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중력, 그리고 서정의 은총
한분순 시인
(한국문협 본부 부이사장)
웃는 철학자를 기다리는 시대이다. 데모크리토스가 즐거움을 인생의 이념으로 설파한 이래 현재는 그러한 삶에의 포용력을 지닌
선구자가 사라지고 있다. 이 시점에 문학의 의무는 그 밝음의 부재를 채우는 것이다. 희극적 자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는 시심이 요청된다. 현대시는 생활의 발견에 몰두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을 토로하는 것이 문학의 주류가 되어 있으나 그러는 가운데 놓친 인간계에 대한 농익은 관조가 절실한 요즘이다.
임선철의 작품이 돋보이는 까닭은 생활과 혜안의 접점을 훌륭히 찾아낸 데에 있다. 밥을 먹거나 그냥 누워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지극히 흔한 순간에서 번뜩이는 깨달음을 포획하는 것이다. 삶의 애환이 있으나 그 절절함을 넋두리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감과 위로를 동시에 확보한다. 현대시가 서정시의 부활을 맞이하며 일상의 편린에만 관심을 두는 경향 속에서
문학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사회적 위안을 선사하는 임선철의 작품은 주목할 만하다. 문학의 트렌드에 부합하면서 또한 문학의
미래를 제안하는 수려한 필력을 지닌 것이다. 랭보는 전적으로 근대적이어야 한다고 시에 썼다. 이명제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시인은 지금에 휩쓸리지 않고 나아갈 바를 제안해야 한다. 시몬 베유가 중력과 은총을 언급한 것은 문학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으나 현대시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쓸 수도 있다. 서정이라는 포장으로 가벼워지는 현대시에 알맞은 중력을 더하면서 동시대
독자들의 심장에 가 닿는 문장을 세련되게 표출한 것이 신인상 당선의 훌륭한 연유이다. 산문의 철학과 운문의 울림을 겸비한
솜씨는 장르의 신선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임선철의 작품으로 현대시는 새로운 은총을 발견하였다.
식탁이 있는 풍경
손가락에도 깊은 우주가 있어
별과 강물 흔들리는 골짜기에
떠 있는 작고 푸른 이파리 하나
돌 맞는 아기 입술 같이 피어난다
국물 속 밥알처럼 떠돌다가
아침 일곱 시, 따뜻한 된장국에 밥 말아 먹고
시작한 오늘도 끈질긴 하루
백이십 년을 이방 땅만 돌아다녔다는 야곱은
열두 아들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밤하늘의 닮은 아이의 바지를 털면
별이 밥풀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숟가락마다 굳은 다짐이 있어
반짝반짝 작은 별 말랑말랑한 입술이
내 마른 입술에 포개질 때마다
지구는 자전을 멈추고 우주는 폭발한다
그래, 물고기야
침대에 누워 물끄러미 하늘을 보던 아이가 부른다. 아빠 저 구름 말 같아,
읽던 글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다가가 창밖을 본다. 유월의 아침 하늘 위로 물고기 한 마리 헤엄치고 있다. 물고기 같은데, 하고
말하니 아이는, 그래 물고기야, 하며 내 눈을 바라본다. 아이와 함께 누워 다시 자세히 보니 말이 달리고 있다. 말이구나, 하고 아이와
눈을 맞춘다. 아이는, 아빠, 물고기에
발이 있어, 하고 까르르 웃는다. 아이의 눈 속에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그래 정말 물고기가 뛰어가고 있네, 하고 함께 하늘을
올려보니, 어느새 말은 어디론가 달려가 버리고 새소리와 장미향기 방안에 가득하다.
우리 집 퍼스트 그레이드 베이비는 엄마의 설거지를 도와줄 마우스 친구를 두고 싶은 프린세스. 요정들에게 집을 점령 당한 엄마가 잠을 자는 동안, 반쯤 열어놓은 창문으로 언젠가는 요정처럼 날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피시처럼 달려가고 호스처럼 헤엄치다 가시에 찔려 아파하는 날도 있겠지, 그러다 언젠가 아빠와 함께 누워 아침 하늘을 보던 오늘 그리워하는 날도 오겠지. 내가 물고기야 하면, 그래, 물고기야 하고 말해 주던 그 맑고 투명한 힘으로 나는 오늘을 살았다 말할 수 있겠다.
봄밤, 도레미파 우리 집
종일 궁리하다 아내에게 말했다
달은 인류가 밤을 말아 던지고 놀던 흔적이야
아내는 한 손에 주걱을 쥐고 답했다
월세야, 밀리지 말고 꼭 내라고 있는거야
지하실에 세 살던 아줌마네가 나가고 난 뒤
계단은 더 맑게 우는 건반이 되었다.
문을 열자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
장난감 강아지기 식탁 위를 걸어가다 넘어진다.
집을 비워달란 요청에 부질없는 약속을 했다
수화기 너머 남자는 넷이라는 숫자에 말이 없다
아내는 월셋돈을 세듯 집주인에게 할 말을 고르고
창 밖엔 겨울을 버틴 목련이 어두워져 가고 있다
보름달처럼 봄이 멍울 맺히고 있다
어둠이 어둠을 밀어 하양 꽃을 피우고 있다.
며칠 새 늘어난 흰머리는
분명 내 속에 있던 어둠이었을 것이다
내 두 주먹 안에서 꿈틀대던 어둠과
위장에서 치밀어 오르던 어둠들이 교신하는 봄밤
혈관을 타고 툭툭 터지는 저!
약력: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rooklyn College, CUNY. Computer Science Master
2015년 뉴욕문학 신인상
2016년 <한미문단> 신인상
2017년 2월의 '오늘의 작가'
임선철 시인님
반갑습니다.
멀리 뉴욕, 뉴욕!
뉴욕하면 지인으로는 곽상희 시인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또 인연이 되어 지난 11월 29일 밤 LA에서 첫 만남이 되었지요.
그 날 그 때 곽상희 시인님의 친필 싸인 시집을 전해주시던 모습
반갑고 기뻐습니다.
이제 뉴욕 뉴욕에는 '오늘의 작가' 임선철 시인님과
"어둠이 어둠을 밀어낸
하얀꽃이 흰머리" 가 되도록
"혈관을 타고 툭툭 터지는"
문향이 뉴욕 '임선철' 시인님과 함께 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정말 또 이렇게 조우하니 반갑습니다.
알래스카에서
설천. 서용덕 올림
임선철 시인님, 잘 읽고 있습니다.이야기가 있는 산문 형식, 내재율이 있는 메타포, 이 모든 것들이 시를 감상하는데 힘이 됩니다.
따뜻한 온기가 퍼져와 마음 따스해지네요.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이렇게 매 달, 오늘의 작가를 선정해 올려주시는 웹관리자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작가' 때문에 편안하게 훌륭한 작품을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