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호 소설가

조회 수 3349 추천 수 1 2016.07.01 09:31:25

                                                      꿈꾸며 걸어가는 흰옷 입은 사람을 위하여

 

                                                                                                                                                      황충상
                                                                                                                                        소설가. 동리문학원 원장


  글은 글에게 정직하다. 발문을 쓰려는 마음은 이 말에 근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서 나아가 글 쓰는 방법에 있어 격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9편의 단편소설, 14편의 수상(산문) ≪꿈≫을 탐독하며, 나는 의사 소설가 연규호 선생의 실체를 나름 엿보았다. 아픈 육신과 아픈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 슬픈 인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야기꾼, 이것이 연규호 선생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다. 그가 만일 의사로만 전문직을 수행했다면 치료받은 환자와의 관계에서 끝날 얘기들이 소설로 쓰여지면서 히포크라테스선서와 함께 또 다른 신의 영역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영혼과 육체의 상대적 실존은 이성과 감성이 맞불을 켜는 세계다. 영혼의 부조리를 육체가, 육체적 부조리를 영혼이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 현상을 선생은 생체심리실험이다 싶게 소설로 창작해냈다.
  생의 실존에 대하여 별것이 아닌 것처럼 별것으로 읽히게 하는 그의 소설들, 이야말로 글이 글에게 정직한 까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의 작품 감상을 시적 단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다.

 

「뜸뿍새 오빠」

꽃의 딸 하나꼬(花子)의
가슴을 열면
흰 꽃이 피고
붉은 꽃도 피어난다

꽃이 빛의 바람되어
나비에게 왔다
일본 꽃 하나꼬
한국 나비 스티브 김
태극의 사랑으로 하나다

신의 명령이다
하나꼬의 정순한 힘
갱단 총탄에 불구가 된 스티브 김
하늘 지나온 두 민족의 피
기미사마(神)의 사랑

스티브의 하얀 가슴
붉은 사람꽃 새기며 이승을 떠나고
하나꼬상 시어머니 마음문 열고
뜸북새 뻐꾹새
노래를 듣네

 

「서독 광부의 아들」

뜨거운 한국사
아프고 순정한 풍경이다
서독 광부의 검은 땀
천상의 시를 쓰고
한 여자의 두 남자 사랑은
김진박(金眞朴)을 낳았다

기른 김 아버지
낳은 박 아버지
아비는 있고도 없다
없고도 있다

아들아
너는 나의 하늘이고
나는 너의 땅이다
아무렴 마음에 새기거라
아비 속에 어미가 있고
어미 속에 아비가 있다
그리고 조국 한국이 있어

 

「세 친구」

나는 병원장 너는 이사장
그리고 미국 이민 의사
우리는 어릴 적 세 친구

어른이 아이가 되면
시키지 않아도 마음 일을 잘 한다
좋은 마음 일이란
이런 것이다

누가 떠밀지 않았다
얼룩말 한 마리 강에 뛰어들었다
악어들 끌고 가는 얼룩말
그 희생

피의 말씀 딛고
다른 얼룩말들
모두 강을 건넜다

세 친구도 생명을 쥐고
피멍든 이념을 닫고
마음의 강을 건넜다

 

「명의의 조건」

나 너 좋아
치매환자가 의사에게 한 말
마음이 부끄럽다
명의란 봉사도 희생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서로 마음을 열면 천국이라고
내 마음부터 연다
나 너 좋아해

 

「영정사진」

미소를 삶아 먹은
보살의 미소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보게 사진가
내 웃음을 좀 찍어주게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웃음 냄새가 나도록 말일세

미국이민 1·5세 사진작가
김 박사 말에 반해서
마음 내려놓고 찍은 웃음
이승과 저승 넘나드는
영정사진으로
웃음 예술 되었네


「스쳐버린 인연」

죽음을 일으켜 세운
소년의 손
그리고 손은 말하지 않았다
항상 소녀의 하얀
마음을 잡고 있을 뿐
문득 나이 든 어느 날
그 손의 말
마음 무지개로 뜨고
스쳐버린 인연은
손의 말을 들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

 

「꿈_ 트로이메라이」

슈만의 꿈을 아시나요
설리(雪里)
순백의 눈마을 첼로로 듣는 트로이메라이
선율의 음색으로 꿈을 꾸시나요

할아버지 데비드 강은
손자에게 묻고
손자 죠셉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두 바이올린 천재가 답했다

나는 손자다 손자는 나다
나는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손자다
손자의 꿈에서 할아버지가 나오고
할아버지의 꿈에서 손자가 나왔다

 

「상록수의 고향」

희망선교병원 심장수술방
여기 천국이지요
심장벽 천공수술을 끝낸
순애의 눈이
푸르고 푸른 사랑을 보았다
상록수의 사랑을

 

「아, 뉴올리언스」

그때 우린
호텔 하얏트에서 만났어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헤어졌지

유태인 소녀 하얏트
미국이민 한국 소년 리차드
아, 첫 이성을 경험한
풀럼파티

외롭고 슬플 땐 위로 주던 선물
노리개와 옥비녀
돌려드려요
나를 못 보더라도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리차드 사랑했어요 당신의 하얏트

미안해 햐얏트
너무 늦게 온 걸 용서해요
죽음보다 깊은 당신의 사랑 리차드

 

  선생의 작품 문장들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고, 나를 상징 의미를 구사해 본 이 어눌한 시상(詩想)이 선생의 작품들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꿈을 꾸는 글에 대해서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소설에 사족이나 진배없는 감상 시를 붙인 까닭은 선생의 진솔한 서문을 읽고 그 감동에 답하는 일이 이 길임을 밝힌다.
  꿈꾸며 걸어가는 흰옷 입은 사람을 위하여, 나는 그의 문학을 꿈의 선율로 듣고 시(詩)로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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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충북 도안 출생
연세의대 졸업. 미국 내과 전문의사
장편소설 ≪안식처≫ 외 13편. 소설집 3권
한국문협. 국제펜문학 회원
청하문학.미주펜문학. 연세의대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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