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길 / 박양근

조회 수 793 추천 수 0 2017.08.20 16:31:54

                                                        

                                                          글의 길 / 박양근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가 나를 찾아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찾아 나서는 경우다. 친구가 찾아오든, 내가 나서든 서로 만나는 기쁨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쁨의 정도가 다르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 찾아 나설 때 훨씬 흐뭇한 여운을 맛본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를 바 없다.


나는 글쓰기를 길을 나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굳이 먼 길이 아니라도 좋을 듯싶다.​ 바라기의 대상은 원근을 가리지 않으니까. 무엇을 찾느냐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일상생활이 단조롭더라도 눈을 뜨고 찬찬히 살펴보면 경이로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래서 길을 나서는 것이다.


간혹 바다를 찾아 나설 때가 있다. 먼 기억에서 맴도는 상상의 연줄을 낚아채지 못하여 답답할 때 취하는 내 나름의 바람쐬기다. 하늘과 바다를 사이에 둔 수평선을 마냥 바라보면 온몸과 마음에서 긴장이 풀려나간다. 파도소리를 들으면 귀가 쉬고, 바람이 불면 마음이 쉬는 바다, 그 비움을 얻기 위해 일부러 해변 길을 더듬곤 한다. 어느 순간, 갈매기가 수면에 맞닿을 듯 내려왔다가 창공을 오르면 머뭇거리던 글감이 와락 품에 안긴다. 슬프게도 그런 기회는 너무나 적다. 하지만 그 가냘픈 희망이 있어 달빛이 비치거나 폭풍이 닥치면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나서게 된다. ​


그런 후에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곳은 저녁 무렵의 연구실이다. 전화벨 소리도, 노트북 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이 쓸쓸하면서도 편안하다. 그 분위기에 젖어 밥도 먹지 않고 차도 마시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며 글과 밀회를 나눈다. 멀어졌던 옛 친구가 찾아오고 잊어버렸던 만년필도 되찾고,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던 사람도 만난다. 새롭지 않고 군더더기가 끼여도 세세히 꼬집지는 않는다. 꼬집다 보면 달아나 버릴까 염려해서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기발하거나 산뜻한 것도 아니지만)을 따라잡으려다 오타나 악필은 어쩔 수가 없다. 며칠이 지나도 내 필체가 나에게조차 낯설어지기 때문에 다른 일을 제쳐두고 글을 쓰는 것이다.


초벌 글을 널찍하게 펼쳐둔다. 전체를 훑어보면서 주제와 소재가 어울리는지, 경험과 느낌이 균형을 이루는지를 우선 저울질한다. 뭔가 하나쯤 더 넣었으면 싶다. 아니면 글이 널뛰듯 요동치는 것 같다. 그 때는 아침 산책을 나선다.


등산로 입구가 반질거릴 정도로 다져 있다. 석축을 쌓고 정원수를 심어 단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깔끔하다. 수필에 비하면 한껏 우려먹은 글감처럼 신선하지 못하다. 반대로 이야기하여도​ 되겠다. 이미 다루었거나 수차례 발라낸 글은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버린 산길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인적이 드문 오솔길로 들어선다. 길섶에는 솔잎이 두툼하게 깔려 있고, 밤 사이에 쳐진 거미줄에 햇살이 걸려 반짝거린다. 느릿느릿 걷기도 하고 주저앉아 썩어버린 둥치를 쳐다보기도 한다. 나뭇가지에 앉은 청설모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나를 지켜보며 수인사를 건넨다. 그럴 때면 책에서 읽었던 괜찮은 문구가 다시 떠오르고 촉촉하던 어떤 한 때가 이유도 없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


산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무엇이라도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앙금, 생채기, 미련​… 그런 것도 종이에 적어둔다. 메모지가 없어 잊어버려도 마음속 어디엔가 갈무리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밀려오는 착상을 계속 접붙인다. 왜 그럴까, 가슴을 두드려보기도 한다. 발길은 여유로운데 사색의 윤전기는 쉴 줄을 모른다. 소재에 대한 삭히기의 시간이 이때다.


그 날 저녁에는 퇴고를 한다. 산책 도중에 떠오른 생각이나 상념,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버무리면서 글에 살을 보탠다. 되풀이 고치는 재미는 태아가 발을 톡톡 차거나 젖먹이를 투실하게 키워 가는 맛에 버금할 듯하다. 그렇게 굴리며 다지는 동안에 무엇이라는 주제가 뚜렷해진다.


다음으로 군더더기 수식이나 문장을 깎아내는 작업을 한다. 눈사람은 깎아야 모양이 갖추어지는 법이다. 조각도 흙을 붙였다가 다시 깎아내는 작업이 아닌가. 최근에 나는 덧붙이고 덧씌운 글(확장형 문장)보다 잘라내고, 깎아내고, 버리는 과정(축소형 문장)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기억의 조각을 모아 모자이크를 만드는 과정이 내 글의 엮기인지 모르겠다. 그것만이라도 알았으니 만시지탄일지라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면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서너 달 정도는 걸린다. 일주일을 꼬박 낑낑거려야 서두의 한 단락이 뽑혀질 때도 있다. 그러나 태아는 10달이 되어야 세상 빛을 본다는데 내 글은 조산(早産)치고도 초조산이다. 간혹 사산되는 경우도 생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꼭 쓰고 싶은 소재에 유리창에 핀 성애가 있다. 제목까지 정했는데 아직도 몇 개의 중심어밖에 찾지 못했다. 언제쯤이면 출산할 수 있을까.


수필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나름의 세 가지 각오를 지니고 있다. 남이 본 대로 보지 않고, 남이 해석한 것처럼 풀어내지 않고, 남이 표현한 것과 다르게 엮는다는 다짐이다. 한 편의 글도 서로 달라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쓰는 수필은 주제든, 소재든, 기법이든, 무엇이라도 먼저 것과 다르면 싶다. 재주도 없는 것이 요령만 피운다고 나무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쓰고 싶은 것이 내 조그만 소망이다.


그렇게 씌어진 내 글이 감동과 공감으로 독자의 마음속에서 늘 꿈틀거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 욕심을 비워내기가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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