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파수 (초등 고학년 동화)

조회 수 65 추천 수 0 2020.09.12 12:36:43

<꿈파수>

 

이경미

 

 

** 1 **

 

 1탄이와 2탄이는 초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좋아하는 그림동화책이다.

 그들이 사는 곳은 작은 동네 사거리에 있는 책방이다. 작은 동네에 있다고는 해도 주변에 지하철, 버스정류장, 대형마트, 초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있어 책방 거리는 늘 바쁘고 볼 것이 많다. 방과 후에는 더 그렇다. 교통이 편한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으니 책방 안팎은 늘 분주하다.

 학생 손님이 많이 오는 책방의 학생도서 코너, 1탄이와 2탄이가 있어야 할 곳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요즘은 교과참고서*학습지*시험예상문제집 등이 학생도서 코너를 거의 차지하면서 책방 밖이 환히 내다보이는 진열대는 그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둘은 학생도서 코너 구석 안쪽으로 점점 밀려났고 책방 밖 풍경을 보는 일도 사치가 돼 버렸다.

 1탄이와 2탄이의 책 제목은 원래 따로 있다. 그러나 1탄이와 2탄이의 작가님이 그들을 그렇게 부르기에, 친구 책들도 자연스럽게 책 제목 대신 ‘1탄,’ ‘2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들의 작가님은 지금 3탄이 출판 준비에 한창이다. 글*그림 작업이 잘 안될 때는 책방에 오셔서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그들과 비밀 대화를 한참 하기도 한다.

 “1탄아, 2탄아, 잘 있었니?”

 “작가님, 오셨어요?”

 그들은 눈으로 말을 한다. 이것은 그림동화책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소리 내어 말하면 주위의 책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동화책에는 글과 그림 사이로 여백이 많다. 책과 사람이 비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림동화책의 여백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작가님은 늘 말하셨다.

 “너희들 페이지에 있는 여백에 간절한 생각을 모아 넣으면, 그 하얀 여백은 잔잔한 생각의 호수로 변하지. 그 호수에 수영하듯 미끄러져 들어가면 비밀 대화의 창으로 통하게 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저희가 사는 책 세상으로 들어오시는 거군요.”

 “그런데 오늘은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점심시간도 아니잖아요?”

 1탄이와 2탄이가 번갈아 가며 작가님께 묻는다.

 “어, 이 근처 초등학교에서 내가 다니는 광고회사에 현수막을 주문했거든.”

 “무슨 현수막이요?”

 1탄이는 궁금했다.

 “그 학교 6학년 학생 중에 누가 큰 상을 받고 외국에서 돌아와나 봐. 그 학생을 축하하고 환영하기 위해서 학교 정문에 현수막을 건다고 하더라.”

 “그걸 배달해주고 오시는 길이군요.”

 2탄이가 말했다.

 “그래. 그 초등학교에 간 김에 6학년 학생들을 만나 이것저것 책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단다. 너희들에게 대한 얘기도 하더라.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잘 그려준 책이라 좋다고 하던걸.”

 “정말요?”

 둘은 기뻤다.

 “그럼. 초등학생이든 중고등학생이든 졸업을 앞둔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읽어도 좋은 책 같다고 하던걸. 내가 너희들의 작가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어. 어, 너희들 손때가 조금 묻은 걸 보니, 학생들이 너희들에게 관심을 두는가 보다! 반응은 좀 어떠니? 학생들이 좋아하니?”

 “학생들이 방과 후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책 저책 보기도 하고요…. 저희를 좋아하는 학생 손님도 많지만, 결국에는 교과참고서*학습지*시험예상문제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죠. 저희는 그쪽을 참고서 군대라고 부르고 있어요. 참고서 군대에 있는 책들이 저희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아세요? 우리의 여백 페이지를 보면서 종잇값이 아깝다며 조롱하기도 하고요, 무식하다고 놀리기까지 하는걸요. 저희를 아주 저학년 취급하면서 얼마나 건방지게 구는지 몰라요.”

 기쁨도 잠시, 1탄이가 작가님께 투정을 늘어놓는다.

 “그랬구나. 저런 저런! 하지만 학생 손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오늘 내가 만난 6학년 학생들이 한 말인데, 너희 같은 그림동화책을 더 많이 읽고 싶지만, 시간이 없대. 학교 마치고, 학원 가고, 숙제하다 보면, 잠잘 시간도 부족하대. 꿈에서라도 너희 같은 그림동화책을 읽고 싶다고 하더라.”

 작가님의 말에 마음은 조금 푸근해졌지만, 2탄이도 투정을 더 했다.

 “하지만 작가님, 참고서 군대 책들하고는 같이 못 있겠어요. 한 코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요. 빨리 책 주인을 만나 이 답답한 책방을 떠나고 싶어요. 책 주인의 세상으로 들어가 평생 소중한 책으로 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늘 이야기하셨잖아요. 책 주인이 우리로부터 받은 감동과 희망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때 우리도 비로소 어른 책으로 클 수 있다고 하신 말, 기억해요.”

 “그랬지, 그랬지. 그래서 나도 포기하지 않고 3탄, 4탄, 5탄…. 그렇게 계속 너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단다. 그런데 출판사는 그걸 원하지 않아. 그래서 요즘 많이 힘들단다. 너희 나이 또래의 학생 손님을 위한 그림동화책이 많이 팔리지 않거든. 출판사는 차라리 삽화를 많이 넣은 초등학생 인문학 참고서를 출판하라고 하지….”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괜한 투정을 부린 저희가 죄송해요. 낮에는 광고회사에서 일하시고 밤에는 그림동화책 작업하시느라 힘드신 작가님을 저희가 더 힘들게 했나 봐요.” 

 “아니야, 아니야. 나는 괜찮아. 저출산 국가의 언어인 한글로 학생들을 위한 창작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이 모두 다 미련한 일이라고 말려도, 난 계속할 거니까.”

 1탄이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저출산이라니요? 산이요? 무슨 산이요?”

 “아, 아니야, 산이 아니라…. 내가 괜한 말을 꺼냈구나. 우리나라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는 꼬마들의 인구수가 해마다 줄어든다는 것인데…. 하지만 너희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작가님은 슬픈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눈물이 흐르고, 눈물이 흐르면 그림동화책의 여백이 탁해져서, 책과의 비밀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된단다.”

 작가님은 그렇게 말끝을 흐리면서 비밀 대화의 창을 바삐 떠났다.

 “아, 그렇지. 작가님과 우리의 대화는 여백을 통해 눈으로 하는 거니까,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면 대화를 할 수 없는 거야.”

