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소설집『검은 머리』그 의미에 대한 소고
강 정 실
(문학평론가.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장)
1. 문학이라는 강 건너기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의 강을 건너왔다. 한 권의 소설책에 연필로 표시하며 밤새도록 읽고 나룻배의 노를 젓는 사공과 같이 또 다른 책 읽기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새로이 맞이한 또 다른 디지털 시대의 강은 엄청난 속도로 흐르고, 세상을 변하게 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오늘의 작가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있다. 바로 ‘시대’라는 현실의 강(江)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인간성 상실’이라는 추상화된 개념으로 인식한다. 개인주의 팽배와 물질만능 사고가 만연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교회의 첨탑(尖塔)은 자꾸만 하늘을 향해 치솟고 찬송가는 더 힘차게 울러 퍼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악은 끊이기는커녕 갈수록 더 흉포해지고, 그 양상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싶다.
그래선지 어느 때보다도 참된 인간이길 소망하는 우리의 바람은 문학인 이전 인간에 대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늘진 구석은 있기 마련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문학인이 한발 앞선 시속(時俗)에 편성하며 그 강에 앵커를 내리는 부끄러운 작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건너가고 있는 소설의 강은 도대체 어떠한 강일까. 이런 문제에 착목(着目)하여 소설가 제봉주의 소설세계를 향한 여행을 떠나 보고자 한다.
2. 작품 세 편에 나타난 작가의 의식세계
제봉주의 소설집 『검은 머리』는 전체가 1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대부분은 삼인칭 화자가 서술하는 우리의 전통사상과 인간 내면의식에 바탕을 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를 잊어버린 사회, 인정이 몰각된 사회, 현대에 이르러 휴머니티가 새삼스레 논의되고, 사람 사는 진솔한 향기와 함께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결국, 인간문제와 존재의미를 탐색하고 그 안에서 삶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아울러 독자를 잔잔한 감동의 세계로 이끄는 잔잔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전체 작품의 테마는 사랑이다. 입양아에 대한 양모의 사랑, 죽어가는 부인이 남편에 대한 사랑, 선천성 3급 지능장애자의 사랑 등 인간애에 근거한 휴머니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입양아의 의식과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행태, 장애자의 사랑에서 작가는 이 시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기념 선물’ 등장인물에서 보이는 문제점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상대방의 의사타진 없이 강행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일방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세 편을 분석해 보자.
새날이 밝았다. 영숙은 남편이 운전하는 차가 집을 떠나기 전 차창을 열고 정든 집을 봤다. 병원에 도착하여 시티(CT) 촬영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병상에 누어 눈을 감았다. 의사가 들어 왔다. 그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그는 차분하고 믿음이 가는 어조로 말했다. 시티(CT) 필름을 세밀히 지적하며 설명했다. “전이성 악성 종양 척추암’입니다. “척추신경과 뇌에까지 전이되었습니다. 즉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결과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의사를 믿어 주십시오. 수술 선택은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의사의 말투가 무거웠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이었다. 내일 즉시 입원하고 스케줄을 잡아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라고 했다.
-‘결혼기념 선물’ 중
두 가지 치명적 병을 앓고 있는 전영숙은 척추 손상에 의한 하반신 마비와 ‘전이성 악성 종양 척추암’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예감하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1년 넘게 자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40대 히스패닉 여인 마리아와 마리아의 딸 글로리아를 자세히 살핀다. 동거남과 헤어진 마리아가 딸을 데리고 생활하는 상황과 심성이 고운 것을 파악한 뒤 그녀는 마음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녀는 남편 전석준에게 결혼기념으로 받은 잠옷 드레스를 마리아에게 선물하고, 글로리아와 함께 같은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드레스의 내용을 알게 된 마리아는 당황하며 되돌려 준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 밤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옆벽을 똑똑 두드려요. 알겠지요.”라고 말하며 드레스를 직접 전해 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남편이 평생 소원했던 아들을 대신 낳아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평자는 어릴 때 TV를 보며 즐겼던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작가 제봉주는 눈으로 보았거나 체험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화소를 자기화함으로써 얻어낸 의미화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낯익고 정겨운 생각과 대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낯익다’는 말은 평범이라는 말과 등거리(等距離)를 함께 소유한다. 그 평범은 평범함 그 자체로만 머무르지 않고 사물화로 전환 시키는 장점을 화자는 가지고 있다.
