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메신저 대화 내용인데요. 두 번째 문장이 자연스러우셨나요, 아니면 어색하셨나요? '자주 틀리는 맞춤법'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바라/바래', 맞춤법에 따르면 '바라'가 맞고 '바래'는 틀립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바래'로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어떤 이들은 '바라'가 맞는 걸 알면서도 상대방이 어색해 할까봐 '바래'라고 하거나 '바라네' '바랄게' 등 다른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바래'는 왜 틀릴까요. 마음 편히 쓸 수는 없을까요?
◆현재의 맞춤법으로 보면…
MBC '무한도전'의 장면들. 왼쪽은 2006년 것, 오른쪽은 2013년 것입니다. 맞춤법 지적에 바로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놀다'의 몸통이 되는 말은 '놀', 이 말이 활용되면 '놀+아'가 돼서 '놀아'가 됩니다. '먹다'는 '먹+어'로 '먹어'가 되지요. 몸통이 되는 말의 마지막 모음이 'ㅏ'나 'ㅗ' 소위 양성모음이면 뒤에 '아'가 붙고 다른 모음이면 '어'가 붙는 게 맞춤법 내용입니다.
'바라다'의 몸통은 '바라'니까 '바라+아 → 바라아'가 되는데요. '아' 소리가 '라'에 합쳐지며 '바라'가 됩니다. 이런 상황은 '가다(→ 가+아 → 가아) → 가'나 '벅차다→벅차' 등에서도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바래, 바래요, 바랄 걸 바래라' 등은 틀리고 '바라, 바라요, 바랄 걸 바라라'가 맞는데요. 고개가 끄덕여지시나요?
◆맞춤법에 허용된 '불규칙' '하다'에 위 맞춤법을 적용해 보면 어떻게 될까요. '하다 → 하+아 → 하'? '하다'는 유일하게 '여 불규칙'이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다 → 하+여 → 해' 식으로 변합니다. 이것은 '바래'를 허용하자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나오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다음 말도 비슷한 느낌인데요.
'파랗다, 커다랗다'는 '파랗아(파랗+아)', '커다랗아'가 아닌 '파래, 커다래'로 변합니다. 맞춤법에서 인정하는 'ㅎ 불규칙' 단어들인데요. 관련 설명에는 'ㅎ이 줄고 ~아 대신 ~애가 나타난다'고 적고 있습니다.
'불규칙 용언'을 다룬 한글 맞춤법 제18항은 "그 어간이나 어미가 원칙에 벗어나면 벗어나는 대로 적는다"고 돼 있습니다. 대중들의 언어 생활을 반영했다는 건데요. 국립국어원은 "맞춤법이란, 규칙을 먼저 정한 뒤 대중들에게 따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언어 현상을 반영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언어 생활 방식이 변하더라도 맞춤법이 앞서서 바뀌기보다 충분한 검증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라다→바래' 현상은 나무라다(→나무래), 놀라다(→놀래 : '놀래다'는 현재 표준어규정 상 놀라게 하다의 뜻)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모두 '~라다'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하지만 자라다, 모자라다에선 이런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디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 많은 사람들의 축복…" 윤종신의 노래 '부디'(1995년) 중 일부, "같은 일이 생길까 비가 오기만을 또 '바랬어'" 김건모 '빨간우산'(1996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 노사연 '만남'(1989년)
약 20년 전에도 '바라/바래'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어제 15일에는 '딴지' '속앓이' 등 13개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받은 소식이 있었는데요. '자연스러운 언어 생활'을 위해 긴 시간 원칙에서 벗어난 말에 길을 터주는 것을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주 문제입니다. 다음 중 표준어로 인정된 말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힘든 걸까. ② 왜 '맨날' 그런 얘기만 하냐? ③ 내 얘기 좀 찬찬히 들어주길 '바래' ④ '삐지지' 말고 밥이나 먹자
정답은 ③번. 1, 2번은 2011년 복수표준어로 인정되었습니다. '~길래'는 구어적인 표현으로 '~기에'와 함께 표준어이고, 맨날은 만날과 동의어입니다. 4번 '삐지다'는 어제 15일 삐치다와 함께 복수 표준어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