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유경순
지난겨울이 만든 가느다란 길 위를 올해도 걸었습니다
끈적한 생채기가 채 마르지 않은 길이지요
홀가분한 몸이지만 발걸음은 더디게 걷습니다.
둥근 마음으로 살고 싶었는데
뾰족한 얼굴로 하늘을 응시하고
이리저리 가시로 옆 가지를 찌르며 남은 것 하나도 없이 벗겨 버렸지요
서둘러 모진 마음을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면 흩어지는 마음을 들키기 싫어
놓아버린 순간들이 발아래 널브러져 있습니다
음조 없는 소리로 비벼가며 맨몸이 되어갑니다.
차가운 달빛 속에 늘 다가오는 찌릿한 앙금
저 아래 땅속의 옛날이야기가 오늘 밤도 어디론가 가려 합니다.
애벌레가 꿈틀거리며 알에서 일어납니다.
가느다란 길 위를 나와 같이 걷고 있습니다.
후끈한 동행입니다
저 꼭대기 달이 쉬어가는 오늘
바람이라도 놀러 오면 나의 잔가지라도 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