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소리』의 격조와 그 향기
-홍마가의 제2시집을 읽으며
강 정 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1. 들어가기
우리는 지금 운문시대(韻文時代)에 살고 있다. 예전부터 시문학은 어느 문학 장르에 앞서 독자를 품에 안고 널리 읽히고 있다. 그 탓에 어딜 가도 시인이 많고 독자도 항상 붐빈다. 아놀드 토인비는 시문학을 ‘미래문학’이라고도 하고, ‘인간존재학’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만치 시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중심으로 인간문제에 천착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격조와 향기를 지녀야 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 시문학은 그야말로 심미적 탐구 없이 신변잡사를 기록하는 일들이 만연해 있다며 빈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장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분과 회원숫자를 보면 6,862명(2016년 회원주소록)이나 된다. 다른 분과에 비해 엄청난 숫자가 등록되어 있다. 이런 빈정거림은 우선 시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시각적 차이도 있겠지만, 시인 스스로 창작적 소이(所以)에 기인함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주변에 문학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글자 그대로의 단어가 조악한 모습으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자가 감상한 홍마가의 시집 『기적 소리』는 자연에 대한 향기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집이다. 화자의 잔잔한 목소리가 독자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면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게 하는 메시지의 소담함이라고 본다. 화자의 시집 내용은 어디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그만의 색깔이 있다. 기도하는 소리, 자연의 소리,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소리,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절대자의 자아를 찾아가는 소리 등이다.
그의 시에는 문(文)은 곧 인(人)이다는 말이 있듯이 문장이 곧 인격의 표현임은 말할 것도 없이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작가의 개성의 진솔한 노출은 자아성찰과 자기투영의 문학이며, 시적 자아인 작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자기 투시의 문학이며, 고백적인 출발도 자아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시는 복잡하지 않다. 서정적 자아나 소설에서의 화자는 실상 허구적인 대리인의 입을 빌려 말을 한다는 점은 비록 생소할지언정, 먼저 인격에 우선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시인 홍마가는 이름에서 의미를 부여하듯 목회자다. 1956년생으로 충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만기제대 후 곧 결혼하고는 미국, 위스콘신주에 정착한다. 그의 부인은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도미하여 병원근무 중이었다. 화자는 위스콘신주에서 사 남매를 낳고 대학선교단체의 간사로 활동하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게 된다.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팔 벌리며 예수의 제자가 되어 어언 30여 년간 목회의 길을 걷고 있다.
2. 본문
이제 이와 같은 모두 필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실례를 작품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시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시인에게는 더 바랄 바가 없다.
하늘을 덮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깃줄들이
슬퍼 보이는 어느 날
후두둑 후두둑
열매 떨어트리는 소리가
내 영혼을 깨운다
깊게 패인
상처 보듬으시는 손길
내 삶을 노랗게 물들이고
사랑의 열매 후두둑 후두둑 떨어트리는
은행나무가 되라는 속삭임 듣는다
-어느 가을날, 전문
은행은 9월 말에서 한 달 동안 수확한다. 그 열매, 사랑의 열매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자신의 영혼을 깨운다고 화자는 노래한다. 어떤 영혼을 깨우는 소리일까. 화자는 자신의 영혼이 얼마만큼 성숙해졌을까를 관조적(觀照的)으로 은행과 비교한다.
봄이오면 은행나무 가지에 앙증맞게 새잎이 터진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초록빛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느덧 초록빛 향연은 가을이 오면서 노란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도공이 노란빛으로 구워낸 도기를 보게 되는 것처럼, 화자도 스스로 절대자의 찬란한 무늬빛 아름다움을 지닌 자기(瓷器)를 구워낸 숨결을 느낀다. 귓가로 절대자 자신의 숨결과 혼을 담아 놓은 하나의 도기가 되라는 속삭임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는 전깃줄이 놓여 있다. 그날 따라 그게 슬프게 보인다는 행(行)에서, 아직도 자신은 절대자에게 청아한 청잣빛 색을 못 내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오월에 피어난
라일락 보랏빛 미소 닮은 당신
바람결에
실려 온 그윽한 꽃향기
기도로 다가오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가녀린 가지임에도
여름을 재촉하는 폭우 이겨내고
하늘을 맑게 수놓던 당신
하늘 향기 받아
온몸으로 주님의 꽃 피우더니
이제는 하늘의 백합화로 피어납니다.
-어머님, 전문
화자는 오월에 핀 보랏빛 라일락이 어머니를 닮았고, 그 꽃향기는 사랑이 깃든 웃음의 기도라고 표현한다. 평생 어머니는 연약한 몸이지만 가족 앞에서는 강철같이 강한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고 없고 이제 화자의 가슴에는 하늘의 소중한 백합화로 자리 잡고, 가슴을 아리게 하고 그리워하는 자성적 시다. 이런 시를 자신을 돌아보는 자조문학(自照文學)이라고 한다.