 “그래.”

 둘은 혼란스러웠다. 옆에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친구 책들도 불안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저출산? 우리나라에 태어나는 꼬마들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같은 그림동화책을 읽은 학생 손님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겠지?”

 1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저출산이라는 산을 못 넘으면 우리가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거구나.”

 2탄이도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저출산의 뜻을 알려 주셨는데 왜 자꾸 산이라고 해? 헷갈리잖아.”

 “1탄아, 큰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어느 정도의 유머가 있어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거든. 이제 저출산은 우리에게 그저 산일 뿐이야. 우리가 넘어야 할 산, 그저 높은 산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자, 알았지?”

 1탄이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스스로가 학생 손님을 찾아갈 수는 없을까? 이렇게 책방 구석에서 마냥 팔리기만 기다릴 순 없잖아.”

 둘을 곰곰이 생각했다.

 

 

** 2 **

 

 둘은 계속 곰곰이 생각했다. 그들의 작가님이 책방을 다녀가신 날부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2탄아, 인터넷으로 세일즈 모험을 떠나는 거, 어때?”

 몇 날 며칠의 생각 끝에 1탄이가 인터넷에서 책을 팔아보자고 제의했다.

 “인터넷? 좋아, 가 보자. 그런데 방법…. 있어?”

 2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던 1탄이의 긴장된 눈이 책방 입구 쪽 계산대에 멈추자, 1탄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1탄이는 2탄이의 손을 이끌고 책 진열대에서 내려와 책방 계산대 앞으로 갔다.

 “우리가 가진 이 비밀의 도구, 여백! 우리의 여백을 활용하면 돼.”

 1탄이가 책방 계산대 옆에 복잡하게 연결된 신용카드 단말기에 2탄이의 책 고유번호를 띠띠띠띠 뜌뜌띠띠- 입력하고, 자신의 몸 중에 가장 여백이 많은 페이지를 골라 전기 코드를 꽂아 넣으니 안전한 인터넷길이 생겼다.

 띠띠띠띠뜌뜌띠띠- 띠이이이 ---

 2탄이가 띠띠띠띠뜌뜌띠띠-하며 미끄러지듯 그 길로 사라졌다.

 

 시작은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끝은 달랐다.

 

 전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책방 계산대 바닥으로 쿵 하는 진동 소리와 함께 2탄이가 떨어져 돌아오면서, 그들의 인터넷 세일즈 모험은 안타깝게도 몇 시간 만에 끝나고 말았다.

 “2탄아, 어떻게 된 거야? 너랑 연결된 와이파이(wi-fi)가 끊기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전류를 계속 보낼 수가 없었어. 다 괜찮니? 인터넷은 어땠어?”

 “어, 1탄아! 내가 잘 돌아온 거구나.”

 2탄이는 찌릿찌릿 감전된 전기 방울을 털어내면서 말했다. 2탄이 몸에서 튕겨 나오는 전기 방울이 공중에서 불꽃으로 잠시 피어오르다 모두 꺼졌다. 책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래, 나야, 나. 1탄이. 여기는 우리 책방이고. 인터넷에서 감전된 거니? 정신이 드니?”

 “엄청 헤매고 다녔어. 인터넷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글자 천지야! 이상한 사이트는 얼마나 많던지. 혹 작은 실수로 위험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면 악성 댓글이나 감전 바이러스로 곤욕을 치르기도 해.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 인터넷 세일즈를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2탄이의 실망은 찌릿찌릿 소리를 내며 마지막 전기 방울에 묻혀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불꽃이 되지 못한 채 책방 바닥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2탄이를 등에 업고 1탄이가 책 진열대로 돌아오자, 주위에 있던 친구 책들이 반기며 위로를 해주었다. 2탄이는 위험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헤매다가 나쁜 전류에 감전되어 되돌아왔고, 이렇게 그들의 인터넷 세일즈 모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안 되겠어. 학생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는 참고서*학습지*시험예상문제집 같은 책들에 밀려 우리 설 자리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몰라.”

 둘은 걱정스러웠다.

 “음….”

 2탄이는 인터넷 세일즈 모험 중 배운 것들을 떠올리고 있다.

 “왜?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응, 1탄아. 인터넷에 가 보니 광고가 엄청 많았어.”

 “광고? 선전? 마케팅 같은 거? 책방 입구에 걸리는 큰 포스터 같은 거?”

 “응, 마케팅.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리는 거지.”

 “학생 손님들이 책을 사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알릴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구나.”

 “그렇지.”

 “그런데, 2탄아. 왜 가끔 ‘원-플러스-원’ 포스터가 책방에 붙잖니? 그런 것도 우리에게 좋은 마케팅이 될까? 혹시 말이야, 우리가 참고서 군대 책들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게네들과 함께 묶여 팔린다면 말이야.”

 “1탄아, 말도 안 돼. 너는 게네들한테 그렇게 무시당하면서도, 함께 묶여 팔리고 싶니? ‘원-플러스-원’은 하나 사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건데, 그러면 우리 작가님께 아무런 도움이 안 되잖아.”

 “아 참, 그렇지.”

 “설사 그렇게 해서 작가님께 도움이 된다 해도, 난 게네들하고는 함께 묶여 팔리고 싶지 않아. 1탄아, 방법은 또 있을 거야.”

 “그래. 저출산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지. 참고서 군대에 있는 책들에도 똑같은 문제가 되겠지.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꼬마들이 점점 줄어든다면 게네들이라고 뭐 미래가 있겠어? 게네들하고 함께 묶여 팔리느니 여기 계속 있는 게 더 나아.”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2탄아!”

 “응?”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1탄아?”

 “우리는 계속 생각만 했잖아.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랬지.”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물어보면 어떨까? 어른책 코너로 가서 말이야. 어른책들이 좋을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2탄이는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생각만 하지 말자는 생각! 그 생각이 정말 좋은 생각이다, 1탄아!”

 그들은 훌륭한 어른책을 만나 좋은 마케팅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에 부풀기 시작했다. 자신을 스스로 마케팅할 방법을 찾아낸 후 인터넷 세일즈 모험에 다시 도전한다면 이번에는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둘은 행복했다.

 

 

** 3 **

 

 1탄이와 2탄이가 처음 방문하기로 한 어른책 코너는 전문서적 코너다.

 “전문서적 코너, 어때?”

 1탄이는 ‘전문’이라는 말이 일단 맘에 들었다.

 “그래. 전문서적 코너에 있는 어른책이라면 우리에게 최고의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거야.”

