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달

조회 수 329 추천 수 0 2025.09.05 08:20:55

흰 달

 

유경순

 

깊은 밤 갑자기 눈을 떴다.

누가 깨운 것 같고, 전혀 자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렇게나 젖혀진 커튼 사이로 

커다란 하얀 달빛이 

이불 위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창문도 밤새 잠들지 못하고 달빛을 맞았다.

흰 달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도 달이 싫었다.

머리 위에서 나를 쫓아오는 것이 

온갖 무서운 생각을 들추어내었다.

커다란 나무 이파리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마치 나를 덮칠 것만 같고 

흙길 패인 웅덩이, 고인 물에 비친 달빛은

구름 속 검은 바다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엄마 손가락이 부서져라 꽉 쥐고 건너뛰었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흘러온 달빛이 흰 손바닥을 펼친다.

빛줄기는 오래된 종이처럼 얇아서

바람의 한숨마저 투명하다.

눈이 부셔 다시 감아보아도 

말이 없는 달빛은 

고향집 길모퉁이 향나무에 매달린 보랏빛 나팔꽃으로 핀다.

 

이파리 끝에 맺힌 이슬이

눈가장자리로 밀려들었다.

달은 나를 옛날로 돌아가게 한다.

짧은 밤이 지샐까

종종걸음으로 

엄마 생각을 품고 왔다.

흰 달이 이젠 무섭지 않은데

엄마의 손끝을 잡고 싶은데

난 이순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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