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베사메 무쵸
가원 유경순
“베사메~베사메 무 ~쵸”
부드러운 남미의 음악이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감싸고 진한 헤이즐넛 커피향이 나의 맘을 빼앗는 아침이다. 아직은 쌀쌀한 바깥온도가 늦게 걷고 있는 봄과 동행하지만, 달력 속의 4월은 꽃이 만발하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몇 장의 사진이 휴대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보고 또 보게 한다.
40여 년이 흐른 뒤에 보는 잊고 살던 친구들의 얼굴 속에 해맑았던 그때의 얼굴들이 겹쳐지며, 기억을 되새김하는 내가 되어 바쁜 아침 시간도 잠시 멈춰선 순간이다. 사진 속 커다란 플래카드에 쓰여있는 총동창운동회란 글귀가 새삼스레 지난날을 뒤돌아 보게 한다. 허허벌판이던 학교 주변은 커다란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지만, 그때의 운동장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두 시간 수업이 끝나면 15분쯤 전교생 리듬체조 시간이 있었다. 주번만 교실에 남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같은 반끼리 모여 둥근원을 만들며, 음악에 맞춰 무용 시간에 배운 율동을 하는 시간이다. 빨간흙 운동장이지만 여학생들은 흰 운동화가 더 깨끗하게 보이려고 했다. 방과 후 매일 운동화를 빨던 생각도 난다. 운동장의 담을 이루고 있는 싱그러웠던 아카시아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피웠고, 곳곳마다 사계절 들꽃들로 마음을 꽉 채우던 교정 속의 나의 17살 시절, 꽃내음을 맡으며 자기들만의 미래의 꿈 꾸던 그 시절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성장을 했던 단발머리 여고시절이다.
조그만 시골 여학교의 운동장을 쩡쩡 울리던 '베사메 무쵸'의 음악이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했던가. 경음악으로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던 그 음악은 아마도 지금 생각을 해보면, 쇼팽이나 베토벤의 거장 음악보다도 나의 마음에 징을 크게 울리는 듯 감성을 일으키곤 했다. 마음속엔 사랑으로 가득 차 그날은 노트 몇 장을 깨알과 같은 글씨로 마음을 옮겼었는지, 그 생각이 희미해질까 봐 조급해하던 나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느껴보는 마음이지만, 그때랑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지금의 나 혼자만의 착각 속에 나이를 잊고 산다 싶다.
어린 시절 흘러간 유행가를 한 소절 부르며 얼굴에 행복해하시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이 난다. 그때의 엄마보다도 더 나이가 든 지금의 나인데,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지난날을 회상하고 계시지 않으셨을까 싶다.
사는게 다 그런것이니까. 인생은 추억을 먹으며 사는 것이 아닌가. 그리워만 하지 말고 현실 속에 꺼내어 같이 가고 싶다. 비록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언제든 듣고 싶은 음악을 손안에 있는 휴대폰안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그 시절엔 듣고 싶어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모두들 그 율동 시간만 되면 음악을 감상하며 둥근원을 최대한으로 멋지게 만들었다.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고 음악이 끝나면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수업으로 들어가던 생각이 난다.
아침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안드레아보첼리의 베사메 무초를 듣는다. 세월이 흘러도 지난 시절 끔찍이도 좋아했던 그 음악이 나오면, 그리운 그때로 다시 잠깐 돌아갔다 올 수가 있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흰 구름을 타고 타임머신속에 있는 황홀한 기분으로 넋두리한다.
Besame ~
Besame mucho~
나의 추억은 아름답게 나의 손을 잡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