 2탄이도 같은 생각이다.

 전문서적 코너의 책들은 굉장히 뚱뚱하다. 어떤 책은 300페이지 정도의 몸집에 그것도 모자라 갑옷같이 두꺼운 표지까지 입고 있다.

 “안녕하세요.”

 “너희들,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니?”

 전문서적 진열대 맨바닥 줄에 있던 뚱뚱한 어른책이 1탄이와 2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책 제목이 ‘전자파 총정리’이네요. 어떤 책인가요?”

 “주파수 박사라 부르렴. 나는 온 세상의 주파수에 대한 지식을 한데 모든 책이고, 아직 인간에게 소개되지 않은 비밀 주파수 공식을 알고 있는 책이지.”

 “아, 그러세요. 저희는 저쪽 학생도서 코너에서 온 그림동화책인데요, 인터넷으로 세일즈 모험을 떠나려고 하는데 가기 전에 저희 자신을 스스로 마케팅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마케팅 전문책이 있기는 하지만 그 책은 지금 자고 있을 거야.”

 “어, 어른책들은 밤에 자나요? 저희 작가님이 책들은 늘 깨어 있다고 했는데….”

 “그렇지. 보통 책들은 잠을 자지 않지. 하지만 전문서적들이 200에서 300페이지 정도의 큰 몸집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휴식이 필요하단다. 내용을 외워야 함은 물론이고 새로 나오는 책들에 뒤지지 않게 늘 긴장하고 있으니 책방 문 닫는 시간에는 녹초가 되어서 거의 힘을 못 쓴단다.”

 “300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다 외우고 있어야 한다고요?” 둘은 믿을 수가 없었다.

 뚱뚱한 책들은 서로의 표지를 맞대고 아무런 소통도 없이 혼자 외롭게 서 있었다. 둘은 주파수 박사 책의 안쪽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글자로 빽빽이 차 있어서 책 안에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와 – 주파수 박사님, 이렇게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래. 나는 내 분야에서 나를 따라올 만한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 인간에게 소개되지 않은 신비한 주파수 공식을 가지고 있는 책은 나뿐이니까.”

 주파수 박사는 자신의 자랑이 너무 거만스러웠던 것을 눈치챈 까닭인지 약간 수줍은 표정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마케팅 자체를 믿지 않아.”

 “네? 왜요?”

 1탄이와 2탄이의 귀가 솔깃해졌다.

 “정말 좋은 책이라면 굳이 마케팅이라는 게 따로 필요 없으니까.”

 2탄이는 ‘당신이 그렇게 좋은 책이라면 왜 아직 안 팔린 건데요?’라는 말이 막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듣고 있다.

 “나도 이제 좀 쉬어야겠어. 그럼, 그만 들 가 봐.”

 둘은 주파수 박사가 안쓰러웠다.

 “박사 책 300페이지 중 어디에도 다른 생각이 들어갈 공간이 전혀 없어.”

 1탄이가 전문서적 코너를 돌아 나오면서 말했다.

 “그래. 자기 생각으로만 빽빽해. 그 큰 몸집을 거만과 딱딱한 자신감으로 버티는 것이 혹 외롭지는 않을까?”

 2탄이도 애처로운 생각을 뒤로하고 1탄이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1탄이가 뒤돌아서 주파수 박사 앞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어, 1탄아! 너, 너, 너….”

 2탄이는 이 세상에 책으로 태어나 그렇게 놀라 본 적이 없었다. 1탄이가 자신의 페이지 한 장을 찢어 주파수 박사 책 안쪽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닌가?

 “1탄아! 너, 너 뭐 하는 거야? 절대로 책을 찢어서는 안 된다던 작가님의 말, 잊었어? 책 페이지는 네 몸과 같은 거야. 너 어쩌려는 거야?”

 “너무 안타까워서. 다른 생각이 들어갈 공간이 전혀 없는 300페이지 분량의 전문서적이 너무 안쓰럽잖아. 조금이나마 내 여백을 나눠주고 싶어서.”

 “무, 무, 무슨 이런 일이….”

 2탄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다음 코너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앞에 갈게.”

 1탄이를 잘 보호하려는 듯 2탄이가 앞장섰다.

 

 

** 4 **

 

 “1탄아, 다음은 베스트셀러 코너야.” 

 “와, 정말 화려하다.”

 베스트셀러 코너는 진열대부터 달랐다. 대부분 책들은 진열대에 세로로 꽂혀 서로의 앞뒤 표지를 맞대고 서 있는 게 보통이지만, 베스트셀러 코너의 책들은 앞표지 전부를 활짝 내보인 채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하면서 진열되어 있었다.

 “와~ 책 표지 디자인 좀 봐. 모두 화려하고 독특하다.”

 “진열대도 굉장히 멋지다, 그지? 책들이 비치 의자에 45도 각도로 누워서 일광욕하는 것 같아.”

 2탄이는 베스트셀러 코너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손님들이 지나가는 책방 중앙에 있는 점도 마음에 들어. 멋있는 진열대로 손님들의 눈길을 끌겠어. 이렇게 책 앞표지를 활짝 과시하고 있으니, 책 제목이며 디자인이며, 한눈에 잘 들어올 수밖에 없겠지.”

 2탄이는 베스트셀러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 너무도 궁금하여 가장 화려한 디자인의 책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기로 했다.

 “안 돼, 안 돼!”

 그때 어디선가 높은 피치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2탄이를 막아서는 어른책이 나타났다.

 “안 돼, 안 돼! 이런 책을 너희들이 보다니….”

 “누구세요?”

 “나는 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어제 새로 온 책이지. 베스트 주니어라고 불러도 돼. 네가 지금 보려고 했던 책은 학생책이 절대 손대서는 안 되는 금서, 위험한 내용의 책이라고.”

 “아, 네….”

 “너희가 여기는 웬일이니? 학생도서 코너에 있어야 할 책들이….”

 “네, 저희도 어떻게 하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저희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을 찾고 있거든요. 혹시 좋은 방법을 알고 계세요?”

 “글쎄,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너무 바빠. 낮이고 밤이고 카메라 앞에서 광고를 찍고, 북클럽에 나가서 사인회도 하고, 그리고 북콘서트라는 것도 하고.”

 “와,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군요.”

 “그렇지만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아. 출판사 사장이 다 알아서 해주지. 왜 너희는 직접 마케팅을 하려고 해?”

 “저희는 입장이 좀 달라서요….”

 “그렇구나. 그래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너희들이 대견스럽다. 나는 여기 이렇게 화려하게 있어도 내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거든.”

