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이야기
최효섭
아동문학작가‧목사
나는 1932년 2월 14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막둥이로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내 집은 살림이 윤택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이름이 높았던 K선생님이 계셨는데 학교에서 면직되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분의 생계가 막연해지자 나의 부친은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한 채를 그분에게 무료 임대하여 고서점(古書店)을 차리게 하였다. 이 일이 나의 평생을 좌우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K선생님은 열심히 나의 독서 지도를 시작하셨다. 심지어 책을 골라 주고 언제까지 읽어야 한다고 숙제로 제시하셨다. 물론 일본 통치시대이므로 모든 책은 일본어로 읽었다. 동화, 소년소설, 역사, 과학물, 위인전, 동물 이야기 등 매우 다채로웠다. 이때부터 책을 읽고 붙은 버릇은 평생에 이어졌다. 아동문학이나 다른 저서들을 합하여 104권을 지금까지 저술 출판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해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으며 2학년 때 해방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 경동중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과에 들어갔으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우리 집 가문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었으며 6남매를 모두 교회로 인도하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상이 많아서 주의 집중을 안 한다고 선생님들께 여러 번 꾸지람을 들었다. 타고난 공상의 버릇이 나를 환상동화 쪽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어려서 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면서도 새벽마다 일본인의 종교인 신사(神社)에 가서 마당을 쓰는 일을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였던 기억이 난다. 신심(信心)이라기보다 무엇을 한번 시작하면 끈질기게 계속하는 일종의 고집이라고 생각되며 이런 성격은 학업 저작 목회 등에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해방 후 서울에 왔는데 독서의 기회가 우연히 열렸다. 옆집이 변호사 댁인데 엄청난 장서가 있었으며 그 아들이 나의 친구였으므로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일본 문학전집, 세계 문학전집 모두 20권을 2년 반 동안에 완독하였다. 물론 일본어책들이다. 독서에 시간을 다 빼앗기면서 어떻게 낙제하지 않고 어렵다던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통하다 싶다.
판사가 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던 내가 왜 신학교로 급선회하였는지 사유 몇 마디를 간추려 둔다. 6‧25사변 중 고향을 찾았다가 빨치산(공산군 유격대)에게 체포되었다. 나의 매부를 포함한 민주 인사 9명이 붙잡혔는데 끌려가다가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뒤에 알았지만, 그때 나 혼자 살고 여덟 명은 다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나는 어촌 파랏개(해변을 통해 3·8선을 넘을 수 있는 장소)에서 경찰들이 압류한 어선을 타고 남하하였다. 경찰 한 명이 책을 꺼내 한쪽씩 찢어 담배를 말아 피는 것을 발견하였다. 신약 성경이었다. 나는 늘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던 영한사전과 성경을 맞바꾸었으며 피난선에서 한 달 반을 지내는 동안 신약 성경을 네 번 통독하였다. 외롭고 고생스런 처지였으니 많은 감명을 받았다.
먼 친척이 경찰관으로 있는 구례로 찾아갔다. 구례읍교회의 고등부 지도를 맡고 열흘도 안 된 즈음이다. 조동진 목사가 나를 불러 마산면 냉천리 교회를 담임 목회하라는 것이었다. 만 19세의 대학 1년생이고, 신학교는 구경도 못한 나에게 엉뚱한 파송이었으나 성큼 대답하고 나선 것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지리산 밑에 있는 냉천리는 밤에는 공비가 통치하는 인민공화국이 되고 낮에는 전투 경찰이 점령한 대한민국이 되었다. 교인들이 농민이라지만 어른들인데 무슨 소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좌우간 설교라는 것을 11개월 하였다. 이 체험은 나의 방향 선회의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나의 저작 활동은 이력을 따라 거의 자연 발생적인 것들이었다. 배화여자중고등학교 교목을 하면서 성경교재 ‘바울’을 첫 저서로 냈고(1957년), 주일학교 교사를 중학 시절부터 하였다. 성경을 이야기로서 아이들에게 읽게 할 자료가 없음을 알고 <성경동화 52>를 출판하였는데(1961년), 반응이 좋아 장차 본격적으로 동화를 써 볼 결심하였다. 나는 감리교 본부 교육국에 있으면서 <동화 교육>(1960), <좋은 지도자>(1961), <개체교회의 기독교교육>(1962) <교회와 시청각교육>(1963) <성경 교수법>(1964) <아동 이해>(1965) 등 교육도서를 저술하였다.
