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조회 수 9193 추천 수 10 2015.07.04 21:13:51
작가 : 남중대 수필가 

                   


                                           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남중대

 

 “중대야. 내가 90살까지는 활동할 수 있겠제?” 선생님은 나와 책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나에게 묻고 확인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함이었을까? 아니면 멈출 줄 모르는 연극과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1990년, 내가 이곳 산호세에 새로운 삶의 둥지를 틀기 위해 이민보따리를 풀면서, 주평 선생님과 숙명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한국아동극의 개척자로, 수많은 아동극본을 발표하고 그 극본으로 한국 최초로 아역배우를 연극무대로, 영화스크린으로 배출해낸 아동극작가로서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분이, 연극무대가 아닌 작은 구멍가게의 계산대에 서서 독특하며 흉내를 낼 수 없는 그 진한 경남 통영 사투리 “중대야~!”로 나와 미국에서 첫 만남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1993년 어느 날, “중대야. 우리 아동극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시작된 말은, 미국 최초로 아동극단 민들레 홀씨가 지역신문에 뿌려지면서 그 유명했던 아동극 ‘콩쥐 밭쥐’가 50여 명의 단원과 40여 명의 학부모가 미국을 시작으로 하와이, 한국(3회), 일본(2회)을 오가면서 막을 올렸다. 그런데 이때 어디를 가나오나 시도때도없이 “중대야~.”하고 불러주시던 선생님의 사랑 속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평 선생의 오른팔로 불리면서 광대놀음판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는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3만 불의 제작비는 채워지질 않았다. 끝내 연극무대의 막은 다시 올라라지 못한 채 멈추고 말았다. 부모님의 모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2세들에게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체험케 하는 교육의 무대를 중단해야만 했던 아픔과 고향산천을 떠나와 이민의 삶을 사는 이민 1세들에게 향수를 달래주는 울고 웃는 신 나는 잔치 한마당을 펼쳐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해하셨는지 모른다.
  자존심이 일등이요, 고지식한 성품은 대쪽 같은 선생님은 그 열정을 쏟아내지 못함인가, 점점 약해져 가시는 듯했다. “선생님. 글이나 재미있게 쓰시지요.” 나는 늘 이런 말로 위로해 드리면서 신문지면으로 발표될 수필 원고를 교정하고 정리한 뒤 연극대본을 외우듯 감정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낭독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됐다.”를 자신 있게 외치시던 모습은 ‘콩쥐 팥쥐’에 등장하는 꼬마군졸의 연기, 바로 그 장면이기도 했다.
  언제인가 나를 친동생처럼, 오랜 친구 같다면서 목이 쉰 소리로 자신의 지난 세월 앞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이슬 같은 눈물을 찍어 내리면서 회고하시던 선생님의 85년 인생드라마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난해 6월, 수필 제5집 《추억의 강에 띄우는 쪽배》의 출간과 대표작 《숲 속의 대장간》이 19년 만에 다시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이를 본 선생님은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기에 충분했다. 이 일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나도 커다란 보람이었다.
  이제 선생님은 “중대야~”를 부를 수도, 책상머리에 같이 앉을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을 길로 떠나가시고 말았다. 그러나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수많은 흔적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높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쟁쟁한 목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예. 선생님 알겠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2015년 2월 19일(목), 미주주간현대(제9년 7호)

 

남종대수필가 최소.jpg

 

 

약력:

경북 포항 출생

한맥문학 수필등단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아동극단 민들레 총감독 역임

실리콘밸리 한인회장 역임

 

 

 

 


웹관리자

2015.07.06 12:11:20
*.175.39.194

추천
1
비추천
0

                                                                                    

13altppp.jpg

 


                                                                                                    내 나이가 어때서

 

                                                                                                                                                                           남중대

 

