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지하식당

 

 

어른이 읽어도 좋을 단편 동화 (13~16세)

 

 

이경미

 

 

 

 

 

 용타는 시계를 보는 척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다.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연습실에 있는 그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마주치기 싫다.

 오후 3시. 

 매니저 형이 오후 연습 스케줄을 수정하는 동안 멤버들은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새로 온 리더라는 자식은 멤버들이 어려워하는 안무 동선을 시범까지 보이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용타에게 새 리더는 ‘리더’이기도 했다가 ‘리더 자식’이 되기도 한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자식을 리더라고 인정할 수 없다.

 용타는 오후 연습이 시작되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바퀴벌레 알집같이 생긴 시리얼을 아주 조금 우유에 말아 먹은 게 아침 식사의 전부였으니 배가 아프도록 고프다. 이런 몸 상태로는 오후 연습량을 감당해낼 수 없다. 지갑만 챙겨 들고 지하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리 그룹을 해외 팬들에게 소개하고, 세계 각지에 열리고 있는 K-Pop 이벤 트를 잘 소화해내려면 우리도 분위기를 바꿔볼 필요가 있어서 결정한 것이니 이해해라. 앞으로 우리 더 잘 해보자. 너를 믿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용타 혼자만 타고 있다. 혼자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리더 자리를 다른 녀석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통보하던 회사 대표와 매니저 형에게 대들며 난동을 피운 일주일 전, 기억이 생생하다. 얼굴이 화끈화끈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13층에서 지하 2층까지 익스프레스로 내려간다. 

 데뷔하던 해 최연소 아이돌그룹 신인상을 받던 날,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밤새워 작업하던 날, 리드보컬과 리더의 역할을 그만두라는 회사 대표에게 달려가 항의하던 날. 그런 기억들이 함께 추락하며 용타를 실은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 닿는다.

 지하식당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점심 영업을 마치고 저녁 영업을 위해 문을 닫은 것 같다. 몸을 낮춰 창문을 통해 식당 안을 들여다본다. 식당 직원들이 보인다. 문을 두드려보지만 아무도 문 쪽을 쳐다보지 않고 설거지에만 집중한다.

 식당 안은 분주하다. 

 달그락달그락, 식판과 각종 식기류가 부딪치며 만드는 소리가 식기 세제의 거품을 타고 다닌다. 대왕 사이즈의 퐁퐁 거품. 식기 세제에서 저렇게 큰 거품이 났던가? 몇몇 주방 직원은 양파를 채 썰거나 마늘을 까고 파를 다듬고 있다. 아마도 오늘 저녁 메뉴를 위한 밑 작업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연습실로 돌아가려고 할 때, 용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식당 문 옆 식권자판기에서 비추어 나오는 불빛. 희미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불빛이다. 

 이 식당 옆에 이런 식권자판기가 있었던가? 용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가지의 점심 메뉴가 먹음직스럽게 그려져 있다.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버튼 19개에는 다 ‘매진’이라고 쓰여 있지만, 버튼 하나에만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아무거나’를 누른다. 

 맨 마지막 20번째 메뉴는 ‘아무거나’이다. 매진된 19개의 메뉴 그림 속 음식들이 한꺼번에 식권자판기를 통해 냄새를 뿜어내는 듯하다. 식권자판기가 뿜어내는 음식 냄새에 이끌린 용타는 ‘아무거나’라고 쓰인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 식권자판기 전체에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 강렬한 불빛이 쏟아져 나온다. 칼과 도마가 만나 만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어서 오십시오. 우리 지하식당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 선택하 신 메뉴의 식권을 받아가세요.’

 식권자판기는 경쾌하고 예의 바른 소리로 인사를 한다. 식권을 토해낸 작은 창구로 손을 넣으니 따뜻한 기운이 전해진다. 

 음식 냄새가 이 창구에서 나오는 걸까? 용타는 식권을 집어 들면서 그 작은 창구로 코를 킁킁거리며 얼굴을 갖다 댄다. 배가 너무 고파 정신을 잃을 지경인데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식권자판기 안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용타는 가슴이 조여 오는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 식권 창구로 얼굴을 갖다 댄 것뿐인데 온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 

 

 ‘쿵’하는 소리를 내며 식판대에서 식판 하나가 떨어진다. 

