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신호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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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갈이
신호철
미루고 미루다 화분갈이를 한다 삼십 년 같은 집에서 같이 사는 너를 꺼내어 털어 내고 잔뿌리를 자르고 새 흙을 덮어 주었다 그렇게 서너 번 치르고 나니 시간이 살처럼 날아 너무 멀리 와 있더라 오랜 기다림 끝에 새싹을 반기고 나무 밑동에서 자식처럼 몇 개의 새 가지와 푸른 잎 한 아름 얻고 나니 인생의 꼭짓점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더라 몇 번은 잘리고 몇 번은 추스르다 보니 삶은 피었다 지는 꽃과 같더라 거슬러 흐르지 못하는 강물이더라 스쳐가는 바람이더라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과 풍경에 젖어 어느 날 어느 순간 나도 어느 풍경으로 남는 것이더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곳에 흙으로 남는 것이더라 죽은 가지 끝에 움트고 있는 새싹처럼 나의 봄에도 둥글고 푸른 너의 얼굴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 마법이 풀린 봄날의 햇빛이 너의 얼굴 가득 비추는 날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저 언덕을 넘어 산철쭉 가득 핀 바위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지고 싶더라 새벽같이 찾아온 이 고요에 다시 잠들고 싶더라 수고로운 아침을 버리고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곳에서 더는 슬픔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곳에서 다시 깨어나고 싶더라
약력:
동방문학 시부문 등단. 한양문학 수필부문 문학상. 홍익대 미술대학/SAIC( 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 / Truman College 개인전 및 다수 그룹 전 참여. 시카고 문인회 회장 역임(2019-2020). 시집: 『바람에 기대어』 시카고 중앙일보 필진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매주 기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원. 시카고 문인회 이사. 시카고 디카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