  요즘 한국에서 어느 유명 가수가 부른 노래 중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중년층에게 큰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번 따라 불러본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어떤이가 이 노랫말을 오선지에다 콩나물을 갖다 붙였는지는 모른다. 모두가 부르기 좋은 노래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흥얼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IT시대의 산물로 100세 시대의 청신호가 켜진 지금, 인생 60은 끝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이 남아있는 듯도 하지만, 나는 막차를 타고 가는 노신사가 되어 있다. 이에 걸맞은 사건이 하나 있다.  2011년 9월 1일이다. 나에게 신인수필가라는 또 하나의 명패가 붙은 날이다. 이날은 숨길 수 없으며 얼굴 붉어지는 쑥스러운 날로 기록되어 있다. 이 일을 만들어준 두 분의 후견인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세월 연극공연과 수필낭독을 함께했던 85년 인생드라마의 막을 내린 아동극작가이며 수필가였던 주평 선생님의 특별한 훈육이 있었다. 그리고 힘겹고 어렵기만 한 낯선 이민생활 속에서 잊히고 있었던 허홍구 시인이다. 서울 광화문 뒷골목 어느 작은 목로주점 구석진 테이블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간 세월과 남은 세월을 막걸릿잔에 철철 넘치게 부어 주고받던 일이다.  나는 어설프지만, 글짓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떨리는 내 속마음을 한 문단에다 조심스럽게 열어 놓았다. 이후 당선소감 속에 나의 사진과 약력까지 덤으로 내놓게 된 것이다.

  사람은 어머니의 산고를 알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뭘 알기나 한 것처럼, 두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첫 울음을 시작으로 세상살이 인생무대의 막을 올리게 된다. 이처럼 성장하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길이 달라질 것이다. 잘난이는 일찍, 못난이는 늦게 승리하여 행복을 누린다. 그런가 하면 평생 어두운 자갈길 안에서 헤매다가 세상일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나는, 내 갈 길을 내 걸음으로 왔고 또 가고 있지만 참으로 복이 많은 것 같다.
  내 작은 마음 판에 어제와 내일을 그리다 말고 멈춰 서 있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의 유혹이 따사로운 남풍이 되어 불어왔다. 60년 세월을 한참 넘긴 나를 늦게나마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복을 주시니 그저 고맙고 감사 할 뿐이다. 그렇다. 시작이 늦다고 생각지 않는다. 바르고 정직하게 언행일치의 삶을 한 편을 글로 그릴 것이다. 마지막 종착역이 가까이에 있을지라도 나는, 내 스타일대로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긴 겨울을 참고 견딘 인내가 있었기에 달콤한 봄비를 먹으면서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 가을을 기다리며 향기를 담은 꽃을 피워내기에 탐스럽고 보기 좋은 알이 꽉 찬 열매를 맺어 사랑을 받고 기쁨의 결실을 힘껏 안아볼 수 있다. 이러한 진리를 마음 깊숙한 곳에 담고 경주할 것이다. 차오르는 답답한 숨을 몰아쉬면서 아직도 내 작은 주름진 육신에 남아있는 열정을 쏟아 내기 위해 헉헉대며 걸어갈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가요의 내용처럼 용기와 자신감으로 앞서 가는 그들을 땀을 내며 쫓아갈 것이다.

첨부

웹관리자

2016.01.22 14:44:30
*.175.39.194

 

2013122401071_0.jpg

 


