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정순옥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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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봉선화
蒑池 정순옥
봉선화.
왜 이리 고향의 봉선화가 보고 싶은 걸까? 내가 고향에 두고 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요즈음도 눈 감고 고향 생각을 하면 봉숭아가 터지고 눈 뜨고 숟가락을 만져도 따다닥 터지는 소리로 변한다. 손을 살짝이라도 대면 씨방을 터트리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봉선화 생각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재미동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 따라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 힘의 근원은 어쩜 한여름날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시들시들 처량한 모습이었다가도 밤이슬에 다시 힘을 얻어 살아났던 봉선화 때문이라 싶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나의 손톱을 빨갛게 물들게 한 봉선화. 어쩌면 어린 가슴을 신기함으로 들뜨게 했던 내 고향 봉선화의 혼이 내 가슴에 항상 잠재했기 때문이리다.
나는 오늘도 이곳에 있는 봉선화가 아닌 줄기를 따라 마디마디에 소박한 꽃을 피우는 그리운 내 고향 토종봉숭아나 접봉숭아를 찾아 눈을 크게 뜬다. 그리하여 귀를 나발통처럼 넓게 열고서 이리저리 헤맨다. 언젠가는 그리운 내 고향 봉숭아꽃을 이곳 뜨락에 심어 꽃핀 빨강·주홍·흰색봉숭아 얼굴들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기에 그렇다.
내가 살던 소쿠리 마을은 낮은 구릉과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시골이라기보다는 산골에 가깝다. 나무가 많고 잡풀이 많아서인지 집 안에서 지네나 뱀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장독대에 뱀이 들어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어머니 말씀대로 신기하게 봉선화 꽃이 있는 곳엔 해충과 파충류들이 얼씬도 못했다. 그 탓에 마을 집집마다 장독대 둘레나 울 밑 이곳저곳에 봉숭아꽃이 심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소쿠리 마을 전체가 봉선화로 물들인 마을이었다.
아름다운 정서를 제공해 주던 내 유년시절의 우리 집은 봄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가슴에서부터 만들어지곤 했다. 봄이 오기 전 토담 아래에 있는 꽃밭은 겨우내 쌓아 두었던 땔감과 볏단이 치워지고, 아버지의 말씀에 오빠가 삽으로 땅을 깊게 판 후 흙을 골라 보송보송하게 만들었다.
토담 아래 있는 꽃밭에 마지막 잔설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 둔 봉선화 꽃씨와 다른 꽃씨들을 꺼낸다. 그리고는 언니에게 건네주면서 꽃밭에 심으라 하셨다. 언니는 물론이고 나의 손에도 호미를 쥐게 했다. 어느 사이에 꽃밭에 온 새언니랑 언니와 나는 촉촉한 땅을 호미로 파고 골을 만들었다. 우리는 봉선화 꽃씨를 구분해서 심고 곁에는 다른 꽃씨들도 함께 뿌리곤 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저녁 꽃밭에 새싹이 나오기를 고대하며 물을 준다. 일주일이 지나면 연초록 봉선화 새싹이 땅을 헤집고 고개를 쏙 내밀고 나온다. 그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생명의 환희를 주곤 했다. 키도 아담하게 자라고 가지가지마다 이파리들이 무성하게 자란 후엔 옆구리마다 봉선화 꽃들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름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활짝 피기 시작하면, 비바람과 소나기가 뭉친 태풍이 한 번씩 불어와 사정없이 후려치기도 한다. 때아닌 재난에 봉선화의 몸이 흔들리고 가지들이 시련을 이기지 못해 찢어져 피를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를 부여안고 수많은 역경을 견뎌낸 후 마침내 소담한 꽃을 피워 내는 행복의 화신, 그게 바로 봉선화였다.
우리 집 여자들은 한 여름날 봉선화 꽃을 물들이는 날로 잡는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서 하얀 차돌 같은 백반을 사오신다. 새언니는 봉선화 꽃을 따서 꽃물이 진하게 들도록 수분을 증발시키려고 시들시들하게 장독대 위에다 말린다. 언니는 텃밭에서 아주까리잎을 따고 굵직한 무명실 꾸리를 챙긴다. 나는 주먹만 한 돌을 야산에서 주워와 해가 질 무렵에 봉선화 꽃과 이파리 몇 개를 백반이랑 함께 넣어 토방에서 돌로 찧는다.
