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뽑힌 삶들에 대한 연민
2015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한 소설가 김숨
소설 〈뿌리 이야기〉로 201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가 김숨을 경복궁역 근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출간된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한 이상문학상의 작품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동안 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 허균문학상 등을 수상한 김숨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주목받는 작가다.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있던 작가는 조그만 소리에도 파르르 몸을 떠는 작은 새 같았다. 작고 가냘픈 몸피로 무슨 질문에든 “네… 음…” 길게 뜸을 들인 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작가의 인상이나 말투가 작품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섬세하고 여린 감성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기 앞의 삶을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존재들을 곡진하게 그려낸다. 〈뿌리 이야기〉에서는 무자비하게 파헤쳐지는 뿌리들을 대변한다.
“사람마다 ‘어떠함’이 있잖아요. 기질 같은 것, 퍼스낼러티라고 하는 고유의 성격과 개성 같은 것. 저는 저의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그곳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점이 나무하고 닿아 있는 것 같아요. 나무는 태어난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 맺고 죽음을 맞는 존재잖아요? 그런데 개발이나 조경 등의 이유로 인간이 나무를 인위적으로 옮겨 심잖아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음… 네…. 그럴 때, 태어나 수십 년을 서 있던 자리에서 뿌리 뽑힐 때 나무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나 공포가 있을 것 같거든요. 나무는 그런데 자신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 말을 못 하잖아요?”
〈뿌리 이야기〉에는 나무뿌리를 오브제로 작업하는 미술가 그리고 그와 진전 없는 연인관계를 이어가는 여자가 등장한다. 미술가는 ‘하루아침 제자리에서 들려 내쫓긴 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는 “허공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어. 저 사철나무 뿌리가……잔뿌리 한 가닥 한 가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라고 말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풍부하고 절묘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나무뿌리가 아닐까. 저 복숭아나무 뿌리가 땅속에서 수분을 빨아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지었을 표정을 상상해봐. 줄기와 가지들이 휘청 흔들릴 때 지었을 표정을, 진분홍 꽃이 다투듯 피어날 때 뿌리가 지었을 표정을. 원뿌리가 새로 곁뿌리를 칠 때마다, 곁뿌리에서 실뿌리가 한 가닥 한 가닥 돋을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졌을 뿌리의 표정을 상상해봐.” 세심하고 느린 작업 과정을 거쳐 뿌리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미술가. 사실은 그가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돌도 되지 않았을 때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자는 뿌리를 보면서 종군위안부였던 고모할머니를 떠올린다. ‘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박제 새처럼 기척조차 내지 않던’ 고모할머니. 한방을 쓰던 고모할머니의 손이 바닥을 더듬어 여자의 손에 깍지를 껴올 때 뿌리가 감겨오는 것 같았다. 미술가가 뿌리를 패널에 고정시키고 한 방울 한 방울 촛농을 떨어뜨릴 때 여자는 그와 돌아가신 고모할머니의 만남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하루아침 뿌리 뽑힌 나무와 하루아침 뿌리 뽑힌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연결된다.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난 작가는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 장편소설로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등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잘나고 힘센 인물, 젊고 발랄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우리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무력한 삶을 그는 세밀한 필치로 그린다. 여기에 환상적인 요소가 슬쩍 끼어들면서 극적 긴장감을 주고 의미를 증폭시켜 독자로 하여금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리얼리즘 소설이자 알레고리 소설로도 읽힌다.
구멍가게에서 동전을 세던 소녀
“아버지는 벌어먹고 살기 위해 중동의 사막으로 떠났다. 아버지의 형제들과 친구들은 벌어먹고 살기 위해 월남의 전쟁터로 가거나 광부가 되어 독일로 떠났으며 중동의 사막으로까지 가야 했다. 아버지는 사막에서 육년을 있었다. 그리고 중동에서 돌아오자마자 백수가 되었다. 아버지는 백수가 되기 위해 그토록 뜨겁고 지루한 사막을 묵묵히 건너온 것 같았다….” (단편 〈트럭〉)
그의 시선은 이른바 X세대로 불리던 자신의 세대가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머문다. 사막에서 돌아와 백수가 되었던 아버지, 아버지 대신 생계를 떠맡아 동네수퍼를 꾸리던 어머니(단편 〈럭키슈퍼〉)의 이야기다.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과 그녀 대신 손자를 돌보고 살림을 도맡은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일찍 혼자 되어 파출부와 야쿠르트 배달, 식당 주방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다했던 시어머니. ‘데친 시금치처럼 기가 죽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은근한 멸시 속에 침이 말라간다.
