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그날 / 강원룡

조회 수 2735 추천 수 0 2017.11.26 19:48:19



                               30년 전의 그 날 / 강원룡


 

 20대 젊은 시절의 얘기이다. 나는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고아들을 돌보며 생활을 꾸려 가고 있었다. 그 때, 아내는 고아원의 차디찬 냉돌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다. 그리고 고아들이 먹고 연명하는 대두박을 끓여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한 젊은 종교인으로서 품었던 이상이 하나의 천박한 감상주의가 아니었는지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좀더 쉽게 인생을 사는 길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뜻밖에, 사복 입은 형사가 뛰어들어 집 수색을 하고, 나를 강제로 연행하여 경찰서 감방에 집어 넣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어두운 감방 안에는 뼈만 앙상하여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내게 손을 내밀며 담배를 달라고 했으나, 내게는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나를 발길로 차며 변기통 위에 앉혔다. 그 곳이 나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온몸이 몹시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부러 그 안에서 기른 듯한 이들이 잔뜩 기어올라 내 몸을 뜯기 시작한 것이다.

 

감방 안의 생활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때는 오직, 주먹만한 수수밥덩이가 들어오는 시간과 고문을 당하러 가면서도 햇빛을 잠깐 보는 시간뿐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날씨가 흐린지 맑은지도 구별할 수 없는 그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죽을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긴 삶은 벌써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죽어 가면서 ", "하고 외치는 그들에게 물 한 모금 안 주는 간수들은, 몸 속의 피가 이미 독사의 독으로 변해 버린 존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 절망의 심연에서, 나는 내가 믿는 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때까지 내가 믿었던 신의 얼굴이 내게서 허무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순사들은, 충칭에 임시 정부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나를 그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로 취조하는 것이다. 하루는 수사관이 새벽 두 시쯤 나를 불러 내었다. 그리고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 얘기를 꺼내며, 나에게 독립 운동자가 아니라면 성전 완수에 협력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민중 계몽에 나서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내 눈에는 추방당한 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 남기 위해서 그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감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제가 이 감방에서 죽게 된다면 육체는 죽어도 영혼만은 더럽히지 않게 해 주시고, 제 심신을 당신의 제단에 오롯이 바친 제물로서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감방에서의 생활은 이 두 가지 기도 중에서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살아서 나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 영혼을 더럽히지 않고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안에 수감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끝내는 변절하고 추잡해진 후에 죽어 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결심했다.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죽어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곳은 자살의 자유마저도 없는 곳이었다. 결국, 나는 완전 금식으로 저항을 하기로 했다.

 

닷새가 지난 후 의사가 검진을 왔다. 이튿날, 나에게는 보석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는 내가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어 매우 위독할 뿐 아니라, 감방 동료들에게도 전염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8·15 광복을 맞았고, 오늘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 남아 있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는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이 일을 그만두고 좀더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그러나 나는 꼭 한 가지, 그 회령 감방에서 되풀이하여 올린 기도만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미 그 때, 나는 죽음을 당했을 사람이었는데, 기적같이 살아나지 않았는가! 그 때 죽었다고 생각하고 보면, 나는 28년을 덤으로 산 것이다. 현재 이렇게 살아 남아 일한다는 것만도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인가?

 

극도의 물질적 빈곤으로 허덕일 때면, 나는 차디찬 냉돌 위에서 가족과 함께 대두박을 끓여 먹던 생활을 마치 천국같이 생각하던 감방에서의 생활을 떠올려 보곤 했다. 그러면 빈곤은 곧 아무것도 아니었다. 빈곤이란 항상 상대적인 것이다. 나보다 더 잘 사는 다른 사람과만 비교하지 말고, 딴 사람이 아닌 나의 어렸을 때의 생활을 생각하면, 그것은 빈곤이 아닌 것이다.

 

 

생각건대, 자유 없이 살 수 없는 체질과 사상을 가진 내가 끈덕지게 주어지는 어려운 상황에 적응해 가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날들을 생각하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30년 전의 그 날들이 내게는 항상 새로운 결심과 삶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크나큰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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