 “아, 그래요. 그건 좀 슬픈 일이네요.”

 둘은 베스트 주니어의 화려함 뒤편에 쓸쓸함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화려함도 잠깐이야. 아주 잠깐. 베스트셀러 코너는 경쟁이 너무 심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서로가 제일 좋은 책이라고 떠들어대며 마케팅 전쟁을 벌이는 곳이지만, 나는 출판사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몰라.”

 1탄이는 화려한 주인공으로 살면서도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면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리한 마케팅 전쟁 중에 힘들고 쓸쓸할 때 우리를 생각해요. 그림동화책에 있는 여백이 베스트 주니어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자, 여기….”

 2탄이가 말릴 여유도 없이, 1탄이는 또 자기 페이지 한 장을 찢어 베스트 주니어의 품 안에 넣어주었다. 둘은 베스트 주니어와 헤어져 베스트셀러 코너를 빠져나왔다.

 “너, 1탄이, 정말 어쩌려고 계속 이러니?”

 “난 우리가 가진 여백의 힘을 믿어. 작가님과 비밀 대화도 가능하게 하고, 너를 인터넷으로 보내는 것도 여백에 전기 코드를 꽂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잖아. 우리의 여백은 베스트 주니어에게도 좋은 힘이 될 거야.”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음 코너로 향했다.

 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베스트 주니어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 5 **

 

 “2탄아, 여기는 영 아닌 것 같아.”

 “그래,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외국책들이니까 그렇겠지.”

 “얼마나 답답할까?”

 “아냐, 1탄아. 그래도 외국서적 코너를 찾는 책방 손님들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일 테니까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냐.”

 “그래도 한글로 쓰인 책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까? 한국 동화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너, 또 혹시?”

 “그래, 이쪽 코너에 있는 책에도 내 페이지 한 장 주고 싶어. 물론 한글로 쓰인 책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림으로 공감하지 않을까?”

 2탄이는 1탄이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럼, 너의 페이지를 찢는 것은 그만해. 이제부터는 내 페이지를 찢어. 너만 계속 이렇게 찢게 할 수는 없어.”

 “안 돼, 2탄아! 우리 둘 중 하나는 완전한 책으로 있어야 상품 가치가 있지. 그래야 계속 마케팅에 대해 알아보면서 다니지. 우리 둘 다 찢어진 책으로 돌아다니면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책에까지 네 페이지를 찢어준단 말이니?”

 “응, 진정 우리를 알리려면 우리를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1탄이는 진정한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마음이 잘 통해야 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글 없는 그림만으로도 마음은 읽힌다’라고 하신 작가님의 말이 생각났다. 1탄이의 몸은 점점 야위어져 갔다. 2탄이가 1탄이를 등에 업어도 하나도 무겁지 않다. 둘은 다른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 6 **

 

 “자기계발 코너? 여기는 어떤 곳일까?”

 “어른들은 학교를 다 졸업하고도 이렇게 자기계발책들을 통해 평생 공부하는 거구나.”

 “좋은 느낌이 든다. 이 코너에서는 꼭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둘은 눈을 맞추며 파이팅을 외쳤다.

 “실례합니다.”

 잠깐을 기다리니 책 한 권이 진열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너희들은 누구니? 그림동화책이구나. 그런데 이 코너에는 무슨 일로 왔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어요. 저희가 곧 인터넷으로 세일즈 모험을 떠나는데요, 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저희 자신을 스스로 잘 알릴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다니는 중이에요.”

 “마케팅 전략 같은 거 말이니?”

 “네, 네, 네! 바로 그거요.” 

 “너희가 바로 잘 찾아왔구나! 내가 바로 최고의 인터넷 사업가로 소문난 작가의 책이란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사업을 몇십 배로 키우는데 내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

 “저희가 드디어 선생님을 찾았군요.”

 “선생님은 무슨 ~…. 자계왕이라고 부르렴. ‘자기계발서의 왕’의 약자, 자계왕.”

 자계왕은 이렇게 자기소개를 간단히 마친 후, 인터넷 마케팅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나처럼 성공한다’라는 등의 명령조로 설명은 약 30분간 계속되었다.

 “도움이 됐니? 당연히 그랬겠지.”

 “네, 네에…. 가, 감사합니다.”

 2탄이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자계왕이 준 마케팅에 관한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때 1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계왕님, 그런데 혹시 저희한테 궁금한 것은 없으세요?”

 “내가 왜? 궁금한 것은 너희들 쪽이지.”

 “저희가 인터넷 세일즈 모험을 떠난다는 말을 했지만, ‘왜 떠나는지, 왜 떠날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을 안 드렸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도 묻지 않으시고 30분간 마케팅에 관해 설명해주셔서 잘 듣기는 했지만, 그 내용이 저희에게 딱 맞는 것인지 잘 판단이 안 서서요.”

 “뭐야? 너희들 정말 건방지구나! 지금 내가 제대로 원인 분석도 안 하고 평범한 상식을 늘어놓았다고 트집 잡는 거니? 나를 어떻게 보고. 당장 여기서 꺼져!”

 자계왕은 화를 크게 내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1탄아, 왜 그랬어? 자계왕이 엄청 화가 났잖아.”

 “하지만 생각해 봐, 2탄아. 우리가 인터넷 세일즈 모험을 떠나려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잖아.”

 “그렇지. 저출산이라는 큰 산 앞에 놓인 우리가 살길을 찾으려는 모험이지. 작가님 책이 많이 팔려야 우리 뒤로 3탄, 4탄, 5탄이가 계속 출판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건 모험!”

 “그래. 그런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판에 박힌 답을 10개, 아니 100개를 준다 해도 우리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하는 의심이 생겨서 그랬던 거야.”

 “그런데 자계왕이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아. 아무도 자기한테 이런 식으로 질문하거나 비평한 적이 없었나 봐. 성공한 책들은 비평에 더 약할지도 몰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자계왕일 것이다. 자계왕의 감정이 많이 상한 듯싶다. 1탄이는 자기 페이지를 한 장 찢어 옴팍한 그릇 모양으로 만든 후, 조용히 자계왕 앞으로 밀어 넣었다. 자계왕의 눈물로 그의 책이 젖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자계왕의 눈물이 1탄이의 페이지로 만들어진 종이 그릇 안에 흥건히 고였다.

 “1탄아, 너의 몸이 더 야위어가고 있어. 이러다가는 정말 네가 쓰러지겠어. 우리 코너로 돌아가서 좀 쉴까?”

