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이언호 희곡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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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배 이언호
미주에서 우리말 방송과 우리말 신문이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가?
어느 날 친구와 <미국 속의 한국말 언론에 관한 노파심에 대해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이 미국 땅에서의 한국말 언론은 1,5세가 기성이 될 때쯤 해서는 그 존재 여부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 친구는 미주에서의 한국 언론의 발전에 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말했고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말했다. 그 친구는 한국어 신문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니 그 흐름의 예즉같은 것이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그 친구의 부정적 생각은 다분히 예언적이지만 나의 긍정적인 생각은 희망사항 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혹자는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해 길과 길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잘해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이민 1세들의 할 일이고 보람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할 무대가 될 미주 한국 언론의 존재 여부가 부정적이라는 예언엔 동의하는 마음이 생기질 안는다. 아니, 솔직히 그런 일이 생기면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목이 메인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 한편이 떠오른다.
1995년도 이상문학상은 윤후명 씨의 중편소설 <하얀 배> 가수상을 했다. 이상문학상은 동인문학상과 더불어 한국소설문학의 큰 흐름과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해준다. 그러니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거기에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소설 <하얀 배>는 나를 여러 가지로 생각게 했다. 그 소설의 무대가 구소련땅인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는 소련 땅은 갈 수도 없었지만 거길 다녀오면 감옥엘 가야만 했다. 그런데 <하얀 배>의 작가는 그곳을 실제로 취재한 듯, 줄거리도 어느 언론인이 중앙아시아 땅을 취재 차 다녀오는 르포 형식으로 되어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겠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르스탄, 타지키스탄등 의 나라이름은 나는 물론 그곳을 취재한 작가 자신도 전혀 생소한 이름이란다.
나는 여기에서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나 작가 정신을 얘기하기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 소년을 소개하고 싶다. 그것은 자칫 우리의 2세, 3세들이 똑같은 경우를 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어느 날,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중앙아시아에 사는 동포작가의 소설 한편이 우송된다. 작품의 발표와 평을 부탁한다는 부언과 함께...
그 작품의 제목은 <말 배우는 아이> 이며 작가는 <문 류다> 라는 젊은 여성이다.
그 작품 속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소련땅 카자흐에 사는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국말을 배워 주려고 애를 쓴다. 한국말은 조선말이라고도 하고 고려말이라고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해봐 하면 소년은 “안녕...하십....니까...”하고 억지로 따라 했다. 그리고 소년은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가서 자기 말을 못한다면 그게 어떻게 자기 고향이라 하겠느냐는 아버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년은 멀리 들판 쪽을 향해 속삭이듯 “안녕...하십니까...” 해 본다. 그러면 근처에 있는 풀잎이며 야생 양귀비꽃이며 낙타가시풀, 삭사울 나무, 그 나무 밑에 사막쥐도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한국은 너무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해 줬고, 소년의 꿈은 그 아름다운 고향에 가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먼 동쪽 들판을 향해 “안녕하십니까. 이 말은 우리 민족의 말입니다.” 하고 외쳐 본다. 소설<하얀 배> 의 주인공은 이런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를 만나보기 위해 중앙아시아 고원 지대를 가로질러 수천 마일을 여행한다. 거기엔 가는 곳마다 우리민족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다. 그는 천산의 호숫가 나무 밑에서 그녀를 잠시 만나고 돌아선다. 거기에서<하얀 배>가 백조처럼, 물고기처럼 달려가는 것이 우리민족의 상징으로 표현되어진다.
앞으로 십 년, 이 십년 후에 우리의 아이들이 베이커스필드에서 아니면 피닉스로 가는 저 평원에서 “안녕..하십니까. 이 말은 우리 민족의 말입니다.” 하고 외칠 것인가를 상상해 본다. 또 그들이 LA 타임스나 뉴스위크지를 읽으며 우리말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이나 시도 읽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최근 미국 출판계에는 우리의 1,5세대 작가인 이 창래씨와 이 혜리씨가 떠오르는 아침해로 부상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소재로 한 내용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 두 젊은 작가에게 갈채를 보낸다. 이제 미주류사회라는 거대한 호수 속에 뛰어들 2세들을 위해 우리는 <하얀 배>를 띄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학력:
1940년 서울생
성균관 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수학
The J. Paul Getty Center Education Institute
수료경력:
신춘문예 동아일보 희곡 「기관실 사람들」 당선
문공부 예술창작공모 장막희곡 「돌쌈」 가작입상백상
예술대상 희곡상 수상
미주 한국 문학상 수상 (수상작 장편소설 길가는 사람들)
미주 한국 펜 문학상 수상(수상작 단편소설 개똥벌레들 날다)
서울 드라마센터 총무과장 역임서울 예술대학 교수 역임한국
희곡작가협회 감사역임미주문인협회 이사 역임
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역임
미주 문학단체 연합회 상임공동의장 역임
The J. Paul Getty Center Docent.
