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지상문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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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다 방 의 랩 소 디
(Mc. Donald’s Rhapsody)
지 상 문
길가 창 옆으로 자리를 잡아 창 밖을 내다본다. 차들이 달려오고 달려간다. 사람의 물결이 파도처럼 기세 좋게 밀고 와서 철석 한 번 때리고 부서진다. 부서진 흔적은 밀려 내려 다음 파도에 휩싸인다.
오후 한 시가 넘으면 맥 다방은 그리 붐비지 않는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함께 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있다. 영감이 된 지 꽤 오래된 자다. 그렇게 불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나이다. 남보다 10년은 먼저 와서 가발장사로 한 몫 잡고 전자제품으로 두 몫 잡은 강 영감이다. 뒤따라 들어온 박 선생이 곧바로 커피를 주문해 들고 자리로 와서 눈웃음으로 인사한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는 향이 짙다.
날씨를 이야기하다가 건강을 말한다. 병원과 의사에 불평하다가 건강식품의 과대광고를 비난하며 욕을 한다. 그들 식품을 먹으면 아픔도 죽음까지도 없다는 투의 선전문구가 역겹다.
세월을 말하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의 무질서를 탓한다. 자신들의 지난날들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벌써 여러 번 되풀이 되어 서로가 다 잘 알고 있어 자랑해보아야 잔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끼었던 반지도 고급 시계도 집에 두고 다닌다. 하지만 한때 잘 나가던 일과 힘들게 헤쳐나간 과거의 한 가닥 자랑이 꿈틀거리며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기도 한다.
자신의 주변일 보다는 차원이 높은 역사이야기를 꺼낸다. 일본의 침탈과 잔학성 그리고 그들의 교활함을 고발한다. 위안부소녀상의 건립에 대한 그들의 방해와 억지 행동에 침을 뱉는다. 한국역사를 뒤집어 놓더니 일본 자신의 역사마저 비틀어 그들의 못난 과거를 치장하는 옹졸함을 성토한다. 6·25남침 때에 길 건너 식당 종업원이 팔에 빨간 헝겊을 두르고 내 세상 왔다며 손을 휘저으면서 소리소리 질러 온 동내를 겁주던 일도 회상한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이산가족이 빠질 수 없다. 헤어져 60년, 90줄의 나이, 나이 들어가며 사라져가는 사람들, 그들의 한을 풀어줄 사람 그런 영웅적인 정치가는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한탄한다. 휴전 후 일거리도 먹거리도 없어 배고파 헤매던 일에 맞장구를 치며 쓴웃음을 짓는다. 조국의 정치를 한탄하다가 돈 먹는 하마가 되어버린 국회의원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몰매를 준다.
창밖에 한바탕 비가 뿌리자 색색의 우산이 인공위성처럼 둥둥 떠다닌다. 입이 궁금하다. 잔에 따끈한 커피를 다시 받아온다. 20전이 싼 노인 우대 값에다 다시 빈 잔을 채울 수 있으니 이만한 위안이 없을 성 싶다. 다시 날씨를 이야기하다가 말거리가 동나면 얼마간 침묵한다.
통로 건너편에 조금은 젊은 사람 둘이 자리를 잡는다. 동포다. 척 보면 안다. 60대가 채 되지 않을 젊을 사람들이다. 이쪽을 흘깃 보고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못 볼 것을 본 듯해한다.
엊그제 일이 떠오른다. 장로라는 명예를 목에 걸고 돌아치며 어깨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밉살스러워한다. 하기야 그런 사람도 있어야 동아리가 돌아가게 되리라.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모자라는데 어쩌랴 그만한 흠집은 덮어줄 수밖에. 필요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옆자리에 박 선생이 거든다. 그 정도는 약과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평생 친구라도 되는 듯 있는 말 없는 말 보태어 떠벌리어 듣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단다. 남의 말을 많이 하면 자칫 잘못 전달되어 진실이 가려져 피해를 보게 된다고 열변을 토한다.