시멘 여사 앞 미용사가 금발머리 염색 샘플을 들고 왔다.
“아닌데요, 까만색으로 해줘요.”
시멘 여사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시멘 여사와 애린, 두 모녀 입에서 같은 대답이 동시에 나왔다. 그때 애린이 울먹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마미. 안 돼, 마미는 금발이야. 하나님이 주신 거야.” 애린이 애절하고 다급하게 부르짖는 소리가 미장원 안에 울려 퍼졌다. 미장원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듣고 있던 시멘 여사는 너무도 놀랐다.
-‘검은 머리’ 중
애린이는 입양된 사실을 모르고 자신의 검은 머리로 입학한다. 그런데 다른 두 학생에게서 찢어진 눈, 머리카락 쓸어 올리는 행태의 따돌림을 받게 된다. 상처를 입은 애린이는 자신도 금발 머리로 염색하고 학교에 다닌다. 이것을 본 양모 시멘 여사는 학교 선생님에게 애린의 처지를 설명한다. 담임선생은 입양사실을 애린에게 알리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시멘 여사는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두도록 부탁하기에까지 이른다.
이후 시멘 여사는 애린에게 입양하게 된 동기를 자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시멘 여사에게 아기가 없었던 이야기에서부터 인종별 피부색과 머리 색깔, 눈과 코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한국 사람은 모두 검은 머리로 태어났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설득시켜 나간다.
이 문장 뒤의 화법은 화자가 가지고 있는 가변적(可變的) 상상력이 동원된다. 애린이의 첫 도전적이고 생리적인 질문이다. “마미는 배가 아프지 않아서 좋았겠다.” 이에 시멘 여사의 대답 또한 걸작이다. “그래, 하나님의 배도 아프지 않고 예쁜 딸을 나에게 주어 정말 감사했어.”라고 긍정적으로 되받아치는 기법이다.
최고조는 미용실에서 애린이가 평소에 늘 하던 금발이 아닌 검은색으로 염색, 시멘 여사는 본연의 금발에서 애린이를 위해 검은색 염색을 원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시멘 여사와 애린이의 대화다. //그때 애린이가 울먹이면서 큰소리로 애절하고 다급하게 외쳤다. “마미. 안 돼, 마미는 금발이야. 하나님이 주신 거야.”//
예술가의 가슴 속엔 자그마한 연못 하나씩을 가지고 살아간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흘려보내는 자잘한 일들도 예술가의 연못에는 별세상이 다 모여 있다. 그 연못에 물이 찰랑거리게 되면 소설가는 이야기로, 시인이나 성악가는 의미가 담긴 노래로, 수필가는 사색의 두레박으로 가슴에 고인 물을 퍼올리며 일희일비한다. 그 연못은 언제나 마르는 법이 없어서 퍼올리고 퍼올려도 끊임없이 고여 생명이 남아 숨 쉬는 한 마르지 않는 그런 연못 말이다. 이렇듯이 작가 제봉주는 검은색 연못과 금발색 연못이 하나가 되는 미세한 인간적 보편적 진리와 질서에 혼회유일하여 발효된 과정을 보여준다.
평자의 머릿속에서 맴돈 것은 바로 이런 사색의 두레박으로 퍼올린 것은 사랑의 파동이다. 작가 제봉주는 자잘한 일상의 화소(話素)를 글로 구성하면서 그 속에 담겨진 작가정신은 이슬방울처럼 빛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비록 대가의 작품이 아닐지라도, 연못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금붕어와도 같은 오롱조롱함이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모든 인생살이는 물론이고 예술의 근간도 인생에 대한 사랑, 그것이다. 사랑이란 밑거름 없이는 피어나지 않는 꽃일 뿐이리라.
