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동 시조평론가

조회 수 1607 추천 수 1 2018.12.01 07:37:40

                                               시조의 정체성과 가고파, 그 바다 주변의 시인들

                                                                                                                                   김 연 동
                                                                                                                                (시조평론가)
        
 

  1. 들어가는 말

 『가고파』라고 말하는 순간, 남쪽바다 그 파란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아름다운 항구 마산이 연상될 것이다. 따라서 향수를 자아내는 명시를 남긴 노산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가고파』시의 본향 주변에 살면서 시조를 쓰고 있는 시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잠시 시상에 젖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먼저 시조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조망해 보는 것을 시작으로 『가고파』 전편 10수를 음미해 보고, 바다를 주제로 한 이 지역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들의 관심과 노래 대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시조의 정체성

  우리의 문학장르 중 시조는 고려말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채 이어지고 있다.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단가음조時節短歌音調”,에서 비롯되었고, 시절의 짧은 노래라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막상 시조가 무엇이냐? 라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시원찮다. 자유시와 현대시조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시조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한국의 정형시를 일컫는 말이다. 김제현 교수는 『현대시조작법』에서  “한국인의 성정과 시대정신을 4음보율로 표현한 3장의 서정시”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를 아우른 정의로 시조가 느슨한 정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으며, 定型而非定型이라는 노산의 이론이나 시조는 定型詩가 아닌 整形詩라고하는 가람의 개념정의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하겠다. 시조의 형식을 다시 정리하면 평시조의 경우 3장의 형태를 취하면서 각 장은 4음보율을 가지며, 종장 첫구의 불변률 3자와 2구 5~8자까지의 한계적 허용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형식상의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조가 700여년의 긴 세월을 거치며 우리 민족의 성정에 맞는 그릇으로 다듬어 오는 동안에도 한시나 하이쿠처럼 그 틀이 완벽한 정형을 취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여유와 여백의 멋을 소중히 여겼던 우리 민족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조가 가장 한국적인 형식으로 갈고 다듬는 동안 한국인의 마음의 중심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시조의 현대화운동은 1920년대부터 국민문학운동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부활의 몸짓을 하기 시작하여 오늘의 현대시조에 이르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1926년 최남선의 <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라는 글이 『조선문단』16호에 발표됨으로써 시조 부흥론은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이어 1926년 11월 20일자 『동아일보』에 가람의 <시조란 무엇인고>가 발표되었고, 1927년 2월호
『조선문단』에 조운이 <병인년과 시조>를 발표하면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여 노산 등의 가담으로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으며, 시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歌的인 면보다는 詞的인 면에 치중하면서 하나의 시 장르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조부흥론에 가혹하리만큼 비판을 가했던 김동환은 시조는 시대의 발전 속에서 도태되는 길과 시대정신에 잘 향응하여 부단한 개혁을 거치며 늘 새 생명을 가진 시가로 전해지는 길이 있다는 전제와 함께 “새 시대에는 새로운 예술이 생겨나는 것이니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예술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시조는 조선의 정치와 생활양식을 버리듯 「버려야 할 유산」이라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파인의 시조에 대한 형식과 내용에 대한 분석 비판은 시조부흥론을 공격하기 위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작품들이 고시조였다는 데 그의 공격논지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1930년을 전후하여 자유시에 이미지즘의 이론이 도입되어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시로  중심 이동을 하고 있을 무렵, 청각에 의존하던 시조도 예외일 수 없었으며, 서서히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작시 태도를 보이면서 다양한 몸짓으로 새로운 경향을 띄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때부터 현대시조는 현대인의 의식과 사상과 감정을 지닌 그릇으로써 시조의 음율을 보다 새롭게 조율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현대시조에 대한 논의는 현대시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왜 시조가 중요한 장르인가를 역설하는 입장정리가 완벽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또 복고성을 비판하는 쪽은 현대시조의 변해온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낡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실정은 초정의 『봉선화』나 『사향』이, 가람의 『난초 』나『오동꽃』이 현대시조의 전형인양 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현대시조는 지금도 김동환류의 정리되지 못한 이론으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시각과 안목의 조망 없이 몇 사람의 편향된 주관 혹은 인상비평이 전부인양 재단의 가늠자로 삼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시조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근배 시인은 시조가 현대한국시로서 자유시가 해내는 것에 미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시인의 능력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성과를 못 가질 이유가 없다면서 시조가 그 역사성으로나 정통성으로나 어제, 오늘, 그리고 먼 내일까지도 한국시의 정체성을 지닌 시형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라는 데에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시조의 정체성과 문제점>이란 글에서 밝히고, 수많은 작품으로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박재삼 시인의 『내 사랑』을 예로 들어 그의 어떤 자유시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시조라고 격찬하고 있다.