산골 집 마당 멍석 위에서 각종 풀냄새가 향기로운 모깃불을 켜놓고 저녁을 먹은 후엔 가족이 봉선화 꽃물들이기 위해서 고개를 맞댄다. 늙어 보이는 어머니도 “수줍은 처녀처럼 꽃물이 예쁘게 들어야 할틴디!” 하시면서 손가락을 내미신다. 새언니는 “우리 예쁜 아가씨들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신랑감을 만날 수 있도록,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꽃물이 잘 들게 해 달라!”라고 익살스럽게 말한다. 그리고는 언니와 나의 손톱 위에 잘 찧어놓은 봉숭아꽃을 얹고서 아주까리잎으로 싸맨 후 물이 흐르지 않도록 새언니는 무명실로 꼭꼭 묶어 주었다.
그 다음 날이면 아빠의 흐뭇해하시는 미소, 오빠들의 장난스러운 말, 손톱이 빨갛게 꽃물들인 보며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게 고향 소쿠리 마을 여름날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이렇게 봉숭아 손톱과 발톱에 꽃물을 들이면서 가족 간의 사랑과 소중함을 느끼면서 행복했던 추억이다.
이제는 이를 앙다물고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 가슴 속에 서려 있는 고향의 토종 봉선화를 내 눈으로 직접 보며 살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 딸들의 손톱에도 봉선화 꽃물들이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진다.
약력:
호: 蒑池/전북 정읍 출생/ 1978년 도미/《미주중앙일보》창간15주년 기념 이민수기 우수상(1989)/《광야》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한국수필》신인문학상/제26회 허난설헌문학상 수필부문 금상/제25회 서울문예창작 문학상. 제4회 한국문협 수필부문 문학상
현재: 한국문협 미주지회 홍보위원장
수필집: ⌜기쁜 소식⌟.⌜오메, 복사꽃 피네⌟
냉이 향취
蒑池 정순옥
냉이 향취가 나는 참 좋다.
내 후각嗅覺을 감미롭게 하는 봄나물인 냉이 향취 속엔 우리 시어머님과 시누님 그리고 시고모님의 사랑이 섞여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좋다. “애~야! 이 냄새 좀 맡어 보거라이. 얼매나 향내가 좋으냐~. 냉이 향취가 좋지라우?” 정감있는 남도 사투리의 보유자인 시어머님과 시누님이 번갈아 가면서 땅에서 뿌리까지 막 캐어낸 봄나물인 냉이를 내 코앞에 내밀면서 냉이 향취를 음미해 보란다. 시어머님과 나 보다 연상인 시누님이 사랑의 손가락으로 캐어 낸 들풀 냉이 향취에 흠뻑 젖어 나는 행복에 취해 버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부간의 갈등이니, ‘시媤’자만 들어도 몸에서 경련이 일어날 것 같고 참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어머니와 말다툼할 때 말리는 시뉘가 더 밉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여자들에겐 출가해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시댁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말이 되겠다. 결혼이라는 전환점에서 운명적인 만남의 고부간의 대화 소통법으로 나처럼 뭔가 잘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시’자가 앞에 붙은 시어머님과 시누님의 사랑을 무등산 자락에서 받은 이유가 있다. 시골에서 살았는데도 ‘냉이’를 아리송하게 알고 있을 뿐인 내 성격 때문이었기에 말이다. 어리벙벙한 내 코앞에 냉이 나물을 들이대는 시어머님과 시누님은 확실히 나에게 가르쳐 주심에 흐뭇해하신 것이다. 어수룩한 나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인 행복이 찾아 올 줄이야.
무등산 無等山의 봄은 정의正義의 정기精氣를 품어 내는 듯이 참으로 늠름하면서도 신선하다.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민주화항쟁 등 정의로운 일에는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앞장서고 있음은 무등산의 신비로운 산세山勢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여린 남도 소리꾼들의 노랫소리, 소화 기관인 뱃속이 아니라 사고思考하는 뇌 속 깊숙이 박혀 있는 실핏줄까지 팽대해져 머리통을 휘두른 후 뒤통수를 날카롭게 친 울림으로 내는 떨림의 소리가 충장로에 있는 수많은 국악원에선 끊임없이 울려 나오고 있다. 너무도 황당하게 가슴에 상처받은 역사의 현장에서 소리꾼들이 아무리 소리친들 그 한恨을 어찌 다 품어 낼 수 있으랴.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다.