현재: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미주지회
상임고문(미주지회 회장 역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미주위윈회 회원
할아버지의 꿈이언호
얼마 전에 마켓에 가서 맥주 한 팩 사는데 카운터 아가씨가 나를 희끗희끗 보더니 신분증을 보자고 했었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미국에서는 어느 미켓에서나 틴에이져 같아 보이는 손님에겐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게 되어있다. 21살이 채 안된 사람에게 주류 판매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가씨가 내 얼굴은 안 보고 작업복을 입은 내 모습만을 보고 그랬으려니 했었는데 또 요즘 청소년들의 음주 문제가 사회화되고 그로 인해 당국의 암행단속이 심하다 보니 과민반응으로 그러려니 하고 자동차 면허증을 꺼내는데 이 아가씨 다시 한번 힐끗 보더니 「네버마인」 한다. 이 아가씨는 나를 청년으로 본 것이다. 사실 서양인은 동양인의 얼굴만 보고 그 나이를 짐작하지 못한다. 우리도 수염이 왕창난 서양사람을 보면 그가 50대쯤 되었으려니 하지만 사실 그가 이십 대뿐이 안 된 경우도 있다. 지난번에 가주 타령 96를 보러 갔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가주타령은 허리우드의 영화배우 오순택 씨가 1,5세 와 2세들을 이끌고 일 년에 한 번씩 연중행사로 공연하는 영어연극 마당놀이였다.
문 앞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이 작품의 작가인 한인 1,5세 필립 이씨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선생님은 이번 행사에 공동집필을 하신 극작가 장소현 씨의 아버님이 아니십니까 했을 때는 아연했었다. 내가 어느 자중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유모아쯤으로 받아넘기려 했다. 그러나 증인으로 아내까지 옆에 있었으니 이 얘기는 사실 있었든 에피소드고, 극작가 장소현 씨는 옛날부터 수염이 관운장처럼 길게 난 분으로 누가 봐도 그분이 나보다 연장자요 연하로는 보지 않았는데 거 참 신기한 일 이였다. 이 사람이 아주 나를 노인으로 본 모양이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오....
그런데 말이 났으니 얘긴데 가주타령 같은 행사는 연극의 질적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의 후손들이 주체성을 갖고 개성 있게 미주류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뿌리 역할을 할 수 있어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소리소문 없이 하는 행사도 문제지만 한인들의 관심도가 매우 적어 서운한 감도 없지 않다. 연극보고 2세들의 기 살려주고 또 그들의 의식이나 생각을 알게 되고 그들과 일치할 수 있고 일석삼조 사조가 되는 그런 행사임을 강조한다. 명년도 가주타령97에는 한인 문화계에 홍보도 잘되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해득하시는 한인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각설하고 나이 타령하다가 얘기가 잠시 빗나갔는데 초록은 동색이라고 희곡을 쓰다 보니 연극의 연자 소리만 들어도 귀가 번쩍하는 게 내 마음인걸 어쩌겠나. 어찌 되였든 세월은 바람처럼 잘도 흘러가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이민을 왔는데 그들이 이제 결혼 적령기에 들었으니 내일이라도 그들에게 뜻만 있으면 우리 부부는 졸지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기로에 서 있다. 안 그래도 우리의 동료 문인들 특히 여류 시인들은 나와 동갑내기이면서 모두 할머니가 되었으며 또 예비 할머니로서 대기하고 있는 이 마당에 손자가 생기면 그들에게 꿈을 많이 심어주라는 얘기를 지면을 통해서 부탁한다. 어린 시절의 꿈많은 추억은 귀중한 보물 창고라고 시인 리케도 말했지 않은가. 어느 잡지에서 읽은 얘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슐리만이라는 소년은 아홉 살 때 아버지로부터 고대 그리스의 도시 트로이카 땅속에 묻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소년은 이때부터 전설 같은 야기 속의 도시 트로이를 찾아내는 것이 꿈이 이었단다. 그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시간을 틈내 역사책이나 고고학 책을 읽으며 살았다고 한다. 드디어 그가 꿈을 간직한 지 33년 후인 마흔네살 되었을 때 그가 헤매던 땅속 7미터 아래서 트로이의 성벽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의 꿈은 현실로 살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가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안다. 어린 시절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고 사랑을 심어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민 와서 장사하느라 이민생활 개척하느라 우리 자녀들에게 그러한 것을 충분히 심어주지 못했다. 우리가 해주지 못했으니 우리의 자녀들도 충분히 그렇지를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자녀들까지 우리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아버지가 되면 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 그 얘기가 빈말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배워라 그들에게는 꿈이 있다」고 독일의 시인 헤드만 헷세는 말했다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꿈은 야무지기도 하다. 그런데 삼년정에 쓴 이 수필을 인터넷에 올리려고 정리하다 보니 어느 세 나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고 예쁜 외손녀를 봐주면서 오전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이제부터 이 아이에게 어떤 꿈을 심어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기만 하다. 아, 이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