 동시에 용타도 ‘쿵’하는 소리를 내며 지하식당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용타의 온몸을 에워싸고 있던 대왕 사이즈 퐁퐁 거품도 ‘퐁’하는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는 온몸에 붙은 퐁퐁 거품을 털어낸다. 

 조금 전 창문으로 들여다본 지하식당의 풍경 안에 그가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주방 직원들은 그가 들어와 있는 것을 눈치 못 챈 듯,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들은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면서 더 큰 거품을 퐁퐁~ 날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용타는 당황스럽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것도 잠깐, 채 썰린 양파의 매운 냄새에 정신을 잠깐 잃는다. 자극적이다. 용타가 눈과 코를 마구 비비는 순간, 주위의 모든 움직임이 일제히 중단된다.

 양파를 채 썰고 마늘을 까던 주방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용타는 식당 안을 둘러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양파와 마늘 냄새가 어찌나 매운지 그는 한동안 눈을 꼭 감고 있다. 천천히 실눈을 뜨며 주위를 살핀다. 그러자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할머니 한 분이 주방 안쪽에서 나온다.

 “어서 오게나. 점심이 많이 늦었네.”

 그녀는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한다. 용타는 식판을 들고 주방 할머니가 오라는 쪽으로 걸어간다. 주방을 통과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지하로 난 쪽문이 있다. 그 쪽문을 통해 식당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다. 

 또 다른 작은 부엌이 보인다. 그는 설거지 개수대에서 흘러나오는 대왕 사이즈 퐁퐁 거품에 떠밀리다시피 지하로 밀려 내려간다.

 “식권은?”

 “네?”

 “식권을 줘야지.”

 “아, 네, 여기. 지하식당에 또 이런 지하가 있었군요.”

 “이쪽으로 와 앉게.”

 “아, 아무거나, 아무거나로 빨리 주세요. 다른 건 다 매진이라서요.”

 “왜 점심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하고 이 시간에 혼자 왔는지 알려주면 음식을 만들어주지.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먹지, 왜?”

 “밥맛없는 애들이랑 어떻게 밥을 같이 먹어요? 입맛도 없고 밥맛도 없어요.”

 용타는 아침 8시에 합숙소에서 나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을 한다. 자기 몸을 빠져나가는 쓴 입 냄새를 맡아본다.

 “계속해봐.”

 주방 할머니는 채소를 손질하며 말을 잇는다. 여기가 주방 직원들이 식사도 하고 밑반찬 준비를 하는 곳일까? 용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핀다. 한쪽 벽에는 점퍼와 앞치마들이 걸려 있고, 그 위로는 주별 식단표와 음식 도표가 붙어 있다.

 “학생 손님이 선택한 ‘아무거나’는 오늘 점심에 팔고 남은 음식 재료로 뚝딱뚝딱 만들어주는 것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게. 단, 자네가 점심도 제때 못 챙기면서까지 혼자 고민하는 것이 뭔지 나에게 말해 주는 조건으로 말일세. 나는 이야기 듣는 걸 참 좋아하거든.”

 “저 본 적 없으세요? 제가 누군지 모르세요?”

 “난 모르겠는데….”

 “TV 안 보세요? 이 빌딩 13층 엔터테인먼트 회사 소속의 아이돌 가수, 저를 모르실 리가요?”

 “그럼, 스타? 학생 스타구먼, 아이고! 우리 집 손자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꼬.”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조용히 먹고 갈게요. 빨리 주세요.”

 “고민거리를 털어놔야 음식을 만들어준다니까.”

 “------”

 용타는 한참을 망설인다. 차라리 길 건너 편의점에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든다. 빨리 이 이상한 지하식당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지만, 용타는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프다. 일단 ‘아무거나’라도 대충 먹고 오후 연습 시간에 맞춰 빨리 연습실로 올라가야 한다.

 “할머니는 저를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저는 꽤 유명한 가수예요. 아이돌 가수.”

 “오 ~ 그래?”

