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의

조회 수 8207 추천 수 10 2015.06.26 12:18:21
작가 : 허정자 수필가 

                        
 

 

                                                                      나의 수의

 

                                                                                                                                                                                                                                                         허 정 자

 

  오늘 모처럼 집에 쉬면서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을 아이패드로 보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 몇 년 전 신문 살풀이춤 강습이 다섯 번에 걸쳐 있다는 기사를 읽고 꼭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습이 있었는데 첫 번째 강습을 못하게 되었다. 마침 그날 무슨 행사가 있어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단체장을 맡고 있던 때라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에 발레를 했으나 언젠가 살풀이춤을 보고 완전히 그 춤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고전무용은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배워보고 싶었다. 흰 치마저고리에 흰 수건을 손에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치 하얀 안갯속에 선녀가 하강하여 사뿐히 춤을 추는 것 같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춤이었기 때문이다.
  첫날 강습에 참석 못한 아쉬운 마음에 고전무용을 배우고 있는 아우에게 말했더니 서슴지 않고 “언니, 내가 첫 시간 배운 것을 언니에게 가르쳐주면 되지. 뭘 걱정해. 언니 함께 하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용기를 내고 둘째 번 강습시간에 참석하니 여덟 명이나 되는 분이 모여서 열심히들 배우고 있었다. 내가 동경하던 춤이라 열심히 배워보려 노력했다. 그때 나에게 첫 시간에 배운 동작을 아우가 가르쳐준 덕분에 배워보려는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 이런 여유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나쁘지마는 아닌 것 같았다. 이역만리 타국 와서 살면서 새로운 터전을 잡느라고 젊었던 시간을 다 써버린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이 기르는 일, 집안 살림들, 직장일 정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지 않았던가. 인제는 살아왔던 날들을 뒤돌아보며 조용히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우리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하고 싶었어도 못한 일들, 배우고 싶었어도 못 배운 것들을 우리가 사는 날까지 다 해보는 거라 싶었다. 모두 적당히 나이를 먹은 분들이 모여서 춤을 배우고 있었다.
  춤 동작을 잘못 따라가도 그냥 배운다는 것에 기쁘기만 했다. 함께 배우는 형님과 아우님들이 함께하기에 더 포근하기도 했다. 또 선생님의 아름다운 춤사위에 푹 빠질 수 있어 좋았다. 나이를 먹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러나 답답한 내색 안 하고 늘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걸 보면 인내심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살풀이춤이란 무속의식에서 액을 풀어낸다는 뜻인 곧, 살을 푸는 춤으로 일명 도살풀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그해의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을 추어왔으므로 무속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후에 전통춤으로 길러지고 가꾸어가는 과정을 통해 민속춤의 하나로 발전되어 왔다. 그 뒤 대중 사이에서 본격적인 춤으로 등장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춤으로서 그 예술성을 인정하여 계승되고 있다. 이 춤을 전문적으로 연회해 온 무용가들은 이동안, 김숙자, 이매방, 한명숙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배운 살풀이춤은 무형 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이매방류 살풀이춤이었는데, 한(恨)과 신명을 지닌 신비한 느낌을 주는 춤이다. 춤사위 중 수건을 떨어뜨리는 것은 불운을 떨쳐 버리고, 다시 수건을 주어들 때에는 행운을 가져오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여간에 그 뜻이 어디 있든지 간에 너무나 신비스러워 보이는 춤이다. 다섯 번에 강습을 다 마쳤으나 어디서 이 춤을 따로 춘 적은 없다. 하지만 이매방 선생님의 살풀이춤 이수자이신 우리 선생님의 우아한 살풀이춤을 공연 때 감상한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우리 여덟 명 모두는 계속해서 고전무용을 배우기로 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언니, 아우” 하며 퍽 즐겁게 지냈다. 고전무용은 전신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덕분에 공연도 몇 번 했다.

  어느 해이었던가. 다시 등록하려 할 때 마침 사부인께서 연초에 대수술을 받아야 하기에, 춤추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수술을 받으면 며느리가 친정어머니를 자주 돌봐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친정어머니는 병으로 고생하는데 시어머니는 춤이나 배우러 다니면 며느리 마음이 어떻겠나 싶어 그만둔 것이다. 그러나 사부인이 수술하실 즈음 어찌 된 일인지 나도 갑자기 병이나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퇴원 후 재활원까지 가야 할 정도로 심한 병이 걸린 것이다. 정말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인가 싶었다. 성경 말씀대로 계획은 우리가 하지만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에서 퇴원 후 얼마간 재활원까지 가야 했으니 회복이 되어 집에 올 수 있었으나 사부인께서는 더욱 병이 깊어 갔다. 마지막 때에는 며느리가 자주 애들을 집에 데려오면 내가 애를 봐주고 며느리는 친정어머니를 돌봐 드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때 아들네가 위스콘신에 살았다. 며느리가 친정어머니를 간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려고 무용까지 그만두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사부인께서는 회복을 못 하고 그해 봄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춤을 배우던 아우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언니가 갑자기 운동이라고 하던 춤을 그만두어 병이 난 것이 아니야.”라고 했다. 다시 돌아오라고 했지만 한 번 그만두고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전무용은 번거롭지 않으면서도 전신을 움직일 수 있기에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춤이며 운동이다.
  아직도 살풀이춤을 생각하며 자욱한 안갯속에서 하얀 수건을 내리는 신비로움을 보게 된다. 그때 만든 살풀이춤 의상은 꼭 한 번 입어 보았다. 아마 강습이 끝나고 다 같이 살풀이춤을 출 때였던 것 같다. 이제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을, 사랑의 꽃잎으로 많은 이웃에게 남기고 이 세상 떠날 때, 하얀 그 옷은 나의 수의가 될 것이다. 우리 시어머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당신의 수의처럼 말이다.

 

                                                                                                                              -춤사위 사진: 이매방 선생의 수제자, 김묘선 스님의 살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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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서울 출생

1967년 도미

<수필시대 등단>

간호사협회 회장.

시카고 한국 무용단 이사장

시카고문인협회 회장 역임

 

 


석송

2015.06.26 19: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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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미주지회에 해외고문 중  일본에 계신 김묘선 여승이 계십니다.

인터뷰를 회장님이 엘에이문화회관에서 직접 인터뷰, 사진, 글 편집까지

직접한 게 생각납니다.

 

춤사위와 자신의 수의가 진솔하게 잘 엮여 있고 제목과 내용이 참 잘 어울립니다.

좋은 수필을 또 뵙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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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현대의학 안 상 선 눈부신 현대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이 100세를 넘나들며 사람들은 건강에 관해 많은 관심을 둔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염색체 변형을 이용한 선천성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의학의 도덕성과 윤리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의 초조하고 마음 졸이는 나날들이 있는가 하면, 불법으로 사람의 장기를 채취하여 이를 매매한다는 외국기사를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평생 몸담아왔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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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에서 본 미소 이숙이 돌산이었을까? 흙으로 빚어진 바위였을까? 비와 바람과 오랜 세월이 협곡을 만들고 거대한 바위를 갈라놓아 희귀한 모양이 되어 있다. 구불구불 갈라진 틈새로 태양 빛이 스며들 때 프리즘 작용의 신비로운 색상과 모양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갈라진 바위틈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는 위로 향해 젖혀져 있고 카메라 들어 올린 두 팔도 위로 뻗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심오하게 만들어진 무늿결 바위 모양에 감탄하며 카메라에 담는다. 많은 관광객이 비좁고, 조금은 어두운 곳에서 숨죽이고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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