                                                                                                         해맞이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부모·형제는 물론, 이웃과 친지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담은 마음을 주고받는 인사다. 예쁜 연하장(카드)에다 정성으로 복을 빌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이런 사랑의 정을 나누는 방법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으로 아주 쉽게 새해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지 모른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들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네 이민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 떠나온 고향에서 벌어진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동해로 이어가는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다는 것이다. 검푸른 바닷물을 헤치고 붉게 떠오르는 새해 새 아침의 밝은 해를 맞이하기 위해 몰려가는 발길들 때문이다. 멀리는 서울에서부터 내륙 각처에서 밤을 새워 달려간다. 호랑이 꼬리로 잘 알려진 곳, 바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 228번지의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다.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는 곳이다. 관광명소로 알려지면서 새해 첫날, 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소망을 빌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변함없이 떠오르는 아침 해다. 그러나 새해 새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16세기 조선조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로 잘 알려진 남사고가 저술한 ‘산수비경’에서, 이곳을 풍광이 매우 좋다고 역설 한 곳이다. 한반도를 백두산 호랑이가 연해주를 앞발로 할퀴는 형상이라고 한다.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가 되고,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새해의 소망을 간절히 기원하게 되면,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어떤 소망을 비는 것일까? 아마도 그 첫째는 건강을 기원할 것이다. 건강을 잃는다면 천하를 준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 아내 남편 자녀의 건강을 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그 두 번째 소망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는 우스운 말이 있다. 사업의 번창과 좋은 직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기를 기원할 것이다. 풍족하고 안정된 재정으로 가계부가 살찔 때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 세 번째의 소망은 나라를 위해 기원했을 것이다. 위정자들의 올바른 민주정치가 이루어질 때, 복지국가로 선진대국의 반열에 당당히 설 수가 있을 것이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는 1999년 6월에 새천년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원하며 세워둔 ‘상생의 손’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형물이 서 있다. 높이 18.5미터, 무게 18톤의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손바닥을 펼친 멋진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동해의 아침 해를 맞이한다. 육지에는 왼손, 바다에는 오른손으로, 서로 돕고 살자는 깊은 뜻의 화해와 상쇄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소통과 화합, 안정과 번영의 힘으로, 꿈에도 소원인 평화통일의 밝은 날도 밝혀 줄 것이다. 이 모두가 7천만 우리 민족이 바라는 새해 새 소망일 것이다.
  고향산천을 떠나 이국만리에서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새해 소망은 무엇일까. 새로운 삶의 텃밭을 내어줌에 감사하며, 모든 면에서 안정되고, 복된 새해가 되기를 소망할 것이다. ‘지난해의 묵은 찌꺼기 다 떨쳐버리고, 새해에는 건강하고 희망이 가득하게 하소서, 자신에게 정직, 친구와는 우정, 가정에는 화목, 사회에는 신뢰, 나라에는 평화가 깃들게 하소서. (’새해의 기도 ‘시인 이제민) 새 소망의 새해 달력을 책상 앞 벽에 걸면서, 2016년도 만사가 무탈하기를 기도 한다.

 

 

 

 

 

첨부
List of Articles
제목 작가

신광수 수필가

복권 이야기 신광수 복권 이야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설레는 것만은 사실이다. 온통 신문과 뉴스에서 몇 주째 1등이 나오지 않는다고 몇백억이라고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0의 숫자가 길게 나온다.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그 숫자를 보면 “오메, 이게 진짜 일확천금이네”. 머릿속이 쭈뼛쭈뼛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스치는 생각이지만 자꾸만 Who knows?를 되새기며 사람 일을 누가 알아, 나에게도 혹시…. 돈벼락을 맞을지 아니면 ...

별이 빛나는 밤

작가 홍 성 표 수필가 

별이 빛나는 밤 홍 성 표 벽장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고흐(Vincent Willem van Grogh 1853~1890)의 유화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뻔하다가 별이라는 제목에 내 눈을 멈추게 했다. “별? 작품명이 별로 시작한다……” 문뜩 나의 이름과 비교해 본다. 나의 이름은 홍성표(洪星杓)다. 한자로 풀이하면 ‘넓고 큰 하늘의 별 자루’란 뜻이다. 이런 이유가 겹쳐 다시 한 번 작품을 유심히 드려다 보았다. 유별나게 크게 그려진 노란빛 그믐달과 ...