 “10명이 한 그룹인데, 제가 일주일 전 리더 자리에서 밀려났어요. 더는 리드보컬도 아니고요. 새로 뽑힌 리더라는 놈이 저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요. 외국에서 K-Pop 오디션에 붙고 유명한 힙합 가수랑 콜라보라나, 뭐 그런 작업까지 했다던가... 아무튼, 그렇고요.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청소년 래퍼 대회에서 상도 받고, 개인 앨범도 벌써 하나 냈대요.”

 용타는 비아냥거리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설거지 개수대에서 옮겨 날아온 거품으로 부글부글 퐁퐁 거리며 그를 들썩인다. 꾹 참고 있던 짜증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먼.”

 “회사 대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매니저 형은 믿었는데…. 아무리 저보다 잘난 놈이라고 해도, 그 자식을 새 리더로 뽑다니!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제가 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매니저 형은 뭐라 하는데?”

 식당 할머니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할 말이 있다고, 얘기하자고 하는 것을 제가 일주일째 피해 다니고 있어요.”

 “회사 대표라는 사람은?”

 “대표님은 엄청 바빠서 만날 수도 없고요.”

 용타는 퐁퐁 거품을 손으로 쳐가면서 대답한다. 

 사실 용타의 가창력은 그룹 멤버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무대 퍼포먼스 다방면에서도 리더임에 틀림은 없다. 용타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면서 대기업 광고를 찍거나 TV 예능프로그램에 개인으로 출연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그를 시기하는 멤버가 생겼고 10명의 하모니는 깨어지기 시작했다. 용타가 개인 활동 때문에 그룹 연습을 자주 빼먹게 되자, 멤버들과의 오해와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갔다. 결국, 용타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고 그룹의 불화를 감지한 팬들의 악플이 이어지면서 회사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말았다. 방송국 섭외도 현저히 줄어들고 그룹 멤버 전원이 고정으로 출연하던 라디오 프로그램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회사 대표와 매니저 형은 멤버 교체를 결심한 거다.

 “새로 온 그 리더라는 친구, 대단한 친구 같은데, 영어도 잘하고 K-Pop인가 뭔가에도 좋은 거면 자네 회사에도 두루두루 좋은 거 아닌가?”

 할머니는 용타의 속을 박박 긁어내는 듯 돌솥 밑바닥을 긁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제 인기 덕분에 회사가 이렇게 컸잖아요?”

 “그래서 밥도 제때 못 챙겨 먹고 속만 태우고 있었군.”

 “그게 다가 아니에요.”

 “뭐가 또 있나?”

 “어제 아침 우연히 매니저 형의 컴퓨터 화면을 보게 되었는데….”

 “그런데?”

 “온라인으로 기차표 예매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멤버 중 지방 출신은 저뿐이에요. 저를 회사에서 내보낼 생각인 거죠. 분명해요. 그래서 그 어린 자식을 리더 자리에 앉힌 거라고요.”

 “그럴 수가?”

 “일주일째 할 얘기가 있다고 하는 걸 제가 계속 피해왔는데…. 틀림없어요. 그런 건 다 느낌으로 아는 거 아녜요? 이제 저는 소속사도, 아이돌그룹도, 노래도, 미래도, 다 잃은 거라고요. 다 끝이라고요.”

 “쯧쯧쯧... 그런 걱정거리가 있었군. 그런데 학생 스타는 왜 아이돌이 되려고 했지?”

 “전 노래밖에 잘하는 게 없어요. 노래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그래서 못하는 춤을 배우고 연기도 배우고 했던 거죠. 무대에서 최고가 되려고요. 그런데 이제 다 끝났어요. 새로 온 리더 자식이 영어 좀 한다고, 외국에서 상 좀 받았다고, 얼마나 꼴불견일지 생각하면 정말 자존심이 상해 미치겠어요. 그를 칭찬하는 댓글이 달리고, 저에 대한 악플은 늘어만 갈 게 뻔해요.”

 가스레인지 위의 작은 돌솥에 불이 확 타오른다. 용타는 그의 마음에도 불이 활활 타올랐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지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많은 날. 무대에서 노래할 날만을 꿈꾸던 연습생 시절. 매니저 형을 만나면서 노래할 기회를 처음 얻게 된 날의 기쁨. 힘들었던 연습생 시절 내내 늘 격려해주고 힘이 되어 준 매니저 형. 용타는 다 기억하고 있다.