 “안 돼. 우리가 어떻게 마케팅을 할지 아직 방법을 못 찾았잖아.”

 자계왕의 울음을 본 후, 1탄이의 몸과 마음이 심하게 약해졌다. 작은 비평에도 크게 화를 내던 자계왕이 마음에 걸렸다. 둘은 안타까웠다.

 

 

** 7 **

 

 자기계발 코너 옆쪽으로는 인문*교양서적 코너가 있었다.

 “2탄아. 인문학이라면 출판사가 작가님이 쓰길 바라는 그런 책이겠지? ‘그림으로 보는 초등학생 인문학 참고서,’ 뭐 그런 거, 그지?”

 “그래. 인문학, 역사, 고전, 교양…. 아~ 이런 책들이구나.”

 “호호호…. 인문*교양? 교양이 있는 책들이라면, 우리를 잘 이해해주지 않을까?”

 둘은 오랜만에 배를 잡고 킥킥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명상 중이던 한 어른책이 방해를 받은 듯하다. 

 “웬 아이들 웃음소리?”

 “아, 명상 중이신 걸 모르기로 시끄럽게 떠들어서 죄송해요.”

 “너희들이 여기에 무슨 일로?”

 “안녕하세요? 저는 1탄이라고 합니다.”

 “저는 2탄이고요.”

 “그래, 보아하니 그림동화책이로구나. 나는 인문학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고전들만 엄선하여 묶은 전집 중 제1권이지. 나를 제1권이라고 불러도 좋아.”

 “네, 제1권님. 그런데 인문학은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가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지.”

 “아, 그럼 마케팅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네요?”

 “당연하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인문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니까.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절대 다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지.”

 제1권은 얘기를 할 때도 명상 자세를 유지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고전이라면 오래된 책을 말하는 거죠?”

 2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

 “그런데 제1권님한테 사람 냄새가 나요. 오래된 책 냄새는 나지 않아요.”

 “오, 그래?”

 제1권은 내심 흐뭇해하는 표정이다.

 “제1권님, 저희에게 큰 가르침을 주세요. 요즘 저희와 같은 그림동화책은 잘 안 팔려요. 그래서 저희가 인터넷 세일즈 모험을 준비 중이거든요. 모험을 떠나기 전에 저희 자신을 마케팅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네. 어른책 코너를 많이 돌아보았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요.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저희가 만난 어른책들은 아마도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책들이었나 봐요.”

 둘은 제1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척 공을 들였다.

 “너희가 무언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인문학이라는 것은 너희 같은 그림동화책 따위가 넘볼 수 없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란다.”

 “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저나 1탄이도 제1권님과 같은 책이에요. 물론 어른책처럼 글자가 많지는 않지만 저희가 가지고 있는 그림과 이 여백의 힘으로 인간을 꿈꾸고 상상하게 하는 책이라고요.”

 “네, 우리 작가님이 그렇게 말하셨어요.”

 둘은 흥분 섞인 목소리를 가다듬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너, 2탄이, 나에게 금방 뭐라고 했니? 나에게는 책 냄새가 나지 않고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네? 네. 그랬죠.”

 “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너희와 같은 책이 아니야. 나는 책인간! 인간이 되어버린 책이라고. 나보다 인간에 대해 더 잘하는 책은 없어. 인간에 관해 연구만 해 온 긴 세월 끝에 인간이 되어버린 책, 그게 나라고!”

 “인간이 되어버린 책이라고요?”

 “사람들은 오랫동안 인문학을 그저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학문이라 여기고 거들떠보지 않았지. 이제야 그 가치를 알아보고 나도 좀 유명해 지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너희들 따위와 얽히는 것은 곤란해.”

 둘은 제1권이 한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 그래서 저희를 도와줄 수 없고요?”

 2탄이는 흥분했다. 화도 났다.

 “2탄아, 진정해.”

 1탄이는 화를 낼 기운이 없었다. 자기 몸 반쪽을 이미 찢어내어 준 상태라 그런지 힘이 없었다. 그러나 눈빛은 맑고 따뜻했다. 2탄이를 인터넷으로 보낼 방법을 생각하던 날 책방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던 그 초롱초롱하고 생기 가득한 눈빛처럼.

 “2탄아, 흥분하지 마. 도움이 필요한 것 우리야. 감정적으로 나가면 안 돼. 나에게는 이제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 우리 아직 마케팅 방법을 못 찾았잖아. 서두르자. 내가 제1권님한테 다시 한번 말해 볼게. 너는 저기로 물러서 있어.”

 1탄이는 2탄이를 진정시킨 후, 제1권에게 다시 한번 부탁해 보기로 했다.

 “제1권님. 저희 작가님께서 창의력은 나와 다른 것이 소통하고 섞일 때 생긴다고 하셨거든요. 제1권님이 저희랑 아주 다르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혹시 저희와 제1권님이 소통하고 섞인다면, 저희는 마케팅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고 제1권님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여백의 신비함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난 창의력 같은 거 필요 없어. 충분하거든. 너, 말귀가 어둡구나. 어서 냉큼 꺼져.”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1탄이는 자기 페이지를 또 한 장 찢었다. 아름다운 그림과 여백이 특히 많은 페이지로 골라 찢었다. 그리고 자신의 여백에 짧은 편지를 써서 제1권 옆에 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인간이 되어버린 책 제1권을 설득할 다른 방법은 이것 말고 따로 없었다.

 

 

제 1권님께,

 

혹 마음이 바뀌시면 저희에게 연락해주세요.

저희는 이 책방 학생도서 코서 맨 안쪽에 있는 진열대에 있습니다.

저희 부탁을 꼭 들어주세요.

이 편지를 읽어주시길 간절히 바라며….

 

- 1탄이와 2탄이로부터 - 

 

 

 

 “흥! 교양책이 교양이 제일 없는 책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2탄이는 계속 투덜거린다. 1탄이는 제1권에게 페이지를 찢어주었다는 말을 2탄이에게 하지 않기로 했다. 2탄이가 이렇게 화가 나 있는데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2탄이에게 곧 들키고 말았다. 남은 페이지 중 여백이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찢어준 탓인지, 1탄이는 더는 걸을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졌다. 그를 지탱하던 여백의 신비함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1탄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결국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려졌다.

 “1탄아!!!”

 앞에 가던 2탄이가 급히 뛰어 돌아왔다.