무등산 자락에서 자란 냉이 향취는 피비린내도 중화시킬 수 있을 만큼 놀랍도록 심오深奧하다. 모든 것을 껴안고서 은은한 향내를 발하고 있음을 나는 시어머님의 한없이 너그러운 사랑을 통해서 느끼고 있다. 시어머님 앞에 서면 나를 언제나 며느리 도리를 제대로 못 한다고 원망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무등산 줄기의 냉이 향취로 나를 흠뻑 사랑에 취하게 하신 시어머님이 아닌가. 나는 고마운 마음에 생生의 환희歡喜를 느끼며, 관용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기적의 냉이 향취에 놀라곤 한다. 냉이 향취가 배어 있는 무등산 정기에 휩싸여 있는 땅에선, 무조건 나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한없이 넓고도 넓은 가슴의 시어머님과 시누님 그리고 시고모님도 살고 계신다. 즐거운 마음으로 또다시 찾아오라고 나를 부르시면서.
무등산에 피어오르는 봄의 운기雲氣가 의연하게 대지에 드리워짐일까. 무등산 자락에 샛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꽃들이, 기억 속에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하늘에서 막 하강下降한 선녀들의 옷자락과 같이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바라보는 내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무등산 정기에 매료되어 샛노란 개나리꽃으로 변해서 멋있는 산과 어우러져 그냥 사는 느낌을 주었다. 시누님이 나를 무등산 구경시켜 준다고 산 중턱까지 차로 드라이브시켜 주니 동심이 된 나는 무등산에 피어 있는 선녀들 옷자락 같은 샛노란 개나리 꽃구경에 옆에 계신 시어머님도 의식 못 할 정도로 환성을 지르며 참으로 행복해 했다.
웬일이었을까? 나는 그때 느닷없이 냉이가 생각이 나서 무등산에 있는 냉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시어머님과 시누이는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냉이를 찾기 위해 차에서 몇 번이나 내려 산속을 헤맸으나 못 찾고 결국 무등산 끝자락에 있는 밭두렁에서 냉이를 찾았다. 냉이는 산채가 아니고 들풀임을 늦게서야 깨닫기도 했다.
냉이는 봄바람에 잔설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밭두렁 논두렁에서 쑥이나 달래나 꽃다지들과 함께 자라나는 흔히 보는 민들레와 비슷하나 하얀색 꽃이 피는 아주 상긋한 향기를 천지에 내는 겨잣과의 두해살이풀이란다. 살아오면서 많이도 먹은 향기 좋고 맛있는 봄나물인데 나는 이름은 알면서도 모양엔 관심을 두지 않아 아리송했을 뿐이다. 냉이는 봄나물 중에서도 단백질이 많고 무기질이 많아 몸에 아주 좋은 친환경 건강식이어서 특히나 채식주의자들에게 꼭 권하는 봄나물이라나. 나도 건강해지려면 냉잇국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시어머님이 직접 담그신 맛있는 된장으로 무등산 줄기에서 캐낸 파릇파릇한 향기 좋은 냉이를 넣어 끓인 맛깔스러운 냉이 된장국을 먹고 싶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구순 되시는 시어머님의 무릎이 관절염으로 아프셔도 무등산 자락에서 냉이를 발견하시게 되면 또다시 나를 위해 냉이를 손가락으로 후벼서 캐실 것이다. 나는 아는고로 미리부터 준비해야 할 냉이를 땅에서 캐낼 도구와 나물바구니의 모양을 그려보고 있다.
“아무쪼록 시어머님과 시누님 그리고 자네, 냉잇국이 먹고 싶다고 나한테 진작 말하제 그랬능가.” 하시던 인자하신 시고모님. 언제나 내 위치의 도리道理를 못해 죄인 같은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한 사랑을 주시기만 하는 시집 식구들이다. 다음 해에도 또다시 무등산을 드라이브하면서 선녀들 옷같이 예쁜 개나리꽃도 구경하고 풋풋하고 상긋한 냉이도 캐서 맛있는 냉이 된장국을 끓여 먹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소박한 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빌면서 새로 올 봄날을 기다리며 행복해하는 자신을 본다. ‘ 媤시’ 자가 붙은 시어머님과 시누님 그리고 시고모님의 사랑이 섞여 있는 냉이 향취에 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