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시인

조회 수 9834 추천 수 4 2015.06.29 08:46:10

 

자아 인식에서 탐색하는 시간과 삶의 행로


                                                                            김  송  배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자아 인식과 성찰의 의미


  현대시의 정신은 그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범주(範疇)가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에 따라 중심사상과, 그곳에서 발현하는 주제가 어떤 지향점으로 의식의 흐름을 흡인하고 있느냐를 살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병호 시인이 상재하는 첫시집 『론 사이프레스』의 원고를 읽으면서 이러한 전제(前提)를 먼저 상기한다. 이는 이병호 시인이 의식하거나 인식하는 심저(心底)에는 그가 한생을 살아온 인생의 행로(行路)가 과거의 시간성에서 회상하면서 현재를 인식하는 단계를 밟게 된다. 그가 그 행로에서 탐색하는 주안점은 성찰의 의미적인 요소를 시적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이병호 시인의 약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78년에 도미하여 UCLA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방 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과 교수를 35년 6개월간 봉직한 인생의 체험이 바로 자아를 인식하는 원류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그는 ‘나 또한 위트가 없고, / 마냥 침묵을 지킬 자신도 없지만 / 아무렇지 않습니다. / 이유는 나름의 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세상은 재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지만 /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 대신 잘할 수 있는 나만의 특기가 있습니다. / 꼭 말해야 할 때 / 나는, 말할 수 있는 소신과 / 용기가 있으니 아무렇지 않습니다.(「용기와 소신」중에서)’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담담하면서도 세상과 삶을 통달(通達)한 자적(自適)의 사유가 성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도 없는 모래 언덕에
무엇이 그리 두려워
허물어지는 모래성을
만들려고 하는가.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50년이라는 양철집 주변을
서성이다 보니 이미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

아직까지 명주실 같은
연약한 목소리만 나올 뿐
대포알 같은 함성은 나오지 않고
바싹 마른 두 손바닥을
서로 비벼대며
분필을 들고 칠판에다
하염없이 흰 손수건을 그리며
흔들며 떠들어대고 있다.
           --「자화상」전문

 

  이병호 시인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현상을 묘사함으로써 그가 현재까지의 인생과 삶을 회상하면서 정립시킨 ‘자화상’이다. 그러나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 50년이라는 양철집 주변을 / 서성이다 보니 이미 /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는 어조에서는 화자는 숙연해지며 시인 이병호의 속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다시 그는 ‘대포알 같은 함성은 나오지 않고’라는 언술과 ‘분필을 들고 칠판에다 / 하염없이 흰 손수건을 그리며 / 흔들며 떠들어대고 있다.’는 진솔한 언어가 바로 그의 인생의 진실이며, 시적 흡인력이 된다. 어쩌면 초라하고 연약한 인생의 성찰하는 행로가 적나라(赤裸裸)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리라.
  김형석 교수는 그의 글 「내가 있다는 일에 관하여」에서 ‘내가 있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며 이로부터 세계와 우주는 그 자리와 의의가 있게 된다. 우주의 중심이 나에게 있으며 세계의 모든 무게가 나라는 초점 위에 머물고 있다’는 논지와 같이 ‘나’라는 존재의 확인이 바로 우주와 세계의 중심이 거기에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병호 시인은 이러한 시간 속에서 어느덧 ‘고희’를 맞게 된다. ‘고희(古稀)가 / 눈앞에 와 있다 // 오늘은 십이월 삼십일일 / 해마다 찾아오는 날이지만 / 오늘은 유난스레 눈물이 난다 // 머릿속에는 / 아직도 어릴 적 엄마의 얼굴이 / 스멀스멀 출렁이는 기억으로 / 향기로운 내음으로 펴져 있는데 // 늦은 귀갓길인데도 / 동네 몇 바퀴 몇 바퀴 돌아온 것밖에 없는데 / 코앞에 고희가 / 빙그레 웃고 있다.(「고희」 전문)’에서와 같이 인생은 서글프고 외롭고 고단한 삶의 행로를 빙빙 돌고 있는 고독감에 젖어 있다.
  이병호 시인은 이러한 인생관을 정리하고 ‘그래도 행복은 찾는 웃음은 계속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행복을 위해서는 이보다 /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행복을 찾는 길」 중에서)’라거나 ‘행복은 풍요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행복해진다. / 불신보다는 조그만 일에도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 / 그게 행복인 것이다. /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니고 / 감사해서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다.(「행복」 중에서)’라는 행복론의 전환으로 그가 자존의 인식을 단정하면서 시적 진실을 정리하고 있다.