 “1, 1, 1탄아! 괜찮니? 너, 또 페이지를 찢어주었지? 이제 우리는 어떡하면 좋니? 너를 이렇게 만들면서까지 꼭 해야 하는 인터넷 세일즈 모험이라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겠어. 우리 코너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다시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1탄이는 고개를 저어가며, ‘이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의사 표시를 했다. 2탄이가 1탄이를 꼭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 1탄이는 자기를 안고 우는 2탄이의 몸 흔들림 때문에 머리가 더 아팠다. 2탄이에게 제발 울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었다. 단, 온 힘을 다해 눈짓했다. 1탄이가 눈도 한 번 깜박거리지 않고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눈치를 챈 2탄이도 1탄이가 주시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2탄이는 눈을 비볐다.

 비비고 또 비볐다. 밀들 수 없다는 표정이다.

 

 

** 8 **

 

 “어. 른. 동. 화. 어른동화? 어른동화다!!!”

 2탄이가 1탄이를 등에 업고 단숨에 달려와 확인했다.

 “정말이네. 어른동화! 어른동화책이라니, 말도 안 돼. 어른들도 동화책을 읽는단 말이야?”

 2탄이의 탄성 섞인 혼잣말이 잠시 진행되는 동안, 1탄이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2, 2, 2탄아..., 도..움..이..필..요..해….”

 1탄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 간신히 소리를 냈다. 

 “어, 알았어. 사사사..., 사사사, 살려주세요. 채채채..., 채채채, 책 살려주세요. 도움이 필요해요. 책 살려주세요!”

 2탄이는 소리쳤다. 책방 전체가 쩡쩡 울리도록 큰 소리로 울며 외쳤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아무 책도 없어요? 1탄이를 살려주세요. 책 살려주세요!”

 잠깐을 기다리자, 어른동화책 한 권이 진열대에서 내려왔다. 

 “이런, 이런…. 누가 이렇게 책을 찢어 놓고 가 버렸을까? 아침에 책방 직원들이 출근해서 보면 바로 폐지 재활용 박스에 넣어 버릴 텐데.”

 “어른동화책님, 제발 1탄이를 구해주세요.”

 “1탄이? 그래. 어떻게든 해 보자.”

 2탄이가 만난 어른동화책은 있는 힘을 다해 1탄이의 몸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어른동화책 안에 있는 글과 그림 사이의 여백에서 폭풍 같은 바람이 일더니 1탄이 몸에 딱 맞는 페이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탄이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1탄이가 찢어내어 준 장수만큼의 페이지가 다 만들어지자 폭풍은 잠잠해졌고 1탄이가 예전과 똑같은 몸집으로 되돌아왔다.

 “믿을 수 없어. 작가님이 그림동화책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많다고는 하셨지만, 어른동화책도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 줄이야! 믿을 수 없는 일이야.”

 2탄이는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믿을 수 있는 일과 믿을 수 없는 일이 따로 존재하진 않는단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저 ‘일’일뿐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나눌 뿐이지.”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셨어요. 은인이신데, 책 제목이라도 알려주세요.”

 1탄이가 기운을 차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나는 ‘추억이 자라는 풍경’이라는 책 제목을 가진 어른동화야. 추자풍이라고 불러도 좋아.”

 “네 추자풍님, 감사합니다.”

 둘은 서로를 껴안으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른동화책이 정말 있었군요.”

 2탄이는 정말 신기했다.

 “그래, 어른들도 동화책을 가끔 읽지. 그런데 왜 이렇게 폐지 상태까지 된 거니?”

 

 둘은 그들이 작가님과 나눈 대화, 저출산이라는 높은 산에 대한 고민(단, 저출산은 산의 이름이 아니고 저출산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터넷 세일즈 모험의 실패, 참고서 군대 책들의 행패, 스스로 자신들을 마케팅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찾아 나선 사연, 그리고 각각의 어른책 코너에서 겪은 일들을 어른동화책 추자풍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인문*교양서적 코너에서 교양 없는 제1권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제일 컸다는 부연 설명도 함께.

 

 “그래서 1탄이의 몸이 그렇게 찢어져 있던 거구나.”

 “네, 어른동화 코너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여기로 바로 왔을 텐데요. 1탄이의 페이지만 찢어내 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2탄이는 너무도 속상했다. 둘 중 하나는 완전한 책의 상품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몸은 멀쩡하고 1탄이만 폐지 재활용 박스에 버려질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1탄이에게 미안했다.

 “글쎄 얘들아. 너희들이 어른동화 코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큰 고생하지 않고 도움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자, 보렴! 전문서적 코너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봐. 다른 생각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는 자유로운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배우고, 주파수 박사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는 화려한 마케팅 이면의 쓸쓸함을 느꼈고.”

 “네, 그랬죠.”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니?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책에도 마음을 내어 주었어. 어떤 때는 언어보다 그림으로 전달되는 공감, 그것이 최고의 마케팅 방법이 될 수도 있거든. 자기계발 코너에서의 경험도 생각해 봐. 자계왕의 눈물, 성공한 책들이 남의 비평에 얼마나 약하게 무너지는지 너희가 봤잖니. 그 어떤 유명한 책이 주는 해답이라 할지언정 나에게 맞는 답인가에 대해 질문할 줄 알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사양하는 용기도 보여주었지.”

 1탄이는 자계왕이 성내면서 울던 생각을 하니 다시 안타까워졌다.

 “그렇지만 인문*교양서적 코너에서 배운 것은 딱히 없어요. 인간이 되어버린 책, 제1권은 우리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거든요.”

 2탄이는 아직도 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2탄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제1권과의 만남에서 끈기에 대해서 배운 것 같아.”

 1탄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1탄이가 정말 훌륭한 것을 배웠구나. 그것도 마케팅에 있어 중요한 하나이지 않을까? 편지를 주고 떠나옴으로써 나중에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도 참 잘한 일이야.”

 “잠깐만요. 그럼, 저희가 저희에게 필요한 마케팅 방법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세요?”

 “그래. 너희들은 각 코너를 돌면서 많은 것을 배운 거야. 해답은 너희들 안에 있었던 거야.”

 둘은 마주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둘이 마주 보고 있는 동안, 2탄이는 1탄이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추자풍님. 1탄이가 좀 이상해요. 얼굴, 표지, 색깔, 디자인까지 다 변해가고 있어요.”

 2탄이가 추자풍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고 이런…. 내가 1탄이가 잃어버린 페이지를 백지로 만들어 넣어줄 수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백지일 뿐이야. 나는 1탄이가 찢어낸 페이지의 글과 그림을 모르기 때문에 내용까지 넣어줄 수가 없구나. 책에 여백이 너무 많을 때 생기는 현상이야. 이 일을 어떻게 한담! 큰일 났구나.”