영구는 생각할 틈도 없이 덩치 큰 흑인 여자에게 덮쳐들었다. 영구는 “꽥” 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너무도 흥분하여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의 얼굴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거리는 성난 맹수 같았다. 산드라 앞에 가로막고 버티고 섰다. 덩치 큰 흑인 여자가 그를 행해서 주먹을 휘둘러 날렸다. 얼굴을 때렸다.
“바보 자식 어디 한번 덤벼 봐.”
영구가 얻어맞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본 산드라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왜 때려, 왜 바보라고 욕해, 그는 바보가 아냐, 비질도 하고 가격표도 잘 붙여, 못 하는 것이 없어.” 하면서 달려들자 더 큰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사랑(Amor)이란 로고’ 중
변말숙은 남편 변기훈과 함께 선천성 3급 지능장애인이며 7살 정도의 정신연령인 26세의 아들 영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여자옷 가게를 하고 있는데, 종업원은 과테말라 처녀이며 24살 정도의 불법체류자 산드라와 그 외 이르마와 함께 일하고 있다.
영구는 항상 자기감정의 울타리에 갇혀 생활한다. 감정에 대한 노출이 직설적이라 주위에서는 당황할 때가 많다. 영구는 종업원 산드라를 마음에 두는데 그 행동방식이 좌충우돌한다. 영구는 주중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두뇌 재활교육을 받는데, 학교보다는 가게에서 산드라를 보며 옆에 있기 좋아한다.
하루는 옷가게에서 흑인 여자가 옷을 훔치는 것을 산드라가 보고 흑인 여자와 승강이를 벌이다 밀려 바닥에 쓰러진다. 이것을 본 영구가 흑인 여자에게 달려들자, 흑인 여자는 영구를 향해 “바보 자식!”이라 외치자, 이에 산드라가 영구를 적극 대변하다 더 큰 소란이 일어난다.
변말숙 여사는 영구의 27번째 생일에 종업원을 집에 초대한다. 산드라가 영구의 생일 선물을 하는데, 티셔츠 앞가슴에는 다름 아닌 큼직한 하트, 사랑(Amor)라는 빨간 글씨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옆에 있는 다른 종업원 이르마가 영구에게 “산드라가 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해 준다. 작가의 의도대로 사랑의 종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하트 모양의 사랑,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한다.
소설가 제봉주는 자신이 평생 일했던 의류업은 생활 방편이었을 것이다. 이미 그 일은 은퇴했지만, 의류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도 불꽃과도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난 세월의 깃털이 빠진 채 박제되어 버린 동물 같은 무수한 발자국에 짓밟힌 눈길을 너무 많이 보아온 까닭이리라.
이 '사랑(Amor)이란 로고'는 2016년 5월호(통권 202호)『한국소설』 신인상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 소설 또한 제봉주의 농익은 의미화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평론가 김윤식은 축제(1966년)에서 삶이 지녀야 할 기품, 곧 사랑(부끄러움)이라 불리는 인간적 품격은 어김없이 강물이 흐르듯, 꽃이 지고 피듯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어짐은 자연 그대로임을 보여 준다. 그게 사랑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김소운은 “보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 속에, 그린 이의 마음이 담겼다고 해서 그것이 어느 화가의 사유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했다. 미셸 푸코는 “글 쓰는 주체는 자신과 자신이 쓰는 글 사이에 설정하여, 자신의 특별한 개성을 보여주는 기호를 은폐시킨다.”고 했다.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다름 아닌 열린 담론(談論)이다. 이는 통제된 무질서, 복합적인 요소들의 유기적 결합, 카오스모스(chaosmos)의 시학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사유적 행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애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일 게다.
