

몇 푼의 돈으로 풍경을 산다

 

한 발 한 발이 바람 앞에 촛불이다

관광객의 눈길이 가마꾼의 발끝에 꽂힌다

저 두 발바닥은 숨은 돌부리마저 다 외고 있다

 

구릿빛 팔뚝에 얼굴이 검붉은 중년의 가마꾼

균형을 잡느라 어깨가 휜다

 

아찔한 절경이 가마꾼을 먹여 살린다

 

- 「가마꾼」 전문

 

「가마꾼」은 ‘안개비 오락가락하는 / 천 미터 넘나드는 중국 원가계 산마루 / 산이 허락하는 길이라곤 / 바위 모서리를 휘도는 비탈진 길 뿐’인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좁은 길에’서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데, ‘몇 푼의 돈으로 풍경을’ 사는 ‘덩그렇게 가마에 앉은 사람’을 가마에 태우고 ‘균형을 잡느라 어깨가’ 휘는 ‘구릿빛 팔뚝에 얼굴이 검붉은 중년의 가마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찔한 절경’을 가마에 앉아 구경하는 관광객과 목숨을 걸고 적은 돈을 벌어 생활하는 가마꾼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더욱 진하게 전달된다.

  이 시에서 ‘한 발 한 발이 바람 앞에 촛불’인 ‘가마꾼을 먹여 살’리는 존재는 ‘아찔한 절경’인 자연이다. 원가계는 중국 호남성 장가계시 장가계 국가삼림공원에 위치한 장가계 여행의 핵심 지역이다. 자연 스스로 장엄하게 빚어내서 경탄할 수밖에 없는 대자연의 경관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영화 <아바타(Avatar)>에서 구름과 안개로 덮여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로운 산으로 연출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숭고한 산이 ‘가마꾼’에게 ‘숨은 돌부리마저 다 외’울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산은 ‘가마꾼’이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도록 ‘길’을 ‘허락’해준다. ‘가마꾼’이 ‘구릿빛 팔뚝’과 ‘검붉은’ ‘얼굴’로 건강미 넘치게 살 수 있도록 인정을 베풀어 주고 있다. 자연이 사람에게 베푸는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으로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규대 시인은 「가마꾼」을 통해 신의 사랑인 아가페가 드러난 자리가 결코 불행하거나 슬프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아름다움의 정수인 원가계의 산마루에서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표출해내고 있다. 시인은 관찰자적 시선으로 상처를 받은 영혼들이 불행의 눈물을 흘리며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사랑을 받으며 잘살고 있음을 보여주어 독자들에게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3. 사랑의 달을 띄우다

 

  어두운 밤을 비추는 달은 동행자이고 친구이며 신이다. 달은 길을 가면 따라오며 함께 해주니 동행자이면서 친구이다. 또한 달은 하늘에 떠서 만물을 비추며 길을 인도하니 신이다. 「오래 된 동행」에 나타나는 달은 시 속에 등장하는 부부와 함께 동행해주는 친구이자 신이다.

  에로스로 태어난 인간은 필리아로 공동생활을 원활하게 유지하고 아가페로 완성된다. 인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필리아는 신의 사랑인 아가페를 지향하며 상승한다. 신의 사랑인 아가페는 인간의 에로스와 필리아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하강한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순환한다.

「오래 된 동행」에서는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가 드러난다. 에로스는 부부의 사랑, 필리아는 오랜 시간 함께하여 친구 같은 부부와 달의 사랑, 아가페는 부부를 이끌어주는 달의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는 사랑의 순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과

나들이 갑니다

 

나를 많이 닮은 사람과

우리는 오래 전에

반쪽을 함께 나누어 가졌고

서로의 모난 목소리는 오랜 시간

세파에 둥글어졌습니다

 

어느 날 함께 바라본 달 하나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습니다

 

그 달밤을 기억하는 힘으로

우리는 아직도 한 길을 갑니다

 

그 길이 어디서

갈라질지 모르기에

없는 손도 꼭 잡고 갑니다

 

- 「오래 된 동행」 전문

 

  이 시의 시적화자의 ‘반쪽’은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며 ‘나를 많이 닮은 사람’이다. 부부는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서로를 가장 잘 알게 된다. 또한 그들은 공유와 공감을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생각과 행동이 닮아간다. 이 부부는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달’을 ‘어느 날 함께 바라’보면서 사랑을 느꼈다. 부부는 에로스가 넘치는 ‘달밤’의 ‘기억’으로 힘을 얻어 세파를 헤쳐 나갔다.

  부부는 세월이 흐를수록 연인보다는 친구와 같은 정과 의리로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모난 목소리’가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세파에 둥글어’지기까지는 필리아의 역할이 컸다. 필리아는 부부가 ‘아직도 한 길을’ 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부부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그 길이 어디서 / 갈라질지 모’를 만큼 이별의 함정이 도처에 놓여 있다. 그러나 시 속의 부부는 ‘달밤의 기억’으로 ‘없는 손’까지 잡으며 동행을 지속한다. 달은 이 부부가 지향하는 아가페이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이 부부는 ‘달’이라는 헌신적 사랑을 목표로 세우고 아가페를 실천했기에 오랜 ‘동행’이 가능했다. 이 시는 이혼을 쉽게 결정하는 이 시대에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이규대 시인의 오감은 사랑에 대해 예민하게 열려 있어서 물과 공기처럼 세상 어디에나 사랑이 풀려있음을 감지해내어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때로 지루하고 때때로 험난한 인생일지라도 돌아보면 사랑이 있어 생의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달을 어두운 현실 위에 두둥실 띄워 놓았다.

  시인은 인생의 굽이마다 사랑의 꽃무리가 아름답고 힘차게 피어 생을 밀고 왔음에 감사한다. 사랑의 내밀함에 촉수를 세운 아름답고 영롱한 시인의 작품들이 향기를 품고 나오기를 봄날에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택화 es.jpg

 

 약력 :

 교육학석사(고려대), 정책학석사(고려대), 문학박사(충북대)· 충북대, 충북도립대학교 출강 역임. · 한국미래예술총연합회 대표, 문학秀 발행인, 미래시학작가회장, 새한국문학회 운영위원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회원, 도서출판 아름다운 만남 대표.·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회원, 도서출판 아름다운 만남 대표· 전국탄리문학상, 한국문협 한미문단 해외문학상, 미래시학 문학대상, 탐미문학상, 새한국문학상 외 다수 수상· 저서 - 시집 8권, 소설집 2권, 수필집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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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택화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6-10-01 121 2
147 김소월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8-31 412 2
146 한길수 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8-01 731 4
145 이경인 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7-01 734 1
144 권태응 동시작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6-03 1196 1
143 이형기 시인(3)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4-01 1207 1
142 정순옥 수필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3-01 3066 6
141 이형기 시인(2)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2-01 1128 1
140 이형기 시인(1) file 웹담당관리자 2026-01-01 1529 2
139 박두진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5-12-02 1314 1
138 이원수 아동작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5-11-01 1184 1
137 채수명 평론가(2) file 웹담당관리자 2025-10-01 1899 1
136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 아내 김향안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9-01 3952 1
135 채수명 평론가(1)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7-31 1888 1
134 김송배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6-01 1874 2
133 김전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5-01 1864 1
132 최원현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4-01 2004 1
131 배우식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3-01 2231 1
130 김석인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5-02-01 2576 1
129 권온자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4-12-30 209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