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에 제 2 시집 출판기념회 가진 신춘문예 출신 정벽봉 시인
ㅡ 제 2 시집 <꽃삽 들다>를 중심으로
공순해 (한문협 WA주 지부 회장)
<인생의 곤지>
이 작은
제비꽃 앞에 와서
한나절을 앉아 있다.
물속 같은
고요에 몸 담근다.
하늘이
해를 끌고 온 하늘이
와서 채색(彩色)한 게 분명하다.
할멈은 와서
작은 인생의 곤지를
찍어 놓는다.
온 길은 아득하고
갈 길은
지척에 그림자로 와 있는데
오늘은
꿈 조각 모아
손거울 하나 만들어
그의 손에 쥐어 줄까
그리고
은밀한 말 한마디
빚으로 치부해 놓는다.
<해설>
좋은 시는 향기가 있다.
그 시의 향기는 시를 쓴 작가의 향기이다. 그의 선하고 따뜻한 인간적 온기의 향기이고 진솔하고 소박한 정서의 향기이다.
그리고 그 작가의 언어와 표현이 담백하고 은밀한 데서 나오는 향기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시인은 한 작은 제비꽃 앞에서
한나절을 바라보며 그 꽃의 “물속 같은/고요에 몸을 담근다” 꽃에 대한 애정이 깊고 그 꽃과 일체가 된 감성을 수채화처럼
그려내어 향기를 준다.
그는 그 꽃을 자기 부인인 “할멈”으로 은밀하게 투영시켜 그윽한 사랑의 온기로 덥혀준다. 특히 “꿈 조각 모아/손거울 하나
만들어 ” 할멈의 손에 쥐어 주어 젊은 시절 제비꽃처럼 고왔던 옛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소박한 애덕의 심성을 표출시키고
있다. 좋은 시는 직설적이지 않고 수줍은 듯 은밀하고 고요한 언어 표현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목된다. 시가 제비꽃 같다.
ㅡ 김영호 시인 (숭실대 명예 교수/ 비교문학 박사)
50년대 신춘문예 출신인 대선배 시인의 작품을 논하기엔 외람된 듯 싶어 먼저 김영호 교수의 해설을 인용해 보았다. 위의 내용은
출판기념회 뒤, 시애틀 한국일보 <서북미 좋은 시>에 실렸던 것을 퍼 왔다.
미주로 이주한 뒤 그는 줄곧 워싱턴주 올림피아에 칩거하며 오로지 시만으로 소일하여 왔다. 이제 그의 나이 89세, 평생 시로
살아온 그에게 어떤 시론을 적용하며, 어떤 잣대로 작품을 논할 수 있겠는가. 완성되어 가는 시 보다 완성되어 가는 삶의 시간에
존경을 바치며, 그 연세까지 시를 놓지 않고 벗한 시인에게 머리 숙일 따름이다. 따라서 생이 녹아 있는 시 한 편 더 감상하는 것으로
소개를 마감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난초>
문청 시절에 품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노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이 위의 시다. “엿새를 허송하고/ 하루를 챙겨/ 물을 준다” 물을 준 건 난일까, 시일까. “눈금만큼 자란/ 새싹에/
여생을 걸어 볼까” 여생을 걸어 본건 난일까, 시일까.
“여로에서 맡은/ 향 못 잊어/ 여직/ 세월 굴리며” 세월 굴리며까지 못 잊은 향, 그건 난일까, 시일까. “작품 하나 놓고/ 난과 함께/
하얗게 밤 지새운다” 비로소 그 정체가 드러난다.
그건 시였다. 그는 아직도 시를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고 있다. 문청 시절 품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아직 그대로인 것이다.
문학이 위대한 것일까, 인간의 의지가 위대한 것일까. 그의 열정에 감동한 시애틀 문인들이 그에게 헌정 시집 <꽃삽 들다>를
바쳤다.
선배의 길을 따르겠노라고. 열정의 길을 따르겠노라고.
약력:
본명 정승묵(鄭承默)
1927년 11월 20일 생
평남 진남포 출생
평양 교원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5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지열> 입선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빼앗긴 일요일> 당선
1961년 제 3회 대종상 시나리오 부문 신인상 수상
1984년 시집 <광야에서> 출간
1986년 시집 <광야에서>로 제 3회 조연현 문학상 수상
2015년 제 2 시집 <꽃삽 들다> 를 시애틀 문인들이 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