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붓 가는 데로 쓰는 글이 아니다
<수필쓰기 이론과 실제>에서 알아보는 '수필의 정의'
03.07.14 09:07l최종 업데이트 03.07.14 10:55l조성연(choshep)
 
수필쓰기의 이론과 실제
ⓒ 조성연 수필은 아무나 쓰는 것이며, 붓 가는 데로 쓰는 것으로 알지만, 수필만큼 쓰기가 어려운 글도 없다. 따라서 수필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그 정의부터 잘 알아야 한다.


수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마다 보는 견해 차이가 조금씩 있어서 다소 혼란스럽다. 혹자들은 수필의 정의에 대해 역사성을 중시하여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수필을 쓰는 형태나 양식, 내용을 가지고 분류하기도 해서 그렇다.


수필을 에세이(essay)라고 말하지만, 동양에서도 일찍부터 수필이라는 말을 써왔다. 중국 남송 때 홍매의 <용재수필(74권5집)> 서문에 그러한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 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박지원의 연경 기행문인 <열하일기>에서 '일신수필'이라는 말을 썼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시험이라는 뜻이며 엑시게레(exigere)라는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가 그 어원이다. 몽테뉴가 그의 <수상록(1580)>에서 에세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영어의 에세이(essay)는 프랑스어의 에세(essai)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수필에 대한 정의를 이러한 내용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중시하여 말하느냐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인다.

또한 수필의 기원에 대하여서도 이설(異說)이 많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론>, 플라톤의 <대화편>, 로마시대의 키케로, 세네카,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수필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수필의 원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영국 수필의 원조는 그보다 17년 정도 늦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수상록>으로 본다. 그 이후에 C.램, W.해즐릿, L.헌트, T.드퀸시 등의 유명한 수필가가 영국에서 나왔다. 특히 C.램의 <엘리아 수필집(1823)>은 여유와 철학이 깃들어 있고 신변적, 개성적인 인생의 참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영국적인 유머와 애상이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이 있고, 조선초기에 저자 및 연대 미상의 <대동야승>,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있으며 김만중의 <서포만필>이 있다. 근대 최초의 수필은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이며, 이어서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 <심춘순례(1927)>,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등이 있으나 모두 기행문 성격의 수필이다.

그 이후로 김진섭의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 이양하의 <이양하 수필집>, 계용묵의 <상아탑> 등이 나왔고, 조연현, 피천득, 안병욱, 김형석, 김소운 등의 등장으로, 한국의 수필 문학은 종래의 기행문적인 성격에서 벗어나게 되어, 인생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수필들이 나오면서, 문학의 한 장르로서 뿌리를 내렸다.


수필이란 형식에 구애 없이 생각나는 데로 체험, 의견, 감상을 적은 글을 말하며, 어원상으로 살펴보아도 동서양의 수필개념이 비슷하다. 수필은 '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 불규칙하고 소화되지 않는 작품' 이라고 말한 중국 남.송 때의 홍매가 말한 정의라든가, '규칙적이고 질서 잡힌 작문이 아니다'라는 S.존슨의 정의도 그러하다.


'관념이라든지 기분, 정서 등에 상응하는 유형을 말로 창조하려고 하는 무형식의 시도다'라고 말한 M.리드의 정의 역시 거의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은 사전에 어떤 계획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 기분, 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다. 비교적 짧게 쓴 글이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보편적인 정의라고 말한다.


수필에 대한 정의가 막연한 것처럼 그 분류도 역시 일정하지 않다. 수필을 에세이(essay)와 미셀러니(miscellany)로 나누고 있다.

에세이는 어느 정도 지적, 객관적, 논리적, 사회적 성격을 지니는 소 평론으로 볼 수 있으며, 미셀러니는 감성적,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의 글로서 다소 좁은 뜻의 수필이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영문학의 경우를 전제로 하여 포멀(formal) 에세이와 인포멀(informal) 에세이로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인포멀이란 정해진 규격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전자는 소 평론 같은 것이고 후자는 일반적인 의미의 수필에 해당한다.

또한 중수필(重隨筆), 경수필(輕隨筆), 사색적 수필, 비평적 수필, 스케치, 담화 수필(譚話隨筆), 개인 수필, 연단 수필(演壇隨筆), 성격 소묘 수필(性格素描隨筆), 사설 수필 등으로 나누는 혹자들도 있다.


따라서 수필의 정의나 형식, 분류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한국적인 사고로 말하는 사람, 영문학적 사고를 중시하고 말하는 사람,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을 중시하고 분류할 경우에,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누가 수필에 대한 정의를 물어오면, 다소 주춤해지며 간접적 방식의 대답을 하게 된다. 실제로 시와 소설을 빼고, 그 이외의 글들을 수필이라고 정의하고 보면, 그 범위가 대단히 넓다. 그래서 함부로 수필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시와 소설을 제외한 것이 모두 수필이라고 하면, 그 정의는 매우 넓다. 선각자들이 이미 써 놓은 이론도 많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놓고 보면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며,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그 정의부터 잘 알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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