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기로 한 얼굴도 가물가물한 동갑내기 친척, '엄마의 사촌동생의 아들인데… 나하고는 몇 촌 관계지? 부모 자식 사이는 1촌 관계니까, 계산하면 6촌(1+4+1)…'
그런데 저녁 친척모임에 그 사촌이 감기에 걸려 못나온다고 '○톡'이 왔는데요. 답을 하다가 순간 움찔했습니다. 촌수 따지는 것처럼 막상 글로 쓸 때면 헷갈리는 말이 있는데요. '나아(낫다)/낳아(낳다)'도 그런 경우입니다. 지난 한글날 즈음 한 설문조사에선 '감기 빨리 낳으세요'(×)가 거슬리는 맞춤법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낫다[낟따]'는 '병 등이 고쳐지다'(예: 상처가 낫다) 또는 '~보다 더 호감이 가다, 상황이 앞서다'(예: 저 옷보다는 이게 더 낫다)의 뜻입니다. '낳다[나타]'는 '(아이) 출산하다, 어떤 결과를 이루다'의 뜻이죠. "감기 낳으세요"(×)는 바이러스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면 당황스러운 뜻이 됩니다.
두 낱말은 발음이 조금 다릅니다. 뜻은 정반대의 느낌일 정도로 다릅니다. 그런데 왜 헷갈릴까요? 모양이 비슷한 '낮다'는 별로 헷갈리지 않는데 말이죠.
첫 번째는 발음 때문일 텐데요. 특히 'ㅅ'이 빠지며 '낫다→나아'로 활용될 때는 '낳아'와 발음이 같아 혼동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있던 받침이 사라지는 게 어색하기도 합니다. 이렇다보니 "감기 빨리 나으세요"라는 글이 자연스레 안 나오게 됩니다. '낫다→나아'에서 'ㅅ'이 빠지는 건 '부어(←붓다)', '저어(←젓다)' 등에서 보이는 '불규칙 활용' 현상인데요. 일부 지방에서는 '나아라' 대신에 '낫아라'라는 사투리가 쓰이기도 합니다. '낫아라'가 표준어였다면 '낳아라'와 구별하기 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벗어(←벗다)', '솟아(←솟다)' 등에서는 불규칙 현상이 없습니다.
두 낱말이 혼동되는 다른 이유는 '좋다'의 영향으로 보이는데요. '낫다'와 비슷한 뜻의 말이지만 '좋다'의 'ㅎ' 받침이 언뜻 닮은꼴인 '낳다'와 헷갈리게끔 합니다. '낫다'는 상황에 따라서 '좋다'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서울한강체를 썼습니다.)
인터넷에선 '짜장면이 낳냐, 짬뽕이 낳냐'(×)처럼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는 '놀이'가 여전히 유행합니다. 어떻게 이런 걸 틀리냐는 생각에서 놀이로 이어졌을 텐데요. 하지만 이런 장난이 어린 학생의 맞춤법 실력에 악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놀이는 재미를 '낳지만', 잘 알고서 즐기는 것이 '낫습니다'.
이번 주 문제입니다. 다음 ' ' 표시된 말 중 맞춤법에 어긋난 것은 어떤 것일까요?
1. 황금알을 '낳은' 거위 2. 좀 무리를 했더니 병이 '났어' 3. 일 그만하고 얼른 병 '나으세요' 4. 이번 여행 장소는 중국이 '낮을까?' 일본이 '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