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소설가

조회 수 3321 추천 수 1 2017.12.29 20:33:55

                                                         값없는 두메꽃처럼 살고 싶어라


                                                                                                                                            최 인 호 소설가


  최민순 신부님이 지은 ‘두메꽃’이란 시를 본 것은 1994년 1월이었다. 이한택 주교님의 지도 아래 한 달간 성 이냐시오의 영성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예수회 신학생들과 피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기숙사 벽면에 걸려 있는 ‘두메꽃’이란 시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두메꽃’을 또다시 만나게 된 것은 배론 성지에 있는 피정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꽃밭 위 석비에 새겨진 시의 전문을 발견하게 되면서였다.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만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 숨어서 피고 싶어라.


   -최민순의 두메꽃 전문


  이따금 배론 성지의 피정의 집 ‘두메꽃’에 갈 때마다 나는 신부님의 시를 하루에도 몇 번씩 읊고 외우면서 뜻을 가슴 깊이 새기곤 한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은 ‘두메꽃’과는 정반대의 삶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의 광장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벌에게 인정받고 나비에게 돋보이려고 기를 쓰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가 조금이라도 벗겨 가면 악착같이 그 화제의 중심에 다시 서려 하였으며, 매스컴에 이름이 끊임없이 호출되어야만 출석부를 체크한 학생처럼 마음이 놓였고, 항상 나에 대한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온갖 찬탄과 박수 소리, 선망의 시선에서 멀어진다 싶으면 불안하고 소외감을 느꼈던 전형적인 속물적인 삶의 연속이었다.
  어느 정도 세속적인 성공을 거둬서 한때 <성공시대>란 프로그램의 출연 요청을 받기도 했으며, 지금의 암과의 투병이 뉴스로서의 가치를 더 상승시켰는지 특집 프로그램 같은 데서 집요한 요청을 받고 있다.
  주님께서 40일간 단식하셨을 때 악마가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사이에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주며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눅4:6)라고 유혹한다. 악마는 ‘저 화려한 권력과 명예는 자기가 받은 것’이라고 단언하고 “만일 내 앞에 엎드려 절만 하며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오.”라고 약속한다. 그렇게 보면 내가 얻은 세속의 명예와 화려한 영광은 악마에게 끊임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했던 우상숭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최인호의 인생』11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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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최인호(崔仁浩)(1945년~2013년).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2년 단편〈벽구멍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작 입선. 1967년 단편〈견습환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2년〈깊고 푸른 밤>으로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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