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정아 시인

조회 수 5992 추천 수 3 2016.04.01 09:58:16

성찰과 치유로서의

경정아 시집 시 한 송이 피워에 붙여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1. 삶과 질병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한두 가지의 질병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사실 복잡한 심신의 여러 부분이 완벽하게 모두 건강한 사람은 없다. 특히 오늘날처럼 비인간적인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질병은 육신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일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말로 심각한 질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는 경우이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아직 불치의 질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가 인간의 삶과 서정적, 구체적 측면에서 밀착해 있는 것이라면 질병은 시의 중요한 소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질병은 겸손하지 못한 인간에게 자신의 삶을 경계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질병이 드러나는 방식은 일종의 은유나 상징의 방식을 취한다. 질병은 삶의 고난이나 고통을 은유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강인한 삶의 의지를 표상하곤 한다. 그런데 질병이 은유의 차원에서 형상화된다고 하여 순기능만을 간직하지는 않는다. 수잔 손탁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많은 문학 작품들이 질병에 대해, 나아가 질병을 앓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어놓았다고 주장한다. 가령 요즈음 가장 흔한 병의 하나인 암에 대해 사람들은 대개 환경오염과 관련된 사회적인 해석이나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인과응보적인 해석을 가한다. 병을 앓는 사람은 환경이나 생활 자체가 그런 상태로 갈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그런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병을 원했기 때문이라고까지 해석하기도 한다. 수잔 손탁은 이런 현상에 대해 건강하지 못한 상상의 결과라고 비판하면서 질병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질병에 대한 편견과 독단을 불식시켜 은유로서의 질병을 제대로 형상화하자는 것이다.

   경정아 시인은 심각한 질병의 고통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그것을 극복해 낸 경험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녀에게 시는 육신의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의 고통을 성찰하거나 치유하는 매개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 시집은 그녀의 지난 한 병상 체험을 치열한 삶의 의지로 이겨내는 과정을 기록한 시편들로 빼곡하다. 한 시집에 이처럼 질병과 관련된 시편들이 집중적으로 실리는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 시집이 직접 질병을 소재로 한 시편들만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생명의 세계, 사랑의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지향을 노래하는 시편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세계는 질병으로 표상되는 삶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생명과 사랑의 세계를 노래함으로써 반생명적인 세상에 대한 극복 의지를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2. , 성찰의 언어

 

   이 시집의 시편들에는 시로 쓴 병상일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질병과 관련된 체험이 아주 구체적으로 빈도 높게 드러난다. 경정아 시인은 실제로 암에 걸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다. 그녀의 시는 병마와 맞서 싸우는 과정의 느낌과 생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데 바쳐진다.

 

혈관을 타고

불이 들어온다

미친 듯이 밀려오는 파도

 

가슴 속 깊은 곳에

풀뭇불이 솟구치며

뻘겋게 온몸을 달군다

 

육신이 처절한 아우성을 연발한다

삼단 같은 긴 머리

한 올씩 이별한다(항암제 부분)

 

머리카락 다 빠지면

죽을 것이라

위채 아래채

뛰어다니며

 

목 놓아 우시던 어머니

 

지는 해 바라보며

마지막 밤샘이

물 한 모금 토해내는

딸의 밥상(어머니의 상 부분)

 

   앞의 시는 항암제 치료를 받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항암제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는 익히 들어보았을 터이다. 독한 항암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느낌을 시인은 가슴 속 깊은 곳에/ 풀뭇불이 솟구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육신이 처절한 아우성을 연발한다는 것은 항암제의 독한 기운이 풀뭇불의 강렬한 화력처럼 온 몸에 파고들면서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 고통 때문에 긴 머리가 한 올 한 올 빠져나가는 힘겨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항암의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은 환자 본인의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 또한 환자 못지않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 마련이다. 뒤의 시에서 어머니는 위채 아래채 뛰어다니며병든 자식을 걱정하고 있다. 어머니는 병든 자식에게 무엇이든 먹여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물 한 모금마저도 삼키지 못하는 병든 자식의 모습에 끝내 목 놓아 우시고 마는 것이다. 병고 때문에 슬프고 어머니 때문에 다시 슬프다.