한빛 황토(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대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적셔 주리다.
―「내 사랑은」전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조가 자유시에 비해 편견이나 홀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릇된 외적 인식으로부터 내적 문제 곧 현대시로서의 현대시조가 아닌 고시조적 작품 구조나 표현기법에서 일탈하지 못한 작품군들과 그러한 작품관으로 시조를 쓰는 낡은 사고에 의지하고 있는 시조시인들이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자유시단이거나 다른 장르라 해도 옥석은 있게 마련이다. 시조단이라고 해서 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옥도 있으니 그를 찾아 빛내는 올바른 평가 작업이 아쉬운 현실이 아닌가. 일본의 하이쿠가 생략적인 특질과 참신한 이미지로서 서구의 젊은이와 시인들을 매료시키며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을 거울삼아, 우리도 이러한 계기를 마련하는 데 남다른 작가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시조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정당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게 하는 데 여러 측면의 노력과 반성과 책임이 시조인들에게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파인의 「버려야할 유산」이란 비판도 정지용의 ‘새로움’의 성취와 제시에 힘쓰라는 충고도 시조단은 신선한 충격으로 수용하며, 좋은 작품을 생산해 내는데 보다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임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시조가 한국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보다 많은 현대시조의 문제점과 가능성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3.『가고파』와 그 본향은 

  노산은 등단 벽두부터 바다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로써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흔히 처녀작으로 치는 『고향생각』이 1923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가덕도에서 고향소식을 기다리며 향수를 달래는 시조로 『가고파』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가고파』에 버금가는 노랫말로 알려진 시조이다.

  1932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발표된『가고파』는 김동진이 곡을 붙임으로써 시적 위력보다는 가사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경우라고 하겠다. 음악시간에 4절까지 배워오는 동안 일반적으로 4수로 된 시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는 10수로 된 시조이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남쪽, 그 파란물이 출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성장한 노산은 그의 고향 마산 앞 바다를 향수의 성소로 만들어 놓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보고싶은 남쪽바다-고향바다에 대한 그리움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보고싶은 고향 동무-동무에 대한 그리움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찾아가고 싶은 동무가 사는 고향-별향의 안타까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나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찾아가고 싶은 옛 시절-가서 한데 어울리고 싶은 마음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그리운 어린 시절-옛 시절의 추억

여기 물어보고 저기 가 알아보나
내 몫에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안기고 싶은 보금자리-귀향 의지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아까워하고 있는 잃은 기쁨의 길-실락의 아쉬움

일하여 시름없고 /단잠 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부러운 고향의 벗-고향에 사는 벗이 부러움

옛 동무 노 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 바다 물을 따라 /나명 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노래하며 옛친구와 살고 싶음-친구와 어울려 살고 싶음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거나 /깨끗이도 깨끗이

  -회향과 깨끗한 삶의 추구의지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이 가고파 10수는 쉽게 쓰여지고 쉽게 가슴에 와 닿는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10수에서 깨끗이 살고 싶은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노산의 마음은 과연 고향을 말하는가? 아니면 일제의 손이 닿지 않는 나라인가? 로 다소 논의가 되어 왔지만 시의 흐름으로 보아 깨끗이 살 수 있는 공간은 다름 아닌 고향이라고 보는 쪽을 필자는 택하고 싶다.

양장시조를 선보이기도 한 노산은 시조의 배행에 있어서도 의미 배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굳이 이렇게 해야한다고 하는 것도 없으며, 어떤 법이 있어 위배되는 것도 아니”라고 『노산시조선집』에서 밝히며 평소 배행에 여유를 보여왔던 노산이다.