 

 

** 9 **

 

 “추자풍님,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 작가님께 연락할 수 없을까요?”

 2탄이가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어른동화책 코너로 책들이 쿵쾅쿵쾅 밀려들어 왔다. 

 

 전문서적 코너의 주파수 박사-

 베스트셀러 코너의 베스트 주니어-

 이름 모를 외국책-

 자기계발 코너의 자계왕-

 인문*교양서적 코너의 제1권-

 

 그들이 다 와 있는 게 아닌가?

 

 “잠깐만! 아니지, 아니지. 너희들 작가님께 걱정을 끼쳐드릴 순 없지.”

 전문서적 코너의 주파수 박사가 제일 앞장서 오면서 말했다.

 “너에게 받은 페이지를 돌려주려고 왔단다. 네가 나눠 준 여백 페이지 덕분에 조용히 휴식의 시간을 가졌단다. 나만 알고 있던 주파수 파장 공식에 실수가 있었다는 것도 그 휴식 후에 알게 되었거든.”

 주파수 박사는 그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느라 힘든 듯 땀을 뻘뻘 흘리면서 1탄이에게 받은 페이지를 1탄이 몸에 끼워 넣어주었다.

 “나야, 베스트 주니어. 다행히 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어서, 내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더 오래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너희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어.”

 베스트 주니어가 활짝 웃으며 1탄이가 찢어주고 간 페이지를 내놓는다.

 “Hi, my friends. 너희들의 배려가 내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어. 저출산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야. 어른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한, 너희들이 설 자리를 잃는 일 따윈 없을 테니까.”

 “한국말을 잘하네요.”

 외국책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모두 깜짝 놀랐다.

 “너희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면 전 세계 학생 손님을 만날 수도 있어. 꼭 그렇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

 외국책도 찢어진 페이지를 1탄이 몸에 정성스럽게 끼워 넣어주었다.

 다음은 자계왕 차례다.

 “나야, 자계왕. 얘들아, 이것도 잊지 마.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야. 인류 역사의 모든 문자 중에 가장 으뜸이지.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 국가의 사람들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할 만큼 한글의 위상은 너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커. 한글은 절대 저출산 국가의 힘 없는 언어가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특별한 언어라고. 너희 작가님도 지금 당장은 힘드시겠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 거야.”

 자계왕은 구겨진 페이지를 펴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미안해. 내 눈물로 젖은 페이지가 많이 구겨졌네. 잘 펴지지 않아.”

 “괜찮아요.”

 둘은 행복했다.

 다음은 제1권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편지를 읽고 학생도서 코너로 너희들을 찾으러 갔었단다.”

 “ --- 인간이 되어버린 책, 제1권님!”

 1탄이와 2탄이가 조심스레 그를 반겼다.

 “내가 너무 심하게 굴었다, 용서해. 서로 소통하고 섞여야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는 것, 너희가 다시 일깨워 주었지.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희망의 말을 전해주려 찾아갔었단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통일을 이루면, 한국말로 쓰인 그림동화책 독자가 2배로 늘어나는 거야. 북한의 학생들도 너희의 독자가 되는 거니까. 그러니 저출산 문제는 인간이 되어버린 나 같은 어른책들에게 맡겨.”

 제1권이 가져온 마지막 페이지가 1탄이 몸에 채워졌다. 비로소 1탄이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작가님을 도와드리려는 너희들의 마음, 이해해. 하지만 인터넷에서 책을 파는 것은 너희가 할 일이 아닌 듯싶다. 너희들의 작가님도 그것을 원하진 않으실 거야. 오히려 너희들 걱정을 더 하실지 몰라. 외국책과 자계왕, 그리고 제1권의 말대로라면 앞으로의 미래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밝을 거야.”

 어른동화 추자풍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은 글, 그림, 그리고 여백이 있는 이야기의 힘으로 학생 독자들과 함께 행복한 꿈을 꾸며 살면 돼.”

 “꿈, 행복한 꿈이라고요?”

 환하게 웃어야 할 1탄이와 2탄이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감돈다. 작가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오늘 내가 만난 6학년 학생들이 한 말인데,

너희 같은 그림동화책을 더 많이 읽고는 싶지만, 시간이 없대.

학교 마치고, 학원 가고, 숙제하다 보면, 잠잘 시간도 부족하대.

꿈에서라도 너희 같은 그림동화책을 읽고 싶다고 하더라.’

 

 “1탄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니? 너도 나와 같은 걱정을 하니?”

 둘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무슨 걱정인데?”

 어른동화 추자풍이 물었다.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학생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한글이 문자가 없는 나라에서 공식문자로 채택되는 것, 북한 학생 독자가 생긴다는 것, 저출산 때문에 우리가 설 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좋은 미래를 상상하면 가슴 벅차게 기뻐요.”

 “그런데?”

 “인터넷 세일즈를 위해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것이 오히려 작가님께 부담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베스트 주니어를 만났을 때 아무리 화려한 책으로 살아도 자기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참 슬프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의 미래가 아무리 밝다고는 해도 그것은 미래일 뿐, 오늘은 아니에요. 우리 스스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잖아요.”

 1탄이의 속상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네, 1탄이 말이 맞아요. 우리 코너로 돌아가서 참고서 군대 책들의 조롱을 견디며 그저 학생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요.”

 2탄이의 무거운 마음도 느껴졌다.

 “추자풍님, 학생 독자들과 함께 행복한 꿈을 꾸는 것이 저희 같은 그림동화책이 할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학생 독자들은 저희 같은 그림동화책을 읽을 시간이 없대요. 더 많이 읽고는 싶지만, 공부에 너무 바빠 시간이 없대요. 피곤해서 꿈꿀 시간도 없이 잔대요. 꿈에서라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1탄이의 목소리가 이렇게 슬프게 들린 적이 없었다.

 “뭐라고? ‘꿈에서라도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고? 아니지,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전문서적 주파수 박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네? 가능한 일이라고요?”

 어른동화 추자풍이 다그쳐 물었다. 

