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가본 인사동. 저에겐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다른 장소여서 그런지 많은 외국인들과 현대적 감각의 건물들로 조금은 변한 풍경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는데요. 길을 걷다 그 시절 잘 가던 골목 깊숙한 식당을 발견하곤 어찌나 반갑던지 '역시 인사동이구나~' 감탄하며 잠시 추억에 젖었답니다.
하긴 인사동은 N서울타워와 함께 '외국인이 뽑은 한국의 관광명소' 1, 2위를 다투는 장소로, 한국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죠. 특히 인사동 거리는 영문 표기가 당연한 듯했던 유명 브랜드들의 한글 간판이 즐비해 다시금 '한국 전통거리의 힘'을 실감케 합니다. 그런데 인사동이란 지명을 일본이 만들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인사동, 송도' 제 멋대로…'종로, 북창동' 한자만 바꿔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은 우리 민족을 와해시키기 위해 각종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는데요. 한국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로 바꾸게 한 데(창씨개명) 이어, 지명까지도 일본식으로 마음대로 바꿔버렸습니다.
먼저 인사동은 '관인방'(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의 '인'과 절이 있어서 이름 붙여진 '대사동'(大寺洞)의 '사'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청운동도 청풍동의 '청'과 백운동의 '운'을 합성해 만든 이름입니다. 그나마 이곳들은 기존 지명을 한 글자씩이라도 반영했지만, 전혀 관련없는 이름을 붙인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기업들의 사옥이 있는 태평로는 조선시대에 없었습니다. 중국 사신들이 묵던 숙소인 '태평관'이 있었다는 이유로 일본이 붙인 이름이지요. 또 있습니다. '한국의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천 송도가 그렇습니다. 송도의 한자 표기는 '松島'입니다. 송도는 갯벌이 유명한 곳으로, 갯벌을 메워 육지화된 곳이죠. 이처럼 섬도 아닌데 '島'(섬도)가 들어갔네요. 인천으로 드나들던 일본의 전함 '마쓰시마'의 한자표기가 바로 '송도'여서 지명이 된 것입니다.
더 교묘한 방법도 있습니다. 한자를 바꿔 전혀 다른 뜻이 되게 한 경우인데요. 인왕산의 한자 표기는 '仁王山'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제 때 '仁旺山'으로 이름이 변했습니다. '旺'은 일본의 '日'과 '王'을 합친 것으로, 일본이 조선의 왕을 누른다는 뜻이죠. 쌀창고가 있어서 일제 때 북미창정(北米倉町)으로 부른 남대문 근처의 동네는 겨우 '米'(쌀미)만 빼고 북창동으로 굳어졌습니다.
'종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조선시대 때 종로의 한자는 '鐘路'로 쓰였다고 합니다. 보신각 종(鐘)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일본인들은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종'자를 쇠북을 의미하는 '鐘'에서 술잔을 의미하는 '鍾'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광복 70주년…우리도 모른 일제 잔재 없애야 물론 지금은 일본식 지명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1995년 정부가 추진한 일본식 지명 개선사업에 따라 한강 가운데 있다고 중지도(中之島)로 불린 지명이 '노들섬'으로 바뀌고 인왕산이 '仁旺山'에서 '仁王山'으로 제 이름을 찾기도 했습니다. 북한산도 일제시대 때 '한강 북쪽에 있는 산'이라고 붙은 이름이므로 '삼각산'(백운봉, 인수봉, 만경봉 3개의 높은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솟아 있다는 의미)으로 바꾸자는 운동이 활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익숙해진 지명을 한번에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갑자기 바꾸기보다 공원, 지하철역 등 주민들이 많이 접할 수 있는 이름부터 바꾸는 건 어떨까요. 요즘 지하철역 명칭을 놓고 기관 홍보나 집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갈등이 많은데요. 역명을 정할 때는 '옛 지명'이 최우선 순위라는 사실! 아셨나요?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입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논하기 전에 일본인이 남겨놓은 땅이름부터 바꾸려고 노력하는 건 어떨까요. 지명은 단순히 땅의 명칭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문제 나갑니다. 다음 중 지역 전설이 담긴 지명이 지하철 역명이 된 것은? ① 당고개역 ② 보라매역 ③ 여의나루 ④ 노들역
정답은 ④입니다. 노들역은 수양버들이 울창하고 백로가 노닐던 옛 노량진을 '노들'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습니다. ① ②는 지형·상징물이 반영된 역명, ③은 한글과 한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지명이 역명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