  노산은 『푸른 하늘의 뜻은』이라는 글에서 “나의 머리에 흰 가락이 더해질수록, 내 생명의 남은 책장에는 이 시조 작품들의 목록이 더 많이 적혀져야 할 것을 더욱 더 느끼는 것이다. 나는 오늘까지 내 길을 가야 할 것을 잊은 적은 없다. 다만 거기에 정진하지 못했을 따름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여러 장르를 통해 글을 발표했지만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늘 시조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우리 시조인들이 당당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도 시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지녔던 훌륭한 선배의 당당함에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노산 시조는 현대 시조의 장르적 특성을 극대화하여 현대시조를 서민의 삶에 밀착시키고 민족문학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시조문학사와 맥을 함께 하는 의의를 갖고 있다”고  김복근이 『이은상 시조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노산은 당대를 풍미했던 빼어난 문장가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4. 가고파, 그 바다 주변 시인들의 노래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남쪽 바다 주변을 배경으로 시를 쓰는 향토의 시조시인들이 어림잡아 80여명으로 늘어난 지금, 경남의 시조는 전국 어느 지역보다 인적 면에서나 그들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경남은 노산을 비롯한 초정, 박재삼 등 우리나라 시조현대화의 선두에 섰던 걸출한 시인들을 배출해 온 시조의 메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으로 60년대,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걸쳐 그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 배출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경남 시조는 앞으로도 타 지역에 비해 그 강세가 지속되리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를 가까이 하거나 혹은 배경으로 살아가는 경남의 시조시인들이기에 그들이 쓴 바다와 관련된 시조가 많을 것이라는 평범한 생각으로 가고파 바다를 제재나 주제로 한 작품들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생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는 논의되는 작품들이 지난 ‘97년 경남문인협회에서 펴낸 『경남문학대표선집』 ‘시조편’과 마산문인협회와 경남시사랑  연구회가 엮은 『가고파, 내 고향노래』에 수록된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한편, 평소 필자에게 낮 익은 몇 작품을 대상으로 삼은 한계성 때문이라고 본다. 

  바다를 제재로 다룬 27편 중 풍광을 주제로 한 작품이 11편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환경문제를 다룬 것이 4편, 향수, 고향예찬, 희망의 공간 등이 각각 2편으로 그 다음이었으며, 통일의지, 고독의 공간, 모성회복의 공간, 등 주제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었다.

  지역별로는 마산만 주변과 한려수도의 중심인 통영, 거제 주변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 각 8편씩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변에 사는 시인이 비교적 많은 것과 아름다운 풍광 혹은 오염된 바다를 끼고 사는 환경친화적 정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품을 모두 다룰 수 없는 한계성과 아쉬움 속에 먼저 바다를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몇 작품을 감상해 보기로 하겠다.


강토 펼친 자락 남방 해협 부딪친 고장
한(恨)인 양 정열인 양 동백은 십리 뻗어 있고
살으리 살으리로다 이 산 이 물 나는 살으리로다.                               
― 김기호의 「거제해금강」전문


하루해 긴 삼월은 /햇살도 氣盡하여//
목숨 하나 부지하기/그냥 멍한 그런 날도 //
푸르게/맑은 손길로 /어루만져 앓던 母情
― 이금갑의 「유년의 바다」1편2수 중 둘째 수 


至高의 지팡이 끝/ 점지내린 통영땅//
언제나 처음대로거라 물빛 산빛 먼저 빚고는//
그분도 來生의 터전/이곳에다 점 찍었으리.                                     
― 서우승의 「통영아리랑」 4수중 첫 수

신의 눈길 머물게 한 내밀한 말들 있어
싱싱히 푸른 혈맥 미소로 피는 물굽이에
별들이 저절로 녹아 시그리로 일어난다.
― 최재섭의 「자란만」3수1편 중 첫수


뭍은 예서 사라지고/ 노래는 남아 있다//
어머니 남빛 치마 /그 포근한 이랑 너머//
天上의 작은 섬들이/ 조는 듯이 잠겨있는.
―장재의 「한려수도」2수 1편 중 둘째 수


  예시 작품들은 모두가 시인의 고향 앞 바다를 제재로 하여 그린 작품으로 아름다운 서정을 주된 정조로 하여 긍정적 시각으로 그린 작품들 중 한 수씩을 모아본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바다는 모두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이 그 대상이라는 것을 작품들을 통해서 읽을 수 있다. 김기호의 「살으리 살으리로다 이 산 이 물 나는 살으리로다」라고 하는 종장은 여요인 청산별곡을 연상하게 하는 애향시라고 할 것이다. 또한 이금갑은 그의 유년의 바다는「푸르게/맑은 손길로/ 어루만져 앓던 母情」이라고 노래하고 있어 지금의 오염된 마산항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최재섭의 별들이 시그리로 일어나는 자란만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이나, 통영 앞 바다의 그 신비로운 자연을 그린 서우승과 한려수도의 미려한 풍광을 그린 장재의 작품 등, 모두가 더 평설을 요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구를 둘러싼 모든 바다는 한결같이 아름답던 자연의 일부였다. 인간의 욕망과 오만과 독선에 의해 서서히 멍들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의식과 함께 공멸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경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후약방문격의 바다 살리기 운동과 더불어 새로운 과제 앞에 고민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비추고 있는 바다 앞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뜨거운 방파제를 /듬성듬성 스쳐 가는 //
바람을 또 보내고 /귀를 여는 속삭임//
가버린 그 갈매기를 물결 위에 그린다.
―김교한의 「댓거리  해변에서」 2수1편 중 둘째 수