감자꽃 길 따라 [1]

작가 김혜자 수필가 

감자꽃 길 따라 나의 첫 수필집이 출판되었다. 큰일 했다는 충만함에 가슴이 뛴다. 더욱이 출판에 온 정열을 쏟아 주신 스승의 배려로 조국 산천 여행길에 올랐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黃砂)를 걱정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비가 말끔히 씻어줬다. 에메랄드빛 바다처럼 하늘은 맑은 공기로 가득하다. 산자락을 타고 흘려 내려온 아카시아 꽃향기가 내 후각을 흔들고 지나간다. 향기를 붙잡아 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뜨겁게 달구던 시심(詩心)을 외면하고 구름이 흘러가듯 나도 떠난다.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달린...

하얀 파도꽃(넌픽션 당선작) [2]

작가 홍용희 

하얀 파도꽃 홍용희 -나의 항구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던 날 오후, LA에서 가까운 헌팅턴 비치(Huntington Beach)에 갔다. 끝없이 펼쳐진 고운 모래 위에 샛노란 햇살이 비치고 파도는 포말이 채 지기도 전 또 다른 하얀 파도꽃을 피우고 있다. 수평선에 걸린 해의 뒷모습은 내 모국의 석양을 방불케 하다가 주홍빛으로 하늘을 가득 물들인다. 태양의 뒷모습은 검붉은 울음을 토하게 했던 내 지난날을 불러왔다. 미국에 사는 여고 동창인 단짝 친구, 남자 이름을 가진 강석태. 지금은 수잔 리,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라 이씨가 된 친구다....

처용가 뒤집어 보기

작가 명계웅 평론가 

처용가 뒤집어 보기 명계웅 예전 국어고문시간에 우리가 배웠던 삼국유사에 전해진 신라 향가 ‘처용가’는,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이 A.D 879년경 신라 헌강왕의 눈에 들어 급간이라는 벼슬과 미모의 아내도 얻어 정사도 돌보며, 동경 밝은 달밤에 밤드리 노딜다가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가 보니 “가라리 네히어라. 둘은 내해엇고 둘은 뉘해인고? 본대 내해다마는 앗아날(빼았겼으니) 어찌하릿고!” 그러면서 처용은 불륜현장을 덮치지를 아니하고, 그냥 밖으로 나와 달밤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고 전해...

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2]

작가 남중대 수필가 

주평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이별 남중대 “중대야. 내가 90살까지는 활동할 수 있겠제?” 선생님은 나와 책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나에게 묻고 확인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함이었을까? 아니면 멈출 줄 모르는 연극과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1990년, 내가 이곳 산호세에 새로운 삶의 둥지를 틀기 위해 이민보따리를 풀면서, 주평 선생님과 숙명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한국아동극의 개척자로, 수많은 아동극본을 발표하고 그 극본으로 한국 최초로 아역배우를 연극무대로, 영화스크린으로 배출해낸 아...

나의 수의 [1]

작가 허정자 수필가 

나의 수의 허 정 자 오늘 모처럼 집에 쉬면서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을 아이패드로 보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 몇 년 전 신문 살풀이춤 강습이 다섯 번에 걸쳐 있다는 기사를 읽고 꼭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습이 있었는데 첫 번째 강습을 못하게 되었다. 마침 그날 무슨 행사가 있어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단체장을 맡고 있던 때라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에 발레를 했으나 언젠가 살풀이춤을 보고 완전히 그 춤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고전무용은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다. 그...

하얀 배 [1]

작가 이언호 희곡작가 

하얀 배 이언호 미주에서 우리말 방송과 우리말 신문이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가? 어느 날 친구와 <미국 속의 한국말 언론에 관한 노파심에 대해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이 미국 땅에서의 한국말 언론은 1,5세가 기성이 될 때쯤 해서는 그 존재 여부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 친구는 미주에서의 한국 언론의 발전에 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말했고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말했다. 그 친구는 한국어 신문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니 그 흐름의 예즉같은 것이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그 ...

