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유경순
꺾어지는 가락 속에 열병이 춤춘다
소리꾼의 춤사위
내뱉어내는 가는 침은
얼음을 만드는 영하의 물벼락
쏟아져 흐르며 얼어붙는다
귀를 막아도 가느다랗게
땅속에서 뛰쳐나온
죽은 매미의 울음 같은 아우성
푸른 달빛이 춥기만 하고
실 같은 틈만 있어도
온기는 사라지고
덧붙인 창호지는
작은 바람에도 팽팽히
고집스러운 사연을 뿜어내고 또 뿜어낸다
흔들림 없는
청춘 깃발 하나가
꼿꼿이 서서
달빛을 찌르고
서슬 퍼런 겨울바람을 가르고 있다
덩더꿍 덩더꿍
한쪽 손에 들려진 부채를 필 때마다
물이 되어 흐르는 억겁의 세월
시리도록 차가운 열병
단조 속에 끓어오르는
목구멍에서 나오는 긴 외침은
한 줄기 햇살 속에 빠져나가는
자그마한 입자의 먼지같이
서둘러 움직이는 작은 몸부림이다
사그라진 절규 속에
세월은 흐르고
한 줄 시속에 파묻힌 영혼
거친 광야를 달린다
피도 말라버린 세월 속
비린 바람도 불어댄다
*시인 김지하의 <오적> 판소리를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