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에 있어서 주제와 제재의 변화 
                                                                         193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I. 서론
 문학이라는 말 앞에 ‘현대’라는 에피쎄트가 붙으면, 그 시점을 어디에서부터 잡느냐가 항상 논란이 된다.  우리 근대의 특수성과 연결된, 국어의 형식으로 된 문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시점을 근현대의 기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 현대수필의 태동기는 1910년대로 삼는 것이 좋겠다. 우리나라 수필사는 1910년 현대수필의 태동기를 거쳐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문학장르로서 독자성을 띠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수필의 주제와 제재가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큰 틀 안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II, 본론
1930년대는 서론에서 밝혔듯이 수필문학이 문학 장르의 한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다. 수필은 30년대에 와서 2,850여 편이 발표되었으며, 시나 소설이 추구하는 순수세계와는 반대로 표백되지 않은 바탕 그대로의 생활 일상을 투시, 그를 정서화 내지는 상상화함으로써 작품화가 가능했다. 수상수필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서정수필(신변수필)과 사색수필(사회수필)이 양대산맥을 형성하였다. 서정수필로는 「신록예찬」의 이양하, 「청포도의 사상」의 이효석, 「신록」의 이태준, 「신록」의 노천명 등이 있고, 사색수필의 대표주자로는 「생활인의 철학」의 김진섭, 「권태」, 「산촌여정」의 이상, 「밤거리의 축하식」의 나혜석, 「고물」의 김동인 등이 속한다.


1930년대 말에서 1945년 동안은 일제 암흑기의 문학시대로서, 이 시기 수필의 특징으로는 특별한 활동은 없었고 다음과 같은 수필집이 간행되었다. 박종화의 『청태집』, 이광수의 『돌베개』, 김진섭의 『인생 예찬』, 『백설부』, 이양하의 『이양하 수필집』 등이 그것이다.


1945년에서 1950년까지의 기간은 해방문학 공간으로 불린다. 모윤숙, 전숙희, 조경희 등의 여류수필가들이 해방과 더불어 수필집을 내어 현대여성수필의 맥을 이어 나왔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여류 수필은 시대의 괴로움, 민족의 비애, 자주정신과 독립정신, 사회비판과 참여의식, 절망과 암흑 등의 주제 경향을 보인다.  해방 이후의 수필에서 특기할 사항이라면, 작자들의 직종이 문인 중심이었던 30년대와는 달리, 사회 각계 각층으로 다시 재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저널리즘에 환영받는 이른바 이지가 번득이는 가십류의 단평이나 논픽션류의 정제된 수필이 양산되었다. 해방 이후는 수필집 간행이 붐을 이루었는데, 1949년 12월까지 출간된 수필집이 48권이었다. 


1950년에서 1959년까지 수필집은 167권이 출간되었다. 50년대의 김소운의 『목근 통신』, 피천득의 『금아 시문선』 은전 한 닢 (제재: 은전 한 닢: 주제-맹목적 욕망에 대한 연민, 물질에 대한 인간의 소박한 욕심), 김형석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 『현실과 구상』 등이 대표적이고, 한국 현대 수필이 예술성을 획득하여 수필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굳힌 것은 1959년에 나온 피천득의 『금아 시문선』에 이르러서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지나친 평가라 여겨진다. 60년대 수필은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대적 비판을 내용으로 삼는 수필은 물론 사색적이며 철학적인 수필, 자의식을 내용으로 하는 수필이 등장한다. 서정적이고 교훈성이 강한 수필이 많이 등장하였다.


주요 작가와 작품으로 피천득 「수필」 – 수필의 본성과 특질, 「황토탄의 추석」 – 이국 땅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양하 「나무의 위의」 – 나무에서 피는 따뜻한 인간애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수필이 문학의 대표 주자인 것처럼 널리 읽혀졌다.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안병욱의 『행복의 미학』, 김우종의 『내일이 오는 길목에서』 등의 수필집이 문학 서적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학생과 청년들 사이에 수필집을 팔에 끼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다. 그러나 수필문학이 독자적 장르로 문학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기였다고 하겠다. 노천명은 현실을 외면하는 데서 오는 회상에의 선열한 과격성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 등 여성수필의 경우 탐미성의 추구와 순수서정 세계를 그려내는 수필이 많았다.


1970년대 이전, 수필문학에 대한 문단 및 독자들의 시각은 결코 좋은 것이 못되었다. 수필은 마치 아무나 쓸 수 있는 장르처럼 인식되어와 <서자문학>취급을 당해왔다. 그러나 1971년도 조경희, 서정범씨 등이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 수필중흥을 꾀하고 1973년에 기관지 <한국수필(초기에는 수필문예)>을 발행하고, 1972년도에는 월간 <수필문학>의 창간으로 수필문학의 인식을 높여갔다. 초창기에는 양대 수필지에서 서정범, 김병권, 김사달, 김규련, 이상보, 최신해, 김태길, 차주환, 이기진, 원종린, 김시헌, 장백일, 허세욱, 정진권, 박연구, 김용구, 정명숙, 박재식, 한형주, 윤재천, 이병남, 김효자, 정혜옥, 김승우, 강석호 등 교단 외 명사들과 기성 수필가들이 활동을 했다. <수필문학>은 창간한 해로부터 정식으로 수필가를 배출, 진웅기, 유병근, 정재은, 신택환, 유혜자가 70년대에 신인으로 등단했고, 일간지에서도(한국일보, 조선일보 외) 윤모촌, 오창익, 정상옥 등이 70년대에 등단했다.