치마폭의 찐빵 [1]

작가 박영옥 수필가 

치마폭의 찐빵 박 영 옥 찐빵은 나에게 참 정겨운 빵이다.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고 또 먹고 싶어진다. 세월 따라 많은 것은 변하고 또 변하고 싶어 안달인데 찐빵은 한결같다. 고작, 속에 넣는 앙꼬나 달라졌지 모양도 크기도 별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 어디에 우리네 찐빵만큼 사랑받는 빵이 있을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라도 어울리는 참 소박한 빵이다. 한겨울, 갓 쪄낸 찐빵을 호호 불면서 옹골차게 든 앙꼬와 빵 겉 부분을 적당히 한 입 베어 잘 섞어 먹는 맛은 우리만 아는 비법일 게다. 빵을 다 먹을 때까지 ...

제자의 고백 -2014년 《한미문단》수필 가작- [2]

작가 이복자 수필가 

제자의 고백(告白) 이 복 자 그 시절은 6·25사변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고향에 있는 모교인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설렘과 두려웠던 때가 까마득한데 추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은 폭격으로 반 이상이 폐허 되고 넓은 강당과 교실 10여 개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강당을 여섯 교실로 나누었다. 그중 한구석에서 학생들은 송판에 네 다리를 세운 조그만 책상을 각자 가져왔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매서운 추운 날씨였지만 ...

맥다방의 랩소디 [1]

작가 지상문 수필가 

맥 다 방 의 랩 소 디 (Mc. Donald’s Rhapsody) 지 상 문 길가 창 옆으로 자리를 잡아 창 밖을 내다본다. 차들이 달려오고 달려간다. 사람의 물결이 파도처럼 기세 좋게 밀고 와서 철석 한 번 때리고 부서진다. 부서진 흔적은 밀려 내려 다음 파도에 휩싸인다. 오후 한 시가 넘으면 맥 다방은 그리 붐비지 않는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함께 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있다. 영감이 된 지 꽤 오래된 자다. 그렇게 불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나이다. 남보다 10년은 먼저 와서 가발장사로 한 몫 잡고 전자제...

텃밭 [1]

작가 강정애 수필가 

텃밭 강 정 애 오늘 정원사에게 뒷마당의 텃밭을 일궈달라고 부탁했다. 올해는 아무리 바빠도 텃밭 농사를 하려고 생각했다. 7년 전에 캘리포니아에 이사와 첫 3년간 열심히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길러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 마을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항상 그 시절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고 함께 뜀박질하던 친구들의 풋풋한 향수가 달려오는 듯 한때가 자주 있다. 그중에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은 친정집 뒷마당의 텃밭이다....

독서의 묘미 [1]

작가 신성철 수필가 

독서의 묘미 瑞奉 신성철 93세 노인이다.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아 가까이에 두고 평생을 읽고 있다. 사람마다 읽는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지금 쓰는 묘미는 내 묘미다. 늙은이의 넋두리다. 일본사람들이 36년 동안 우리나라 역사책은 전국을 뒤져서 다 태워버렸다. 우리 역사를 자기들 맘대로 새로 썼다. 이 역사책이 제국사관 역사책이다. 상고사에서 단군시대가 신화라고 송두리째 지워 버렸다. 그러나 광복이 되고 1983년부터 윤내현 교수가 피나는 노력으로 참된 우리나라 상고사를 찾아내었다. 교과서까지 수정하게 하였다. 중국의 &...

8부 능선을 따라가라 [1]

작가 이주혁 

8부 능선을 따라가라 이 주 혁 비가 갠 저녁, 앞산의 등고선이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하다. 학군단 유격 훈련으로 야간 산행을 할 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산등성을 따르지 말고 8부 능선을 따라가라!”라는 교관의 명령이 생각난다. 어쩌면, 지난날의 나의 삶은 남보다 드러나기 위하여 산등성을 타려고 애써온 것 같다. 1984년, 이민 온 약사들이 미국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평가시험을 거처 약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가주 한인 약사회를 중심으로 미국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