   질병을 앓는 사람은 고독하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따뜻한 위로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질병의 고통을 온전히 함께 해 주지는 못한다.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와 함께 밀려드는 고독감은 환자를 더욱 괴롭힌다. 그런데 그러한 고독은 때로 삶의 실존적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을 하는데, 이 경우 시가 삶의 고독을 성찰함으로써 병의 고독을 극복하도록 해 준다.

 

아무도 없소?(고독 전문)

 

자명종

자정을 가리킬 때

무덤에서 일어나

링거병 따라

화장실로 간다

죽음의 행렬을 본다

 

견딜 수 없는 통증

토해버리고 싶은

암 덩어리들

살살 달래며

삶을 보듬는다

 

죽음이 숨쉬는 창 안으로

그 햇살을

마시는 삶

오늘도

긴 숨 내쉰다(또 다른 삶 부분)

 

   두 시는 모두 고독을 노래한다. 앞의 시에서 게 아무도 없소?”라는 짧은 외침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 누군가를 찾는 시인의 음성은 나지막하지만 절절하다. 사실 병고를 이겨낸다는 것은 병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위무의 손길을 보내온다고 할지라도 결국 모든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 일은 고독 속에서 가능하다. 그 고독의 핵심을 자극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뒤의 시에서 시인은 모두가 잠들은 자정링거병을 들고 화장실에 가면서 죽음의 행렬을 본다. 자신이 일어난 침대를 무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시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또렷하다. 투병의 과정에서 시인은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견딜 수 없는 통증살살 달래며/ 삶을 보듬는다고 한다. 병실은 죽음이 숨 쉬는 창 안이고 그 밖은 삶의 햇살이 존재하는 곳이다. 시인은 죽음의 지척을 바라보며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자신의 현실에 대한 정직한 성찰로 시인은 죽음 쪽을 벗어나 삶의 영역으로 한 발 나아간다.

   이 시집에는 병상에서 느끼는 여러 극한적인 감정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흙이 오라고 하네” “흙이 친구 되어 준다네”(흙이 부르네)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조적 인식이 드러난다. “흙이 친구 되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기에 앞서 죽음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제안이다. 그런데 경정아 시인은 투병의 과정에 대해 낙천적인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픈 생을 보듬고/ 긴 투병 생활/ 하늘 보고 감사했지”(환우(患友))라는 시구나 상처투성이 알몸 되어/ 버려져 뒹굴 때/ 다독거리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당신이 있어 살맛 났습니다”(살 만했습니다)를 보자. 죽음의 문턱으로 넘나드는 투병의 과정에서도 삶과 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낙천주의가 경정아 시인이 질병을 극복하는 데 정신적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3. , 치유의 언어

 

   고통스런 삶에 대한 감각과 성찰은 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시를 포함하는 문학의 치유 기능은 고대 한국의 샤머니즘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샤만의 주술적 언어는 그 자체로 강렬한 치유 기능을 가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샤만의 치유 행위가 오늘날의 의학적 방식에 견주어 보면 비과학적이고 미개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병자들의 삶에 대한 심리적 욕구를 지탱해 주면서 어느 정도의 치유 효과를 발휘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의 기능으로 강조했던 카타르시스 개념도 실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카타르시스는 극도의 슬픔 속에 처한 사람이 비극과의 공감을 통해 마음의 정화작용을 통해 삶의 의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시의 치유 기능에 대해서는 최근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그 결과는 많은 논자는 시가 질병을 치유해 주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시가 환자들의 인간 정서와 감정과 정신의 심연을 위무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줌으로써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시의 치유 효과는 창작의 측면과 감상의 측면이 있는데, 전자는 환자가 직접 창작을 해 봄으로써 자가 치유의 수준에 이르는 것이고, 후자는 환자가 다른 시인의 작품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다. 경정아 시인은 스스로 창작을 함으로써 자신의 병고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잡으면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시가 치유의 기능을 간직하는 것은 서정적 언어를 통해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삶의 전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줄을 놓자니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습니다

 

머리칼은 한 올 두올

낙엽처럼 이별하고

백옥 같은 얼굴은

저승꽃이 피고

주문처럼 뇌는 염원은

할 말을 잃어

한의 소리로 내 곁에

다가왔습니다

 

