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강정애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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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강 정 애
오늘 정원사에게 뒷마당의 텃밭을 일궈달라고 부탁했다. 올해는 아무리 바빠도 텃밭 농사를 하려고 생각했다. 7년 전에 캘리포니아에 이사와 첫 3년간 열심히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길러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 마을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항상 그 시절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고 함께 뜀박질하던 친구들의 풋풋한 향수가 달려오는 듯 한때가 자주 있다. 그중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은 친정집 뒷마당의 텃밭이다. 그곳에서 각종 먹을거리를 길러서 우리 집 식탁은 늘 채소 반찬이 풍성했다. 식탁 위에 가득 메웠던 각종 푸성귀가 텃밭에 있어 어머니가 매우 좋아하셨다. 가까이 있어 밥을 먹다 상추가 떨어지면 엄마가 곧바로 나가 한 움큼씩 뜯어오던 그때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뽑기는 외할머니의 몫이었다. 그 텃밭에는 가족 여인의 늘 푸른 꿈이 있었다.
그곳에는 시금치 파 고추 오이 열무 호박 토마토 외에도 여러 가지 야채들이 있었다. 푸성귀는 서로 파종 시기가 달라서 비슷한 것끼리 밭에서 나란히 나뒹굴 때도 있다. 채소는 계절에 맞는 것끼리 어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몇 개월의 간격을 두었다가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푸른 줄기와 잎사귀가 안방처럼 배를 쭉 깔고 흙더미에 오밀조밀 포개지고 가로지르며 자라남을 보며 우리 자신의 성숙을 배우는 듯 느꼈다.
그 당시 텃밭은 어머니만 드나들며 머무르는 내면의 공간인 듯싶었다. 어머니의 한평생은 자신을 내팽개친 채 오직 가족들의 안녕만을 위한 희생과 나눔의 일생이었다. 텃밭엔 푸성귀뿐만이 아니다. 그 둘레엔 작은 돌로 담을 쌓고 철 따라 피우는 소담한 꽃들을 심어 놓으셨다. 그 발치엔 시들부들 한 대추나무 한 그루가 텃밭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텃밭에 한 송이 과목으로 남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릿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 가족에게 텃밭은 먹을거리 생산의 터전이요 기쁨의 샘이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사와 제일 먼저 시작한 취미가 텃밭 가꾸기였다. 살구나무와 무화과도 심었다. 첫해에 체리 토마토가 많이 열려 세 살짜리 손녀딸이 토마토 따는 재미를 톡톡히 보았었다. 가을이면 열심히 이웃과도 나누어 먹는 기쁨도 즐겼었다. 둘째 시누이가 갖다 준 한두 뿌리의 미나리는 이제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2년 전에는 살구나무도 백여 개의 살구를 내어 풍년이었다. 다음 해에도 손녀딸이 체리 토마토를 찾았지만, 할머니의 바쁘다는 핑계로 텃밭 가꾸는 것을 미루어왔다.
올해는 꼭 텃밭을 가꾸겠다고 손녀딸과 약속했다. 한 달 전에 텃밭을 갈아 여러 가지 채소 씨를 사다 뿌렸다. 새싹 나기를 기다리며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물을 주었다. 총각무가 제일 먼저 땅속에서 배꼼이 내다보며 나를 반겼다. 로메인 상추 모종을 사다 심었더니 어떤 짐승의 소행인지 몽땅 잘라 먹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속이 상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좀 나눠 먹자고 그러는데 할 수 없지.”라고 위로를 했다.
두 주간 여행을 다녀오니 텃밭은 온통 잡초밭이다. 꽃대만 우뚝한 상추밭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엎드려 누운 줄기에 어느새 까치발처럼 뿌리를 내려 흙을 바짝 움켜쥐었다. 바랭이는 세파에 시달린 사람같이 억세고 질겨 좀처럼 뽑히지 않는다. 마치 바랭이는 마디로 된 줄기가 기어가듯 자라고 있어 성장하는 어린아이 같다. 그런데 이 잡초들에도 제게 맞는 이름, 빛깔과 삶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꼭 뽑아내야 하는지. 사람들의 이기심이 풀의 영역을 침범하고 잡초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것은 아닌지. 잡초가 설 자리를 잃게 되니 본능에 따라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고 더 모질어진 것이리라. 살고 싶은 끈질긴 의지를 한 줌 흙에 묻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는 능력을 보며 사람의 삶도 다시 생각 하게 한다.
내 곁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속을 썩였거나 내가 처한 환경에 불만을 샀던 것들이 오히려 나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었음을 알 것 같다. 나에게 마음의 텃밭을 가꿀 때가 온 것 같다. 내 마음의 텃밭에 사랑과 이해를 심고. 아니 애증(愛憎)으로 얼룩진 내 마음을 내려놓는 씨앗까지 뿌리고 싶다. 잡초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텃밭 말이다.