<한국수필>은 78년도에 이정원이 등단, 82, 83년에 한영자, 주영준, 김경실 등이 이어서 등단한 후 지금까지 계속 신인을 배출하고 있다. 70년대, 30대의 나이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로 변해명, 유혜자, 이정림, 정목일 등이 있는데, 이들이 추구한 것은 문학의 서정성과 철학성이며, 변해명은 서정성에 사회성의 접목을, 정목일은 ‘달빛’을 제재로 서정수필과 선을 접목하고자 시도했다. 여성수필의 경우 수필적 관심이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이나 재해석으로 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필문학의 활성화가 이뤄진 것은 우리 수필문학사상 가장 괄목할 만한 현상으로 중흥의 계기를 마련한 시기였다. 


1980년대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 전문지가 생겨나고,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필문학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지성과 비평을 갖춘 문학, 감성과 논리성을 겸비한 문학, 인생적인 경지를 끌어올리는 문학, 자유롭고 다양성을 지닌 문학, 미래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문학으로 생각이 바뀌어지고 있다. 이 시기는 수필문학이 전성을 이루면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테마를 ‘신변잡기’에서 취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수필의 경우에도,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여성소설과 달리 억압이라는 반여성적 사회 기제에 대해 투쟁과 갈등을 겪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하다고 하겠다. 수필을 신변잡기로 매도하게끔 이러한 현상 하에서 본격적인 수필가들의 문학성 제고 노력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김학, 정주환, 반숙자, 신일수, 염정임, 문형동 등의 작가를 들 수 있다.


먼저 1990년대 수필문학은 그간 우리 수필문학이 주로 보여 온 감성 위주의 신변잡기적 경(輕)수필에서 많이 벗어나, 지성의 활발한 개입을 통해 시대정신에 대해 성찰하는 일종의 중(重)수필적 경향을 비중 있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수필문학의 주류는 작가의 고백성에 무게중심이 놓이는 경수필들이다. 그 안에는 나날의 삶에 대한 가벼운 감상이나 깨달음 혹은 사랑의 감성들이 녹아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강세를 띠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90년대를 넘어 갈수록 우리 수필문학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지성적 성찰을 동반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수필문학은 감성 편향에서 지성 쪽으로 한걸음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는 가히 수필의 시대다. 2000년대의 문학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질이 비례하여 따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정원, 한동희, 김애자, 주연아, 조재은, 최민자 등 일군의 여성수필을 중심으로 확실히 수필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수필문학가와 작품을 뽑아내는 정리 작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1999년에야 현역 수필가들만을 대상으로 수필문고를 선우미디어, 수필문학사, 좋은 수필사, 소소리 출판사에서 시도, 간행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수필의 날을 공포하고 전국적인 행사를 해마다 여는 것도 수필시대를 여는 전조가 되고 있다.


III. 결론
글의 가치는 어떠한 소재를 다루었느냐보다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생활주변의 소재를 이용해서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 자신의 현실인식을 적용시켜낼 때, 수필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1930년대 수필에서 특기할 점은 수필의 성격이 개인 체험의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쪽으로 주도되어, 사회 지향의 계몽적 성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40, 50년대, 이 시기에 이르러 이론적 추구와 그리하여 저널리즘에 환영받는 이른바 이지가 번득이는 가십류의 단평이나 논픽션류의 정제된 수필이 양산되었다. 이와 함께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수필의 유형이 형성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이 시기의 수필은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대적 비판을 내용으로 삼는 수필은 물론이고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수필, 자의식을 내용으로 하는 수필 등이 등장하여 이와 더불어 개인 수필집의 발간이 본격화되었다. 1970년대는 한국의 수필문학이 본격 수필문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시기라 하겠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본격수필가가 없었다. 수필의 주류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시적 수필로 인해서 주제의식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오영, 김태길, 서정범, 김병권, 김시헌, 박재식, 이상보, 김용구, 김영배, 박연구, 허세욱 등 많은 분들이 문학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또한 등단 1세대 작가로 오창익, 변해명, 유혜자, 이정림, 정목일 등이 수필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1980년대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 전문지가 생겨나고,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성 수필의 경우 여성의 자아와 일에 대한 주체적 요구가 늘어났지만, 페미니즘의 전성기임에도 불구하고 여류 수필가들은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시대적 여성의식을 수용하지 못했으며, 1990년대로 진입하면서 수필문단은 황금기를 맞는다. 특히 이 시기의 특기할 일은 수필 문단의 여성화 경향이요, 신변잡기의 범람이었다. 1990년대 들어와서 문학이 환경, 생태에 관심을 보였는데 반해 많은 수필 속에서 그런 류의 작품은 극히 빈약하다. 여성 중에서 테마수필을 시도하고 있는데 <꽃>의 이정원, <영화>의 조재은, <나무>의 은옥진, 류인혜, <클래식 음악>의 유혜자 등으로 각자 또 다른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2000년대 수필의 평가는 아직 이르다. 아직도 자잘한 이야기 일색의 수필이 우리 수필문단이 일상성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일부 여성작가들을 중심으로 사회의식을 형이상학화하는 수준 높은 문학성 위주의 글이 수필전문지에 자주 발표되고 있는 것은 수필의 위상 제고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문헌>
권대근, 『한국현대여성수필문학론』, 교문사, 2000.
권대근, 『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동아대 대학원 박사 논문, 2005.
한상렬 『디지털시대, 수필문학의 패러다임』, 신아출판사, 2003.
오창익, 『수필문학의 이론과 실제』, 나라, 1996.
윤재천, 『수필학 제15집』, 문학관, 2007.
※이 글은 제27회 한국수필가협회 국내 심포지엄 주제발표문(권대근 교수)입니다.
   원제: 「한국현대수필에 있어서 주제와 제재의 변화」

■ 권대근
문학평론가,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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