육체는 수수깡 닮아

처절한 함성만 발하는데

 

미친놈의 세포는

기하급수적으로

생명력을 과시하고

 

나를 지켜줄 파수꾼은

항암제를 먹고

잠이 들었나

 

저 하늘 조각달은

계수나무에 걸려

빛을 잃어가지만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는 진리 앞에

 

내일은 다시

해가

뜰 것입니다(사는 연습 부분)

 

   시의 주인공은 암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항암치료의 과정에서 머리칼은 한 올 두 올빠져버리고 얼굴에는 핏기가 없어 백옥 같은 얼굴은/ 저승꽃이 피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한다. 삶에 대한 집념을 주문처럼읊조려보지만, 그것이 결국은 한의 소리로 다가들기만 하는 것이다. 깡마른 육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처절한 함성뿐이다. 암세포가 소리소문없이 기하급수적으로늘어나 생명력을 과시하는 것에 비례하여 의 생명은 점점 힘없이 꺼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과는 육신의 질병에 관한 것일 뿐이다. “는 혹독한 질병의 고통으로 육신이 급속히 피폐해져 가는 과정에서도 정신의 건강을 놓치지 않는다. 인용 시구의 앞부분에서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습니다라는 부분은 의 정신적 건강을 암시한다. “는 비록 육신은 혹독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는 진리를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내일은 다시/ 해가/ 뜰 것입니다라는 결구는 이미 가 육신의 병을 마음으로 치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시구는 그러니까 이 시의 주인공이자 시인 자신인 의 질병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질병은 속악하고 비루한 현실의 문제적 국면들을 은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는 그러한 질병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게 이상향을 꿈꾸게 하는 매개이다. 사실 모든 시 쓰기는 언어로 이루어지는 꿈 꾸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시인은 몽상을 통해 현실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마른 나무에서 잘려

버려진 검은 포도랍니다

넓은 우주라지만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는

막막한 대지 위에 홀로 서 있는 점 하나

그 자체입니다

 

오가는 이 많지만

욕심 따라 어디로 가는지

걸음 걸음마에 밟혀

가슴이 아려옵니다

 

-

어두움에 아픈 긴 흐름 따라

새순 돋고 가지 자라

울창한 잎사귀 보듬고

새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낙원을 이룰 것입니다(꿈꾸는 검은 포도 전문)

 

   이 시에서 검은 포도는 그 색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죽음의 현실을 상징한다. 그것이 마른 나무에서 잘려나온 것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시인은 아마도 자기 자신이 마치 검은 포도처럼 죽음의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두 번째 연에서 드넓은 우주대지 위에 홀로 서 있는 점 하나와도 같다는 것도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소산이다. 타인의 걸음마에 밟혀서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그러한 신세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간직하고 있는 사실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자신에게 드리워진 삶의 어둠을 극복하고 새순 돋고 가지 자라는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곳은 새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낙원이다. 낙원에 대한 꿈은 죽음의 현실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제가 된다.

   이 시집에는 생명과 사랑의 세계를 노래하는 시편들이 빈도 높게 드러난다. 생명과 사랑의 세계 역시 꿈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표상되는 현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이다.

 

햇빛에 검게 타

금 가기 시작한 얼굴

목마름에 지쳐

어둠에 기댈 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 머금고

가슴에 애틋한 씨

뿜어 뿜어낸다(흙은 어머니 부분)

 

따스한 햇살 받고

지나던 바람이 흔들어

갈라지는 땅 위

떡잎의 함성이 들린다(흙의 아픔 부분)

 

사랑 찾아

불구덩이로 달려드는

 

그런

사랑을 하리라(하루살이 부분)

 

미움도 원망도 없애고

아끼고 보듬을 줄 아는

넓은 가슴 융단처럼 깔아주시고

사랑 품게 된 마음 감사하게 하소서(오늘도 감사하게 하소서 부분)

 

   앞의 두 시구는 생명을 노래한다. 첫 시구에서 햇빛에 검게 타/ 금 가기 시작한 얼굴은 가뭄으로 갈라진 대지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목마름어둠만이 존재하는 반생명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시적인 현상일 뿐 생명의 대지는 결국 이슬로 표상된 생명의 세계이다. 대지의 은 마치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와도 같이 온갖 세파에도 생명을 지켜내는 모성애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구에서 햇살바람도 생명을 일깨우는 존재이다. ”갈라지는 땅은 앞의 시에 등장하는 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서 그 로 솟구치는 떡잎의 함성은 생명의 소리이다. 이는 어미 궁에서 나온/ 쪽뿌리/ 탯줄 따라/ 생명수/ 쭉쭉 하늘로 오른다”(글라디올러스)는 시구와 다르지 않다.