내 텃밭은 얻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텃밭으로 가꿔 나갔으면 좋겠다.
약력:
이화여대 의대 졸업
1967년 도미, 마취과 의사로 35년 활동
지구문학 수필 등단
미국 감리교 신학대학 졸업
현재: 한미가정상담소 프로그램 감독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원
기적의 마중물
강 정 애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 오병이어의 이야기였다. 어떤 사내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는 기적의 마중물 이야기였다.
내 소녀 시절, 동네 우물이 하나둘 자취를 감출 시절이다.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펌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중물을 붓고 이내 펌프질하면 깊은 곳에 있는 샘물이 올라오고 잠시 후면 얼음물같이 차가운 물이 올라왔다. 우리 집에는 특이하게 수돗가에 펌프가 있었다. 그 당시 수돗물이 모자라던 때라,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허드렛물은 펌프로 길어 올려 사용했다. 펌프 물을 퍼 올리는 일은 딸인 내 몫이었다.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드리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지만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 재미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 빠진 펌프는 아무리 힘들여서 손잡이를 오르내려도 끽끽거리는 쇳소리만 낼 뿐이다. 그때 물 한 바가지를 요령 있게 부으며 팔을 아래위로 빠르게 움직이면 땅 밑에서 기별 받은 지하수가 올라올 채비를 하는 것이다.
처음 올라오는 물은 녹물 섞인 흙물이어서 바가지 물을 서너 번 더 부으면서 달래듯 펌프질을 한다. 그러고 나면 맑은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신나서 힘차게 팔다리를 움직여 퍼낸 물을 물통마다 가득 채웠다. 땅속 물을 끌어올리는 두어 바가지 물의 기적, 그리고 봉(棒) 피스톤의 상하 리듬으로 콸콸 물을 쏟아내는 펌프라는 기계의 위력 앞에서 신기하다는 생각뿐이었다.
펌프 손잡이에 매달려 땀이 밴 온몸으로 계속 물퍼기하면 올라오는 물, 그 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깊은 땅속에 고여 있던 물이 아닌가. 땅 위로 올라오고 싶어도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 한 바가지 물이 마중을 가서 끌어 올려야 한다. 이렇게 물을 밖으로 뿜어내는 펌프처럼 나에게 잠재해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공부 방향을 이끌어주는 부모님께서 바로 마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시절, 장차 무엇인가 크게 되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쓰다가 오리무중을 헤맬 때 나침반이 되어 방향을 지시해주는 남편. 결혼하여 3남매 키우면서 자라나는 아이들 성격을 유심히 살피고 각기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도록 지도하는 데 노력했다.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를 권장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탐구심, 그러한 지적자극이 두뇌발달에는 중요한 보약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세상 어느 부모인들 자식들의 교육에 대해서 소홀히 하겠는가. 우리가 받은 부모의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모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이다.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그 방향을 잡아 주느라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는 부모는 바로 자녀성장의 길잡이인 마중물, 그것이 인상 싶다.
나는 그동안 받은 부모님의 은공을 자녀에게 돌려주었던 마중물 같은 삶을 누리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던가. 그 값지고 아름답던 세월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 요즘은 수필을 쓰며 자기 개발에 힘을 기우렸다.
내 머릿속에서 굼틀대는 생각은 왜 그렇게 많은지, 오만가지 글감이 떠올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곤 한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의욕이지만, 컴퓨터 앞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질 때가 자주 있다. 내 글을 읽고 가차 없는 혹평도 주저하지 않았던 남편은 이렇게 사랑이 많고 세심한 배려가 나의 수필을 쓸 의욕을 북돋아 주는 원동력이다.
생각의 우물파기에 지친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든 나는 비로소 잠든 뇌를 깨우는 일이 시급함을 깨달은 것이다. 기억, 생각, 판단 등, 희미하게 사라지려는 이 정신작용을 불러일으켜 감각을 닦고 한편의 글을 써야 함을. 마음 깊숙이 잠겨있는 내 사상과 감정으로 응고된 언어들, 그것이 제아무리 쌓여있다 한들 표현하지 않으면 글이 될 수 없는 것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소녀 시절, 힘껏 펌프 물 푸듯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모니터 화면에 뜬 내 언어들. 그것은 생수처럼 올라온 내 선혈(鮮血)이자 내 거듭나기 희망의 환성이 아닌가. 그것을 하나하나 주워담는 내 두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번졌다. 앞으로도 계속 내 한편의 글쓰기에 아낌없이 부어줄 아, 기적의 마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