이런 자조와 자상(仔詳)은 곧 화자의 인격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의 시 어디에서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아니 그의 시 전편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되어 진다. 어쩌면 이런 화자의 삶의 태도가 독자에게 은은하면서도 일면 강한 목소리로 들려 오게 하기도 한다.
충청도 산골 마을
한 아기가 태어났다
사대 독자 귀한 몸
불면 날아갈까 가슴 졸이며 애지중지 키웠다
일본 유학도 행여 어찌 될까 아니 보내고
시골 촌부가 되었다
아버지는 딸 둘이 먼저 태어나자
그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둘째 부인을 얻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아들이 태어나고
네 번째 아들 그리고 다섯 번째 아들이 태어나
어머니는 홍씨 가문의 홍복이었다 (중략)
인생의 허무가 뼈저린 아픔이었나
사대 독자의 과잉보호가 그를 허약하게 하였나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가 한마디라도 하면
밥상은 허공에 나는 비행기가 되고
겨울밤은 도박판에서 밤 지새우고
집과 논밭 모두 날아갈 뻔하였다네 (중략)
초등학교 때 단 한 번
아버지가 자전거 앞에 태우고 읍에 가실 때
아버지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좋았는데
그도 잠시 어느 집에 들어가시고
나는 문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릴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돌아오는 길 뾰로통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략)
언젠가 여름방학
시집간 누나네 집에 어머니와 가며
처음으로 평안함을 느껴보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뒷밭에 팔려고 재배하는
참외를 몰래 먹으며 아버지 드리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며칠 뒤 아버지는 영영 못 돌아올 길을 가셨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보다는 안도의 기쁨이 있었다
뒷산 참외밭에서 참외를 옷에 닦아 먹으며
처음으로 울컥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솟아올랐다 (중략)
*2016년 아버지날 아침
-아버지날의 소회, 일부
삶에 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참으로 묘(妙)한 것이어서 언제나 같은 궤도를 돌고 있다.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발버둥을 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약속을 하건만 세상의 일이란 그게 그거여서, 돌아보면 별로 달라 보이는 것 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극(史劇)을 보면서 가끔 눈물을 찔끔거리고, 분노하며 가슴을 친다. 내가 그런 경우라면 안 그럴 것이라고 다짐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시간과 세월이 지나고 나면 바로 오늘의 거울에, 어제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남아 되풀이하고 있는 역사를 보게 된다. 어쩌면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당시 삶의 모순을 반성하기보다는, 바로 미래를 예시하는 듯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 속에 있는 작가 홍마가는 목욕탕에 앉아 있는 듯하다. 목욕탕에 가면 자신의 육체를 가리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다 벗어야 한다. 화자가 벗는다는 것은 가려진 몸을 닦을 수 있고, 닦아야 그 속에 도사린 사심(蛇心. 私心. 邪心)들이 씻겨질 수 있다는 의미를 알고 있다. 그만큼 씻어야 할 멍에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우리들의 관념의 세계에 대한 일탈이리라 싶다. 화자의 옷 벗음은 그의 인격이요, 만남이요, 허구가 아닌 삶의 과정의 축도라고 해도 좋을 만하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천 리 길 달려온 나그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거대한
호두나무 아래
멍석 깔아놓고
이야기꽃 정겹던
남도의 마을
언제나 안기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
머나먼 이국땅
천 리 길을 달려왔어도
호두나무 보이지 않네
바가지에 잔치국수 말아주던
볕에 그을린 아낙의 순박한 웃음이 그립다
-남도의 추억, 전문
고향을 찾으면 옛날의 흔적을 먼저 찾게 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적당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이따금 옛날의 건물을 찾게 되고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나를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작가적 현실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천 리 길을 달려왔어도 호두나무는 보이지 않네/바가지에 잔치국수 말아주던 볕에 그을린 아낙의 순박한 웃음이 그립다// ‘나’라고 하는 화자는 정신적이든 현실적이든 그리움이 사라져 버린 자리에서 ‘자아’의 만남을 시도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비교함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에 두고, 너른 사색의 채를 통해 정서와 사상을 담게 시도하고 있다. 일테면 일상의 보편적인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음을 보게 한다. 이런 보통의 이야기가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생, 보편적 삶은 일체의 가식이나 허구를 동반하지 아니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의미화하고 있다.