 “내가 누굽니까? 주파수 박사 아닙니까? 인간에게 소개되지 않은 신비한 주파수가 하나 있는데, 아직 검증이 덜 된 상태라 그저 내 책 안에서 공식으로만 저장되어 있었지요. 분명히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공식임에 틀림없는데 다른 책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나를 쓴 작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별수가 없어 이 큰 몸집을 유지하면서 새로 나온 책들에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1탄이가 끼워 넣어주고 간 여백 페이지 덕분에 온몸에 긴장을 풀고 명상을 하게 되었죠. 300페이지가량의 이 큰 몸집에 가득 든 지식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편한 휴식을 취하던 중, 내 안에 있는 실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거예요. 나를 쓴 작가가 비밀 주파수의 공식을 푼 후 책으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오타를 낸 사실,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된 거죠. 이 주파수를 이용하면 1탄이와 2탄이가 꿈에서라도 그림동화책을 읽고 싶어 하는 많은 학생 독자들에게 갈 수 있어요.”

 “그럼, 와이파이(wi-fi)를 통해 인터넷 세일즈 모험하러 가는 대신, 이 신비한 파장을 통해 공부하다 지쳐 잠든 학생들이 꿈꾸는 공간으로 갈 수 있다는 거죠?”

 어른동화 추자풍은 싱글벙글한다.

 “바로 그겁니다. 이 주파수의 이름은, 그래…. 꿈파수! 이 주파수의 이름을 꿈파수라고 합시다. 나를 쓴 작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이 주파수에 대한 비밀과 정확한 파장 공식을 알고 있는 것은 나뿐입니다. 안심해도 돼요.”

 1탄이와 2탄이, 그리고 어른책 모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다.

 “그 길을 확보했다고는 해도 안전한 전류를 공급할 방법도 찾아야겠죠. 자, 그럼 그 일은 나, 추자풍이 하겠습니다.”

 어른동화 추자풍이 자신의 책을 펴고 여백이 가장 많은 페이지를 고르며 말했다.

 

 

** 10 **

 

 책들 모두는 책방 입구 계산대로 장소를 옮겼다. 전문서적 주파수 박사가 계산대 옆에 복잡하게 연결된 신용카드 단말기에 꿈파수의 공식과 비밀코드를 띠띠삐-뿌—띠띠삐-뿌- 입력했다.

 

 띠띠삐-뿌—띠띠삐-뿌- 

 

 어른동화 추자풍이 자신의 몸 중에서 여백이 가장 많은 페이지를 골라 전기 코드를 꽂으니 안전한 꿈길이 생겼다. 전력이 좀 약한 듯하여 보이자, 인문*교양서적 코너의 제1권이 자신의 몸을 기울여 어른동화 추자풍의 여백에 섞여 들어갔다. 추자풍의 여백에 힘이 실렸다. 인간이 되어버린 책의 지식이 지혜롭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를 기울이고 섞이면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는 것을 알려준 건 너희들이야. 너희들의 배려 덕분이다. 고맙다. 잘 다녀와.”

 제1권은 1탄이와 2탄이를 도울 수 있어서 진정 기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베스트 주니어, 외국책, 자계왕도 서로의 몸을 기울여 그들이 꿈파수를 타고 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

 

 “1탄아, 꿈만 같아. 한 번 꼬집어 봐.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이트와 악성 댓글 사이를 헤매고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이 꿈파수는 천국 같아.”

 “꿈이 아니야, 2탄아! 믿을 수 있는 일과 믿을 수 없는 일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어른동화 추자풍님이 말했잖아. 학생 손님들이 꿈속에서나마 우리의 글, 그림, 그리고 여백이 주는 이야기를 읽고 많은 감동과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꿈속에서 우리를 만난 좋은 기억이 그들의 상상력을 키우다 보면, 우리 같은 그림동화책을 더 많이 사랑해주고 읽어줄 거야, 그지?”

 “응. 생각나니? 작가님이 책 주인의 세상으로 들어가 평생 소중한 책으로 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셨잖아.”

 “그러셨지. 책 주인이 우리로부터 받은 감동과 희망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때 우리도 비로소 어른 책으로 클 수 있다고 하셨어. 우리 꼭 그렇게 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인터넷 세일즈 모험보다 훨씬 좋은걸.”

 “맞아. 어른들이 할 일은 어른들이 잘 해줄 거라 믿으라고 어른책들이 한 말, 믿어보자.”

 “그래, 믿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희망과 감동을 퍼 나르는 그림동화책으로 사는 일, 참 좋은 일인 것 같아.”

 “이렇게 좋을 것을, 참고서 군대 책들은 모르겠지? 우리가 책방으로 돌아가면, 게네들에게도 잘 해주자 ~~. 어떻게 보면 게네들도 딱하잖니.”

 “흥! 게네들 하는 거 봐서….”

 2탄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까불며 낄낄거린다. 둘은 꿈파수를 누비고 다니면서 그림동화책의 글, 그림, 그리고 여백을 꿈길로 보내고 있다. 어른책들이 안전한 꿈파수 전류를 계속 공급해주고 있으니 위험한 곳으로 빠져들거나 감전 바이러스에 걸릴 위험도 없다.

 “2탄아, 우리 다음에는 요리책 코너, 비디오게임 코너, 뭐 그런 데도 가 보자. 책방은 아주 넓고 넓더라. 우리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코너들도 너무 많아.”

 “그래, 자서전 코너도 있더라. 만화 코너도 꼭 가봐야지.”

 “그러자, 그러자.”

 

 

<끝>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1 전 이대로 잘 살아요 이경미 2020-09-12 65  
20 농구코트에서 (산문시) 이경미 2020-09-12 75  
19 순댓국집 이경미 2020-09-12 77  
18 1월을 위한 노래 이경미 2020-09-12 78  
17 먼지 이경미 2020-09-12 79  
16 너 떠난 날 이경미 2020-09-12 67  
15 꽃의 비밀 이경미 2020-09-12 74  
14 T팬티 이경미 2020-09-12 69  
13 사과 이경미 2020-09-12 74  
12 와이셔츠 이경미 2020-09-12 62  
11 어느 때밀이의 일기 이경미 2020-09-12 75  
10 마음의 속옷 이경미 2020-09-12 65  
9 대사관 앞 풍경 이경미 2020-09-12 63  
8 지짐이 이경미 2020-09-12 63  
7 대형 서점 이경미 2020-09-12 65  
6 60살의 사랑 이경미 2020-09-12 70  
5 우유 이경미 2020-09-12 47  
» 꿈파수 (초등 고학년 동화) 이경미 2020-09-12 65  
3 신비한 지하식당 (어른이 읽어도 좋을 동화) 이경미 2020-09-12 60  
2 부부의 하루 (단편소설) 이경미 2020-09-12 68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8.09.19

오늘 조회수:
2
어제 조회수:
0
전체 조회수:
22,477

오늘 방문수:
2
어제 방문수:
0
전체 방문수:
8,564