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소년

조회 수 65 추천 수 0 2026.01.10 19:53:20

<*셰르파 소년>

유경순

 

창밖의 고양이가 창가에 앉았다

서로 다른 두 눈빛 속

히말라야의 오후가 얼음골처럼 굽어 있었다.

한쪽 눈은 식탁 위 남은 국물을 담고 

다른 눈은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담았다.

 

소년은 당나귀의 등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붉은 천으로 묶인 짐들이

배 아래에서 숨 쉬듯 흔들렸다. 

설산의 공기가 소년의 볼을 얇게 스치고,

봄은 아직 저 먼 계곡에 숨어 있었다.

 

앞서 걷는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바위 자갈길 위에서 먼지를 일으켰다.

 흙먼지가 소년의 시야를 스치며

공기가 잠시 정지한 듯 덜그덕 거렸다.

 

덜 그 덕

당나귀의 발굽이 얼음 위를 두드렸다.

그 소리를 바람이 삼켜갔다.

히말라야의 골짜기마다

깃발이 흔들리며 바람을 품는다

 

덜 그 덕

발굽 소리 위로 

녹슨 기차 바퀴가 지나간다

기차는 산맥의 끝을 따라

동으로, 동으로 흘러갔다

 

침엽수림의 어둠 속

플랫폼에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소년을 닮은 얼굴,

둔탁한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밤에만 깨어나는 눈빛들이 흔들렸다.

 

북소리가 멎자

바람에 스친 햇살 한 줄,

 그 빛 아래 깃발 사이로

소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소년의 입가에 

바람이 스쳐 갔다.

금이 간 그릇속국이 서서히 식었다.

 

그때 창밖에서 

바람이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히말라야의 어디선가

낡은 깃발이 잠시 흔들렸다.

바람은 여전히 산맥 끝에서 깃발을 흔들었다

 

*셰르파는 네팔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셰르파는 동쪽에서 온 사람을 의미하는데, 고소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르는 산악인 혹은 원정대의 안내와 짐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원정을 돕는 사람들’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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