 

2. 시간성과 동행하는 인생행로
  이병호 시인은 시간성에 대하여 많은 집중을 하고 있다. 이 시간과 동행하는 인생행로가 다변적이다. 그 시간에 따라서 구축되는 인생의 지향점이나 가치관의 탐구가 다양하게 변환하는 시적인 전개과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시간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명징(明澄)한 개념으로 인생과 대입한다면 우리 인간이 간직한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에서 상관하는 정감적인 행로가 재생되어 인식하고 성찰하거나 미래를 기원하는 인생관을 재창조하게 되는 계기를 맞기도 한다.
  우리의 칠정(喜怒哀樂 愛惡慾) 중에서 노(怒)와 애(哀) 그리고 애(愛)가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각인(刻印)되거나 불망(不忘)의 이미지로 창출되어 주제로 투영하는 시법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이병호 시인도 이러한 우리 인간의 고유한 정(情)을 배제하지 않는다.
  대체로 현대시를 해부해보면 자애(self love)라는 대명제를 항시 유념하면서 어떤 인생을 영위할 것인가를 탐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병호 시인은 애(愛)에 관한 실생활(real life)에서 획득되는 시간(혹은 세월)과 융화하고 화해하는 해법을 현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린다
속도제한을 염두에 두고
행선지를 향하여
앞차도 보고 뒤차도 보고 옆차도 보면서
인생도 달리고
마음도 달리고
시간도 달린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그리며
과거도 달리고
현재도 달리고
미래도 달린다
하루하루가 고달파도
인내가 보약이 되도록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달린다
희망도 달리고
꿈도 달린다
행선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일을 향하여
행복을 싣고서
              --「고속도로를 달리며」전문

 

  여기에서 이병호 시인은 ‘인생도 달리고 / 마음도 달리고 / 시간도 달린다’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동행하는 것은 인생뿐만 아니라 마음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그는 ‘과거도 달리고 / 현재도 달리고 / 미래도 달린다’는 그의 내면에는 그에게 부여된 모든 시간이 함께 희로애락을 동승시키고 있다.
  이병호 시인의 이러한 궁극적인 진실의 목표는 바로 ‘행선지에 도착할 때까지 / 내일을 향하여 / 행복을 싣고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우리 인간들의 ‘희망’과 ‘꿈’은 내일의 행복이 최종 목표라는 단순하면서고 소박한 기원의 의지가 ‘고속도로’를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노정(路程)에는 인내가 있어야 하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면서 /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 가야 한다. 작품 「은퇴」에서도 ‘시간은 화살처럼 너무 빨리 날아가는데 / 괴로움도 어려움도 산들바람에 실어 보내고 /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본다’는 새로움의 인본주의적인 자의식(自意識)이 발현되어 그의 관념이미지가 돋보이고 있다.

 

그 세월에 희로애락도 많았는데
가르치는 즐거움 속에서 나도 모르게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나 보다

양어깨에 건강과 소망을 메고 터벅터벅 걸으며
걸어온 길 뒤돌아 보지 않고 앞을 향하여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단것처럼
 
  그는 ‘은퇴’ 후의 인생 설계에 대해서 그동안 감당해온 체험, 즉 외연(外延-희로애락)에서 추출해낸 내포(內包)의 중심에는 ‘걸어온 길 뒤돌아 보지 않고 앞을 향하여 /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단것처럼’의 확고한 가치관의 모색이 승화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심경(心境)에서 파생된 시간의 향훈(鄕純)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 가는 시간에 못다 푼 꿈일랑 맡겨 버리고 /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냥한 미소로 반기는 너    (「론 사이프레스」중에서)
- 시간은 간다 / 공간을 초월하여 / 시작도 없이 끝도 없이 / 어제를 뒤로하고 / 오늘도 가    고 내일도 간다. (「시간」중에서)
- 어느 오후 한나절 / 따스한 햇볕 아래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  바닷가    를 바라보면서 장미꽃을 피워가는 젊은 남녀가 정겹습니다(「정겨운 모습」중에서)
- 시간의 바퀴는 돌아가는데 변함없는 생활 / 어느 사람도 탓할 수가 없나 보다(「캐나다     기러기」중에서)
- 새하얀 물보라에 꿈을 실으 /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 바다는 내 마음을 아는가(「몬    트레이 바닷가에서」중에서)
- '벌써 세월이 이렇게 되었나' / 사진관을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영정사진」중에서)