“저라는 사람은 연민이라는 감정에 약한 것 같아요. 예쁘게 화장하고 잘 차려입은 젊은 여성보다 얼굴이 곶감처럼 쪼그라든 할머니들에게 더 눈길이 가요. 그분들이 하시는 이야기에 저절로 귀 기울여지고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런 인물이 등장할 때 소설이 잘 써지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원천이 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조선소가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걸음마와 말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곳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제 안에 상징적이고 동화적인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망치를 든 사내들이 거대한 선박에 개미떼처럼 매달려 노동에 힘쓰는, 상상 속 장면에 홀리듯 이끌려 《철》이란 소설을 썼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방앗간과 신작로와 저수지와 개척교회와 나무젓가락 공장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겨우내 숫돌처럼 꽁꽁 얼어 있던 땅을 찢고 냉이 같은 나물이 올라오던 장면, 흰 종이꽃을 거품처럼 뒤집어쓴 상여가 신작로를 지나가던 광경이 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막연하게나마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중학생 때는 대전의 변두리 동네에서 생활했습니다. 변두리에는 유난히 백수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느 날 백수가 되자 어머니는 담벼락을 허물고 부엌을 터 구멍가게를 냈습니다. 구멍가게에서 동전을 세는 소녀가 된 저는 단골이자 이웃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비참하고 또 얼마나 위대한지… 제게 특별히 연민의 감정이 많다면 그때 발생한 게 아닐까 싶어요.”
겁 많고 낯가림 심한 작가는 그렇게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에서 엿본 인간의 희로애락을 훗날 작품의 원천으로 삼았듯이. 여성작가인 그가 유독 가부장의 무게에 짓눌린 남성들의 세계를 많이 그리는 것도 흥미롭다.
“저한테 자매가 없어요. 그래서 여자라는 대상이 낯설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 등등 남자들이 연민의 대상이 되었죠. 제 주변의 남자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소설에서 남자가 화자로 등장할 때 감정이입이 더 잘됐죠.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연민의 시선이 여자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단편 〈국수〉를 쓸 즈음부터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문학동아리에서 시를 썼던 그는 처음 쓴 소설로 등단했다.
“대학 전공이 사회복지학이었어요. 국어 맞춤법과 문장을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한 채 등단을 해서, 등단 후 습작기간을 가졌습니다. 등단하고 나서야 한국소설을 겨우겨우 찾아 읽었어요. 대학시절 시 습작을 했는데, 시가 점점 길어지더라고요. 소설가 김채원의 〈겨울의 환〉을 읽으면서 ‘내면에서 요동치는 소리를 문장으로 옮기면 되는구나. 한 문장 한 문장 떠오르는 대로 쓰면 되는구나’ 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죠.”
그는 지금도 시 쓰기 방식 그대로 소설을 쓴다. 이야기 구조, 등장인물의 특징 등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 이미지에 집중해서 일단 쓰고 본다. 결말, 혹은 중간을 먼저 쓸 때도 있고, 하나의 문장 혹은 이미지로 출발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쓴 구절들을 가지고 흩어진 퍼즐조각을 맞추듯 소설을 완성한다는 설명이다. 그의 소설이 낯설고 새롭게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액자 속 그림처럼 지극히 고요하고 정적인 장면에서 더 없는 재미를 느끼기도 하잖아요. 무감각을 일깨우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결혼할 때 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있잖아요? 저는 ‘그게 왜 당연하지?’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같아요. 도시 환경과 미관을 해친다고 비둘기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간이 더 심각하게 환경과 미관을 해치고 파괴하지 않나요?”
갈수록 소설 쓰는 재미를 느낀다는 작가는 “저의 세계라는 것이 있다면, 그 세계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에게 나이 드는 일은 축복이기도 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