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영의 시 이해와 감상
▲박영숙영 시인
문학이란 본디, 시의 생명인 비유와 상징은 그것이 뛰어날수록 매우 광범위한 의미 영역을 넘나들게 되고, 또한 그것이 심오할수록 개인적 독창성을 지니게 된다. 이미 고대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어난 비유는 천재의 소유이다.”라 갈파한 바 있다. 이 말은 뛰어난 시적비유를 얻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과 함께, 독창적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 언급은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뛰어난 천재적 비유를 달성하기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다만, 시적 성취도에서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만은 확실한 것이고, 시를 쓸 때에 독창적 비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점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의미에서, 박영숙영 시인의 다음과 같은 시구는 평가할 만하다.
구름이
산허리 천 년을 감고 돌아도
솔가지 하나 꺾지 못하고
강물에
나룻배 천 년을 지나가도
선 하나 긋지 못하는데
(중략)
모든 생명은 사라져 가고 있고
나 또한 그들 속에 흘러가고 있으니
만나는 그날이 이별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머물렀던 자리
언제든 내어줄 준비를 하면서
빈 하늘처럼 살다 가리
시 「미리하는 이별」 일부
위에서 보듯이 이 시의 전반부에 동원된 수사는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오묘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어서 시인의 사생관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비유가 되고 있다. ‘산허리를 감싸며 흐르는 구름이 소나무 가지 하나 꺾지 못하고, 강물에 나룻배가 천 년을 지나가도 선 하나 긋지 못한다’는 진술이야말로, 일견해서 아주 쉽고 평범한 비유인 것 같지만, 오랫동안 자연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선행될 때에 가능한 표현이다. 본디 훌륭한 비유는 교묘한 수법에 있지 않고 자연현상 가운데 내포된 심오한 의미를 읽어 내어 표현될 때에 더욱 감동적이기에, 위의 표현이 가능한 것이야말로 시인의 시적 성숙도가 상당함을 잘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무지개를 수놓은
잎 위에
빗물이 울고
빛바랜 추억을 붙잡고
비에 젖어 울고 있는
낙엽 한 잎
푸르렀던 꿈은
훌쩍
세월을 타고 와서
갈 길 몰라 방황하며
바람에 길을 묻고 있네
시 「무지개를 수놓은 잎」 전문
앞의 시에서 언술했듯이, ‘산허리를 감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강물에 떠가는 나룻배가 한 줄기 흔적조차 영원히 남기지 못하는’ 자연 현상처럼, 인간의 삶도 역시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삶에 대한 허무감이 넘칠 때, 시인의 눈에 비치는 모든 사물은 슬픔으로 물들어 보이게 된다.
한 잎 낙엽에 어려 있는 빗물을 소재로 허무한 삶을 비애의 정서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에서 확인되듯 이, 청춘의 꿈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웠지만, 어느 날 문득 비에 젖고 있는 낙엽을 바라볼 때, 영롱한 빗물조차 슬프게 우는 눈물로 비치는 것이다.
인생과 자연에 대한 박 시인의 정서가 다름 아닌 슬픔에 물들어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이 작품은 젊은 시절 비에 젖고 있는 낙엽을 바라볼 때, 영롱한 빗물조차 슬프게 우는 눈물로 비치는 것이다.
인생과 자연에 대한 박 시인의 정서가 다름 아닌 슬픔에 물들어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이 작품은 젊은 시절의 ‘푸르렀던 꿈’조차 ‘훌쩍 세월을 타고 와서’ 비에 젖은 한 장의 낙엽이 되어 울고, 결국 ‘갈 길 몰라 방황하며 바람에 길을 묻게’ 한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이런 허무감을 느낄 때가 있지만, 박 시인은 그런 정서를 비에 젖은 낙엽에 의탁하여 슬픔을 노래한다. 배꽃 나무를 소재로 한 다음의 작품에서도 시인은 아름다운 꽃조차 눈물 어린 슬픈 감정으로 바라본다.
배꽃 핀 나뭇가지 끝에 내가 앉아
바람으로 울면
하늘하늘 꽃잎이 떨어져
배꽃 향기 방 안을 채우는데
얼어붙은 심장에 불씨 당길
찬란한 눈동자는 구름 뒤에 숨어 있고
촛불 속에 타고 있는 기다림은
가슴 고파 아득한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밑
계곡물 흘러가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청냉수 마시며 살고 싶은 꿈
소리 없이 봄날은 가네
시 「가지 끝에 내가 앉아」 전문
바람에 흔들리는 배꽃 핀 나뭇가지 끝에 앉아 울고 있는 형상으로 데포르메 한 시인의 심정이 떨어질 듯 흔들리는 꽃잎처럼 불안하고 슬프기만 하다. 문명의 발달이 극에 달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시인의 외로운 삶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이 작품은, 후반부에서 보이듯 인공의 세계를 떠나서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보편적 정서와 함께, 본질적인 삶의 비애와 허무로 승화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하게 한다. 그런 정감은 자연에의 귀의를 꿈꾸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 자연에의 향수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으로 의인화가 되어,
‘촛불 속에 타고 있는 가슴 고픈 아득한 기다림’으로 강조되고 있어서 한층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하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밑 / 계곡물 흘러가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 청냉수 마시며 살고 싶은 꿈’ 가운데 소리 없이 가고 있는 봄날은 시인에게 더욱 짙은 허무를 느끼게 한다. 이 시에서의 압권은 이런 복잡한 시인의 심정을 ‘배꽃 핀 나뭇가지 끝에 앉은’ 상태라 표현하고 있음이다. 그냥 나뭇가지가 아닌, 바람에 꽃잎들이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배꽃 가지이기에, 이 작품을 지배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시인의 정서가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었고, 따라서 읽는 이를 매료시키게 된다.
너로 하여
나는 꽃이 될 수 있었고
너로 하여
나는 별이 될 수 있었다
너로 하여
나는 향기 품을 수 있었고
너로 하여
나는 빛날 수 있었다
너 때문에 행복했어도
너 때문에 눈물 흘릴 때면
애간장이 타다가
온몸이 타다가
한 점 불꽃
유성으로 산화하여
너의 심장에
별의 사리로 묻히고 싶다
시 「별의 사리로 묻히고 싶다」 전문
이 시에서 ‘너’로 지칭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간절하게 절규하고 있는 ‘너’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매우 처절하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너로 하여 꽃도 별도 될 수 있었던 나’는 ‘너 때문에 행복과 함께 슬픔으로 애간장이 타고, 한 점 불꽃이 되어 마침내 너의 심장에 별의 사리로 묻히고 싶은’ 지경까지 이른다. ‘너’라는 대상이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것이 인칭대명사인 까닭에 일차적으로 어떤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감정이 점차 고조되어 마침내 ‘너의 가슴에 별의 사리로 묻히고 싶다’는 경지에 이르고 있어서, 그 사랑은 개인의 차원을 떠나 우주적인 보편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 인간을 사랑하는 일차원적 사랑의 노래는 그 표현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상사로 표현되는 것이 흔한 사례이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 사랑의 감정이 매우 깊고 심원해서 한 개인을 대상으로 노래하였다고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란 시에서 ‘님’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듯이, 박 시인이 지칭하고 있는 ‘너’ 또한 ‘애인도, 부모도, 고향도, 조국도, 인류도, 자연도’ 될 수 있어, 다각도로 바라보고 감상하기에 적합한 작품이다.
-제5시집 "인터넷 고운님이여" 신규호 시인(전 현대시문학 이사장)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