 “새로 온 리더가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상도 타고, 뭐 그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 같은데, 배울 점도 많을 거야, 그지?”

 “글쎄요. 잘난 척 꽤 하겠죠.”

 “외국에서 살다 왔으면 말이야, 국내에는 인맥이나 친구가 많이 없을 텐데 적응할 수 있게 잘 도와주면, 그것도 또 좋은 인연이 되지 않을까?”

 “쪽팔리잖아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제가 리더였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해요?”

 “학생 스타, 학생 스타는 노래가 하고 싶어서 아이돌이 된 건가? 아니면, 그룹 리더가 되고 싶어서 아이돌이 된 건가?”

 “------”

 “이리 줘.”

 “네?”

 “식판, 이리 달라고.”

 “왜요? 점심은요?”

 “오늘 점심에 식판은 필요 없어. 저기로 치워 둬.”

 주방 할머니는 돌솥에서 보글보글 끓는 무언가를 옴폭한 질그릇에 담아 용타 앞에 놓는다.

 “자네는 배도 고프겠지만, 마음이 아프고 고픈 거야.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서……. 거하게 먹는다고 다 좋은 건 아냐. 자 여기 있네, 눌은밥.”

 “에게, 고작 눌은밥이요?”

 “밥맛 없고 입맛 없다면서 왜 밥그릇 싸움을 하누? 싸워서 나눠 먹으려 하지 말고 다른 걸 먹으면 안 되나?”

 용타 앞에 놓인 눌은밥에서 구수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할머니가 돌솥 바닥을 박박 긁으시더니 이 눌은밥을 만드신 게다.

 “눌은밥은 불에 눌리고 타야만 이 구수한 맛을 내지. 하얀 쌀밥이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구수한 맛. 그리 좋은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뭐하나? 다른 멤버에게 날을 세우고 있으면서 어떻게 노래를 하누? 입에서 썩은 냄새가 나도록 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그 입으로 부르는 노래에서도 썩은 단내가 날걸?”

 “------싸우면서 나눠 먹으려 하지 말고, 다른 걸 먹으라고요?”

 “학생 스타, 자 – 보게. 저 식판. 밥 담을 곳에 밥 담고, 국 담을 곳에 국 담고, 반찬 담을 곳에 반찬 담고, 그렇게 다 칸칸이 나눠 담지.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돌그룹 멤버끼리 내 먹을 것을 어느 더 큰 칸에 담을까 하며 다투는 거 아닌가? 식판 밥만 먹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걸 먹어 봐. 한 그릇 음식 같은 거, 일품요리 말이야.”

 “한 그릇 음식, 일품요리요?”

 “한 그릇에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는 일품요리 같은 거 말일세. 학생 스타는 언제까지 아이돌그룹에만 있을 건가? 자기가 부르고 싶은 곡을 직접 써보기도 하고, 개인 콘서트도 하고, 앨범도 내보고…. 노래가 좋고 노래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면, 그 노래를 하면서 행복하면 되는 거야. 나이 어린 리더 때문에 쪽팔린다고 꿈을 버리면 쓰나?”

 할머니가 하는 말이 처음에는 좀 쓴맛을 내다가 곧 구수해진다. 눌은밥의 맛도 그렇다. 처음에는 좀 쓰다가 구수해진다. 용타는 온몸이 데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마음 바닥에 눌어붙은 자존심과 패배감의 누더기들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눌은 마음을 긁어내야 새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지. 영양가를 고루 갖춘 완벽한 식사는 안 되겠지만, 몸이 아니라 마음에게 대접하는 거로 생각하고 먹게.”

 “------.”

 주방 할머니는 앞치마를 새로 갈아입으며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나, 김치 버무리러 가야 하네. 잘 먹고 가게.”

 “하, 할머니, 잠깐만요! 할머니, 할머니는 대체 누구세요? 여기 주방장이세요?”

 “아니, 옛날에는 그랬지. 나도 자네처럼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주방장 밑에서 일하고 했네. 나쁘진 않았어. 리더를 잘 리드하는 사람, 나는 그 사람도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하지.”