새벽을
깨우는 기적 소리
작별이 아쉬워 길게 울어본다
이제는 떠남의 시간
기지개 크게 켠 후
검은 동체를 이끌면서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얼마쯤
달려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
먼 여정에 외로운 나그네
오늘의 바쁜 일상 마치면
그 나라로
나도 기적 소리 울리며 떠날 것이다
*친구의 삶을 추모하며
-기적 소리, 전문
친구의 주검을 보며 세월이 떠나가는 소리, 작별이 아쉬워하는 소리를 내며 먼 여정을 달려간다고 표현했다. 화자는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돈 이순(耳順)이고 얼마 있지 않아 종심(從心)이 될 것이다. 언젠가 화자도 기적 소리를 내며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떠날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유년 때의 첫사랑이 있었고, 첫사랑의 소녀와 뚝방길을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소담스레 기억하고 있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함박눈에도 첫사랑의 소녀가 눈에 아련하게 밟혀 온다.
이게 인생이다. 우리가 삶아가는 참모습이다. 친구의 생을 마감을 단조로운 묘사가 아니라 그 속에 삶을 달관한 통찰한 단어, 날카로운 인생과 삶이 묻어나와 있다. 파스칼의 ⟪팡세⟫의 첫 장에는 인간의 두 정신을 말한다. 섬세의 정신과 기하학의 정신이다. 여기서 섬세의 정신은 자신을 향한 구심력의 정신이고, 기하학의 정신은 육체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부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영혼의 눈이 필요하다. 화자는 꿈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장(章)을 펼칠 수 있는 본능적 의도를 바탕에 깔고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으리라 싶다. 그게 아니고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진실과 허위라는 대비적인 개념으로 사회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혹, 아무리 믿기를 강요해도 불안과 의혹의 눈초리를 갖게끔 하는 이 사회의 병리 현상에 스스로 혼돈과 지난(至難)한 고통에 빠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숨은 그림찾기라는 절대자를 향한 미로를 찾아 30여 년 동안을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3. 나가기
그의 제2시집 『기적 소리』를 읽으면, 역사의 흐름 앞에 못남과 두려움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모습이 외유내강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시집에는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가고 앞으로도 살아갈 진솔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화자는 앞으로도 상장 하나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비칠지언정, 자신이 섬기는 절대자의 종으로 살아갈 것이다. 바로 그것이 화자의 참모습일 것이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향기일 것이리라.
작가 홍마가는 오늘도 내면의 소리를 찾아 고요한 호숫가를 거닐며 꽃들을 보며 자연의 소리, 세상 소리, 내 안에 있는 소리를 들으려 할 것이다. 어쩌면 ‘무소유’의 삶이랄까, 명리(命理)와 시속을 쫓아 무리를 지어 밀리고 밀리는 세상 인심을 저만치 두고,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원정(園丁)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화자인 작가의 인격을 이 두 번째 시집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잠시 『기적 소리』를 읽으며 서경적 향기에 취하게 해준 작가의 노고가 우리의 시문단에 발자취를 남길 일이라 여겨진다. 기꺼운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끝)
약력: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졸업
미드웨스턴 신학대학 박사과정 중
메디슨대학 공동체교회 담임
2013년 크리스천문학 수필부문 등단
2014년 크리스천문학 시부문 등단
2015년 크리스천문학 작가상 수상
활천문학 회원
한국문협 및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시카고문협 회원
역서:
『 영광스러운 상처 』
저서:
『 민들레 홀씨의 노래 』
『기적 소리 』
『기적 소리』홍마가 (시인)목사님!
반갑습니다!
11월 29일「한미문단」출판 기념식 옆자리에서 나눈 정담과 싸인한 시집을 잘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12월 12일 오후 3시 30분 LA 공항 검색대(TSA)에서 나의 모든 보물이 저장된 컴퓨터를 분실하여
하늘이 노랗게 망연자실 하다가 (TSA)에 분실 신고 하였더니,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배달 되어
늦게나마 찾아온 댓글 마당에서 성탄과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물론 전화기로도 컴퓨터 대용품으로 댓글쯤은 올릴 수가 있었으나 내 정신 아닌 탓으로 넉놓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2016년도 마지막 날 앞으로『기적 소리』울리며 종착역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기적 소리』는 처음이며 끝이라 2016년과 2017년의 틈새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년말과 새해에도 건강하시며 2016년에 만났듯이 2017년에도 『기적 소리』 울리며 다시 만나 볼 것을 기약합시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원 여러분들께도 늘 몸 건강하여 저마다 타고난 문학의 향기가 천리 만리로 퍼져나기를 축원합니다.
알래스카에서
설천. 서용덕올림
자연이나 시장등 여러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나타낸 시인의 음성을 세세히 날카롭게 들으시고
자상한 평설로 펼쳐주셔서 이해애 도움이 됩니다. 특히 '어느 가을 날'에서 은행이 떨어지는 소리에서느낀
시인의 소회를 해석한 데서 강정실 문학평론가님의 숨결도 느껴지구요, '전선이 슬퍼보인다'는 해석이 유니크하게
보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