3. 나가기
제봉주의 소설을 읽으면 가물대는 등불을 이용해 반대편 벽 위에 내 얼굴을 그려놓기도 하고, 두 손으로 재미있는 동물의 얼굴을 그려 놓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 당시의 달밤에는 엄청난 거인 같은 그림자가 길게 앞서 가던 시절이었다. 그 그림자는 허상일 뿐이지만, 실체가 드리우지 않고는 만들어지지 않았던 소박했던 어린 시절의 얼굴 말이다. 소동파의 전신기(傳神記)이던가. 어느 날 벗들과 앉아 옆에 있던 사람을 시켜 벽으로 가서 그 그림자의 윤곽을 그리게 했다. 눈썹과 눈을 미처 그리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 웃어댔다. 다들 자기 모습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그림자는 실상이 빚어낸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연출가의 기법에 따라 변형과 왜곡이 일어난다. 13편의 소설 내용 모두가 허상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있지만, 이 모두는 우리가 그려내고 있는 실재적 내면이며, 자화상일 것이다. 바로 소설문학이 갖는 자기관조, 자기 성찰의 미학에 충실하면서도 이 혼돈의 시대에 열린 의식으로 대상과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해주는 관조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는 소박한 독서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꿈, 열 개비 성냥에 열 개의 불꽃처럼 잠재되어 있다. 누군가 그 잠들어 있는 열 개비에 성냥을 긋지 아니하면 영원히 고체인 채 빛을 발하지 못하는 불꽃의 잠재다.
소설가 제봉주에게 남은 문제가 있다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기정련을 부단히 해야 한다. 그 길은 감상성에서 벗어난, 삶의 문제에 깊이 천착할 문제의식이나 작가의식에 발견을 위한 험난한 여정이다. 문학을 위해 자신의 살을 과감히 도려내는 아픔을 수방(守防)해야 한다. 목공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벗겨 내듯, 작가는 자신이 창조해 낸 문장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어야 하는 과감한 수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
소설작가 제봉주는 전 미주의 문단에 격조 높은 향기를 뿜어내고, 그의 노고가 영원한 족적을 남기고 새로운 장을 열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경남 진주 출생
한국문협 미주지회 소설당선
(사)한국소설 신인상 당선
한국문협 미주지회 소설분과 위원장
<검은 머리> 제봉주 소설가님
반갑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소설"이며
소설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허상 속에 실상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같은 자화상이, 소설가의 언어 유회 연금술이라
강정실 지회장님의 날카로운 평설 또한 과거와 현대시대를 잘 표현하고 있어 더욱 돋보입니다.
<검은 머리>에서 하얀 머리. 노란 머리. 빨간 머리가, 모두 검은 머리로 염색하겠다는
이야기는 이기심보다 이타심으로 세상에 알리는 행위 예술입니다. 그보다도 13편의 이야기가
더욱 갈급하여 집니다. 이북(전자책)을 보면서 차근차근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것에
몰두하겠습니다.
제봉주 소설가님과 강정실 평론가님이 만나는 이곳, 바로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는 팔팔하고 싱싱합니다. 더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이곳에 등록하신 회원 여러분들과 쉬지 않고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알래스카에서
서용덕 올림
강정실 회장님의 따스한 인간애에 눈길을 주신 소설평론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인 듯 합니다.
제봉주 소설가님이 아마도 다양한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그런 휴매니티를 드러내어
어쩌면 우리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성정을 되찾고자 하는 듯이 보이구요.
입양녀 애린과 양모 사이에 흐르는 이해심,
어린 딸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까지 한 정성,
불치의 병으로 자신의 임종을 예감하며, 자신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을 베푸는 부인,
정신지체자와 불법 체류자의 순수한 애정 등 좀 어딘가 허전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인간애를
주제로 택하심은 작가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보다 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멧세지를 주신 듯 합니다.
작품의 등장인물, 배경이 다양성을 보여 소설의 지평을 넓히신 듯 합니다.
평론가님 작가님 삭막한 사회의 따스한 면을 보여주셔서 감동받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후속 작품 기대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