 “네? 리더를 리드한다고요? 어떻게요?”

 “새로 온 그 어린 친구가 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게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학생 스타라면, 학생 스타는 그 리더를 리드하게 되는 거지.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의 길은 아니야. 옆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길이 보이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다 보면 기회는 또 얼마든지 있지.”

 용타는 한 숟갈 두 숟갈 천천히 눌은밥을 떠먹는다. 

 한 숟갈씩 뜰 때마다 할머니가 하신 말이 래퍼의 가사 말이 되어 그의 몸을 빠르게 휘감는다. 용타는 오랜 연습생 생활 끝에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과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눌은밥이나 죽 같은 음식은 걸쭉해서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 먹는 눌은밥은 왠지 좋다. 맛있다.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더니 마음도 뜨끈뜨끈해진다. 마음이 데워지니 몸 안의 열기가 눈물로 방출된다. 용타의 눈물이 뜨겁다.

 “자 그럼, 난 먼저 위로 올라가네. 다 먹은 후 그릇은 위층 식판대 위에 놀려놓고 가게나.”

 할머니는 계단 쪽으로 걸어가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모습을 감춘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고 어디선가 음성 메시지가 들린다.

 ‘식판을 반납하실 시간입니다. 남기신 음식은 음식물 처리통에 넣어주시고, 사용하신 모든 용기는 식판대 위에 놓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지하식당을 애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타는 식판과 눌은밥 그릇을 반납하러 식당 출구 쪽에 있는 식판대 앞으로 향한다. 

 채 썰린 양파가 산처럼 쌓여 있다. 눈이 맵다. 할머니를 찾으러 주위를 둘러보지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양파 냄새에 온몸의 신경세포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다.

 눈과 코를 마구 비비는 순간, 개수대에서 퐁퐁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더니 용타 쪽으로 무리 지어 옮겨온다. 용타는 대왕 사이즈 퐁퐁 거품에 떠밀려 지하식당을 물처럼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칼과 도마가 만나 만드는 소리가 용타의 귀를 타고 앞을 다투며 흘러나간다.

 용타를 감싸 안고 떠밀던 마지막 대왕 퐁퐁 거품이 식당 문밖에서 ‘퐁’하고 터지자 용타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다. 용타는 거품을 털어내며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으로 향한다. 그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자, 식권자판기의 모든 메뉴 버튼에 불이 꺼진다. 

 

 용타는 매니저 형이 사무실에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리더가 아니어도 좋고 리드보컬이 아니어도 좋으니, 노래만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할 작정이다. 제발 내쫓지 말아 달라고,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 볼 생각이다.

 

*** 

 

 

 13층. 

 용타는 연습실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멤버들은 오후 연습 스케줄에 따라 삼삼오오 나뉘어 안무실이나 녹음실에 있을 거다. 연습실 벽에 붙은 이번 주 스케줄 표를 보니 그의 이름이 빠져 있다. 큰일이다. 결국, 회사 대표와 매니저 형은 그를 회사에서 내보내려는 거다. 안 된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용타는 단숨에 매니저 형의 사무실로 달려간다. 

 문이 부서질 정도로 세게 밀어 열어본다. 거세게 인 바람은 용타보다 먼저 사무실 안으로 휘몰려 들어간다. 그 바람에 탁자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악보들이 제각각 날리면서 공중에서 화음을 낸다.

 “형, 아니, 매니저님, 매니저 형! 저, 계속 노래할 겁니다. 어떤 파트도 좋아요. 리드보컬, 그거 아니어도 좋아요. 그 자식, 그 리더 자식에게도 잘할게요. 도울게요. 배울게요. 식판 음식 말고, 한 그릇 음식으로 일품요리가 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저, 내쫓지 마세요, 제발!”

 다행히 헤드폰을 끼고 있던 매니저 형은 문이 부서지도록 세게 여닫히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태연히 용타를 맞는다.

 “어, 왔구나! 잘 왔다. 너 오늘도 안 오면 나 혼자 가려고 했는데, 다행이다.”

 “네?”