비 지난 다음 해가 서쪽에서 기우뚱한다. 배가 좀 출출한 탓인지 군대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휴전되어 전쟁이 끝 난지도 여러 해 되었는데 군대는 여전히 가난했다. 휴전선을 지키는 군대에 갓 올라온 이등병이 밥을 두 번 타 먹다 배식 병장에게 들켰다. 그때의 밥그릇은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만들고 손잡이가 달려있어 아주 편리하고 튼튼했다. 미군에서 보급되어 미식기라 불렀다. 배식병장이 들고 있는 그 미식기를 빼앗아 이등병의 머리에 여러 번 날려버렸다.
배식병장은 밥 타러 오는 군인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본다. 입술을 보면 다 안단다. 비록 꽁치 국일망정 따듯할 때 먹으면 입술이 붉어진다고 한다. 군대에서 밥 푸는 배식병장의 손은 날렵하다. 주걱으로 밥을 살살 펴서 휙 날려 그릇에 뿌린다. 그릇에 칠하듯 밥을 얇게 발라준다. 요즈음 군대의 식사는 마음껏 골라 먹도록 푸짐하다니 놀라운 발전이다. 오히려 국방부는 군인들의 비만을 걱정해 준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연평도에 북한 포탄이 날아오자 주둔 장병이 울면서 집으로 전화했단다. ‘엄마 나 어떡해’. 그 군인은 왜 거기 있었나.
먹거리가 산더미라도 새벽 별 보며 나서고 저녁별을 등지고 들어서는 일상에 먹는 시간을 아끼는 버릇에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은 것도 시간이 모자라서일까. 그 흔한 극장이나 영화 그리고 운동경기장 한 번 가지 못하고 좋아하는 여행도 모두 미루며 살았다. 윗사람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인사 한번 제대로 못 했다. 양반체면 다 팽개치고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돌고 돌았다. 모든 대화는 OK 하나로 통일되어 굳어버렸다. 청년과 장년을 투자하기 어언 40년, 눈앞에서 노년이 조용히 짙어가고 있다. 서걱거리는 것은 가슴에 쌓인 외로운 응어리가 부딪치는 소리이리라.
창밖에 땅거미가 내린다. 길바닥의 차선이 오히려 뚜렷해진다. 그렇다. 사람은 줄을 긋고 줄 따라 살아간다. 또한, 세월의 줄에서도 벗어나지를 못한다. 지구에도 온통 줄을 그어놓고 씨줄이라 날줄이라 이름 했다. 그 줄이 세상 질서를 지키기도 삶을 압박하기도 한다. 씨줄도 날줄도 본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줄 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 줄을 모두 걷어내기에는 너무 늦었다. 때로는 줄이 평안을 주기도 해서 걷어낸다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어려움과 맞먹게 된다는 생각도 든다.
창밖에 나무들이 몹시 흔들린다. 떨어진 잎들이 갈 바를 모르고 몰려다니다 더러는 멀리 사라지기도 한다. 맥 다방의 등불이 밝아진다. 출출하다. 얼큰한 찌개가 코끝에 어른거린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주지 않은 배짱에 놀라며 한편 미안하다. 나서는 뒤 통수가 켕긴다.