오쏘

작가 정덕수 수필가 

오쏘(곰) 정덕수 해 저무는 저녁, 나의 충견 퍼픈과 함께 눈 덮힌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신바람이 난 퍼픈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대지에 침입자가 된 듯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깨끗한 눈밭을 마구 뭉개고 다닌다. 멀리 앞질러가던 갑자기 동작을 멈춘 퍼픈이 전방을 노려보며 다급하게 짖어대고 있다. 그걸 본 나는 눈 위를 버벅대며 퍼픈의 발자국 따라 그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착하니 까만색의 짐승 새끼가 눈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이놈은 퍼픈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이 찢어지라 괴성을 질러댔고, 파란 눈은 공포에 질려 ...

파푸아 뉴기니어 생활 [1]

작가 배원주 수필가 

파푸아 뉴기니어 생활 배원주 오늘 DVD를 빌려 영화 ‘아바타‘를 봤다. 이미 본 작품이지만 구상과 화려한 화면 그리고 생생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30여 년 전, 열대지방에서 근무할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원시 부족과 문명인이 자원쟁취 문제로 싸우는 3D입체 애니메이션 영화다. 나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 근무하고 돌아온 지 2년 만에 1980년대 중반, 파푸아 뉴기니어(Papua-neuguinea) 현장에서 2년 동안 파견근무를 했다. 이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위도상 적도 바로 밑 남반구에 있다. 호주로부터 독...

루비와 샌디 [2]

작가 김평화 수필가 

루비와 샌디 김 평 화 한국에 온 지 6개월, 우리 부부는 손녀의 돌잔치를 위해 남편까지 이곳에 와있다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내가 쓰던 방에 널려있는 소지품과 물건들을 가방에 넣으며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시원섭섭했다. 그동안 예쁜 손녀를 출산한 딸을 잠시 도와주기 위해 와 있었다. 루비와 샌디는 눈을 크게 뜨고 꼬리를 흔들면서 내 주위를 돌고 있는 있다. 뭔지 모르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았나 싶다. 처음에는 루비와 샌디는 함께 하와이로 같이 가기로 하고 수속을 다 받아 놓은 터였다. 딸은 사위가 일 가...

내가 겪은 현대의학

작가 안상선 수필가 

내가 겪은 현대의학 안 상 선 눈부신 현대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이 100세를 넘나들며 사람들은 건강에 관해 많은 관심을 둔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염색체 변형을 이용한 선천성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의학의 도덕성과 윤리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의 초조하고 마음 졸이는 나날들이 있는가 하면, 불법으로 사람의 장기를 채취하여 이를 매매한다는 외국기사를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평생 몸담아왔던 신...

협곡에서 본 미소 [1]

작가 이숙이 

협곡에서 본 미소 이숙이 돌산이었을까? 흙으로 빚어진 바위였을까? 비와 바람과 오랜 세월이 협곡을 만들고 거대한 바위를 갈라놓아 희귀한 모양이 되어 있다. 구불구불 갈라진 틈새로 태양 빛이 스며들 때 프리즘 작용의 신비로운 색상과 모양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갈라진 바위틈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는 위로 향해 젖혀져 있고 카메라 들어 올린 두 팔도 위로 뻗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심오하게 만들어진 무늿결 바위 모양에 감탄하며 카메라에 담는다. 많은 관광객이 비좁고, 조금은 어두운 곳에서 숨죽이고 한 발...

그리운 봉선화 [1]

작가 정순옥 수필가 

그리운 봉선화 蒑池 정순옥 봉선화. 왜 이리 고향의 봉선화가 보고 싶은 걸까? 내가 고향에 두고 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요즈음도 눈 감고 고향 생각을 하면 봉숭아가 터지고 눈 뜨고 숟가락을 만져도 따다닥 터지는 소리로 변한다. 손을 살짝이라도 대면 씨방을 터트리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봉선화 생각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재미동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 따라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 힘의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