 “부산에 사는 김송아 작곡가님, 알지? 그분과 우리 새 앨범 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거든. 우리 회사 아이돌 가수 중 너가 가장 고참이고 모든 멤버의 음역대를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너를 꼭 데리고 오라고 하시더라. 네게 직접 불러보게 하면서 즉석에서 편곡하신다고. 넌 행운아야! 김 작곡가님이 그런 제의를 하실 줄은 몰랐거든. 너의 음색이 아주 마음에 드신대. 함께 가려고 기차표 예매까지 했는데, 네가 계속 피하고 연락도 안 되길래 나 혼자 가야 하나 어쩌나 하고 있던 참이야.”

 “아, 형! 매니저 형….”

 용타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얘기하려 하지만, 터져 나오는 안도의 기쁨이 그의 얼굴 근육을 마구 간지럽힌다. 쫓겨나는 게 아니다. 노래를 계속할 수 있다. 용타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때? 이번 기회에 너의 그 슬럼프, 완전히 날려 보내는 거?”

 “아!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그래서 이번 주 연습 스케줄 표에 제 이름이 없던 거예요?”

 “그래.”

 “형, 고마워요.”

 “고맙기는…. 앞으로 더 잘해보자. 그런데 식판이고 일품요리고, 그게 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

 “--- 헤드폰 끼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다 들었어요?”

 용타의 얼굴이 붉어져 온다.

 “싱거운 녀석, 엉뚱하기는….”

 매니저 형은 그저 웃기만 하며, 이쪽으로 와 앉으라는 손짓과 함께 컴퓨터에 끼워져 있는 헤드폰 코드를 뽑는다. 음악이 컴퓨터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공중을 자유로운 화음을 내던 악보들이 솜털처럼 한 장 한 장 탁자 위로 내려앉는다. 새 앨범에 실릴 곡이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는 처음이다.

 “한참을 앉아 집중했더니 배고프다. 용타야, 간식 먹으러 나갈까?”

 “아, 전 방금 지하식당에서 먹고 왔어요.”

 “그래? 그럼 잠깐 여기서 기다려. 나도 지하식당에 내려가서 뭐라도 간단히 먹고 올게.”

 “지금은 안돼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사이엔 문을 닫아요.”

 “무슨 소리야? 어제도 이 시간에 내려가서 간식을 먹었는데!”

 “네?”

 “내가 이 건물에서 일한 지난 10년 동안,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한 번도 문 닫힌 적이 없던 식당이야.”

 “그럼, 보라색 머리의 할머니를 아세요?”

 “그런 할머니가 계셨나? 예전에 계셨던 것 같기도 하고. 글쎄, 모르겠는데….”

 “식권자판기는요?”

 “엉? 그런 게 있었어? 난 몰랐는데….”

 “네?”

 “너는 뭘 먹었는데? 지하식당에서 먹었다면서?”

 “그것이 글쎄….”

 “방금 먹고 올라왔다며?”

 “네? 아…. 네…. 아무거나, 아무거나요.”

 

 눌은밥을 먹었다는 얘기는 비밀로 남겨놓을 생각이다. 용타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점심을 먹은 게 분명하다. 정말로 신비한 지하식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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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월을 위한 노래 이경미 2020-09-12 88  
17 먼지 이경미 2020-09-12 90  
16 너 떠난 날 이경미 2020-09-12 84  
15 꽃의 비밀 이경미 2020-09-12 83  
14 T팬티 이경미 2020-09-12 84  
13 사과 이경미 2020-09-12 91  
12 와이셔츠 이경미 2020-09-12 67  
11 어느 때밀이의 일기 이경미 2020-09-12 88  
10 마음의 속옷 이경미 2020-09-12 71  
9 대사관 앞 풍경 이경미 2020-09-12 68  
8 지짐이 이경미 2020-09-12 71  
7 대형 서점 이경미 2020-09-12 76  
6 60살의 사랑 이경미 2020-09-12 76  
5 우유 이경미 2020-09-12 55  
4 꿈파수 (초등 고학년 동화) 이경미 2020-09-12 67  
» 신비한 지하식당 (어른이 읽어도 좋을 동화) 이경미 2020-09-12 69  
2 부부의 하루 (단편소설) 이경미 2020-09-12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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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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