동화 창작을 계속하다가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철이와 호랑이>가 당선되었다. 시상식에서 그 해의 심사 위원장 마해송 선생이 “작가 대부분은 신춘문예 후 좋은 작품을 계속 못 내고 있다.”는 격려사 및 충고를 하였다. 그 말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동화 창작은 1963년부터 1972년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다가 자폐증 장남의 문제로 부득이 도미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민 목회를 시작하면서 작품 활동은 끊어졌다. 이것은 아쉽지만,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내 소사에 펄벅재단이 있었다. 그녀가 자폐증 딸이 있고 미국 최초의 정신박약아 부모회를 조직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펄벅 선생이 내한한 기회에 아내와 함께 그녀를 만났다. 우리 내외가 그 해(1968년) 한국정신박약아 부모회를 조직하고 계속하여 사회의 관심을 계몽하기 위하여, 사단법인체로 한국정신박약자 보호협회를 조직하였다는 소식을 알렸다. 펄벅 선생은 매우 기뻐하고 격려하며 나의 아내 '이남홍'을 즉시 미국에 초대하겠으니, 공부하고 시찰할 의향이 있느냐고 했다. 나는 바로 승낙하고 아내가 먼저 도미하게 된 것이다.
나는 1966년~1967년에 미국 유학을 하였다. 리치먼드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석사를 마치고 4개월간 에모리대학 ‘라디오 및 T‧V센터’에서 섬머스쿨을 마쳤다. 이 T‧V훈련이 동기가 되어 귀국 후 바로 NCC 시청각교육국의 T‧V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KBS TV와 동양 TV를 통하여 외국의 종교 프로를 번역 방영하는 일이었다.
나는 방송국에 자주 드나들면서 어린이 프로를 눈여겨 살피게 되었다. 인형극단이 셋이나 있으나 작가가 부족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 후 5년간 연속 인형극 각본 5편을 썼으며, 기독교방송국(CBS 라디오)에도 관련을 맺고 테마 방송극 “이것이 인생이다.” 20편을 집필하였다.
미국에서 1972년~1989년에 목회한 교회는 다음과 같다.
하트포드교회, 남부뉴저지교회, 뉴욕한인교회, 아콜라연합감리교회, 뉴욕신학대 학교에서 1980년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목회 중 신문칼럼을 격주로 써서 다음과 같은 신문에 기고하였다. 뉴욕한국일보, 뉴욕중앙일보, 미주조선일보, 시카고크리스천저널, LA기독교타임스, 크리스천 뉴스위클리, 국민일보 등이다.
특기 사항
‘ 우석문서선교회’ 조직이다.
2008년 2월, 나의 문서 선교활동을 돕겠다는 신앙동지들이 모여 ‘우석문서선교회’를 조직하였다. 뉴저지주 잉글우드 크리프(Englewood Cliff)에 있는 무역회사 최 용석의 사무실에서 창립총회가 모였고 초대회장으로 최용석 씨가 선출되어, 지금까지 10년 동안 회장직을 맡고 있다.
우석(愚石)은 나, 최효섭(崔孝燮) 목사의 아호(雅號)이다. 문서선교회는 매해 두 권씩 ‘전도책자’(100쪽)를 발행하게 하였다. 집필은 최효섭 목사가 담당하고 인쇄 및 보급을 회원들이 담당하게 하였다. 문서선교회의 본부를 한국에 두고 미국에 지부를 두게 하였다. 한국본부의 위치는 윤현주 교수의 사택으로 결정하였다.