뒤의 두 시구는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 찾아/ 불구덩이로 달려드는것은 자기희생을 마다치 않는 진정한 사랑의 속성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다가 불빛 속으로 달려드는 부나비의 굴광성(屈光性), 그것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랑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인간의 속성과 다르지 않다. 시인이 추구하는 이러한 사랑은 에로스의 차원이든 아가페의 차원이든 결국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이다. 이 행위는 미움도 원망도초월하는 넓은 가슴으로 사랑을 품게 된 마음에 의하여 가능한 일이다. 시인은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포용과 용서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사랑은 아파할 때 등 돌리지 않는/ 그런 사랑”(진정한 사랑)이기에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4. 삶과 시

 

   이 시집을 덮으면서 하나의 가정을 해 본다. 만일 경정아 시인이 혹독한 병상 체험이 없었다면 그녀는 시를 썼을까? 아마도 시보다는 일상적 현실에서의 성취감이나 한 여성으로서의 외모를 치장하는 즐거움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가 없이 현실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 그것이 과연 인간적인 진정성이 확보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생존이나 연명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하등적인 삶에 불과할 터, 다른 표현을 한다면 동물적인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경정아 시인에게 질병은 삶의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라 플러스 요인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까지 오가는 고통스런 병고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정아 시인에게 시는 질병으로 은유 되는 삶의 고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주는 매개이다. 시인은 정신적으로 배고픈 삶을 채우려/ 거리에 내놓은 마음”(어느 여시인의 죽음)을 간직하고 사는 존재이다. 시인은 마음의 집을 찾아 속악한 현실의 거리를 떠돌며 방황을 하는 존재이다. 일찍이 프로이트가 예술의 기능으로 마음의 승화를 으뜸으로 꼽았던 것처럼, 시는 현실에서 파생된 고통과 속악으로 억압된 욕망을 넘어 꿈의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나는 오늘도

마음밭 갈아

꿈을 심을 것입니다

 

사막이 되어 버려

갈라져 목말라하는

마음밭에 물을 줄 것입니다

 

세상 풍파

맞고 사느라 지치고 허기진

마음밭에 고운 흙 뿌려

다독거리며 어루만질 것입니다

 

땅만 보고

아쉬워하는

마음밭

하늘 우러러 기원하며

한 알의 시 심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도

물 먹고 거름 먹고

햇빛 바라보는 삶

내일은

시 한 송이 예쁜 꽃 피울 것입니다(시 한 송이 피워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것에 대해 마음밭 갈아/ 꿈을 심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마음밭의 현재 상황은 사막이 되어버려/ 갈라져 목말라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사막과도 같이 된 연유가 세상 풍파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의 세상 풍파는 인생 만사 고해라고 하는 삶의 일반적인 속성뿐만 아니라 경정아 시인의 특수한 상황은 앞서 살펴보았던 병고와 관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의 고통은 네 번째 연에서 표현한 대로 땅만 보고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승화하는 일은 하늘을 우러러 기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을 시작(詩作)과 관련짓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시는 시작에 대해 흥미로운 비유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알의 시시 한 송이 예쁜 꽃으로 피어난다는 표현에 드러나듯이 시 쓰는 일을 일련의 유기적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정아 시인에게 시는 자신의 삶과 함께 살아야 할 유기적 생명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경정아 시인은 시와 생명, 시와 삶을 일치시킴으로써 시를 통해 인생에 대한 보다 깊은 사유와 절실한 감각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시는 삶을 위대하게 하고 삶은 시를 풍요롭게 한다는 시적 진실을 깨닫는 일이다.

 

 

경정아%20사진[1].jpg


약력: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04년 <문예운동> 시부문 등단

한국문협,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시와 시인 회장

로스엘젤레스한인회 이사

영재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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