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는 충청도 산골 마을에 태어났다 사대 독자라 귀한 몸 바람 불면 혹 날아갈까 봐 가슴 졸이며 일본 유학도 행여 어찌 될까 안 보내고 시골 촌부가 되었다.
아버지가 결혼하고 딸 둘이 먼저 태어나자 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둘째 부인을 얻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아들이 태어나고 네 번째, 다섯 번째도 줄줄이 아들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홍씨 가문의 홍복이었다.
무덥던 음력 칠월 어느 날 정오 막내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읍내에서 참외를 팔고 돌아와 지게를 마당에 내려놓고 헛기침 두어 번으로 기쁨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인생 허무가 뼈저린 아픔이었나 평소 사대 독자의 과잉보호가 허약하게 만들었나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가 한마디라도 하면 밥상은 허공에 나는 비행기가 되었고 겨울밤에는 도박판에서 지새우다 집과 논밭 모두 날아갈 뻔하였다.
몇 푼 안 되는 기성회비를 제때 못 내 학교에서 귀가하지 못하고 기성회비는 항상 꼴등이라 민망해 소년은 자라 나중에 아빠가 되면 자식의 기성회비는 제일 먼저 내주리라 다짐했다.
초등학교 때 단 한 번 아버지가 자전거 앞에 나를 태우고 읍에 갈 때 아버지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좋았는데 잠시 어느 집에 들어가고는 캄캄 무소식 문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며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돌아오는 길 뾰로통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자라며 개구쟁이들 골목대장이 되어 마을 아이를 거느리고 남의 보리밭에서 전쟁놀이에 신바람 밭 주인의 항의를 받고 잔뜩 뿔이 난 아버지 집에 돌아온 내 머리 위로 지게 작대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언젠가 여름방학 시집간 누나네 집에 어머니와 함께 가며 평생 처음으로 평안함을 느껴보았다 마음 깊은 곳엔 차라리 아버지가 없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뒷밭에 팔려고 재배하는 참외를 몰래 꾸억꾸억 먹으며 아파 누워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라 잘 익은 놈을 깎아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며칠 뒤 아버지는 북망산천으로 가고 철없던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뒷산 참외밭에서 참외를 옷에 닦아 먹다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울컥 솟아올랐다.
아버지, 남들에게는 양같이 순하셨고 우리 오 남매에게는 추상같이 엄했다 일찍이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인생이란 번뇌와 고통의 아픔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좋은 아버지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다 눈물이 없는 본향에서 영생복락을 얻었을 터인데.
나이가 들자 이제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안도감을 느낀 것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손주들의 좋은 아버지로 살겠습니다.
-2016년 6월 19일 아버지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