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안상선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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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현대의학
안 상 선
눈부신 현대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이 100세를 넘나들며 사람들은 건강에 관해 많은 관심을 둔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염색체 변형을 이용한 선천성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의학의 도덕성과 윤리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의 초조하고 마음 졸이는 나날들이 있는가 하면, 불법으로 사람의 장기를 채취하여 이를 매매한다는 외국기사를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평생 몸담아왔던 신생아학분야 역시 최근 들어 의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1960년대 초,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 예정일보다 5주 빨리 미숙아로 태어났다. 하지만 합병증으로 일주일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신생아학은 급속도로 발전하며 많은 기적을 만들어왔다. 만약 대통령 아들이 지금 태어났더라면 생존율은 거의 100%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40주를 보낸 후에 태어난 정상아의 체중이 보통 3,500g, 7파운드가 넘는데 임신 25주에 태어난 미숙아는 체중이 900g, 대략 2파운드 정도이다. 요즘 이런 미숙아가 살 확률은 90%, 합병증 없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확률은 80% 정도다. 또한, 열 쌍의 부부 중 한 쌍에 생기는 불임 부부에게는 체내 혹은 체외 인공수정으로 행복한 가정의 원천인 건강한 자녀를 가질 수 있다. 현대의학의 놀라운 발전상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선 요즈음,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고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듯이 기고만장하다. 마치 오만한 승자의 태도로 살아가는 듯하다. 의학 분야에도 어느 사이 이런 사고방식과 태도가 몸에 배어가고 있음을 수 없이 목격하고 있다.
소비가 미덕이고 경제 활성화의 주요 동력이 되어버린 현대 생활방식으로 소비자는 왕이다. 모든 질병도 완벽하게 고칠 수 있다고 많은 환자는 기대한다. 그런데 자신의 병이 호전되거나 치유되지 않을 때 마음속은 절망감과 원망으로 가득해진다.
나는, 삼십여 년을 죽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그들의 연약한 손을 붙잡고, 내가 습득한 의학의 모든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많은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해왔다.
배고프고 가난하고 힘들었어도 희망에 찬 수련의사과정을 마치고 소아과 전문의, 신생아학 전문의 시험을 통과했다. 그때는 내 전공에 속하는 질병에 관한 것은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는 확신에 차 자신만만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치료의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알고 있는 의학지식보다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느 날이다. 이른 새벽 동이 틀 무렵, 밤새워 치료했든 어린아이의 병세가 악화하여 더는 손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되어갔다. 결국, 당직 방에 들어가 혼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인간능력의 한계, 현대의학의 한계를 절감하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 숙여 기도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바람 앞에 흩날리는 촛불처럼 연약한 생명을 붙잡고 현대의학의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그들을 살려내는데 과연 나의 역할이 얼마나 힘이 됐으며, 얼마만큼 도움이 됐을까 하는 자책했다.
우리는 지금도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우주를 정복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위대한 존재인양 으스대며 살아간다.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가시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다. 과연 내가 의사로서 이 아기의 생명을 구하는데 얼마만큼 이바지했을까?
약력:
서울문학 수필등단.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네바다 의대 임상학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