  이병호 시인의 시간은 ‘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통한 성찰의 내면을 적시(摘示)하고 있는데 대체로 ‘오늘도 후회 없는 하루’이며 ‘하루하루가 행복한 삶으로 잇대어지도록 /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며 ‘목적지를 향하여 정답게 걸어가는’ 것이다.
  또한, 그는 ‘소망의 내일이 기다리는 것’을 음미하면서 시간과 동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시간은 ‘시간은 영혼의 생명’이라고 강조한 롱펠로의 말처럼 생명이 인간의 시간을 진실로 유로(流路)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성은 우리 시학에서 시제(時制)라고 하는데 한스 메이홉에 의하면 ‘문학이란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는 체험적 시간, 즉 의식내용을 의미관련으로 조직하여 예술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문학에서의 시간문제가 작가나 시인의 체험 곧 의식 내용과 근본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示唆)해 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들은 대체로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한 시인의 체험이 어떻게 작품 전체에서 작용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시간성은 작품의 창작이나 감상에서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라! 삶의 현장에서 이병호 시인은 조망(眺望)하는 ‘인생길’은 바로 ‘생명’에의 갈구(渴求)이다. 그에게 착안(着眼)된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생명력이 강렬하게 유동(流動)하는 신념이 내재되어 있다. 그는 ‘갈등과 혼란의 세상에서’ 체험하게 되는 ‘나그네의 길’이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마음의 등불 되어 생명으로 이어지는 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확고한 기독교의 신심(信心)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장자(莊子)가 말했다. 개개의 육체는 죽으면 없어지는지 몰라도 인류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섶을 인간의 육체에 비유한다면 그것을 태우는 불은 생명이다. 섶이 타고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불은 이 섶에서 저 섶으로 이어져서 영원히 타오르는 것이라는 생명의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병호 시인은 이 밖에도 ‘우리 인생 모두가 빈손으로 왔다가 / 빈손으로 가는데 / 우주를 가슴에 품고 / 이 세상 것 뒤로하고 / 푯대만 바라보고 한발 한발 걸으련다(「별이 빛나는 밤에」중에서)’라거나 ‘지금도 늦지 않으니 / 인생의 멋과 맛을 선사하며 / 석류알 같아 보이리라(「석류」중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지내는 우리 부부 / 희로애락을 맛보며 생의 수레바퀴를 감사함으로 끌면서 / 빛과 소금이란 비전을 품고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옮기지요 / 행복 품은 인생사를 글 속에 담아 두고 싶은 소망이 똑같거든요(「우리 부부」중에서)’라는 어조처럼 인생과 인생사 그리고 생명의 갈구 현장은 새로운 각오와 여망과 기원이 동시에 그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다.

  이병호 시인은 「어느 시인의 고백」전문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 ‘마음에 밝은 미소가 태양처럼 다시 떠오’르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고뇌와 번민 속’을 헤매면서 ‘해산의 고통을 이겨내’는 정서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찍이 하이데거가 말했다.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버리고 있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 같은 느낌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그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이라고 ‘시의 정신’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병호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자아 인식과 성찰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생행로를 시간성과 동시에 추적함으로써 삶과 생명의 동반이라는 진실을 재발견하는 시법을 강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관에 대한 서정적인 심성을 투영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등식을 명징하게 정립하는 시인 본래의 정감으로 현현하고 있는데, 그의 내면에 원류를 두고 있는 시적 진실을 깊게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첫 시집 <론 사이프러스>의 출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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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아호: 松岩

광주광역시 출생

미국방 외국어대학 한국어과 교수역임

월간 신문예 시부문 신인상

제25회 서울문예창작상 시무분 수상

한국문협 회원 및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이훤

2015.06.29 18:52:20
*.182.57.183

첫 시집 <론 사이프러스>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많은 사유를 담은 시상, 

그를 풀어놓는 해설 잘 읽었습니다!

임문자

2015.06.29 22:11:57
*.208.232.242

첫 시집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직접 뵈오니 반가웠습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 앞으로도 좋은 글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정순옥 수필가의 수필도 감사히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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