약력:
경기공고 건축과 졸업
2010년부터 미주한국일보 오피니언 연재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원
치자나무
지 상 문
무쇠로 만든 큰 솥뚜껑을 뒤집어 화덕 위에 올려놓고 돼지기름을 두르기만 해도 구수한 냄새가 코끝에 달라붙곤 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빈대떡을 보며 군침을 삼키던 때가 그리워진다. 잔칫집에는 으레 녹두부침개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로 이것이 빈대떡이다. 여기에 있어야 하는 것이 치자(梔子)다. 녹두반죽에 섞어 빈대떡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지혜로 치자를 쓰곤 했다. 치자는 이렇게 음식에도 쓰이지만, 이뇨제와 해열제로 쓰인다. 또한, 관상용으로도 훌륭한 나무로 대접을 받는다. 우리말 사전에 치자는 꼭두서닛과 상록 활엽관목으로 약제와 염료로 쓰인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 치자나무를 화분에 심어 잘 가꾸면 꽃과 향기와 열매가 어우러져 멋있는 분재가 된다는 글을 본 일이 있다. 이에 발동이 걸려 치자나무 모시기에 사반세기, 아직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서성이고 있다. 첫 번째는 장모님이 방문 오실 때 치자를 부탁했다. 두 번째는 한국방문 할 때 종로 5가 씨앗가게를 뒤져 어렵사리 구해왔다. 그다음에는 아내가 한국에 간 길에 친지에게 얻어왔다. 지난봄에는 남아있던 치자를 통째로 화분에 심고 들여다보기를 백일정성, 하지만 치자는 시침을 떼고 나 몰라라 싹을 보이지 않는다. 치자와 인연이 없는가 아니면 고집불통인 듯한 치자가 신토불이(身土不二)로 고국 땅만을 그리는 본능적 심통일까.
이곳에도 치자는 있다. 열매는 맺지 않으나 향기 좋기로 이름난 꽃치자(Gardenia)이다. 나무마다 특성을 알아채는데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야 한다. 나무를 가꾸다 보면 배우게 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물주기도 쉽지 않다. 물이 잘 빠지지 않으면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썩기도 한다. 강한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견디기 힘들어한다. 화분에 심은 나무는 하루도 거르지 말고 물을 주고 반그늘에 두어야 싱싱하게 자란다. 바짝 마른 흙은 흡수하지 못해 먼저 물을 한번 적셔주고 얼마 있다가 다시 주면 잘 숨어들어 간다.
어떤 나무는 가물거나 갑자기 추위가 닥치면 채 자라기도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한다. 종족을 남기려는 눈물겨운 본능의 비상대책이 아닌가 한다. 나무를 옮겨심기에는 성장이 멈추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이 좋다고 본다. 분재를 만들려 할 때, 그 뿌리가 너무 길거나 많으면 잘 드는 칼과 가위로 잘라내야 얕은 화분에 앉힐 수 있게 된다.
옛글에 호이식불목근X(好移植不木根X)라는 말이 있다. X에 맞는 글자를 넣어 문장을 완성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른다’는 절(絶)자를 넣어 나무를 옮겨 심을 때 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나무를 많이 다루어 본 사람의 답은 다르다. 그리고 ‘안다’는 뜻의 알 지(知)자를 써서 문장을 살린다. 好移植不木根知라함은 그 나무의 뿌리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조심 나무를 다루라는 것이 숨겨진 뜻이 된다.
삶이 넉넉해지면서 취미생활이 여러모로 퍼져있다. 하지만 취미라고 호락호락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많은 노력과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취미를 광물성, 식물성 그리고 동물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광물성 취미는 그림과 도자기에 수석과 우표 등과 동전 남의 글을 모으는 일이다. 식물성 취미는 나무나 꽃등을 좋아하는 것이고 동물성 취미로는 가축이나 물고기 그리고 새를 기르는 것이라 하겠다.
사냥이나 낚시가 동물성 취미에 든다면 이성을 낚는 청춘 사업은 무슨 취미에 속할까 판단이 쉽지 않다. 불로초를 찾아다니는 것이 식물성 취미라면 출세의 연줄에 허리를 굽실거리는 것과 몇 푼 집어 던지고 회장감투를 쓰고 거들 것은 어느 취미에 들까 자못 궁금하다.
아직도 치자나무를 모셔보겠다는 뜻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나무를 기른다는 것은 동물을 돌보는 일과는 또 다른 정성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됐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기는 나무나 바람이나 같다. 둘이 만나야 흔들며 소리를 내어 서로의 존재를 나타낸다. 산타아나 계절풍이 바나나 잎을 갈래갈래 찢어놓으며 그 힘을 뽐내기도 한다.
뜰을 한 바퀴 돈 나비가 담 너머로 사라지자 바람은 불어도 조용한 오후다. 이 겨울에는 비가 흠씬 내려 캘리포니아의 무지개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