전도 책자 발행 부수는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2,000부로 하고 식당과 점포 등에 놓고, 특히 한국에서는 교도소에 보내 외로운 수감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근하여 그들의 재생을 촉구하게 하였다. 이 일은 큰 성과를 거두어 많은 재소자(在所者)들로부터 감동의 서신을 지금도 받고 있다.
우석문서선교회는 회계 겸 서기로 서경신 씨를 선출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전도책자는 한국어와 영어로 병기(倂記)되어 영어세대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영문 번역을 위하여 지난 10년 동안 구희진 씨와 박온유 씨, 그리고 윤현주 씨가 수고하였다. 책 편집을 이건익 씨가 맡았으며 표지는 총천연색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하였다. 표지 제작 역시 이건익 씨가 담당하고 있다.
동화와 소년 소설 출판
새벗, 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가톨릭 소년, 한국일보 어린이판 등에 활발하게 동화를 발표하였다. 단행본이 된 동화집은 모두 25권으로 다음과 같다.
성격동화 52(1959 숭문사), 시계탑의 열두 형제(1963 한국교육도서), 일곱 개의 얼굴(1964 한국교육도서), 숲속나라의 늙은 너구리(1965 한국교육도서), 거꾸로 도는 시계(1966 한국교육도서), 차이나호의 비밀(1967 한국교육도서), 서기2072년(1968 숭문사), 바라바(1069 한국교육도서), 열두 개의 나무인형(1969 한국교육도서), 검은 손 붉은 손(1970 한국교육도서), 황금의 집(1970 신망애 출판사), 바우 전(1971 숭문사), 번개 검(1972 숭문사), 두꺼비의 여행(1971 한국교육도서), 눈 속에 핀 꽃(1972 한국교육도서), 최효섭 동화선집(1984 새벗사), 무지개 마을(1989 한국교육도서), 금순이와 백설공주(2007 현암사), 뚱보 도깨비와 수퍼쥐(2009 아동문학세계사), 최 형사와 교향악단(2010 아동문학세상사), 내 짝 최고(2010 한국독서지도회), 세종대왕이 도망쳤다(2011 아동문학세상사), 트럼펫 부는 개(2011 아동문학세상사), 돼지가족의 휴가여행(2011 아동문학세상사), 빨간 강아지 파란 강아지(2012 아동문학세상), 노래하는 접시(2012 아동문학세상)
설교와 수상 전집
총 23권 전집 속에 1,600편의 설교와 1,500편의 수필이 수록(2003년 완간. 보이스사)
인생독본
총 10권 전집 속에 고통, 행복, 노년, 결혼, 사랑, 일, 그리스도인, 은혜, 인간, 자아발견, 죽음 등의 주제로 인생문제 에세이집(1998년 완간. 쿰란출판사),기타 시집, 성경 교재, 성서 연구 등 다수를 출판하였으며 <월간 목회>에 설교 아이디아 뱅크를 18년간 연재한 것과, 주간신문 <기독교타임스>에 설교 노트를 7년간 연재한 것, 개인지 ‘삶의 지혜’(8쪽 격주간)를 23년간 616호를 출판한 것과 기독교 사상을 쉽게 소개한 ‘속삭임 시리즈’ 7권을 집필한 것을 특기하고 싶다.
내가 받은 문학상은 다음과 같다.
한국일보 신춘문예(1963년 ‘철이와 호랑이’), 소천아동문학상(1969년 ‘열두 개의 나무인형’), 방정환아동문학상(2007년 ‘금순이와 백설공주’), 박경종아동문학상(2008년 ‘뚱보 도깨비와 수퍼쥐’), 기독교출판협회 최우수상(1995년 ‘현대예화사전’), 기독총연합회 저작대상(1996년 ‘최효섭 명상록’)
약력:
1932년 황해도 해주출생/목사. 교육학 서기. 신학박사/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철이와 호랑이’ 당선/1969년 소천아동문학상 외 수상/저서: 창작동화집 9권. 소년소녀 소설집 6권. 아동문학 13권. 수필 전집 23권. 교육학 6권. 인생독본 10권 총 70권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