알몸의 저녁바다가 유리창에 어린다.
충혈된 항구의 피로 같은 노을이
어부의 구릿빛 이마 위를 바퀴처럼 기어다닌다. 
― 이우걸의 「바다」 전문


그 물새 놀던 자리 검은 빛 해도(海圖)되어//
그리움은 잔영(殘影)으로 망가진 수림(水林)에서 코발트블루의 물감으로 암팡지게 대들지만//
외화(外貨)에 눈 먼 바다는 이미 사해(死海)가 다 되었다.
―  김복근의 「마산 앞 바다」4수 1편 중 넷째 수


시대의 잔해인양 해안선에 묻어 있는
기름칠한 추억 몇 올 빗금으로 다가서고
바다는 야한 여자처럼 바람 몰고 있었다.
―김연동의 「나의 항구」2수 1편 중 둘째 수


  예시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무엇을 갈구하며 어떤 것이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위의 작품들은 모두가 마산에 자리잡고 살면서 가고파, 그 바다 곁을 지켜보며 사는 시인들이 그들의 삶 속의 바다를 제재로 하여 그린 작품들이다. 하나같이 어둡고 암울한 심경이 노정 되어 있다. 가고파를 상징하는 이 곳이 이제 물을 길 없는 역사 속에 접히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달리 아름다운 서정의 공간이란 측면에 서 있는 작품도 있다.


음악이 흐르고 한 순배 술이 도는 동안
伯牙絶鉉 지음을 목마르게 희구하던
내포엔 바다가 없었네 온통 시인의 빈가슴 뿐.
― 원은희의 「내포엔 바다가 없었네」4수 1편 중 셋째 수


  위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주변은 아직도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내포엔 바다가 없었고 “온통 시인의 빈 가슴 뿐” 인 서정과 낭만으로 출렁거리는 바다가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원은희의 시조에서 그래도 삶의 한 구석에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

  또한 도리천의 「거제섬 큰 배 뜨누나」는 “옥포만 앞 바다에서 원산만까지 배 떠나가누나”라고 하여 민족화해와 화합의 의지를 담아 그 절절한 통일의 장이 남쪽 바다에서부터 비롯될 것임을 갈구하고 있다.

  이상으로 『가고파, 그 바다 주변의 시인들』의 작품을 조망하는 동안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소생시키고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의 시조문학도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위한 방향과 새로운 모색을 위한 확실한 작업에 동참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4. 맺는 글

  지금까지 현대시조의 정체성, 그리고 노산의 『가고파』전편과 경남의 시조시인들의 바다를 제재로 한 작품들의 살펴보았다.

현대시조라는 장르가 지닌 강점은 우리 민족의 성정을 바탕으로한 정형률과 정제미라 할 것이다. 앞으로 현대시조는 국민적 정서 수용과 공감대형성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해결하고 전통문학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민문학이라는 영예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국민적인 지지와 사랑을 확보해야 하는 일이 시조인의 몫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이 지면을 통해 노산을 비롯한 향토출신 작가들의 작품의 면면들을 살피며 가고파, 그 바다를 지켜 앉아 아름다운 서정을 캐내고 있는 문학인들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공간인가를 확인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노산의 『가고파』를 다시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현역 시인들의 작품의 흐름을 走馬看山格으로 살펴보았다.

  우리 문학인들은 새로운 각오와 자기 정진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자기의 공간을 넓혀가며 환경 파수꾼의 역할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대처하는 문학의 방향을 모색해 가야 할 어려운 시기임을 다시 한 번 새겨보면서, 현대시조의 바른 이해와 국민문학으로서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보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과 더불어 시조인의 끊임없는 노력을 기대해 본다.



김동연.jpg



약력:
시조시인, 전 중등교원
출생: 1948년, 경남 하동
소속: 전 김해여자중학교 교장
학력: 경희대학교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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